천남성은 투구꽃과 함께 맹독성의 식물로 알려져 있는 식물이다. 천남성은 생약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식물의 뿌리인 괴경을 법제하여 말린 것을 약으로 쓴다. 독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반듯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는 것이 약재로써 안전하다. 독성은 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잎이나 줄기, 열매에도 들어 있다. 천남성의 열매는 붉은 색으로 익는다. 식물이 씨앗에 만드는 붉은 색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내가 만난 식물의 99%에서 이는 먹으라는 신호다. 극히 적은 수에서 경고의 표시로 사용한다. 경고의 표시로 대표적인 예가 고추다. 산자락에서 발견되는 초피의 열매도 붉은 색을 띠지만 먹었다가는 곤욕을 치를 수 있다. 혀끝에 살짝만 묻혀 봐도 혀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 30분 이상 지속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마취독 때문에 옛날에는 고기를 잡는 방법으로 응용되기고 했다. 이렇게 경고를 보내는 열매들은 대체로 과육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씨앗의 이동에 관계가 없기 때문에 과육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붉은 색의 열매를 만드는 대부분은 맛이 있거나 없는 것의 차이 일뿐 설령 독이 맹독성의 식물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식물을 믿는다. 식물이 표현 하는 붉은 색은 분명 먹으라는 싸인signature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천남성의 씨앗은 마치 여러 개의 옥수수 알이 박혀있는 것 같은 모양으로 빨갛게 익는다. 완숙하면 겉의 표면이 기름을 발라놓은 듯 윤기가 흐른다. 아마도 새들의 먹이가 되기로 작정했을 것이며 왁스를 발라놓은 것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한번은 나의 믿음이 옳은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한 알을 따서 맛을 본적이 있다. 그 때 믿음에 확신을 가졌다. 식감은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다. 어려서 맛보았던 미끈한 코를 먹는 느낌이다. 코에 설탕을 섞은 맛이라면 딱 맞는 표현이다. 어쨌든 달콤한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고 예감이 맞았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기분이 아주 뿌듯했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어느 날 일단의 사람들에게 숲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였다. 나는 사실 숲에 대한 이야기라면 꽤 재미있게 진행한다는 칭찬을 받는 사람 중 하나다. 그날 빨갛게 익은 천남성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 먹어본 기억이 있었으므로 식물이 보내는 붉은 색은 식물과 동물 사이의 암묵적 의사소통의 방법이며 붉은 색은 카로티노이드의 색소로 항산화 성분으로 식물이 동물을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등의 설명을 했다. 긴장감을 높이기 위하여 천남성은 맹독의 식물이고 희빈 장씨는 천남성이 주재로 쓰인 사약(賜藥)을 받고 죽었다는 등의 설명을 이어갔다. 사약의 뜻은 죽는 약이라는 뜻의 사약(死藥)이 아니라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긴 하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최대한의 은덕을 베풀어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게 하기 위해서 임금의 은덕으로 내리는 약이라는 뜻의 사약(賜藥)이라는 설명을 길게 이었다. 숲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사실 생태적으로 엮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민속이나 역사가 함께 엮인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실제로 천남성이 얼마나 맹독인지를 실험하고자 한다면 줄기를 꺾어 그 즙을 상처에 발라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다시는 잊을 수 없는 통렬한 통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끌어 가야한다. 누가 저 열매를 먹어보겠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천남성은 사약의 재료라는 설명을 했기 때문에 이날 역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전에 먹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신 있게 입에 넣고 과육을 씹었다. 잠깐의 달콤함 뒤에 찾아온 그 통렬한 아픔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혓바닥을 수십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더니 입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 찾아왔다. 다시 봐도 이는 분명 전과 같은 천남성인데, 전혀 다른 반응으로 나타났다. 창피함은 잠시, 입을 아무리 헹구어도 아픔은 거의 10분간 지속되었다. 치과 진료를 받을 때 맞는 마취주사의 느낌은 점점 덜 해졌기는 했지만 다음 날까지도 지속되었다. 그 후,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덜 익었던 것이다. 천남성 열매는 완숙하면 윤기가 흐른다. 윤기가 나지 않는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입안에 알맹이를 통으로 넣은 퍼포먼스는 하지 않는다. 조금 맛을 보는 정도에서 끝난다. 비록 독이 있기는 하지만 혀끝으로 맛보는 정도의 경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식물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독초라 할지라도 치사량을 넘지 않으면 절대 죽는 일은 없다. 치사량이 되려면 적어도 한 송이는 다 먹어야 할 것이다.
익지 않은 과일은 독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독을 합성하는 식물들은 아마도 모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씨앗이 완전히 익은 다음에는 독이 사라진다. 독은 오히려 약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식물은 같은 재료로 독을 만들기도 하고 약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식물의 능력이다. 식물의 붉은 색은 안토시아닌antocyanin이든 라이코펜lycopen이든 모두 항산화 성을 갖는 폴리페놀계의 화학성분이다. 자리공이(보통은 미국자리공)란 식물이 있다. Phytolaccatoxin이라 불이는 독이 이 식물에서 존재한다. 보통은 뿌리에 가장 많고 줄기나 덜 익은 열매에 뿌리보다 적은 양이 존재하지만 성숙한 열매에는 없다. 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수확이 끝난 인삼 밭에서 싹이 튼 자리공을 인삼으로 착각하여 캐서는 동료교사들에게 한 뿌리씩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나누어준 교사의 마음은 선의였으나 이를 먹은 교사들은 모두 Phytolaccatoxin에 중독되어 단체로 응급실 신제를 진 적이 있다는 말을 현장에 있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자리공 중독 사고는 보통의 뿌리를 식용으로 착각하는 데서 일어난다. 이 독에 의한 대부분의 사망사고는 호흡기의 기능이 마비됨으로써 일어난다. 이렇게 살상력이 있는 맹독성의 풀이지만 새순은 삶고 우려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또한 검붉게 익은 완숙된 열매에는 거의 독성이 없다. 그러나 덜 익은 열매는 독이 있어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배풍등은 가지과의 식물이다. 이는 솔라닌solanine이란 독을 가지고 합성하는 식물이라는 의미다. 배풍등의 익은 열매는 마치 앵두처럼 예쁘다. 가끔은 한겨울에도 열매를 달고 있어서 눈이 내린 날 이 열매를 보면 마치 보석 같다. 먹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러나 별로 권하고 싶은 맛이 아니다. 처음의 맛은 약간의 단맛과 짠맛이 혼합되지만 뒷맛은 아주 쓰다. 백당나무의 열매도 먹음직스럽지만 맛은 영 아니다. 이 열매들은 새들의 먹이가 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지만, 왜 맛이 이런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만 새들은 미각이 둔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