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등산기(15.1.27.-28.)
제1일(1.27.)
사실 서울을 떠나기 전날의 일기예보는 영동지역에 적설량 30cm 정도의 폭설과 영하9도의 강추위가 예보되었다. 이로 인해 나는 출발을 망설였다. 일행이 모두 70을 넘긴 나이에 무리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행중에서도 우려하는 전화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27일 아침 9시 우리는 예정대로 천호역을 출발했다. 우리는 교대로 운전하여 약 4시간만에 태백시의 황지 자유시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는 예보와는 달리 맑고 포근했다. 그곳에서 감자옹심이국을 시켜 점심을 먹었다. 감자 수제비국이다. 쫄깃한 특별한 식감 때문에 유명하다고 한다. 나로서는 난생 처음 맛보는 음식이다. 식사후에 우리는 황지연못을 방문했다. 1일 5천톤의 물을 뿜어낸다고 하는데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고, 가뭄기에는 태백시의 주요 상수원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이 깊은 산간 벽지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큰 강의 원류가 되고 식수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놀랍다.
황지연을 나와 태백산 도립공원내 눈꽃축제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석탄박물관까지의 오르막 길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차들이 끝없이 이어져 주차하고 있었다. 축제장 일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고, 각설이 타령, 가요무대, 거리의 개인 악사들이 축제를 띠우는 이벤트들을 벌리고 있었다. 거대한 거북선 등 각종 눈으로 만든 조형물들이 들어선 축제장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노래하고 춤추는 흥겨운 장면들이 벌어졌다. 이 깊은 태백의 산골에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온 것 하나만으로도 이 축제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축제장 맨 위쪽에는 석탄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축제에 온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도 찾았다. 박물관에는 층마다 전시관들이 잘 배치되어 있고 전시내용물도 알차고 풍부했다. 특히 60년대의 탄광촌 모습과 광부들의 생활상을 보면서 눈시울의 적시는 일행도 있었다. 가난하고 비참했던 과거가 자랑일 수는 없어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박물관의 지하갱도 체험까지 모두 마쳐도 시간이 남아 있어 우리 일행은 용연동굴로 향했다.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동굴이라고 하는 데 들어가 보니 종류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꾸불꾸불한 동굴을 따라 방문자들의 안전통로가 개설되어 있다. 기묘하게 생긴 둥굴들에는 지옥의 문, 천상에 오르는 계단, 용의 집 등 재미있는 명칭이 붙여져 있었는데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용의 집이 아마도 이 동굴을 용연굴이라 지은 이유인것 같다. 용연굴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태백산 한우촌에서 비싼 한우 등심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내일의 등산에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다.
제2일
아침 8시경 우리 일행 7명은 백단사 매표소를 통과하며 태백산 등정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등산로는 폭이 넓긴 했으나 얼어붙어 미끄럽고 경사가 가파랐다. 등산로 양편으로는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서 큰 키를 자랑하고 있고, 산 속은 태백산의 차갑고 신선한 아침 찬공기로 가득했다. 심호흡을 하니 폐속까지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퍼졌다. 당골 갈림길까지 약 2km 구간을 1시간이 걸려 올랐다. 갈림길에서 이 시간에 벌써 천제단을 둘러보고 하산하는 일단의 등산객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서울에서 관광버스로 새벽에 당골에 도착하여 새벽 4시 반부터 어둠을 뚫고 산에 올랐다가 지금 하산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대단한 기백이다. 그들이 전한 산정의 날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와 칼바람이 분다고 했다.
그러나 당골 갈림길에서부터 만경사 앞의 용정을 지나 단종비각과 천제단 기점에 도착할 때까지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고 고도를 오를수록 안개만 조금씩 짙어져 갔다. 날씨도 비교적 포근하여 산을 오르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등산로 양 옆으로는 짙은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형체를 들어내는 아름다운 눈꽃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등산객들을 맞이했다. 선경이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산정에 올라보니 그곳은 오르던 길과는 너무나 달랐다. 다른 세상이었다.
천제단에 오르니 울부짓듯 웅장하고 거대한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소리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조금전에 지나온 용정(龍井)에서 물을 마신 용(龍)이 용정의 신비한 물 기운으로 승천하며 울부짖는 용트림 소리로 들렸다. 소리는 안개 속에서 바람 소리와 함께 들려왔고, 안개는 하늘과 땅, 산정과 계곡을 두루 휘감아 땅과 하늘의 경계마져 허물어 버린 것 같았다. 사방은 차거운 칼바람과 함께 휘몰아쳐 오는 안개뿐이다. 칼바람이 너무나 세차게 불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바람을 피하려고 천제단 돌담 아래로 몸을 웅쿠려 보았지만 담을 쌓은 돌과 돌 사이의 공간으로도 바람은 거침없이 몰아쳐 들어와 나의 몸을 밀쳐냈다. 천제단을 중심으로 북쪽 300미터 지점인 태백산의 주봉 장군봉까지 가는 동안에도 안개바람은 계속 불어댔고 우리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예부터 삼한의 명산, 민족의 영산이라 일컫는 태백산 정상봉은 이렇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천제단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지만 잠시라도 눈을 감고 이곳에 제단을 쌓고 치성을 드렸던 선조들의 마음을 가늠해 본다. 왕조시대에는 왕실과 국가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했고, 일제시대에는 독립투사들이 조국 독립의 염원을 빌었던 곳이라 생각하니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우리는 장군봉을 뒤로하고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하산은 유일사 방향을 택했다.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는 대표적인 등산로라 한다. 내려오며 보니 실제로 오르고 내리는 등산객들의 인파가 끊어지지 않았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거대한 주목나무 아래 아늑한 곳에 장소를 잡아 컵라면에 더운 물을 부어넣었다. 그러나 찬 기온 탓인지 라면은 제대로 익지않아 입안에서 서걱거렸다. 겨우 허기를 채우고 다시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며 자세히 보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거의 모두가 밝고 힘차보였다. 누구나 명품 등산복들을 갖추어 입고 있어 겉으로 얼핏 보기에는 모두가 여유롭고 부자인 듯 하다. 겉 뿐만 아니라 속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들의 얼굴과 옷차림을 보며 석탄박물관에서 본 60-70년대 비참했던 탄부들의 모습을 교차시켜 본다. 반세기 동안 우리 모두 이렇게 변했다. 기적을 이룬 나라다.
오후 2시경 유일사를 통과하여 계속 하산했다. 모두들 이번 태백산 등산에 만족한 표정들이다. 쉼터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쉬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덧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이곳 날씨는 역시 변화무쌍하다.
백단사에 주차했던 차를 가지고 와서 귀로에 올랐다. 귀로에 영월역앞의 다슬기국밥집에서 도착하니 오후 4시경이다.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제천을 거쳐 중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다시 출발지였던 천호역에 되돌아 왔다. 밤 7시경이다. 1박2일의 끝이다. 또 다른 새로운 추억을 만든 멋진 산행이었다.
첫댓글 추억에 남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