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와 ‘감사하다’ 사이엔 뜻 차이도, 위계도 없다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제이티비시(JTBC)>의 손석희가 ‘감사합니다’ 대신 ‘고맙습니다’를 쓴다는 점을 가리키며 “‘고맙다’는 말 쓰는 것이 건방진 게 아니라는 점 인식할 필요 있다”고 환기해 주었다. [관련 기사 : 손석희는 왜 “감사합니다” 말고 “고맙습니다”를 쓸까]
나도 고마움의 인사는 ‘고맙습니다.’로 한다. 의례적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사를 진행할 때도, 여럿을 대표해 인사를 할 때도 ‘고맙습니다’만 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고맙다’보다 ‘감사하다’가 더 격식적인 성격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맙다’는 우리 고유어고, ‘감사(感謝)하다’는 한자어지만 이 두 낱말이 각각 뜻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 흔히들 ‘감사하다’는 윗사람에게, ‘고맙다’는 대등한 사이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의미가 비슷할 경우, 일반적으로 고유어보다는 한자어가 더 높은 말로 쓰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는 ‘연세’, 술은 ‘약주’, 이는 ‘치아’라고 쓰는 이유다.
결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계집’, ‘사내’가 ‘얕잡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여자’, ‘남자’로 쓰는 것도 비슷하다. 고유어 ‘사람’에 비해 비하의 뜻이 있는 한자어 ‘인간’은 좀 특이한 경우다.
그러나 ‘고맙다’와 ‘감사하다’ 사이엔 위계가 따로 없다. ‘감사’는 직역하면 ‘사례함을 느낌’ 정도이니 그것과 ‘고맙다’ 사이엔 뜻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또 ‘감사하다’가 ‘고맙다’보다 덕 격식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니 우리말과 한자어의 뜻의 차이가 없다면 우리말을 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 '미안하다'는 상위자에게 쓰이는 '죄송하다'에 비해 매우 광범위하게 쓰인다. ⓒ 녹색연합
같은 한자어이지만 ‘미안(未安)하다’와 ‘죄송(罪悚)하다’는 좀 달리 쓰인다. 이들은 감정의 정도에 따라 달리 사용하는데 ‘죄송하다’가 ‘미안하다’보다 공손함을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두 말의 차이를 묻는 국립국어원의 답변이다.
“‘미안하다’는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라는 뜻의 형용사이고, ‘죄송하다’는 ‘죄스러울 정도로 황송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두 어휘는 뜻에 미묘한 차이가 있으나 현실에서 쓰이는 상황이 크게 구별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미안하다’는 상대가 말하는 이와 같거나 낮은 위치의 사람일 때, ‘죄송하다’는 상대가 말하는 이보다 윗사람일 때 쓰입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의 용례들을 참고한다면, 윗사람에 대하여는 ‘미안하다’보다는 ‘죄송하다’를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죄송하다’는 주로 상위자에게 쓴다
실제로 두 단어가 쓰일 수 있는 높임의 등급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미안하다’는 ‘아주높임(미안합니다)’에서부터 ‘예사높임(미안하오)’, ‘예사낮춤’(미안하네), ‘아주낮춤(미안하다)’까지 특별한 제약 없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반면, ‘죄송하다’는 ‘아주높임(죄송합니다)’이나 ‘두루높임(죄송해요)’에서는 많이 쓰이지만, ‘예사높임’(죄송하오)‘ 이하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제약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높임의 차이는 ‘죄송하다’가 쓰이는 영역이 주로 상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미안하다’는 하위자에게도 쓰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회적 신분이 더 높은 사람에 대한 사과의 표현으로 ‘미안하다’보다 ‘죄송하다’를 쓰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서열상으로 상위자라고 하더라도 상대와의 ‘친분’, 곧 상대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에 따라 높임 표현을 달리 선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윗사람에게는 ‘죄송하다’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지만 같은 윗사람이더라도 친밀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를 쓸 수 있다. 또한, 아랫사람이더라도 별로 친하지 않거나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죄송하다’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외래어가 고유어보다 우아하다?
다른 한편으로 고유어와 외래어가 서로 비슷한 뜻으로 쓰일 때는 일반적으로 고유어는 입말 또는 비격식체로, 외래어는 글말 또는 격식체로 쓰이는 경향도 보인다. 가게는 ‘슈퍼(마켓)’로, ‘삯’은 페이로, ‘잔치’는 파티로, ‘에누리(할인)’은 ‘디스카운트’로 쓰는 것이다.
이는 한자어의 자리를 로마자가 대체한 경우라 할 수 있겠는데 언중들이 우리말보다 외래어를 더 우아하고 고상한 말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모국어를 밀어내고 이미 주류의 언어가 되어버린 현실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거라 생각하면 씁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사람들은 무심코 그렇게 쓴다.
말과 글이 드러내는 민족 정체성의 훼손은 그런 경로로 무심히 진행되고 있다. 굳이 영어공용화론이 아니라도 우리말의 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고 무섭게 치닫고 있다고 하면 엄살이 될까.
2017. 1. 19.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