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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서 시를 읽다(30)
-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
김철교(시인, 배재대 명예 교수)
2015년 7월 11일 (토)
로마에는 패키지여행 중에 잠깐 들른 것을 제외하더라도 세 번째 방문이다. 이번에는 오롯이 미술관만 집중적으로 방문하기로 하였다. 바티칸 박물관도 회화와 조각에 초점을 맞추고,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 보르게세 미술관,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등에서도 회화와 조각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로마에서의 첫째 날은 ‘자전거나라’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하루 내내 바티칸 시티를 중심으로한 회화와 조각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살펴보았다. 로마역(Termini) 건너편에 있는 세레나 호텔(Serena)에서 일찍 아침식사를 하고 시프로행 지하철(Termini -> Cipro)을 탔다. 바티칸 투어를 위해 8시 20분까지 지하철 역사(Cipro) 밖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지불한 예약비 45,000원에, 현지에서 입장료 포함 20유로를 지불하였다. 하루 종일 투어 코스는, 피나코테카관(회화관) → 솔방울정원(피냐정원) → 벨베데레정원 → 뮤즈의 방 → 로톤다 방 → 그리스십자가의 방 → 동로마조각관 → 타피스트리의 방 → 지도의 방 → 라파엘로 방 → 시스티나소성당 → 성베드로성당 → 성베드로 광장. 오후 5시가 되어 해산하였다.
로마는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 전성기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베르니니의 바로크 건축물과, 르네상스 3대화가인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의 작품들은 물론,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해당하는 마니에리즘의 예술품들도 적지 않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그리스-로마 고전미술의 가치기준으로 돌아가고자, 신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15-16세기의 예술운동이다. 인간과 자연에 관한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 고전적인 이상주의에의 도달을 목표로 하였다. 미술부문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이 시기를 장식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 사이에 ‘마니에리즘(영어: Mannerism, 이탈리아어: Manierismo)’이라고 불리는 시대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우고 스페인에서 활동을 했던 그리스인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등이 대표적인 화가라 하겠다. 이들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독특한 표현력을 강조함으로써, 르네상스의 명료한 표현은 마니에리즘에 와서 복잡하고 모호하고 난해하게 변했다.
바로크(Baroque)는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미술 양식으로 남아메리카에서도 유행하였다. 귀족들의 표현수단이기도 한 바로크 양식은 화려함을 과시하였다. 동적이고 남성적이며, 불규칙하고 과장된 표현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는 강렬한 명암을 잘 활용하였고, 루벤스(Rubens, 1577-1640)는 역동성, 강렬한 색감, 관능미를 추구하였으며, <시녀들>로 유명한 궁정화가 벨라스케스(Velázquez, 1599-1660), <야경>을 그린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등에 이르러 바로크 미술은 절정을 이루었다.
이탈리아 로마 속의 작은 나라 바티칸에 위치하고 있는 바티칸 박물관은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Jullius II)가 벨베데레 정원(Belvedere Courtyard)에서 라오콘상(Laocoon) 등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한 것을 공식적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현재는 총 24개의 미술관과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피나코테카(Pinacoteca: 회화관)
바티칸 미술관의 피나코테카(회화관)에서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거장들을 포함한, 이탈리아 12-19세기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제4실에 있는 포를리(Melozzo da Forli)의 프레스코화인 <음악천사들(Musical Angels)>, 제8실에 있는 라파엘로의 걸작 <폴리뇨의 성모(Madonna of Foligno)>와 <그리스도의 변용(Transfiguration)> 그리고 <성모의 대관(The Coronation of the Virgin)>, 제9실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완성작 <성 히에로니무스(St. Hieronymus)>, 제12실에서는 마니엘리즘에 지대한 영향을 준 카라바조와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리스도 하강(The Deposition)> 등이 발길을 붙잡는다.
(1) 그리스도의 변용(라파엘로)
르네상스 3대작가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의 유작으로,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르네상스회화를 집약시킨 걸작이며, 라파엘로가 37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 했을 때 그의 죽은 머리맡에 놓여 졌던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빛을 이용한 채색, 미켈란젤로의 역동성, 화가 라파엘로의 뛰어난 색채감을 절묘하게 배합해 낸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이 작품의 상단만 완성하고 1520년 4월 6일에 열병으로 죽게 되자, 그의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가 라파엘로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하단을 완성했다. 이 그림은 마태복음 17장의 두 장면을 그린 것이다. 상단부는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옷이 하얗게 빛나면서 모세,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었던 장면이며, 하단부는 간질병에 걸린 소년이 치료를 받기 위해 사도들 앞에 이끌리어 나오는 장면이다.
<Raffaello Sanzio, La Transfigurazione, 1519-20, Oil on Panel, 405x278Cm, Vatican Museums>
(2) 비올라를 연주하는 천사(멜로초 다 포를리)
화가 포를리가 그린 음악천사들은, 곱게 간 석회가루와 화공약품을 물과 함께 배합해 만든 물감으로 그렸다. 바티칸 박물관내의 시스틴성당에 그려져 있는 인류 최대의 걸작인 천장화 보다 약100년 전에 그려진 첫 프레스코화라고 한다. 원래는 로마의 산티 아포스톨리 성당을 장식했던 천장화로, 1711년에 성당을 증축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여러 가지의 악기들을 연주하는 천사들의 모습들이 있으며, 그 중에도 <비올라를 연주하는 천사>가 대표적인 그림이다.
<Melozzo da Forli, Angel playing the viola, 1480, Fresco, 113 x 91 Cm, Vatican Museums>
2. 벨베데레 정원(Belvedere Courtyard): 라오콘 군상
<라오콘 군상>으로 유명한 벨베데레의 정원은 교황 안토켄티우스 8세를 위해 지은 별장의 정원으로 ‘팔각 정원(Octagonal Court)’이라고도 하며, 바티칸의 유명한 조각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라오콘 군상>은 1506년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근처 포도밭에서 밭을 갈던 농부가 우연히 공중목욕탕 유적 속에서 발견하었다.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포도밭 주인으로부터 이 조각상을 사들여 팔각 정원에 전시하게 되면서 바티칸 박물관의 기원이 되었다.
발견 당시에는 오른쪽 팔이 잘려나간 상태였는데 팔의 모양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미켈란젤로는 근육의 모양으로 봤을 때 오른쪽 팔이 굽어져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팔을 펼친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다. 그런데 1905년 로마의 다른 곳에서 부러진 팔을 찾아 1960년경에 지금처럼 굽어진 팔로 재복원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혜안이 증명된 셈이다.
라오콘은 아폴론을 섬기는 트로이의 제관이었다.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군의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오는 것을 반대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살해당했다. 이 조각은 뱀에게 감겨 질식해가는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조각한 것이다.
그리스-로마의 석상에 대해 연구한 플리니우스(Pliny)의 기록에 의하면 로도스(Rhodes)섬 출신의 조각가, 하게산드로스(Hagesandros), 폴리도로스 (Polydoros), 아타노도로스(Athanodoros) 세 사람이 조각한 것으로, 원래는 로마의 티투스 황제(Emperor Titus)의 궁전에 있었다고 한다.
<Hagesandros, Polydoros, and Athanodoros, Laocoön and His Sons, BC 40-30,
Marble, 208 cm × 163 cm × 112 cm, Vatican Museums>
3. 뮤즈의 방: 토르소
<Torso Belvedere, BC 1st Century, Marble, <Torso Miletus, BC 480-70,
60 x 75 x 56Cm, Vatican Museums> Marble, H 132Cm, Musée du Louvre>
토르소(torso)란 목·팔·다리 등이 없는 동체만의 조각작품으로 미완성작품이 아니며, 인체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다. 특히 <벨베데레의 토르소>와 <밀레의 토르소>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바티칸 미술관에 있는 대리석 조각상 <벨베데레의 토르소>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테네 조각가 '네스토르의 아들 아폴로니오스'의 서명이 새겨져 있으며, 기원전 1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토르소의 대상은 르네상스 이래 헤라클레스로 해석되어 왔지만, 오늘날은 필로크테테스(Philoktetes)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밀레의 토르소>는 BC480-47년경의 대리석 조각으로 높이가 132Cm이며,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릴케의 소네트 <태고의 토르소 아폴로(Archaischer Torso Apollos>는 이 토르소를 대상으로 쓴 것으로 유명하며, 사라지고 없는 아폴로신의 눈동자를 시인의 영감으로 살려내고 있다. 이들 토르소는 아마도 사지가 없고 머리가 없기 때문에 더욱 예술가들에게 무한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듯 싶다.
우리는 사과 같은 눈동자 무르익은
들어보지 못한 그의 머리 알지 못하노라.
허나 그의 토르소는 샹들리에처럼 여전히 빛나도다.
눈빛은 조금 풀어졌을 뿐
사라지지 않고 반짝인다.
그렇지 않다면 가슴 굴곡이 그대를 현혹하지 못하리.
그리고 허리의 가벼운 뒤틀림에서
한 가닥 미소가 분만의 중심으로 흘러가지 못하리.
그렇지 않다면 이 석조는 투명하게 떨어지는 어깨선으로
흉하고도 동그란 모습으로 서 있으리.
그리고 맹수의 표피처럼 번쩍이지 못하리.
그리고 온 모서리에서 터져나와 별처럼 빛나지 못하리.
그대 바라보지 않는 부위 없으니
그대 삶을 변화시켜야 하리라.
- 릴케, <태고의 토르소 아폴로> 전문 (고위공, 문학과 미술의 만남, 미술문화, 2004, 25쪽)
4. 라파엘로의 방: 아테네 학당
<Raffaello, School of Athens, 1509, Fresco, 500x700Cm, Stanza della Segnatura, Vatican Museums>
안내 책자에 의하면, 라파엘로는 25세때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고 집무실 네 벽에 신학, 법학, 철학, 시학(예술)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중에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은 철학에 관한 그림으로, 한가운데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이상론을 주장한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서있고, 현실론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며 서있다. 이 외에도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헤라클레이토스, 디오게네스, 프톨레미오스 등 54명의 수학자, 철학자, 천문학자 등이 그려져 있다. 앞부분 턱을 괴고 있는 사람은 미켈란젤로이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플라톤의 얼굴에 그려져 있다. 가장 오른편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라파엘로 자신이라고 한다.
5.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라틴어: Aedicula Sixtina)은 교황의 개인 예배당으로, 식스토 4세에 의해 1474년에 착공되어 1483년에 완공되었다. 교황 궐위 시 새 교황을 선출할 때 추기경들이 모여 선거하는 곳으로, 성당 내부는 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가득하다. 성당의 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프레스코화 <천지창조>가 유명하며, 정면의 <최후의 심판>도 미켈란젤로가 그렸다. 그 밖의 화가들이 그린 왼쪽 그림은 모세의 일생이, 오른쪽 그림은 그리스도의 일생이 각각 6개의 벽화로 그려져 있다.
(1) 천지창조
<천지창조(Genesis, 1508-12, 프레스코화, 4120 x 1320 Cm )>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미켈란젤로가 1508년 5월 작업에 착수하여 4년 5개월 동안 완성한 것이다. 그가 천정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리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무릎에 물이 고이고 등이 굽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천장을 9개로 구분하고 다시 34개면으로 나누어, 천장의 중앙에는 ‘창세기’, 그 주변으로는 ‘12인의 무녀와 예언자’, 삼각형 형태와 반원형 벽면에는 ‘그리스도의 조상’, 천장의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 역사’를 그렸다.
‘창세기’의 세부 내용은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으로부터 추방', '노아의 제물', '노아의 대홍수', '술취한 노아' 등 9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지창조 장면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마지막에 그려졌다고 하는 ‘아담의 창조’에서 하나님이 손끝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주고 있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아담에게 막 생기를 불어 넣는 찰나를 묘사한 것이다. 우측의 하나님은 케루빔(cherubim)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좌측의 아담은 완전한 누드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은 오른쪽 팔을 뻗어서 생명을 아담에게 주고 있으며, 아담은 왼쪽 팔을 뻗어 받아들이고 있다. 이 그림에서 하나님과 아담의 모습이 닮았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는 성경말씀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Michelangelo, Creation of Adam, 1508-1511, Fresco, The Sistine Chapel>
(2)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제작 이후 20년이 지난 1533년에 당시의 교황인 클레멘트 7세로부터 성당의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교황의 사망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뒤를 이은 교황 바오로 3세가 1535년에 다시 요청하여 이 벽화는 1541년에 완성되었다.
미켈란젤로는 큰 벽면을 천상계,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자들 등 5개 부분으로 나누어 391명의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중앙에는 마리아(그림 왼쪽)와 성인들을 거느린 예수 그리스도가, 오른쪽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열쇠를 돌려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예수님의 발아래 오른 쪽에는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당해 순교한 성 바돌로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가 들고 있는 자신의 피부에 그려진 사람은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라고 한다.
그림이 완성되어 공개되자 찬사와 비난이 들끓었다. 등장인물이 모두 나체인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1564년 미켈란젤로가 사망한 해에,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에 의해 생식기부분에 덧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Michelangelo, Last Judgement, Fresco, 1370 x 1220 Cm, The Sistine Chapel>
6. 성 베드로 대성당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일요일마다 교황이 직접 미사를 주관하는 성당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26년에 예수의 수제자이자 초대 교황이었던 성 베드로가 묻혀있는 이곳에 처음 성당을 세웠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원래 있던 성당을 허물고 현재의 대성당을 120여년에 걸쳐 건립하였다. 성당 자체는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성 베드로 광장>과 합해지면 열쇠모양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부여한 천국문의 열쇠로써 가톨릭의 교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열쇠모양은 베드로의 상징이자 교황청의 상징으로 성당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성당 건축에는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였다.
성당 내부 오른쪽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고, 성당 중앙의 원형돔인 쿠폴라(Cupola)가 유명하다. 쿠폴라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하고 델라 포르타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높이가 136m, 직경이 42m에 이른다. 걸어서 330개의 계단을 통해 오르거나, 엘리베이터로 오를 수 있으며, 올라가면 열쇠모양으로 배치된 베드로 광장 모습과 로마 시내를 볼 수 있다.
<Michelangelo, Pieta, 1499, 174 x 195 Cm, 원본은 성베드로 대성당, 복제품은 피카코테카 입구에서 볼 수 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께서 임종하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은 그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인 24세 때 바티칸 교황청 주재 프랑대사(추기경)의 주문으로 2년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한 개의 대리석을 이용해 만들었다. 사람들이 이 조각을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이라고 믿지 않자, 미켈란젤로가 나중에 마리아의 가슴에 놓인 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으나 나중에 후회했다고 한다.
1972년에 5월 21일에 오스트레일리아 사람 라즐로 토스가 망치로 코, 목, 머리, 어깨, 팔꿈치, 손바닥 등을 훼손하자, 원본은 복원하여 방탄유리 속에 넣어 성당 안에 보존하고, 복제품을 피나코테카 회화관 입구에 설치하였
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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