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략적으로 이야기했듯이, 1722년 로헤벤이 상륙하기전에
이스터 섬 사람들이 환경 파괴를 자행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하지만 약탈과 억압의 역사 때문인지 섬사람들과 학자들은 환경 파괴를 인정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섬사람들은 대체로 "우리 조상들이 그런 짓을 저질렸을 리가 만무하다!"라고 강변하는 반면에,
이 섬을 방문하는 학자들은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멋진 사람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미셸 오를리아크는 타히티의 환경 변화와 곤련해 유사한 문제를 다루면서,
"....적어도 환경 변화는 인간의 행위보다 자연에 더 큰 원인이 잇는 듯하다.
의견이 분분한 이 문제(맥파젠, 1985,맥클론, 1989)애 대해 내가 결정적인 답을 내릴 입장은 아니지만
폴리네시아인들을 향한 애착 때문이지 나는 사이클론 등과 같은 자연 현상이
환경에 큰 타격을 가했다고도 생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섬사람들이 자초한 환경 파괴를 부인하는 대안적 이론이나 반로은 크게 세각지 방향헤서 주어진다.
첫째, 1722년에 로헤벤이 목격한 이스터 섬의 황폐화된 삼림은 섬사람들로 인한 파괴가 아니라
로헤벤 이전에 그 섬에 상륙했지만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유럽인들이 자행한
파괴 행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주장이있다.
실제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상륙이 있었을 가능성은 무척 높다.
에스파냐의 갈레온선(船)이 1500년대에 태평양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
게다가 섬 주민들이 로헤벤 일행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으며 스스럼 없이 대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예전에도 유럽인들을 만났다는 증거로 여겨질 수 있다.
망망대해의 외딴섬에 살면서 그들이 세상에서 유일한 인간이라 믿었을 사람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반응이엇다.
그러나 1722년 이전에 유럽인들이 이스터 섬에 상륙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삼림을 파괴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마젤란이 1521년 태평양을 최초로 횡단하기 전부터
이스터 섬에서 인간으로 인한 파괴가 자행되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찾아진다.
즉 1300년 이전에 모든 육지새가 멸종했고. 돌고래와 참치가 식단에서 사라졋으며,
프렌리가 확인해주었듯이 퇴적물에서 나무의 화분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포이케 반도의 숲은 1400년 경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야자나무 열매는 1500년 이후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째 반론은 삼림 파괴가 가뭄이나 엘리뇨 등과 같은 기후 변화에서 비롯되엇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나나사지(제4장), 마야(제5장),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제 7~8정)에서
기후 변화가 인간으로 인한 환경 훼손을 더욱 가속화시킨다는 사실을 살펴보겟지만
기후 변화가 이스터 섬에 일정한 영향을 미쳣다면 이런 반론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스커 섬과 관련된 기간인 900년부터 1700년까지의 기후 변화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기후가 더 건조해지고 폭우가 잦아지면서 삼림의 생존에 불리했는지,
거꾸로 더 습해지고 폭우가 줄어들면서 삼림의 생존에 더 유리하게 변햇는지 판단할 자료가 부족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기후 변화만으로 삼림이 파괴되고 새가 멸종되었다고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듯하다.
테레바카 화산의 용암류(lava flow)에 묻힌 야자나무 줄기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거대한 야자나무는 이스터 섬에서 수십만 년 전부터 살았고,
플렌리는 퇴적물을 분석해서 야자나무, 나무 데이지, 토르미로 이외에 대여섯 종의 수종이
이스터섬에서 3만 8.000~21 년 전부터 존재한 것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스터 섬의 식물들은 수많은 가믐과 에리뇨를 꿋꿋하게 이겨냈기 때문에,
인간이 그 섬에 정착한 이후에 우연의 일치인양 이런 토종 나무들이
가뭄과 엘리뇨를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플렌리의 화분 분석에 따르면 2만 6,000~1만 2,000년 전에
차가운 건기가 세계 어떤 곳보다 이스터 섬을 거세게 몰아붙이면서 거의 1,000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나무들은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이동하며서 살아남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반론은 이스터 섬 사람들이 모든 나무를 베어버릴 만큼 어리석은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하기야 모든 나무가 사라지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잇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카트린 오를리아크는
"물질적으고 정신적인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숲을 왜 파괴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이런 반문은 카느린 오를리아크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재 제자들,
즉 인간으로 인한 환경 파괴론을 주장하는 모든 학자들을 괴롭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이스터섬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한 그루의 나무를 베면서 뭐라고 말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요즘의 벌목꾼들처럼 , 그들도 "나무를 베는 게 아니야, 할 일을 하는 거라고!" 라고 외쳤을까?
아니면 "테크놀로지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거야, 무서워할 필요 없어 , 나무를 대체할 것을 찾아낼 거야!" 혹은
"이스터 섬 어딘가에 다른 야자나무가 없다는 증거가 없잖아,
섬을 샅샅이 뒤지면 틀림없이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성급헤게 벌목을 금지시키거나 두려움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돼!" 라고 소리쳤을까?
환경을 부주의하게 훼손한 모든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의문들이 제기된다.
우리는 제14장에서 이 문제를 되짚어보면서,
인간사회가 환경 훼손에 따른 결과를 혹독하게 치른 후에도
똑같은 실수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이유들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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