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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3장
마지막 권면: 성도를 향한 사랑을 실천하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제사를 드리라
(찬송 360장)
2023-11-7, 화
맥락과 의미
1-4장에서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모세보다 더 탁월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했습니다.
5-10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론 제사장보다 더 좋고 완전한 제사장으로서(5-7장), 자신의 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하늘의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8-10장).
그리스도는 우리의 약함에 동참하셨습니다. 또 죄는 없으시지만 죄의 유혹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받으십니다.
11장은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을 소개합니다. 12장은 우리의 믿음의 가장 좋은 모범으로 예수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거룩, 성도를 향한 사랑의 달리기를 계속 이어가자고 합니다. 하늘나라로 함께 들어가자고 권하고 격려했습니다.
13장은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원한 언약과 제사에 기초하여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1.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체적으로 해야 할 선한 행동들(1-6절)
2. 직분자와 그리스도를 본받아 찬양과 사랑의 제사를 드리자(7-17절)
3. 기도와 찬양의 축복(18-25절)
1.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체적으로 해야 할 선한 행동들(1-6절)
1절: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계속”은 “영존하는”(12:27)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지금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셔서 영원한 나라의 창고에 들이실 것입니다.
2절: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손님을 대접한 아브라함은 자기가 천사를 대접하는 것을 “잊고서”(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3절: 성도들 중에 믿음 때문에 “갇힌 자”,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감옥에 찾아가 위로하고 먹을 것을 나누라고 합니다.
4절: “음행”하지 말고 가정과 성의 순결을 지키라 합니다. 이것을 어기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5절: “돈을 사랑하지 말고.” 돈을 사랑하기보다 가진 것으로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을 위해 사용하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이 있으면 탐욕 때문에 시달리고, 돈이 없으면 염려와 걱정 때문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마 6:33) 약속의 말씀 안에서 자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성도는 적은 것에도 만족하며 즐깁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주님 때문에 고난받고 경제적으로 고생하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구약 성도들, 특히 족장과 왕들을 격려하시던 말씀으로 신약 성도인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가 친히”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여호수아 1:5).
신약의 여호수아(예수님)께서 그 약속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임마누엘”(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마 1:23).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약속하시고 그분의 몸은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분의 능력과 성령님을 통해서 교회 안에, 우리 안에 임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담대합니다.
6절: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여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시 118:6).
구약의 왕들은 전쟁에서 싸우다 거의 죽을 뻔한 위험 가운데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의지하여 다시 힘을 얻어 승리하곤 했습니다. 다윗 왕은 많은 전쟁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그것을 시로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서 성령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백성 된 구약과 신약 교회의 성도들에게 같은 축복의 말씀으로 위로해주 십니다. 오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겪는 우리로 하여금 담대하게 고백하게 하십니다. “주(여호와)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우리가 약속으로 받은 참 가나안 땅,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사람이 나를 어찌하리요?” 이 굳센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갑시다. 지금 부족한 가운데서도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섬깁시다.
2. 직분자와 그리스도를 본받아 찬양과 사랑의 제사를 드리자(7-17절)
1) 앞서간 직분자와 그리스도를 본받아(7-8절)
7절: 말씀을 가르치던 직분자들이 말씀대로 살던 삶을 기억하십시오(“생각하며”).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절: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와 오늘이나 같은 분이십니다(시편 102:27). 과거에 그리스도는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5:7).
지금 그리스도는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서 대제사장으로 섬기십니다(4:15). 그분은 영원히 사시면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십니다(7:25). 그리스도의 “임재”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와 능력이 영원히 우리에게 있는데 왜 낙심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직분자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계속됩니다. 그들이 전해준 가르침을 계속 따르십시오. 앞서간 사도들, 말씀 전파자들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를 때 그리스도는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 구약의 제사를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 몸은 천막 밖에, 피는 백성을 거룩하게(9-12절)
9절: 다른 교훈에 흔들리지 말고 교회가 전해준 복음의 핵심을 잡으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음식”으로 굳게 되지 않습니다. 9:10에서 구약 시대의 제사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시적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먹고 마시는 제사 제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과거의 제사 의식을 지키는 것으로 우리 마음이 바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사에서 보여주신 은혜로 우리는 죄용서 받고 거룩한 삶에서 강해집니다.
“음식”과 비슷한 단어가 “에서가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것”(12:16)에 쓰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즉 물질에 대한 탐심 때문에 헛된 가르침에 빠지지 맙시다.
10-12절: 우리에게 참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시대 매년 7월 10일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어린양의 피를 지성소 안에 뿌리면서 지성소 안,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양의 몸은 백성이 사는 곳 바깥(영문 밖)에 던져졌습니다.
그리스도도 그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 피의 공로로써 우리를 대표하여 하나님 앞으로, 하늘로 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제사의 효과를 주시고 있습니다.
3) 우리가 드릴 제사: 고난, 감사, 나눔(13-16절)
13-16절: 우리도 예수님의 능욕, 수치와 고난을 지고 사람들이 사는 곳 바깥으로 나갑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질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는 앞으로 올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나갑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따라 살기 때문에, 자기의 탐욕을 따르는 세상 사람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이 사회 속에 살지만 이 사회와 다른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마치 이 사회 바깥으로 추방된 가난한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사람들에게 모욕도 당합니다. 그러나 이 세속 사회 가운데서 사랑과 섬김의 고난의 짐을 지고 나갑시다.
세상 바깥으로 추방당하듯이 고난을 겪는 성도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 첫째,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시다”(15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죄용서 받아 거룩하게 된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둘째,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기(코이노니아)을 잊지 맙시다”(16절, 1절).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행합시다. 먼저 성도들과 더 힘껏 나눕시다. 서로를 향한 이 사랑의 섬김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4) 직분자(장로, 집사, 특히 목사)를 존중하고 복종하라(17절)
그리스도를 통한 제사의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이 교회와 직분자입니다. 성도를 인도하는 직분자에게 순종합시다. 그들에게 복종합시다. 여기서 말하는 복종은 다른 사람의 밑에 인격적으로 지배당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복종은 그들이 말씀으로 인도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직분자는 성도들의 삶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평가를 받고 회계할 자인 것처럼 깨어 기도하고 일합니다. 이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에 대해 결산할 것입니다(마 18:23).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 인생을 결산하며(히 4:13) 우리의 숨은 것을 발가벗기듯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말씀을 주셔서 말씀으로 우리의 감춰진 것을 비추고 스스로를 판단하게 하십니다(4:12, 13).
말씀을 전파하는 자들은 그들이 섬길 성도들의 삶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고 결산해야 할 자인 것처럼 그들을 가르치고 권면합니다. 말씀 전하는 자들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말씀 전하는 자들이 기쁨으로 성도를 섬기도록 합시다. 그러할 때 성도의 삶에 유익이 있습니다.
3. 기도와 찬양의 축복(18-25절)
1) 기도 부탁(18-19절)
히브리서를 쓴 사도와 동역자는 자신들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교회에 부탁합니다. 자기들이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양심으로 선을 행하고 있음을 확신 있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더욱 말씀에 순종하도록 기도로써 도와달라고 합니다. 성도를 향해 돌아가는 것을 ‘회복’이라고 표현합니다. 성도들이 다시 만나는 것은 병자의 몸이 회복되는 것과 같습니다(막 3:5, 8:25, 9:12).
교회 안에서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성도가 함께 만나 예배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회복됩니다(행 1:6). 각자가 회복되고 공동체로서 회복됩니다.
2) 찬양(20-21절)
교회의 목자인 히브리서의 저자는 자신보다 더 큰 “양들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것을 압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양의 큰 목자인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성도가 서로 평화를 누리고, 성도들이 서로 평화를 누리고 교회가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이제도 작은 목자인 목사들을 사용하셔서 교회를 “선한 일에 온전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목사들과 교회에 여러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사용하여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십니다(엡 4:12). 성령님을 통해서 성도의 선한 행동을 일으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의 선행을 받으십니다. “그(하나님) 앞에 즐거운 것”,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서 받으십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물, 성도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제물이 교회 안에 많아지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이렇게 영광을 돌리는 성도와 교회는 성령으로 더 충만할 것입니다. 더 많은 선행을 하는 데서 자랄 것입니다.
3) 성도가 피차 나누는 축복의 인사, 사도가 전하는 성령님의 축복(22-25절)
22-24절: 마지막으로 권면의 말을 용납하도록 간절히 부탁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24절). 교회를 인도하는 직분자(7,17,24절)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라는 말을 특별히 첨가함으로써,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25절: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성령님을 대신하여 사도가 선포합니다. 은혜 때문에 평강/평화(21절)가 성도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도의 서신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사랑의 대상을 바로 정합시다. 돈을 사랑하기보다,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섬깁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먼저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분께서 이루시는 나라는 사랑이 넘칩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향해 구원의 은혜를 항상 기뻐하고 감사 찬양합시다. 성도가 사랑을 나누며 서로 섬깁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몸을 속죄제로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우리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갑시다.
하나님께 찬양과 사랑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 제물로 드립시다. 우리가 찬양과 사랑의 제사를 드리며 수고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수고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담대하게 순종합시다. 우리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의지할 때(9,25절) 더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섬김 가운데 평화가 넘치기 바랍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형제 사랑
1절, “사랑”(좋아한다-필레오, 필로스)의 대상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필-아델피아)을 계속하십시오. “손님 대접”(손님대접-필로-크세니아)하기를 잊지 마십시오(2절). 돈을 사랑하지 마십시오(아-필로-아르고스, 5절). 돈을 사랑하기보다 가진 것으로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을 위해 사용합시다.
<참고> 2절, 잊지 마십시오, 부지 중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마십시오(에피-란타노). 아브라함은 “부지 중에”(란타노, 잊고서)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참고> 2절, 계속하라
형제 사랑을 “계속하는 것”(메노)은 “영존하는”(메노, 12:27)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지금 형제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셔서 영원한 나라의 창고에 들이실 것입니다.
<참고> 5절,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여호수아 1:5)
이 약속은 구약 성도에게 하신 격려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28:15에서, 야곱이 맹수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 가운데 빈 들에서 잠잘 때 여호와께서 나타나서 하신 약속입니다.
신명기 31:6,8에서 모세가 광야 40년 동안 백성을 인도하고 120세가 되어 임종을 앞두고 백성과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같은 말로 약속하고 격려했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 하나님께서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 1:5에서 여호와께서 직접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같은 약속을 반복하며 격려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6은 이어서,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라”고 합니다.
역대상 28:20에서는 다윗이 임종을 앞두고 그의 왕위를 이을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대해 같은 약속의 말씀으로 격려했습니다.
<참고> 6절,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시편 118:6)
왕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당신)는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시편 118:6). 지난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당했을 때 이렇게 믿음으로 고백하고 싸웠습니다.
이 왕을 환영하면서 백성은 다음과 같이 찬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여호와(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시 118:25). 여호와의 이름으로 전쟁하고, 여호와의 이름의 능력으로 승리한 왕을 환영하며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다윗 왕조가 멸망한 뒤에도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유월절 때마다 부르면서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주간이 유월절이었습니다. 유월절이 있는 주간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크게 소리치며 이 시편으로 찬송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 21:9, 시 118:25)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그리스도는 평화의 나귀를 타신 겸손한 왕으로서 죄와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날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하는가?” 물었습니다(마 21:23). 예수님께서 메시아를 대적하는 그들에게 다시 시편 118편을 인용하셨습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마 21:42, 시 118:22,23).
겸손함으로 나귀를 타고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는 낮아져서 버림받은 돌처럼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것입니다. 이 돌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것이요, 반대하는 자들은 이 돌 위에 떨어져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마 21:43-44).
그 주간 목요일 저녁,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하시며 제자들과 성찬을 끝내셨습니다. “찬미하며”(마 26:30) 겟세마네로 나아갔습니다. 아마도 유월절의 찬송인 시편 118편을 불렀을 것입니다. 거기서 체포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음과 마귀와 죄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늘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참고> 9절, 음식
“음식”(브로마)으로 마음이 굳게 되지 않습니다. 9:10에서 구약 백성에게 먹고(브로마) 마시는 의식에 대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성도를 선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에서가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12:16)에 쓰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즉 물질에 대한 탐심 때문에 헛된 가르침에 빠지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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