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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2 통권 39호]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진 단양 우(丹陽 禹) 씨와의 인연 |
|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2005. 2 통권 39호 살아가며 느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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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있다보면 각처에서 오신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과 몇 분간의 인연에서 몇 년간의 지속적인 인연까지 다양하게 접하게 된다. 몇 년간 이 곳에서 활동을 하면서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종중(宗中)이 있어 몇 자 적어본다. 단양(丹陽) 우(禹)씨 판서공파(判書公波) 종중에서는 매년 8월이 되면 어린 자손들까지 다 대동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읍민속마음을 찾는다. 이 곳에서 현감을 지냈던 선조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정의현에는 총 219명의 현감이 다녀갔으며, 그 중 단양 우씨 우여도 현감(縣監)은 80번째 다녀가신 분이다. 그 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곁들인다면 현감은 무신(武臣) 출신으로 현종 6년(1665년 8월)에 임식 현감 후임으로 도임(到任)했고, 1668년 5월에 이임(移任)했다. 재임당시 제주목사는 이중신, 홍우량, 이인이며 제주판관은 최진남, 김환이고, 대정현감은 이이시, 안숙, 조문혁이 재임했었다. 우여도 현감의 호(號)는 만회이다. 어린시절부터 책읽기를 무척 좋아했고, 중국인에게 궁마를 사사했으며, 무신출신이면서도 학문에도 굉장히 조예가 깊으셨던 분이다. 1651년(효조 2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사 사랑관, 선전관, 도사 등을 역임했었고, 마지막으로 성주(星注)에서 벼슬을 하시다 50세 넘어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들어가 도야에 묻혀 사시다 돌아가셨다. 재물에 무탐하시고, 청렴결백하여 육지에는 선정비도 남아 있다. 참고로 단양우씨로서 제주에 왔던 관리로는 우인열(고려말, 조선초 때 무신) 제주 체찰사, 우동(성종) 제주판관, 우하형(영조) 제주목사가 있다. 가까운 지척도 아니고 바다 건너 먼 이 곳까지 후손들을 데리고 자취를 찾아본다는 것이 아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것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런데 당황스럽고, 죄송스럽고, 체면이 안 서는 것은 이 쪽이다. 현감이 정사(政事)를 보던 동헌이라지만 졸속 복원에 강당과 다름없는 텅빈 내부. 종손(宗孫)님 말씀이 가슴을 찌른다. “올해도 변함없이 그대로군요...” 나의 바람이라면 그래도 밀납인형으로 집무 모습이라도 재현해 놓고(제주 목관아지처럼) 자료를 체계화시켜 현감들이 다녀간 연대, 성함, 간단히 치적들을 적어 붙여 놓는다면 관광을 왔던 분들이라도 후손들을 데리고 다시 찾지 않을까? 요사이 관광자원 고갈이다 뭐다 하면서 굉장히 목소리를 높이고, 거창하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투자하려고만 든다. 멀리 보지 않고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며 모든 것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
첫댓글 선조를 찾는 정신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멀지않아 복원도 되겠지요. 희망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