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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30권
47. 초품 중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칭찬하다’[諸佛稱讚其名]의 뜻을 풀이함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칭찬해 주시기를 원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문】 보살이 만일 모든 법이 필경공(畢竟空)임을 관찰하면 안으로는 나가 없고 이미 교만을 깨뜨렸을 터인데 어떻게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칭찬하게 하려 하는가?
또 보살의 법으로는 마땅히 모든 부처님을 공양해야 되는데 어떻게 도리어 모든 부처님의 공양을 구하는가?
【답】 부처님의 법에는 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제일의문(第一義門)이고,
둘째는 세속법문(世俗法門)이다.
세속의 법으로써 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찬탄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모든 부처님의 찬탄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를 보지도 않고 중생의 모양을 취하지도 않나니, 세간에서 가정으로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한다.
그대는 “어떻게 도리어 부처님의 공양을 구하느냐”고 말하는데,
마치 후품(後品) 중에서 말하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찬탄을 받는 보살은 마침내 아비발치(阿鞞跋致)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지금 이 보살은 결단코 이 아비발치를 알려고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의 찬탄을 구하는 것이요 공양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 밖의 사람과 다른 중생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마음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사실대로 찬탄함을 알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만일 치우치게 탐애하는 것이 많다면 진실한 허물을 보지도 않고 다만 공덕만을 볼 뿐이고,
만일 치우치게 성내는 것이 많다면 다만 그의 허물만을 볼 뿐이요 그의 덕은 보지 않으며,
만일 어리석음이 많다면 사실대로 그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은 비록 지혜가 있고 3독(毒)이 얇은 이라 하더라고 역시 사실대로의 칭찬을 얻지도 못하며 오히려 잘못이 있나니,
온갖 지혜가 없기 때문이요,
결사(結使)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문이나 벽지불은 3독이 비록 다했다 하더라도 사실대로 칭찬할 수도 없나니,
아직도 남은 습기(習氣)가 다하지 못했고,
또 지혜가 두루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이 3독과 습기가 영원히 다하고 일체지를 성취하셨기 때문이며 사실대로 찬탄해도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나니,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는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는 것을 얻어 그의 진실한 덕을 알고자 하는 것이며, 그 밖의 사람은 구하지도 않는다.
【문】 모든 부처님께서 삼계(三界)에 출현하시면 세간에 집착하지도 않고 나와 내 것도 없으며, 외도나 나쁜 사람을 보실 때에도 큰 보살과 아라한과 동일하게 여기시거늘 어떻게 보살을 찬탄한단 말인가?
【답】 부처님은 비록 나도 없고 미워하거나 사랑함도 없으며, 온갖 법에 대하여 마음에 집착함이 없다 하더라도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큰 자비의 마음으로써 온갖 것을 인도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을 분별하면서 칭찬하기도 한다.
또한 악마를 파괴하려는 소원에서 부처님의 찬탄 때문에 한량없는 중생은 그 보살을 좋아하면서 공경하고 공양하므로 뒤에는 모두가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나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보살을 찬탄하신다.
【문】 어떻게 찬탄하시는가?
【답】 마치 부처님은 대중 가운데서 설법하시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심히 깊은 법에 들어가게 하려고 이 보살을 칭찬하시는 것이니, 마치 살타파륜(薩陀波崙) 등과 같다.
또 부처님은 보살을 찬탄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모든 법의 필경공을 잘 관찰하고 또한 중생들에게 큰 자비심이 있으며,
생인(生忍)을 잘 행하면서도 또한 중생을 보지도 않고 비록 법인(法忍)을 행한다 하더라도 온갖 법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으며,
비록 전생 일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삿된 소견[邪見]에 떨어지지 않고,
비록 중생을 관찰하면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치우친 소견[邊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비록 열반이 바로 위없는 진실한 법인 줄 안다 하더라도 역시 몸과 입과 뜻의 착한 업(業)을 일으키고,
비록 생사 중에서 행한다 하더라도 깊은 마음으로 열반을 좋아하며,
비록 3해탈의 문[解脫門]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열반을 관찰하면서 또한 그 본래의 서원과 착한 행을 끊지도 않나니,
이와 같은 갖가지 기특한 공덕이야말로 매우 있기 어려운 것이니라.”
또 만일 보살이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지 못하고 아직 5신통(神通)을 얻지 못했어도 나고 죽는 육신에 큰 자비심이 있으면 중생들을 위하여 안팎으로 귀히 여기고 아끼는 온갖 물건들을 모두 다 베풀어 주나니,
밖으로는 집착하는 아내와 자식과 으뜸가는 5욕과 여의주(如意珠)와 같은 최상의 보배와 안락한 국토 등이며,
안으로는 몸의 살과 피부ㆍ뼈ㆍ피ㆍ머리ㆍ눈ㆍ골수ㆍ뇌ㆍ귀ㆍ코 및 손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등의 보시는 매우 있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그 덕을 찬탄하신다.
만일 보살이 법위(法位)에 들어가 신통을 얻었으면 고행(苦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보살은 생신(生身)이요 육안(肉眼)이라 하더라도 뜻과 원이 크고 넓어서 대비(大悲)의 마음이 있고 부처님의 도를 좋아하나니,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은 심히 있기 드문 일이다.
또 만일 보살이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면서 두루 갖추고 지계(持戒)와 파계(破戒)를 분별함도 없으며,
온갖 법들이 마침내 나지도 않고[不生] 항상 공[相空]한 데에 대해서는,
법인(法忍)으로 정진하면서 쉬지도 않고 그만두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으며,
정진과 게으름이 같은 모양이서서 다르지도 않고 한량없고 끝이 없고 수 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닦으면서 정진하며,
매우 깊은 선정을 받아 행하고자 하면서도 의지하는 것이 없으며,
안정함과 산란함이 다르지도 않고,
정(定)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능히 몸을 변화시켜 시방에 두루 이르러서 설법하여 사람들을 제도하며,
깊은 지혜를 행하면서 온갖 법의 나지 않고 멸하지 않음[不生不滅]ㆍ나지 않음도 아니고 멸하지 않음도 아님[非不生不滅]ㆍ나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또한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님[非不生亦非不滅]ㆍ나지 않는 것이 아님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님[非非不生非非不滅]을 관찰하며,
모든 말이 지나가고 마음이 가는 곳도 없어졌으며,
무너뜨릴 수도 없고 깨뜨릴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으며,
모든 거룩한 행과 처소가 청정한 것이 마치 열반과 같고,
또한 이런 관(觀)에도 집착하거나 뜻도 역시 침몰하지 않은 채 지혜로써 자기 자신을 이익되게 하나니,
이러한 보살이면 모든 부처님께 찬탄하신다.
또 보살이 아직 수기(授記)를 얻지 못하고 아직 무생법인도 얻지 못했으며 태어나서 부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성현들을 보지도 못했지만,
바른 생각[正思惟] 때문에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관찰하고,
비록 실상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마음 또한 집착하지 않으면,
이러한 보살을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함께 찬탄하신다.
또 보살이 심히 깊고 한량없고 끝이 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법을 듣고,
비록 아직 지혜를 얻지 못하여 미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안정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면서 의심하거나 뉘우치지 않으며,
만일 악마가 부처님으로 되어 와서 속이면서 그의 뜻을 말해도 뜻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면,
이러한 보살을 모든 부처님은 칭찬하신다.
또 모든 보살로서 한때의 발심으로 금방 성불한 이가 있으면 부처님은 곧 칭찬하나니, 크게 정진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彌勒) 등의 모든 보살은 같은 때에 발심했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은 정진의 힘 때문에 9겁(劫)을 초월한 것과 같다.
또 만일 보살이 보살의 일로써 이른바 10지(地)와 6바라밀과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 등의 한량없는 청정한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어서 중생을 위하여 오랫동안 생사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취하지 않고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면,
이와 같은 보살을 모든 부처님께서는 찬탄하신다.
어떤 분들이냐 하면, 문수사리(文殊師利)와 비마라힐(毘摩羅詰)과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大勢至)와 변길(遍吉) 등의 보살과 같나니,
이 분들은 보살들의 우두머리로서 삼계(三界)에 출현하여 한량없는 몸으로 변화하면서 생사에 들어가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회유한 일들은 모두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생기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찬탄하게 하려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한 번 뜻을 일으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보살은 몸에 신통 변화의 힘을 얻어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몸이 되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일시에 도달할 수 있다.
【문】 경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동안에 60번의 생각이 있다. 만일 이 한 생각 동안에 한 방면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이르는 것도 오히려 믿을 수 없는데 하물며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이겠는가. 시간은 짧으나 도달하는 곳이 너무도 많다.
【답】 경에서는 다섯 가지 일의 불가사의를 말씀하셨다.
이른바 중생의 많고 적음ㆍ업의 과보ㆍ좌선(坐禪)한 사람의 힘ㆍ용(龍)의 힘ㆍ모든 부처님의 힘이다.
이 다섯 가지 불가사의 가운데서 부처님의 힘이 가장 불가사의한 것이다.
보살은 깊은 선정에 들어가서 불가사의한 신통을 내기 때문에 한 생각 동안에도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도달할 수가 있다.
마치 네 종류의 신통 가운데에서 설명하듯이,
오직 부처님과 보살만이 뜻대로 신속히 두루하는[如意疾遍] 신통이 있다.
금시조(金翅鳥)의 새끼가 처음 알에서 나오면 한 수미산에서 한 수미산에 이르게 되는데,
모든 보살도 그와 같아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힘 때문에 모든 번뇌의 무명(無明) 알을 깨뜨리고 즉시 한 생각 동안에 한량없는 몸이 되어서 시방에 두루 이르게 된다.
또 보살은 한량없는 겁 동안에 지었던 죄가 모두 이미 소멸되고 지혜의 힘으로써 온갖 법들을 능히 굴린다.
이른바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만들 수 있고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천만이나 되는 한량없는 겁(劫)을 하루도 만들 수 있고 또 하루를 천만의 겁으로 만들 수도 있나니,
이 보살은 세간의 주인으로서 하고 싶은 대로 자유자재하거늘 무슨 원인들 만족하지 않겠는가.
마치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일곱 밤[七夜] 동안을 겁(劫)이 되게 할 수 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은 신통력에 의하여 시방의 세계를 신속히 초월할 수 있다.
【문】 앞의 다섯 가지 불가사의에는 보살이 없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보살의 불가사의함을 말하는 것인가?
【답】 혹 때로는 원인[因] 가운데서 결과[果]를 말하기도 하나니,
마치 “하루에 백 근(斤)의 금을 먹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
금은 먹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원인 가운데서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다.
혹 때로는 결과 가운데서 원인을 말하기도 하나니,
마치 잘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이것은 좋은 솜씨구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결과 가운데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다.
모든 보살은 역시 그와 같아서, 보살은 원인이 되고 모든 부처님은 결과가 된다.
만일 부처님의 힘의 불가사의를 설명하게 되면 벌써 보살을 말했음을 알 것이니, 이 때문에,
“한 번 뜻을 일으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한 음성을 내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로 하여금 그 음성을 듣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보살은 6신통을 얻고 범음성의 몸매[梵聲相]를 더욱 자라게 하여 삼천대천세계를 지나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세계에 이르게 한다.
【문】 만일 그렇다면 부처님의 음성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 보살의 음성은 항하사 같다고 하는 수량이 있지만 부처님의 음성은 이르는 곳에 한계나 수량이 없다.
마치 『밀적경(密跡經)』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목련(木連)이 부처님의 음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서방(西方)의 맨 끝까지 갔었으나 오히려 부처님의 음성이 들림이 마치 얼굴을 마주보고 말씀하신 것과 같았었다.
【문】 만일 그렇다면 부처님은 항상 국토의 마을에 계시면서 설법하여 교화하셨는데도 염부제(閻浮提)의 사람들은 부처님 곁으로 가지 못하면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을 어찌하여 아는가?
먼 지방에서 와서 법을 들으려고 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답】 부처님의 음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은밀한 속에서의 음성이고,
둘째는 은밀하지 않은 음성이다.
은밀한 음성에 대해서는 먼저 이미 설명했다.
은밀하지 않은 음성은 부처님 곁으로 가야 비로소 들을 수 있다.
여기에도 또한 두 가지의 제자(弟子)가 있다.
첫째는 세간을 벗어난 성인[出世聖人)이고,
둘째는 세간의 범부이다.
세간을 벗어난 성인은 마치 목련 등과 같아서 미묘하고 비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지만, 범부는 그에게 가까이 가야 들을 수 있다.
또 모든 보살은 정위(正位)에 들게 되어서 나고 죽고 하는 몸을 여의고 법성의 진실한 형체를 얻으면,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의 몸과 두루 비추는 광명을 볼 수 있고,
또한 모든 부처님의 60종의 극히 먼 한량없는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모든 큰 보살이 비록 아직 부처님과 같이 음성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음성 가운데서 그 분한을 널리 얻는다.
이 부처님과 보살의 음성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전생에 좋은 음성의 인연을 심었기 때문에 목구멍 속에 미묘한 4대(大)를 얻어서 갖가지 묘하고 아름답고 멀고 가까운 음성을 낼 수 있나니, 이른바 1리(里)ㆍ2리ㆍ3리ㆍ10리ㆍ100리로부터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음성이 두루 차는 것이고,
둘째는 신통의 힘 때문에 목구멍의 4대에서 소리를 내면 삼천대천세계와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두루 차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음성은 언제나 시방의 허공에 두루 차는 것이다.
【문】 만일 부처님의 음성이 항상 두루 찼다면 지금 중생들은 어찌하여 항상 들을 수 없는 것인가?
【답】 중생은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지었던 악업에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우레와 번개와 벼락을 칠 때에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지만 우렛소리에는 줄어듦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항상 중생을 위한 설법이 마치 용이 우렛소리를 떨치는 것과 같지만 중생들은 죄 때문에 스스로 듣지 못하고 있다.
마치 지금의 세상 사람으로서 정진하고 계율을 지닌 이가 염불삼매(念佛三昧)에서 마음이 정(定)을 얻을 때에는 죄의 때가 막히지 않아서 곧 부처님을 뵈올 수 있고 법의 음성을 맑고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보살은 세 가지 음성 가운데서 두 가지를 얻고자 하나,
이 두 가지 음성은 심히 어렵고 회유하기 때문이요,
마치 업과(業果)의 음성과 같아서 저절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하나의 음성으로써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로 하여금 그 음성을 듣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부처님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한다 함은, 보살이 나라마다 서로가 차례로 모든 중생들을 발심하게 하여 부처님이 되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문】 차례라 함은 한 나라씩 앞뒤로 차례대로 한다는 것인가, 시방의 세계가 차례대로 그렇게 한다는 것인가?
만일 한 나라씩 차례대로 한다면 대비(大悲)로 두루 온갖 중생들을 덮는데 어찌하여 다른 나라들에는 미치지 않으며,
만일 시방의 온갖 세계가 차례대로 다 한다면 그 밖의 부처님과 보살은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답】 보살의 마음과 원은 온갖 세계로 하여금 모두 다 부처님이 되게 하려 함으로 그 큰 마음은 넓고도 멀어서 제한이 없나니, 이 마음으로써 모든 지혜와 한량없는 복덕과 신통력을 쌓기 때문이다.
또 중생으로서 부처님이 될 인연을 심는 이가 있다면 이 보살은 모두 다 성취되게 할 것이고,
만일 온갖 세계가 모두 부처님이 될 인연을 심는 이가 되면 다른 부처님과 보살은 이익이 있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일만은 그렇지가 못하다.
또 시방의 세계는 한량없고 끝이 없으므로 한 보살이 모든 세계를 두루 다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지는 못하며, 모든 그 밖의 다른 보살들도 저마다 인연에 따라 모두 그 분한이 있을 것이다.
자비가 크기 때문에 서원 또한 한량없고 이익되게 하는 마음도 제한이 없으며,
중생의 종류도 한량없기 때문에 한 부처님이나 한 보살만이 모두 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 만일 일에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원을 세우는가?
【답】 마음의 원이 넓고 크고 청정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삼매(慈三昧)를 행할 때 비록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다만 자기 마음만이라도 넓고 크고 청정하게 하면서 이익되는 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의 힘은 모두가 온갖 중생을 다 제도할 수 있는데도 중생들이 복연(福緣)을 아직 쌓지 못하고 아직 지혜가 없으며 인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제도될 수 없는 것과 같고,
또 마치 큰 바다의 물을 온갖 중생들이 다 가져다 써도 물은 다하지 않을 것인데도 다만 중생들이 가져다 쓰지 못하는 것 같으며,
또 마치 아귀 중생은 자기 죄의 인연으로 물을 볼 수도 없고 설령 보게 된다 해도 곧 바짝 말라버리며 혹은 녹인 구리의 물이 되기도 하고 혹은 피고름으로 되는 것과 같다.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큰 자비와 지혜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모두 중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데도 중생들의 죄와 업의 인연 때문에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며,
설령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해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다름이 없다고 여기면서 혹은 성을 내기도 하고 혹은 비방을 하기도 하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부처님의 위엄 있는 몸매와 신력을 보지 못하며 비록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이익이 없다.
또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으로 바른 소견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안의 인[內因]과 바깥의 연[外緣]이다.
부처님은 바깥의 인연을 두루 갖추어서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의 한량없는 광명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갖가지 신통력과 갖가지 음성으로 뜻대로 설법하며 온갖 의혹을 끊어 주신다.
다만 중생의 안의 인연이 갖추어 있지 못하고 전생에 부처님을 친견할 선근도 심지 못했으며 그리고 믿고 공경하지도 않고 정진하거나 계율을 지니지도 못했으며 근기가 둔하여 몹시 두꺼운 데다 세간의 욕락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니, 이 때문에 이익이 없는 것이요 부처님의 허물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신령한 그릇과 날카로운 작용을 모두 다 갖추어 계신다.
비유하건대 마치 나왔을 때 눈이 있는 이는 보지만 소경이면 볼 수 없으며,
설령 눈이 있다 해도 해가 없으면 볼 수 없을 것이므로 해에는 허물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광명도 역시 그와 같다.
【문】 어떻게 하면 부처님 세계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인가?
【답】 보살은 중생들 가운데서 갖가지 인연으로 부처님의 도를 찬탄하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일으키고 차츰 6바라밀을 행하게 한 연후에 모든 세계에서 저마다 부처님이 되게 한다.
또 한 나라씩 차례로 부처님이 되게 하거나 혹은 다른 나라에서 각자 부처님이 되게 함으로 이것을 부처님의 나라를 끊어지지 않게 한다고 한다.
또 보살은 빠르게 지혜를 구족하게 쌓아서 부처님이 되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열반에 들려 할 때에는 보살에게 수기(授記)를 하면서,
“내가 멸도한 뒤에는 그대가 이어서 부처님이 되리라”고 하나니,
차츰차츰 모두가 다 이렇게 하면서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수기하지 않는다면 부처님 나라는 끊어지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왕이 태자를 세워서 차츰차츰 이렇게 이어가면 국운(國運)이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문】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 계신 세계를 귀히 여기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나라를 천하게 여기는가?
【답】 이런 일은 질문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은 바로 시방세계를 장엄하신 주인이신데 하물며 하나의 나라이겠는가.
만일 부처님이 계신 나라를 여의면 비록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처님의 은혜의 힘으로 이르게 된 것을 모르게 됨으로 축생과 다를 것이 없다.
만일 온갖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지 않으셨다면 3승(乘)과 열반의 도가 없고 항상 삼계(三界)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을 테지만,
만일 세간에 부처님이 계시면 중생은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비유하건대 마치 두 나라 사이에 해가 없는 곳이면 이 안의 중생들은 어두운 속에서 태어나고 어두운 속에서 죽게 되는데,
만일 부처님께서 출현할 때에 광명을 잠깐 비추어 주면, 저마다 서로가 보고 그제야 해와 달을 보았다 하며 빛을 받은 중생이 저곳은 큰 복을 지녔다 하면서,
“우리들은 죄가 있어서 이렇다”고 하는 것과 같다.
때로는 부처님은 광명으로써 모든 부처님 나라를 두루 비추시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나라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캄캄한 데에 있는데 저곳에는 큰 광명이 있구나”고 할 것이다.
또 부처님이 계신 나라의 중생들은 죄와 복이 있음을 알므로 사람들은 3귀(歸)와 5계(界)와 8제(齊), 그리고 출가와 5중(衆) 등과 갖가지 매우 깊은 선정ㆍ지혜ㆍ4사문과(沙門果)ㆍ유여열반(有餘涅槃) 및 무여열반(無餘涅槃) 등의 이러한 갖가지 착한 법을 받을 것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부처님의 나라를 귀히 여긴다.
부처님의 나라 중생들은 비록 부처님을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경법(經法)을 만나게 되면 선근을 닦고 계율을 지니며 보시하고 예배 공경하는 등 열반의 인연을 심게 되고 축생까지도 모두가 복덕의 인연을 심게 되지만,
만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나라면 하늘과 사람에 이르기까지 선근을 닦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보살은 원을 세워서 부처님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