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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장현종론 제24권
5. 변업품⑦
5.9. 보살과 그가 닦는 업
1) 보살의 결정적인 상[住定位]
앞에서 언급한 주정(住定)의 보살은 어떠한 단계에서부터 ‘주정’이라고 하는 명칭을 획득하게 되는 것인가? 또한 그의 무엇을 설하여 ‘결정적인 것[定]’이라고 한 것인가?1)
게송으로 말하겠다.
묘상(妙相)의 업을 닦으면서부터
보살은 ‘결정적인 이’라는 명칭을 획득하니
선취(善趣)의 고귀한 집에, 감관을 갖추고
남자로 태어나며, 기억하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미묘한 서른두 가지 대사부(大士夫)의 상(相)이라는 이숙과를 능히 초래할 만한 업을 닦으면서부터 바야흐로 보살에 ‘주정’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니,2) 이때로부터 성불할 때까지 항상 선취(善趣)와 고귀한 집[貴家] 등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즉 ‘선취에 태어난다’고 함은 이를테면 인취와 천취에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취(趣) 중에서는 선을 많이 행하기 때문에, 참으로 미묘하고 애호할 만한 곳이기 때문에 선취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선취 중에서도 항상 고귀한 집에 태어나니, 이를테면 바라문이나 혹은 찰제리(刹帝利), 대단히 부유한 장자(長者), 대 사라가(娑羅家)와 같은 가문을 말한다.3)
고귀한 집안 중에 태어나더라도 감관[根]을 갖추고 태어나는 이도 있고, 그것을 결여하고서 태어나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그 같은 보살은 항상 뛰어난 감관을 갖추고, 항상 남자의 몸을 받아 태어난다. 그러니 여자의 몸으로도 태어나지 않거늘 어찌 하물며 선체(扇搋) 등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일이 있을 것인가?
또한 태어날 적마다 항상 숙명을 기억하며, 그때마다 짓게 되는 선한 일에서 항상 물러나는 일[退屈]도 없다. 이를테면 일체의 유정을 언제라도, 일체의 방편으로 이익되게 하고 즐겁게 함에 있어 마음에 싫어하거나 지치는 일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물러남이 없다’고 한 것이니, 물러남이 없기 때문에 [본송에서] ‘[의지력이] 견고하다’고 설한 것이다.
아직 미묘한 상[妙相]을 [초래하는] 업을 닦지 않은 단계에서도 보리를 추구하는 마음[菩提心]에 물러남이 없으니, 마땅히 ‘주정(住定)’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떠한 까닭에서 요컨대 미묘한 상을 [초래하는] 업을 닦는 단계의 보살에 대해서만 비로소 ‘주정의 단계’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때가 되어야 인간과 하늘이 비로소 다 같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이전에는 다만 온갖 하늘만이 [그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이다.
혹은 그때가 되어야 취(趣)와 등각(等覺)이 결정되지만, 그 이전에는 오로지 등각만이 결정되고 그 밖의 [취는]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4)
즉 보살은 묘상업을 닦기 전에 이미 ‘무가(無價)의 타사(馱娑)’로서 온갖 취(趣)에 태어났었다.
여기서 타사(dasa)’란 종 또는 노복의 뜻으로, 급료를 주지 않고도 부릴 수 있는 노복이 ‘무가의 타사’이다. 즉 보살은 일체 유정을 위해 기꺼이 ‘무가의 타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때에는 오로지 제천(諸天)만이 그 같은 사실을 알뿐이다.
2) 보살이 닦는 묘상(妙相)의 업
[보살은] 미묘한 상(相)을 [초래하는] 업[妙相業]을 닦았다고 하였는데, 그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섬부주에서, 남자가 부처와 대면하여 짓는 것으로
부처님에 대한 사업(思業)이며, 사소성(思所成)이다.
그(3무수겁) 이외 다시 백 겁 동안을 닦았으니
[미묘한 상은] 각기 백 가지 복으로 장엄되어 있다.
논하여 말하겠다.
보살은 요컨대 남섬부주 중에 있을 때라야 비로소 능히 미묘한 상을 인기하는 업을 짓고 닦을 수 있으니, 이 주(洲)는 각혜(覺慧)가 가장 밝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또한] 보살은 오로지 남자일 뿐 여인 등의 몸으로 [태어나지] 않으니, 그때는 이미 여인 등의 단계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본송 중에서] 마땅히 설하지 말았어야 하였으니, 앞의 본송 중에서 ‘항상 남자의 몸을 받아 태어난다’는 뜻을 이미 밝혔기 때문이다.5)
[또한] 이러한 [미묘한 상을 초래하는] 업은 오로지 직접 부처님과 대면하여 짓는다. 즉 단정하고 엄숙하며 여러 가지로 기특한 부처님의 불공(不共)의 색신 상호(相好)를 직접 볼 때, 그와 같은 종류의 상호를 인기하여 초래하려고 하는 염원[思]을 갖게 되는 것으로, 여래와 대면하지 않고서는 그 같은 염원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미묘한 상을 [초래하는] 업은 오로지 부처님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思業)으로서,6) 부처님은 바로 기뻐하며 따를 만한 공덕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묘한 상을 초래하는 업은 오로지 사소성(思所成)으로서 수소성(修所成)이 아니니,7) 선정의 세계[定界]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으로, 초래되는 이숙과(즉 32상)는 이것(思, 즉 염원)에 계속(繫屬)되기 때문이다.
또한 문소성(聞所成)도 아니니, 그것은 이열(羸劣)하기 때문이며, 생득(生得) 즉 태어나면서 획득되는 것도 아니니, 가행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 같은 미묘한 상은 오로지 3무수겁(無數劫, 阿僧祗劫의 의역어) 동안 보시 등의 바라밀다(波羅蜜多)를 수행하여 원만하게 될 때 비로소 소의신 중에 획득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오로지 가행의 선이지 태어나면서부터 획득되는 생득의 선이 아닌 것이다.
[또한 묘상의 업은] 오로지 [3무수겁] 이외 또 다른 백 겁 동안 짓고 닦아야 하는 것으로, 그 이상은 지을 필요가 없다.
[또한] 각각의 미묘한 상은 백 복(百福)으로 장엄되어 있다. 여기서 ‘백 복’이라고 함은 백 가지 염원[思,즉 思願]을 말한다. 즉 장차 각각의 묘상의 업을 지으려고 할 때, 먼저 쉰 가지의 염원을 일으켜 신기(身器)를 청정하게 대치하고 난 다음에 비로소 한 가지 상을 인기하는 업을 일으키고, 그 후에 다시 쉰 가지의 선한 염원을 일으켜 인업(引業)을 장엄함으로써 그것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쉰 가지 염원이란, 10업도에 근거하여 각각의 업도에 각기 다섯 가지 염원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바야흐로 첫 번째 업도인 살생에서 떠나는 것에 다섯 가지 염원이 있으니,
첫째는 살생을 떠나려는 염원[離殺思]이며,
둘째는 그것을 가르치고 훈도하려는 염원[勸導思]이며,
셋째는 그것을 찬미하려는 염원[讚美思]이며,
넷째는 함께 기뻐하려는 염원[隨喜思]이며,
다섯째는 회향하려는 염원[廻向思]이니, 이는 말하자면 그렇게 닦은 바를 되돌려 해탈로 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열 번째의 선업도인] 정견에 대한 다섯 가지의 염원도 역시 그러하다.8)
그런데 유여사(有餘師)는 말하기를,
“10업도에 근거하여 각기 하품 등의 다섯 품류의 선한 염원을 일으키는데, 전후가 각기 그러하니,9) 마치 정려를 훈습하는 것과 같다10)”고 하였다.
또한 유여사는 설하기를,
“10업도에 근거하여 각기 다섯 가지 염원을 일으키니,
첫째는 가행정(加行淨)이며, 둘째는 근본정(根本淨)이며, 셋째는 후기정(後起淨)이며, 넷째는 비심해(非尋害)이며,11) 다섯째는 염섭수(念攝受)이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유여사는 말하기를,
“각각의 묘상의 업은 각기 부처님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일찍이 익힌 적이 없는 염원이 모두 백 가지로 현전하여 장엄되고 장식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백 복의 하나하나의 양은 어느 정도인가?
어떤 이는 [이같이] 설하였다.
“백 복은 3무수겁 동안 증장한 공덕에 의해 집성(集成)된 소의신이 발기(發起)한 것으로, 이와 같이 대적할 만한 것이 없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대(無對) 무수(無數)의 수승한 복덕의 양은 오로지 부처님만이 알뿐이다.”12)
또한 어떤 이는 설하기를,
“만약 업의 증상력에 의해 전륜왕의 지위를 초래한 자로서 4대주의 왕이 되어 자재하며 전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1복의 양이다”라고 하였으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오로지 부처에 가까이 접근한 보살[近佛菩薩]을 제외한 그 밖의 일체의 유정이 닦은 부락(富樂)의 과보를 초래하는 업, 이것이 바로 1복의 양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여사는 말하기를,
“이러한 [앞서 언급한] 양은 지나치게 적다고 할 수 있으니, 세계가 장차 이루어지려고 할 때(즉 成劫시)의 일체의 유정이 삼천대천의 세계[大千土]를 초래하는 업의 증상력, 마땅히 이것을 바로 1복의 양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3) 석가보살이 공양한 부처의 수
지금의 박가범(薄伽梵)께서 옛날 보살이었을 때 3무수겁 동안 몇 분의 부처님들께 공양하였던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3무수겁 동안에
각기 7만의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또한 순서대로
5천ㆍ6천ㆍ7천의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논하여 말하겠다.
최초의 무수겁 중에는 7만 5천의 부처님들께 공양하였고, 다음의 무수겁 중에서는 7만 6천의 부처님들께 공양하였으며, 최후의 무수겁 중에서는 7만 7천의 부처님들께 공양하였다.
4) 석가보살이 친견한 부처
3무수겁의 각각의 겁이 다 찼을 때와 처음 발심하였을 때, 각기 어떠한 부처님을 만났던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3무수겁이 다 찼을 때에는
반대의 순서로 승관불(勝觀佛)과
연등불(燃燈佛)과 보계불(寶髻佛)을 만났으며
처음 발심할 때에는 석가모니불을 만나셨다.
논하여 말하겠다.
여기서 ‘반대의 순서[逆次]’란 뒤에서부터 앞으로 향한다는 말이니,
이를테면 세 번째 무수겁이 다 찼을 때에 만나 섬긴 부처님의 명칭은 승관(勝觀)이었고,
두 번째 무수겁이 다 찼을 때에 만나 섬긴 부처님의 명칭은 연등(燃燈)이었으며,
첫 번째 무수겁이 다 찼을 때에 만나 섬긴 부처님의 명칭은 보계(寶髻)였다.13)
그리고 첫 번째 무수겁이 시작할 때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만나셨다. 즉 우리 세존께서는 처음 발심하는 단계에서 석가모니라고 이름하는 한 박가범을 만나셨는데, 그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실 때도 바로 말겁(末劫,즉 괴겁)으로, 입멸 후 정법은 오로지 천 년 동안 지속하였다. 그때 우리 세존께서는 질그릇 만드는 이[陶師]의 아들이었는데, 그 부처님의 처소에서 크고 청정한 마음[殷淨心]을 일으켜 향유(香油)를 바르고 향수로 목욕하고 공양을 베풀고 나서
‘원하건대 나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 지금의 세존과 똑같이 되리라’고 크나큰 서원을 발원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여래의 각각의 [행적은] 그 부처님과 동일한 것이다.
5) 석가보살의 6바라밀다 수행
우리의 석가보살(釋迦菩薩)은 어떠한 상태에서, 어떠한 바라밀다(波羅蜜多)를 닦고 익혀 원만하게 하였던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다만 자비로써 널리 보시하였고
몸이 잘려도 분노함이 없었으며
저사불(底沙佛)을 찬탄하였고
그런 다음 무상의 보리를 증득하였다.
6바라밀다는
이와 같은 네 단계에서
한 가지와 두 가지를, 또한 한 가지와 두 가지를
순서대로 닦아 원만하게 하였다.
논하여 말하겠다.
보살이 발원하여 처음으로 보시(布施) 바라밀다를 닦을 때에는 아직 일체의 함식(含識,유정을 말함)에 대해 일체의 사물을 능히 두루 보시할 수 없었지만, 오로지 비심(悲心)을 일으키고, 그것이 그 후 관습의 힘이 되었기 때문에 비심이 왕성하게 일어날 때 능히 일체의 유정에 대해 두루 보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일체의 사물을 보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혹 어느 때 보살이 일체의 유정에 대해 능히 일체의 사물을 널리 보시하였다면, 그것은 다만 비심(悲心)에 의한 것으로, 자신의 수승한 생의 차별을 희구한 것이 아니었으니,14) 이렇게 함으로써 보시바라밀다를 닦고 익히어 원만히 하였던 것이다.
혹은 어느 때 보살은 신체와 사지가 잘려 나갔지만, 비록 그때는 아직 욕탐을 떠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으로는 어떠한 분노도 없었으니, 이렇게 함으로써 지계(持戒)와 인욕(忍辱) 바라밀다를 닦고 익혀 원만하게 하였던 것이다.
혹은 어느 때 보살은 용맹 정진하다가 저사불(底沙佛)을 찬탄하여 바로 9겁을 뛰어넘게 되었으니,15) 이렇게 함으로써 정진바라밀다를 닦고 익혀 원만히 하였던 것이다.
혹은 어느 때 보살은 금강좌(金剛座)에 처하여 장차 위없이 높은 정등(正等)의 보리(菩提)에 오르려고 할 때 무상각(無上覺)을 증득하기 직전에 금강유정(金剛喩定)에 머물렀으니, 이렇게 함으로써 선정과 지혜바라밀다를 닦고 익혀 원만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치상으로 볼 때 이러한 단계(선정 즉 금강유정)와 무간에 비로소 진지(盡智)를 원만히 획득하고,16) 이때 이것(지혜바라밀다)도 비로소 원만하게 되었기 때문에, 또한 각각의 수행도 능히 원만한 공덕의 피안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 여섯 가지를 일컬어 바라밀다(波羅蜜多,pāramitā, 到彼岸)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