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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7권[3]
[잠 화상] 岑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고, 호남湖南에서 살았다. 실록實錄을 보지 못해 그 행장을 기록할 수 없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의 스승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곧은 것을 휘어서 굽게 만들 수는 없느니라.”
“어떤 것이 위로 향하는 외가닥 길[向上一路]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1리里, 2리니라.”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3리, 4리니라.”
“어떤 것이 학인의 마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 시방세계가 모두 그대의 마음이니라.”
“그러면 학인은 몸을 둘 곳이 없겠습니까?”
“그래야 그대의 몸을 둘 곳이 있게 된다.”
“어떤 것이 학인의 몸을 두는 곳입니까?”
“큰 바다의 물은 깊고도 깊으니라.”
“학인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고기와 용이 드나들면서 마음대로 떴다 잠겼다 하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움직임은 법왕의 싹[苗]이요, 고요함은 법왕의 뿌리니라.’ 하였는데, 어떤 것이 법왕의 뿌리입니까?”
선사가 노주露柱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째서 저 대사大士에게 묻지 않는가?”
“어떤 것이 법왕의 싹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무엇이라 하는가, 무엇이라 하는가?”
“학인이 땅에 기대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러면 어디에서 몸과 목숨을 부지시키겠는가?”
“학인이 땅에 기댈 때는 어떠합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저 송장을 끌어내라.”
“어떤 것이 학인의 본래의 땅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한 걸음 두 걸음이니라.”
“본래의 땅은 땅입니까, 땅이 아닙니까?”
“세 걸음, 네 걸음이니라.”
회會 화상이 물었다.
“성인들이 있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노조魯祖가 개당開堂하더라도 역시 스님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을 것이다.”
삼성三聖 화상이 물었다.
“화상께서 위로 향하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눈이 멀고 귀먹어서 어찌하려 하는가?”
“어떤 것이 현현한 진리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허공이 대답을 할 수 있느니라.”
“허공은 항상한 법칙인데, 끊길 때가 있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공연히 수고로이 고요함을 생각하는구나.”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거듭 말할 수는 없느니라.”
“어떤 것이 사문의 안목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오랫동안 나올 수 없느니라.”
또 말했다.
“부처를 이루고 조사를 이룰지라도 나올 수 없고, 6도를 윤회하여도 나올 수 없다. 그대가 말해 보아라.
무엇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인가?”
스님이 물었다.
“무엇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보느니라.”
“학인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수미산의 산색이 푸르고, 또 푸르니라.”
“어떤 것이 다른 종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자[尺]가 짧으면 치[寸]가 길고, 치가 길면 자가 짧으니라.”
“상상인上上人과 만날 때는 어떠합니까?”
“마치 죽은 사람의 손과 같으니라.”
“어떤 것이 상상인의 행입니까?”
“마치 죽은 사람의 눈과 같으니라.”
“어떤 것이 무정설법無情說法입니까?”
선사가 동쪽의 노주露柱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스님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선사가 다시 서쪽의 노주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스님이 들을 것이니라.”
“스님께서도 듣습니까?”
“내가 듣는다면 누구더러 이야기하라 할 것인가?”
선사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하였다.
“부귀하기는 쉬우나 가난하기는 어려우니라.”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의 선사들은 천자天子만을 알고, 천자가 되기 전의 일은 알지 못한다.”
선사가 다음과 같이 권학게權學偈를 읊었다.
만 길 장대 끝에 머물지 못하니
당당한 길이 있건만 걷는 이 드물다.
선사들, 남전南泉으로 가려 하는가?
눈앞에 가득한 푸른 산 끝없는 가을일세.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평상심平常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자려면 자고, 앉으려면 앉는 것이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더우면 시원하게 하고, 추우면 불을 쪼이느니라.”
어떤 이가 또 물었다.
“묻는 이가 있으면 대답하시겠지만, 전혀 묻는 이가 없으면 화상께서는 어찌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고단하면 자고, 건강해지면 일어나느니라.”
“제가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여름에는 알몸으로 자고, 겨울에는 이불을 덮느니라.”
“남전南泉은 천화遷化한 뒤에 어디로 갔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동쪽 집에서 나귀가 되었고, 서쪽 집에서 말이 되었느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타려면 타고, 내리려면 내리느니라.”
선사가 송죽松竹을 베는 사람을 시험하는 게송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천 년의 대, 만 년의 솔이여,
가지마다 잎마다 모두가 같도다.
사해의 납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선
손을 움직여 조사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선사가 또 투기게投機偈를 송했다.
곳곳마다 참되고, 곳곳마다 참되구나.
티끌마다 세계마다 본래의 사람일세.
진실을 말할 때에는 소리가 나지 않나니
정체正體가 당당하여 몸이 없도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조사의 가르침입니까?”
선사가 양구하니, 학인이 더 묻지 못하였다.
선사가 시자를 시켜 회會 화상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묻게 하였다.
“화상께서 남전을 만나신 뒤에는 어떠하셨습니까?”
회 화상이 양구하니,
시자가 다시 물었다.
“남전을 만나기 전의 일은 어떠합니까?”
회 화상이 말했다.
“달리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느니라.”
시자가 돌아와서 선사에게 이야기하니, 선사가 이에 맞춰 게송을 읊었다.
1백 자 장대 끝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여,
비록 들어간 것 같으나 진실은 아니다.
1백 자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시방세계가 온전한 몸이 되리라.
삼성三聖 화상이 물었다.
“듣건대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백 자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된다’ 하셨다는데, 1백 자 장대는 묻지 않겠습니다만,
1백 자 장대에서 어떻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낭주郞州의 산과 예주禮州의 물이니라.”
“화상께서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전국이 왕의 교화 속에 있느니라.”
“죽은 스님이 천화하여 어디로 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여러 겁 동안 말이 없는 것이 참된 목숨이니, 말을 하고 행할 줄 아는 이가 도리어 송장이니라.”
삼성 화상이 수秀 상좌를 시켜 선사에게 다음과 같이 묻게 하였다.
“남전은 입적한 뒤에 어디로 갔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석두石頭가 사미로 있을 때, 6조祖를 뵈었느니라.”
상좌가 다시 물었다.
“석두가 사미로 있을 때에 6조를 뵌 일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남전은 입적한 뒤에어디로 갔습니까?”
“그대가 잘 생각해 보라.”
이에 상좌가 말했다.
“비록 천 자의 소나무는 있으나 가지가 우뚝 솟은 석순石笋은 아직 없다고 하겠습니다.”
선사가 잠자코 있으니, 상좌가 절을 하고 일어나서 말했다.
“스님께서 제 이야기에 대답해 주신 데 감사합니다.”
선사가 또 잠자코 있으니, 상좌가 삼성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전하였다.
삼성이 이 말을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임제林際보다 일곱 걸음 수승하다 하노라. 그러나 내가 다시 시험을 해 봐야 하겠느니라.”
이튿날 삼성이 문안을 드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제 그 스님에게 대답하신 한 토막의 인연은 전대미문하고 이후에도 없을 고금에 듣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사는 또 아무 말이 없었다.
선사가 다음과 같은 인사송因事頌을 읊었다.
스스로 깨달아 불당을 여니,
지혜는 다섯 갈래의 광명을 뿜는다.
부처 아닌 사람이 전혀 없거늘
뜻 속에 갈무리된 줄 깨닫지 못하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동산洞山에서 왔습니다.”
“어째서 동산더러 직접 오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종기가 없는데, 공연히 상처를 내지 말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제2의 달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제2의 달이니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비슷하구나.”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매우 기이하고도 매우 기이하구나.
한 개의 달을 두 개라 의심하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는 자성이 없나니
항상 고요한데 누가 옳고 누가 그르랴?
또 수미납개자송須彌納芥子頌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수미산은 본래 있지 않은 것이요
겨자씨 원래 공한 것이라.
공한 것으로 있지 않은 것을 담으려 하나니
어디선들 서로 용납하지 않으랴.
호월晧月 공봉供奉이 물었다.
“경에서 말한 환幻의 뜻은 있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은 무슨 소리를 하는가?”
“그러면 없는 것입니까?”
“대덕은 무슨 소리를 하는가?”
“그러면 환幻의 뜻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입니까?”
“대덕은 무슨 소리를 하는가?”
대덕이 다시 물었다.
“제가 세 차례를 밝혔으나 모두 성의聖意에 계합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화상은 경에서 말한 환의 뜻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대덕은 온갖 법의 부사의함을 믿는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대덕이 믿는다 하니, 두 가지 믿음 가운데서 어느 믿음인가?”
“제가 믿은 두 가지 믿음 중에 연신緣信을 믿습니다.”
“어떤 경문에 의해 그런 연신을 냈는가?”
“『화엄경』에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이 장애 없는 지혜로써 온갖 세간에 경계가 곧 여래의 경계임을 믿는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세간의 법성은 차별이 없어 결코 둘이 아님을 다 아신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불법과 세간의 법에서 진실을 보면 온갖 법은 차별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일으킨 연신과 인용한 경문이 매우 분명하구나. 노승이 대덕을 위해 경에서 말한 환幻의 뜻을 밝혀 주리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만약 사람이 환幻 그대로가 진실임을 알면
그는 부처를 본 사람이라 부르리.
원만 융통한 법계에는 생멸이 없나니
멸滅도 생生도 없는 것이 부처의 몸이니라.
대덕이 다시 물었다.
“지렁이를 두 토막으로 내면 두 토막이 모두 움직이는데, 이럴 때에 불성은 어느 토막에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무슨 경계인고?”
대덕이 따졌다.
“말이 경전에 관계되지 않은 것은 지혜로운 이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화상께서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무슨 경계인고?’ 하신 말씀은, 어느 경에서 나온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옳은 말이다. 말이 경전에 관계되지 않으면 지혜로운 이의 말이 될 수 없다.
대덕은 듣지 못했는가?
『수릉엄경首凌儼經』에 말하기를,
‘시방의 끝없고 요동 없는 허공과, 요동하는 지ㆍ수ㆍ화ㆍ풍을 모두 6대大라 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如來藏이라 본래 생멸이 없다’ 하였느니라.”
선사가 다음과 같이 송했다.
가장 깊고 심히 깊구나.
법계는 사람의 몸이요, 그대로가 마음일세.
미혹한 이는 마음을 잘못 알아 온갖 물질이라 하지만
깨달을 땐 세계가 그대로가 참 마음이라.
몸과 세계, 두 가지는 실제가 없나니
분명히 이를 알면 지음인知音人이라 부르리.
어떤 대덕大德이 물었다.
“결정코 허공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다고 해도 되고 없다고 해도 되나니, 허공이 있을 때는 거짓 있음만 있고, 허공이 없을 때에는 거짓 없음만 없다.”
대덕이 다시 물었다.
“화상의 그런 말씀은 어느 경전에 근거한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은 듣지 못했는가?
『능엄경』에 말하기를,
‘시방의 허공이 그대들의 마음속에서 생긴 것이, 마치 조각구름이 허공에 한 점을 찍은 것 같다’ 하였다.
그 어찌 ‘허공이 있을 때는 거짓 있음만 있다’ 함이 아니겠는가?
또 말하기를,
‘그대들 한 사람이 참 마음을 일으켜 근원에 돌아가면 시방 허공이 몽땅 사라진다’ 하였으니, 그 어찌 ‘허공이 없어질 때에는 다만 거짓 없음만 없어진다’ 함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노승이 말하기를,
‘있을 때에는 거짓이 있고 없을 때에는 거짓이 없다’ 하노라.”
“천하의 선지식은 능히 대열반을 증득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원인[因] 가운데의 3덕德을 묻는가, 결과[果]에 해당하는 3덕을 묻는가?”
대덕이 말했다.
“결과에 해당하는 3덕을 묻습니다.”
“만일 결과에 해당하는 3덕을 묻는다면 천하의 선지식은 대열반을 증득하지 못했느니라.”
“어찌하여 대열반을 증득하지 못했습니까?”
“공功이 부처님과 똑같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대열반을 증득하지 못했느니라.”
“공이 부처님과 똑같지 못하다면 어찌하여 선지식이라 합니까?”
“불성佛性을 똑똑히 보았으므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그렇다면 공이 어디에 이르러야 대열반을 증득했다 합니까?”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마하반야는 광명이요
해탈은 매우 깊은 향이다.
법신法身은 적멸의 본체이니
셋과 하나의 이치는 둥글고 항상하다.
공이 똑같은 곳을 알자고 하는가?
이를 상적광常寂光이라 하느니라.
“결과 위의 열반은 이미 화상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어떤 것이 본래의 열반입니까?”
“대덕이 바로 그것이니라.”
“화상께서는 누구의 법을 이었습니까?”
“나는 아무의 법도 잇지 않았느니라.”
“참학參學하십니까?”
“내 스스로 참參하느니라.”
“스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허공이 만상萬像에게 물으니
만상이 허공에게 대답한다.
어느 누가 친히 묻는가?
교차된 나무요 동자 아이니라.
“어떤 것이 교敎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5,048권卷이니라.”
“어떤 것이 교의 뜻입니까?”
“조사의 뜻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교의 뜻이 바로 그것이니라.”
“그렇다면 조사의 뜻과 교의 뜻이 다르지 않겠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시방의 불국토 안에는 오직 1승의 법이 있을 뿐, 둘도 셋도 없느니라.”
대덕이 절을 하니,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조사의 마음이 교의 뜻이요
교의 뜻이 곧 조사의 마음이다.
조사의 뜻을 알고자 하는가?
조사는 부처의 마음을 전하였다.
조사의 뜻과 교의 뜻은
한 성품이며 같은 마음이다.
“제8식과 제7식 등은 본체가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제8식을 돌려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이룬다 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이름은 바뀌되 본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이에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7식의 생김은 하나가 멸함에 의하고
하나의 멸함은 7식의 생김을 돕는다.
하나의 멸함도 멸하면
7과 6은 영원히 생겨나지 않는다.
제9식은 참되고 항상한 식이어서
뒤도 아니고 앞도 아니니
뒤도 아니고 앞도 아닌 이치는
항상 머물러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깨달으면 업장이 본래 공하고, 깨닫지 못하면 도리어 옛 빚을 갚는다’ 하였는데, 사자獅子 존자尊者와 2조는 어떻게 하여 빚을 갚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은 알지 못하는가? 본래 공하다 하였느니라.”
호월 장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 공한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업장이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업장입니까?”
“본래 공한 것이니라.”
호월 장로가 예배하니,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거짓 있음은 원래 있음 아니요
거짓 없음도 없어짐이라.
열반과 빚 갚는 이치는
한 성품이어서 다름이 없다.
“본래의 마음이 어찌하여 생멸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생멸의 마음이 어찌하여 본래의 마음에 부합하지 않습니까?”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묘공妙空과 묘용妙用은 부사의하나니
멸함도 없고 생겨남도 없고 의지함도 없어라.
본각의 참된 성품은 지혜의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지혜의 아들을 낳는 것, 묘하여 생각하기 어렵네.
지혜와 지혜로는 원래 묘함을 깨닫지 못하니
관찰할 것이 없음을 요달하면 바로 본래의 여여함이다.
아버지와 자식은 본래부터 두 모습 없나니
지금 그대로 근본이라서 더는 다른 시간 없어라.
“어떤 것이 다라니陀羅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도 물은 바 없고, 노승도 대답한 바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읽습니까?”
선사가 선상禪床의 왼쪽 다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대사가 읽을 줄 아느니라.”
“어떤 사람이 들을 수 있습니까?
선사가 다시 선상의 오른쪽 다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스님이 들을 수 있느니라.”
대덕이 다시 물었다.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참된 읽음은 소리가 없고, 참된 들음은 들음이 없다’ 하였느니라.”
대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음성은 법계의 성품에 들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은 듣지 못했는가?
‘물질을 떠나서 보려면 바로 보는 것이 아니요, 소리를 떠나서 들으려면 삿되게 듣는다’ 하였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물질을 여의지 않는 바른 봄이며, 소리를 여의지 않는 참된 들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은 들으시오. 노승이 게송으로써 지혜를 보태어 드리리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눈앞에 가득한 것 본래 물질 아니요,
귓가에 가득한 것 원래 소리 아니니
문수는 항상 눈에 뜨이고
관음은 귀를 막았다.
셋을 모으면 원래가 한 몸이요,
넷을 통달하면 본래 같은 진여다.
당당한 법계의 성품에는
부처도 없고 사람도 없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어찌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 보현의 몸 안 세계를 유람해도 두루 미치지 못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한량없는 겁 동안 돌아다녔다 해도 두루 미칠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이 보현의 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함원전含元殿 안에서 다시 장안長安을 찾는구나.”
“어떤 것이 문수文殊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담장과 기와 쪽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관음입니까?”
“음성과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보현普賢입니까?”
“중생의 마음이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중생들의 색신色身이 그것이니라.”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수효의 부처님들의 본체가 다 같다면 어찌하여 갖가지 명호가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눈이 근원으로 돌아오면 문수라 하고, 귀가 근원으로 돌아오면 관음이라 하고, 뜻이 근원으로 돌아오면 보현이라 하나니, 문수는 부처님의 묘관찰지妙觀察智요, 관음은 부처님의 무연대비無緣大悲요, 보현은 부처님의 무위묘행無爲妙行이니, 세 성인은 부처님의 묘한 작용이요, 부처님은 세 성인의 참 바탕이니라. 작용에는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수효의 거짓 이름이 있으나 본체는 모두가 하나의 박가범博伽梵으로 불리느니라.”
또 물었다.
“4성聖은 분명히 넷이 있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등불을 천 개의 방에 나누나 원래가 한 광명이며, 조수가 만 갈래 파도에 응하나 본래는 한 가지 물이니, 미혹한 사람은 차별이라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똑같은 진여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옛 어른이 말하기를,
‘나 혼자만이 깨달아 안 것이 아니라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수효의 부처님 본체가 본래 모두 같다’ 하였느니라.”
“교敎에 말하기를,
‘10겁劫 동안을 도량에 앉아 있었어도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 하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부처님은 결과의 지위요 보살은 원인의 지위인데, 석가여래께서 결과의 지위에서 대통지승블大通智勝佛의 원인 시절의 일을 말씀하시기를,
‘대통지승불이 10겁을 보리수 밑 금강좌 위에 앉아서 결가부좌하였으나 보살로서 부처를 이루지 않았으니, 그것은 중생들의 수명이 길기 때문이며, 근기가 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0겁이 지난 뒤에 중생들의 근기가 비로소 익었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었다’ 하셨다.
그러니 대체로 보살은 모름지기 중생들의 근기가 익기를 기다리되, 마치 닭이 병아리가 쪼기를 기다려서, 쪼는 이와 쪼이는 이가 동시에 이루는 것처럼 중생의 근기가 익어야 단박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10겁이 지난 뒤에야 위없는 보리를 이룬다 하느니라.
그러기에 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시므로 잠자코 앉아 계셨다’ 하였느니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눈에 띄는 것 그대로가 보리란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갖 법은 항상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온갖 법이 항상 머무는 것입니까?”
“눈에 띄는 것이 보리인 경지니라.”
“어떤 것이 산하대지를 바꾸어서 자기에게로 돌리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도리어 나를 바꾸어서 산하대지로 돌릴 것을 걱정했느니라.”
학인이 절을 하니, 선사가 게송으로 말했다.
누가 산하의 바뀜을 물었는가?
산하가 바뀌면 어디로 향하는가?
원만 융통함에는 두 가닥이 없고
법성은 본래 돌아갈 것이 없느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본래 바탕이 형상과 다른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 시방세계가 무엇이던고?”
“어떤 것이 소리는 원래 즐거움과 괴로움과 다른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가져오너라, 가져오너라.”
“교에 말하기를,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하였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걸리는 곳에 담도 벽도 없고
트인 곳에는 허공도 없다.
만일 이렇게 알면
마음과 물질이 본래 같은 것임을 아느니라.
그 밖의 것은 별록別綠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시호는 초현招賢 대사이다.
[백마 화상] 白馬
남전의 법을 이었고, 강릉江陵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담조曇照이니, 실록實錄을 보지 못해 행장을 기록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학인 자신입니까?”
선사가 지팡이를 얼굴에다 대고 학인을 가리켰다.
장경張慶 화상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옛사람은 다만 이랬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그것과 어떻게 비슷한가?”
순덕順德 대사가 말했다.
“새우가 아무리 뛰어도 통발 밖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장경이 긍정하지 않고 스스로 대신 말했다.
“이 무슨 마음씨인고?”
[하당 화상] 下堂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고, 양주襄州에서 살았다.
어떤 벼슬아치가 와서 물었다.
“지렁이를 두 토막으로 끊으면 두 토막이 모두 움직이는데, 불성은 어느 토막에 있습니까?”
선사가 두 손을 활짝 펴서 동산洞山 화상을 보이면서 말했다.
“지금 물은 일은 어느 토막에 있는가?”
[쌍봉 화상] 雙峯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는 도윤道允이요, 성은 박朴씨이며, 한주(韓州:한국)의 휴암현鵂巖縣 사람이다. 여러 대를 호족으로 지냈으며, 조부가 벼슬살이를 했는데 군보郡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 고高씨는 꿈에 이상하고 찬란한 광채가 방 안에 가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잠을 깼는데, 그때부터 태기가 있었다. 부모는 서로 다음과 같이 상의하였다.
“꿈꾼 것이 예사롭지 않으니, 만일 아들을 낳거든 스님을 만듭시다.”
태기가 있은 지 16개월 만에 선사가 태어났는데, 태어난 후 나날이 모습이 달라지면서 학모난자(鶴貌鸞姿:학의 모습과 난새의 자태)를 성취하였다. 그는 행동거지도 남달랐고, 품격도 남과 달랐다. 죽마竹馬를 끄는 나이에 꽃을 따다 불공을 하고, 양거羊車를 모는 나이에 탑을 쌓아 감정을 순화하니, 현현한 관문의 기상이 분명했고 참 경계의 근기임이 뚜렷했다. 나이 18세에 간절히 양친에게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될 뜻을 말하여 마침내 귀신사鬼神寺에서 화엄의 교법과 선법을 듣게 되었다.
“원돈圓頓의 전제筌罤가 어찌 심인心印의 묘용妙用만 하겠는가?”
그리고는 마침내 누더기를 걸치고 물병을 들고는 구름에 안기고 물을 베개 삼아 다니다가 장경長慶 5년에 이르러 조사朝使의 일행을 찾아가 묵은 포부를 이야기하니, 마침내 동행을 허락 받았다.
뭍에 이르자, 바로 남전南泉 보원普願을 뵙고 제자의 예를 바치니, 첫눈에 도道 있음을 알았는지라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우리 종의법인法印이 몽땅 동국東國으로 돌아가는구나.”
회창會昌 7년 4월에 다시 청구(淸丘:한국)로 돌아와 풍악風岳에 머무르니, 귀의하려는 이가 구름과 안개같이 모였고, 배우러 오기를 바라는 이가 별똥과 파도같이 몰려왔다. 이때 경문景文 대왕大王이 이 소문을 듣고 귀의하여 받들며, 은혜를 베풀어 융숭히 대우하였는데, 함통咸通 9년 4월 18일에 갑자기 문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직을 고했다.
“목숨이란 한계가 있는 것, 나는 먼 길을 떠나야겠다. 너희들은 구름 쌓인 골짜기에 편안히 머물러서 법등法燈을 영원히 빛나게 하라.”
말을 마치고 편안히 떠나니, 춘추는 71세요, 승랍은 44세이다. 오색의 광명이 선사의 입에서 나와 사방에 퍼지다가 흩어지니, 금상今上의 은총이 법려法侶들에게 입혀지고, 은혜가 선림禪林에 비처럼 내렸다. 칙명으로 시호를 철감澈鑑이라 하였고, 탑호는 증소證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