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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가톨릭 성지순례
19. <스페인> 세비야(Sevilla) 대성당(성 가족 대성당/스페인 바르셀로나/가우디 작품)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모습 1, 2 / 성당 옆 히랄다(Giralda) 탑은 현재 보수 중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은 1248년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한 후 가톨릭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슬람 사원을 개조하여 1401년부터 가톨릭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이슬람 사원보다 몇 배나 크게 짓는 바람에 100여 년이나 흐른 뒤인 1519년에야 완공되었다고 하며 개축보다는 신축 건물이 많아 옛 이슬람 사원의 모습은 거의 없다.
성당의 외부는 고딕(Gothic) 양식으로, 내부는 르네상스(Renaissance) 양식과 바로크(Baroque) 양식이 혼합으로 되어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며 세비야의 상징이자 자랑이라고 한다.
히랄다탑(Torre de la Giralda)은 높이가 105m나 되며, 정상에는 높이가 3.5m나 되는 거대한 풍향계가 있는데 이 종탑은 원래는 이슬람(Islam)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을 낭송하던 미나레트(Minaret/塔)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상의 돔(Dome)을 떼어내고 종루(鐘樓)를 설치하여 28개의 종과 가톨릭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했다는데 1568년에야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며 탑의 이름인 ‘히랄다(Giralda)’는 풍향계를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이슬람 사원이었을 때 이 종루 꼭대기까지 이슬람 술탄들이 말을 타고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계단으로 하지 않고 경사진 길로 빙빙 돌면서 올라가도록 설계했다는데 지금도 그대로이다.
이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 런던의 성 바울 대성당(St. Paul's Cathedral)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장권을 사면서 다른 성당이나 비슷하겠지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우선, 들어가는 입구의 조그만 마당에 첨탑 꼭대기의 여인이 바람개비를 잡고있는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리고 입장하고 보니 미사를 드리는 공간이 아니고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 / 화려한 성당 내부 / 탑 정상(頂上)의 히랄다(Giralda) 풍향계
전시된 미술품, 조각들이 엄청나게 크고 화려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내부에는 그림은 물론, 조각품, 목조 조각 등 훌륭한 예술 작품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플라테레스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모두 수천 점이나 될 것 같은 소장품들은 모두 황금색이라 흡사 황금 궁전에 들어온 느낌이다.
세비야 성당과 히랄다 탑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성당 안에 함께 있는 종탑(鐘塔)이었다.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은 1248년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한 후 가톨릭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슬람 사원을 개조하여 1401년부터 가톨릭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러나 기존의 이슬람 사원보다 몇 배나 크게 짓는 바람에 100여 년이나 흐른 뒤인 1519년에야 완공되었다고 하며, 개축보다는 신축 건물이 많아 옛 이슬람 사원의 모습은 거의 없다. 성당의 외부는 고딕(Gothic) 양식으로, 내부는 르네상스(Renaissance) 양식과 바로크(Baroque)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크며 세비야의 상징이자 자랑이다.
세비야성당 박물관에 들어서면 화려한 가지가지 장식품들과 성물(聖物)들로 눈이 어지러운데 그 가운데 특히 사람들 이목(耳目)을 끄는 것이 왕관을 쓴 네 사람이 콜럼버스의 관을 어깨에 메고 있는 조형물이 있다. 이 콜럼버스의 관(棺)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어 조금 덧붙여 이야기해 본다.
콜럼버스는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배 세 척과 선원들, 그리고 식량을 지원받은 금과 진주, 그리고 향료가 무진장이라는 인도(India)를 향해 항해(航海)를 시작하는데 그가 탔던 배가 산타마리아(Santa Maria) 호다.
당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지동설(地動說)이 처음으로 제기되고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이 나오자 모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지구는 평평하고, 땅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멀리 나가면 폭포처럼 공중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서 근해에서만 고기를 잡거나 항해를 하고 먼바다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중국에서는 커다란 지각판(地殼板)을 네 마리의 거북이 받치고 있는데 이따금 거북이들이 꿈틀거리면 지진이 일어난다는... ㅎㅎ. 당시, 돈벌이를 노리는 모험가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사막을 지나고 산맥을 넘어 무작정 갔더니 인도라는 나라가 나타났는데 밀림 속에 황금으로 된 도시가 있고 코가 긴 코끼리라는 짐승이 있고, 사막 근처 바위 밑에 샘물이 있어 목이 말라 마시려고 했더니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었다.
낙타도 못 마셨는데 불을 붙이니 불이 붙었다(원유)....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코를 손처럼 사용하는 동물이라구? 샘물(石油)에 불이 붙다니.. 말 같지도 않은 말을... ㅎㅎ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니까 동쪽으로 가지 말고 서쪽 바다(대서양)를 배로 가면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콜럼버스는 돈 많은 부자(富者)들을 찾아가서 나에게 배를 대어 달라.
나는 서쪽 바다로 인도를 가겠다. 인도는 황금도시도 있고 진주와 향료가 무진장이라고 하니 한 번만 다녀오면 그 몇 배로 갚아 주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콜럼버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모두 정신 이상자로 취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스페인 여왕 이사벨을 찾아가서 배를 대어달라고 요청하는데 이사벨 여왕은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콜럼버스에게 배를 세척 대어주고 계약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산타페 협약(Santa Fe Capitulations)’이며, 이른바 ‘벤처(모험) 투자’였던 셈이다. 산타페 협약은 무슬림 국가인 그라나다가 함락된 몇 개월 후인 1492년 4월에 체결하는데 협약의 내용은,
①콜럼버스에게 스페인 여왕이 총독 작위(爵位)를 부여하고,
②앞으로 발견되는 지역의 대 제독과 식민지 총독으로 인정하며,
③이러한 작위(爵位)는 그의 자손들에게 영구히 상속되고,
④그곳에서 가지고 오는 모든 귀금속의 10분의 1을 콜럼버스가 소유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이 산타페 협약 체결 모습의 동상이 스페인의 그라나다(Granada) 대 성당 앞 광장인 ‘이사벨 라 까톨리카 광장(Plaza Isabel la Catorica)’ 가운데 우뚝 세워져 있다.
첫 항해 성공(산타 마리아호) / 산타페 협약 동상(누에바 광장) / 금은보화(金銀寶貨) 착취 / 콜럼버스
이 산타페 협약 체결 모습의 동상이 그라나다(Granada) 대 성당 앞 광장인 ‘이사벨라 카톨리카 광장(Plaza Isabel la Catorica)’ 가운데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을 나는 보고 왔다.
이런 이사벨 여왕의 과감한 투자로 스페인은 해양대국, 스페인 무적함대, 중남미에 광활한 식민지를 거느리는 강대국(强大國)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산타페 협약 체결 모습의 동상이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Granada) 대 성당 앞 광장인 ‘이사벨라 까톨리카 광장(Plaza Isabel la Catorica)’이 생기고, 광장 가운데 우뚝 세워지게 된 것이다.
콜럼버스는 항해를 떠나 70일 만에 아메리카 대륙 앞 바하마(Bahama) 제도의 작은 섬에 첫발을 딛게 되는데 그곳이 인도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도사람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라 불렀는데 영어로 하면 인디언(Indian)이다.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딘 곳은 바하마제도의 쿠바 북쪽에 있는 작은 섬인 구아나아니(Guanahani) 섬이었는데 이름을 ‘구세주’라는 뜻의 산살바도르(San Salvador)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아직도 미국 앞의 바하마제도를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라 부르고, 미국 원주민을 인도사람들이라는 뜻의 인디언(Indian), 중남미 원주민을 같은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로 부른다.
그리고 현재 동양의 진짜 인도(印度/India)는 ‘동인도(東印度)’라고 부르게 되었다니... ㅎ
콜럼버스가 첫 항해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콜럼버스는 엄청난 환영을 얻지만, 그 이후 항해에서 금과 향신료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자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 콜럼버스에게 냉랭하게 대했던 모양이다.
그는 그 후로도 세 차례 더 신대륙을 다녀왔지만 세 번째 항해에서 총독 지위는 물론이고 그동안 신세계에서 얻었던 모든 재산을 잃고 죄인 취급을 받으며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그가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자신을 가장 믿고 지지해 주었던 이사벨 여왕이 죽었고, 콜럼버스도 2년 뒤 스페인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숨을 거둔다.
스페인에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로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결국 자신이 발견한 쿠바에 묻혔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은 훗날 그들에게 엄청난 부와 영광을 안겨 준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하여 콜럼버스의 시신(屍身)을 스페인으로 모셔오는데 그의 유언을 거스를 수 없어 땅에 묻지 못하고 세비야 성당에 모시면서 지금처럼 공중에 붕~ 떠 있게 설계하고 스페인의 네 명의 왕이 관을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설계하여 최고의 존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당시 스페인은 작은 왕국 4개가 있었는데 콜럼버스 항해를 찬성했던 왕들은 관 앞을 들고 있는, 머리를 꼿꼿이 세운 왕들이고 반대했던 왕들은 뒤에 머리를 푹 숙이고 들고 있는 왕으로 조각했다.
공중에 모신 콜럼버스의 관(棺) / 예수 십자가 / 콜럼버스 관(棺) 기념사진
콜럼버스 사후, 멕시코에서 아즈텍(Aztec)제국을 무너뜨린 코르테스(Hernán Cortés), 남미에서 잉카(Inca)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Gonzalo Pizarro)로 대변되는 스페인의 정복자, 탐험가들의 활약으로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콜럼버스 사망 후, 멕시코에서 아즈텍(Aztec) 제국을 무너뜨린 코르테스(Hernán Cortés), 남미에서 잉카(Inca)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Gonzalo Pizarro)로 대변되는 스페인의 정복자, 탐험가들의 활약으로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이처럼 탐험가들이 발 벗고 모험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발단은 베네치아(현 이탈리아)의 상인(商人)이었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6세기경, 스페인에서 황금도시로 일컬어지며 유행했던 엘도라도(El Dorado)는 남미(南美)의 아마존(Amazon) 강가에 있을 것이라는 상상(想像)의 지역이었다고 한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콜롬비아의 산간오지(山間奧地) 어디가 아닌가 하는 추측으로 탐험가들이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전설 속의 엘도라도는 도시의 모든 건물이 황금으로 지어졌으며 길바닥도 황금으로 깔았다고 알려졌었는데 축제 때가 되면 제사장들은 벌거벗은 온몸에 금가루를 칠하고 황금 마스크를 쓰고 제사를 지낸 후 신전 앞 호수에 들어가 금가루를 씻어냈다고 하며, 축제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가지가지 금붙이를 가지고 왔다가 제물(祭物)로 호수에 던진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황금도시로, 꿈의 도시요, 이상향(理想鄕)이었다.
내가 콜롬비아 관광을 갔을 때,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이 있어 들어갔는데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황금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어 그 엄청난 양과 아름다운 세공기술(細工技術)을 보면 정말 이곳 어느 곳에 엘도라도(El Dorado)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나도 착각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추측으로는 정복자들이 멕시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약탈해 유럽으로 가지고 가자 사람들이 어떻게 이 많은 금붙이와 보석을 구했는지 묻자 차마 약탈했다는 말을 하지는 못하고 엘도라도(El Dorado)라는 황금도시가 있는데 황금이 무진장이라 그냥 주워올 정도 어쩌구 하지 않았을까?
실제의 가슴 아픈 역사 이야기도 전해오는데 멕시코에 있던 아즈텍(Aztec)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즈(Cortes)는 아즈텍 마지막 왕이었던 쿠아우테목(Cuauhtemok)을 인질로 삼고 그의 방에 황금을 가득 채우면 왕을 살려주겠다고 했단다. 이 말을 들은 아즈텍 국민들이 황금을 가지고 와서 왕이 있던 방을 가득 채우고 석방할 것을 탄원하지만 야만인 코르테즈(Cortes)는 결국 왕을 죽여 버리고 마는 만행(蠻行)을 저지른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남미의 콜롬비아(Colombia)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내가 콜롬비아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이처럼 아름다운 나라가 세계 살인율 1위라는 오명(汚名)을 안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종교문제)
또, 콜럼버스(1451~1506)가 조금 서운할 일은, 그가 발견한 신대륙의 이름을 첫 번째 탐험가였던 자신의 이름을 따지 않고 후배 탐험가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1454~1512)의 이름에서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하였으니 억울한 일이겠다.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는 인도(India)인 줄 알았고 후에 신대륙(New World)이라고 불렀는데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냉큼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하였단다.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나쁜 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