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장미 병들어
장미 병들어
옮겨 놓을 이웃이 없도다.
달랑달랑 외로이
황마차 태워 산에 보낼거나
뚜―― 구슬피
화륜선 태워 대양에 보낼거나
프로펠러 소리 요란히
비행기 태워 성층권에 보낼거나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 전
이내 가슴에 묻어다오.
이 시는 자라가는 아들이 병든 장미를 보고 꿈을 잃어버리기 전에 자신의 가슴에 묻어주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미 병들어 있다. 이 장미를 다른 곳에 옮겨 놓을 이웃이 없다. 이 장미를 달랑달랑거리며 외로이 가는 포장이 씌여진 황마차 태워 산에 보내야 하나? 아니면 뚜―― 하며 구슬피 우는 화륜선 태워 대양에 보내야 하나? 아니면 프로펠러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나는 비행기 태워 성층권에 보내야 하나? 아니다.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 전에 이내 가슴에 묻어다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미 병들어 /옮겨 놓을 이웃이 없도다.’는 장미가 병들었는데 이 장미를 옮겨 놓을 이웃이 없다는 말이다. 이 때 ‘장미’는 우리가 식물이 아니라 상징으로 쓰였다. 이 ‘장미’를 ‘이내 가슴에 묻어다오.’에서 알 수 있다. 식물이라면 ‘가슴에 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달랑달랑 외로이 / 황마차 태워 산에 보낼거나 // 뚜―― 구슬피 / 화륜선 태워 대양에 보낼거나 // 프로펠러 소리 요란히 / 비행기 태워 성층권에 보낼거나’는 화자가 ‘장미’를 ‘아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낼 궁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달랑달랑 외로이’는 ‘황마차’를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이다. ‘뚜―― 구슬피’는 ‘화륜선’을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이다. ‘황마차’는 포장이 처있는 마차를 말한다. ‘산’, ‘대양’, ‘성층권’은 화자와 ‘아이’가 갈 수 없고, 볼 수 없는 먼 곳을 말한다. 이렇게 장미를 먼 곳으로 보내려고 궁리하는 것은 ‘장미’가 병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자라가는 아들이’ 병든 ‘장미’를 보고 ‘꿈’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것저것 / 다 그만두고 //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 전 / 이내 가슴에 묻어다오.’는 앞 연의 방법을 다 포기하고 아들이 꿈을 깨기 전에 화자의 가슴에 묻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꿈’은 화자의 아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 또는 ‘소망’ 등으로 ‘장미’로 표현되었다. 그러기에 ‘아들’은 병든 ‘장미’를 보면 가지고 있는 ‘꿈’이 깨지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아들’이 병든 ‘장미’를 보고 실의에 잠겨 ‘꿈’을 깨기 전에 ‘아들’이 ‘꿈’을 가지고 자라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인 ‘가슴’에 병든 ‘장미’를 옮겨 심어서 ‘장미’를 회복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옮겨 심는다는 말 대신에 ‘묻어다오’라고 말을 한다. 이 단어는 앞선 해석과 달리 병든 ‘장미’를 화자의 ‘가슴’에 숨겨서 아들이 병든 ‘장미’를 찾아 볼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산’, ‘대양’, ‘성층권’은 멀기는 하지만 ‘황마차’, ‘화륜선’, ‘비행기’를 타고 갈 수는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화자의 ‘가슴’은 아들이 갈 수 없는 곳이다. 실제의 장소가 아니고 화자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해석 중에서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깰까 걱정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면 앞선 해석이 전체적인 맥락에 적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화자의 태도는 매우 수동적이다. 자신이 직접 옮겨 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묻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1연에서 ‘옮겨 놓을 이웃이 없’기 때문이다. 화자가 옮겨놓을 마음을 먹고 스스로 할 때까지.20161123후0434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