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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14일 토요일, 맑음, 뜨겁다. 영상 8℃~25℃
산티아고 순례 길은 끝나고 이제 마을을 둘러보는 여행이다. 먼저 주변을 둘러보면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 지방의 도시로서,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중세 3대 순례지 중 하나란다.
‘성 야고보(Santiago)’와 ‘별의 들판(campus stellae)’의 합성어이다. 7세기경 스페인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사도 야고보의 유해를 한 기독교도가 몰래 수습하여 스페인까지 가져와서 발견되지 않도록 매장했다.
그런데 7세기경 한 수도사가 별들의 무리에 이끌려 가보니, 그곳에 야고보의 유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교회를 세웠고, 이곳이 중세의 성지가 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순례 길은 프랑스 여러 곳에서 출발한다. 최종적으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카미노 프란세스(프랑스 길)’라는 길로서 800km 이상 된다. 순례자들 덕택에 이 길을 따라 부르고스(Burgos), 레온(León) 등 도시가 발달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의 상징은 가리비 조개이다. 고대부터 가리비 조개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근처의 바닷가에서 기념품을 주워오기 시작한 것이 기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산티아고 성당 건축은 1075년 알폰소 6세와 산티아고 주교 디에고 데 펠라에스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1088년 주교 펠라에스와 성당 참사회의 불화로 인하여 중단되었다가, 1100년 주교 디에고 젤미레스(Diego Gelmirez)에 의해 계속되었다.
1105년 성당의 동쪽 끝부분이 완성되었으며, 1124년 성당이 완성되었다. 1501~11년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엔리케 데 에가스가 건축한 왕들의 숙소가 마요르 광장 북쪽에 있는데 이곳은 나중에 공립호텔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락소이 궁정(Pazo de Raxoi)이 정면에 자리 잡고 있다. 그밖에 유명한 비종교적인 건물들로는 산헤로니모대학(1501 설립), 폰세카대학(1530 설립), 산클레멘테대학(1601 설립), 1532년에 설립되고 건물 자체는 1750년에 건립된 대학교 등이 있다.
지금은 신학교가 된 산마르틴피나리오 수도원은 10세기에 세워지고 17세기에 재건되었다. 산프란시스코 수도원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1214년 산티아고로 성지를 순례하러 왔을 때 세워졌다고 한다.
산타마리아살로메 성당과 교외에 있는 산타마리아라레알 델사르 공주(共主) 성직자단 성당은 12세기에 건립되었는데, 각각의 정면은 후일 세워진 것이다.(백과사전 참고).
광장 중앙 바닥에는 기초 동판(Found a Cion)이 있다. 조개 문양이 있는 커다란 동판이다. 광장에서 앉아 대성당과 주변을 둘러보다가 대성당을 들어가 보려 했으나 들어갈 수 없었다.
들어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입장권을 사야했다. 대성당도 정문에서 들어가는 것도 있고 남쪽 입구에서 들어간단다. 말의 분수대(Fonte dos Cabalos)가 있는 남쪽의 플라테리아스 광장(Praza das Praterias)으로 갔다.
교황의 부조상도 보인다. 대성당에서 집전되는 미사에 참석하려는 순례자들이 들어가는 플라테리아스 문이 있는 곳이다. 대성당 남쪽에 있는 시계탑 근처 있든 플라테리아스 문은 은세공인의 문이 라고도 불린다.
조각이나 돋을새김 장식이 풍부하게 새겨져 있다. 옛날에 문 둘레에 은세공인의 공방이 있었기에 유래된 이름이다. 계단으로 되어있다.
원래는 대성당 앞의 마름모꼴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면 오브라도이로 문(Fachada de Obradoiro)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영광의 문(Portico de la Gloria)이 나타난다.
영광의 문에는 12세기 초 거장 마테오 데우스탐벤이 신약 성서의 요한 묵시록을 근거로 조각한 200여 개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의 기둥에는 성야고보의 상과 함께 성모와 다윗의 아버지 이세의 가계도가 새겨져 있다.
장인 마테오의 역작인 ‘영광의 문’ 중앙 기둥인 ‘이새의 나무’에 손을 얹는 것은 이제 금지 사항이 되었다. 외관 조각은 175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성경과 그 주인공들이 돌로 만들어진 이 놀라운 이야기가 책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중앙 기둥에는 12사도를 양 옆에 둔 영광의 그리스도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바로 아래에 성 야고보가 그리스도와 순례자를 잇는 중재자로 앉아 있다. 무사히 도착한데 감사하는 의미로 수세기에 걸쳐 수백만 순례자들이 이 조각상을 어루만져, 단단한 대리석이 닳아 손자국마저 나 있다.
반대편으로 전진하여 중앙 기둥 뒤편에 조각된 장인 마테오의 작품 앞에 서보자.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 상도 있다. 지하실에 가면 제단 아래에 성 야고보의 유골함이 있다.
다시 대성당 광장으로 돌아왔다. 흰색 복장을 한 수녀들이 여러 명 눈에 들어온다. 1985년 유네스코 등재 기념비도 있다. 도착했으니 순례 증명서를 발급받기로 했다.
광장 북서쪽 길로 가면 사무실(Pilgrim's Reception Office)이 있다. 33번 건물이다. 우체국 건물 옆이다. 순례자를 위한 안내소와 예배당 그리고 정원도 있다.
증명서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굉장히 빠르고 체계적이라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가이드의 도움으로 큐알코드로 미리 서류를 작성해서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하면 남성분이 번호표를 준다. 0504번이다. 그리고는 안쪽 정원에서 대기를 한다.
번호 전광판이 있는 곳으로 거리두기 줄서기를 한다. 번호표에 번호가 뜨면 옆에 같이 뜬 데스크 번호로 가서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정식 증명서는 무료이고 거리증명서는 유료다.
발급이 완료된 뒤 맞은편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다. 거리 증명서와 담아가는 통을 포함해 5유로다. 거기에 다양한 기념품도 팔고 있었다. 이렇게 증명서 통을 손에 쥐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이젠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화려하고 멋진 산 푸룩투오소 성당(Church of San Fructuoso)을 지나간다. 정원 앞에 여인의 석상(Busto de Concepción Arenal)이 있다.
구도시의 골목길을 간다. 여러 가지 구경거리가 있는 알라메다 공원(Parque da Alameda)을 지나간다. 공원에는 무지개 색 벤치가 보이고 사람들이 많다. 차량도 복잡하다.
커다란 조각상(Monumento a Carvalho Calero)이 보인다. 칼레로(Ricardo Carvallo Calero)는 갈리시아어 작가, 문학 사학자, 문학 평론가, 문헌학자 및 언어학자였다.
그는 고향인 페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대학 공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했으며 그곳에서 갈리시아주의와 당대의 문화 운동, 특히 갈리시아 연구 세미나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갈레귀스타당(Galeguista Party) 창설에 참여했으며 1936년 갈리시아 자치법 초안 작성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분쟁으로 인해 그는 분리주의자로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년 후에 보호관찰을 받을 수 있었다.
공직을 맡을 수 없게 된 그는 사교육에 귀의했고, 동시에 박사 학위를 받고 1958년 왕립 갈리시아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마침내 그는 산티아고 대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고, 1972년에 갈리시아어 언어학 및 문학의 초대 교수가 되었다.
1980년 은퇴할 때까지 카르발류 칼레로(Carvalho Calero)라는 이름으로 갈리시아어 및 문학과 관련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여 많은 인정을 받았다.
2010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알라메다 공원 옆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분홍색 화강암 기반에 청동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Vigo 출신의 조각가 José Molares의 작품이다.
우리는 숙소를 찾았다. 유로스타(Hotel Eurostars Araguaney)호텔이다. 시설도 좋고 품격도 있어 보이는 숙소다. 짐을 풀어놓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Senra 거리에서 KFC를 발견했다. 들어가서 치킨과 쥬스로 배를 채웠다. 10.5유로다. 알라메다 공원을 둘러본다.
두 여인의 조형물(As Duas Marias)이 세워져 있다. 현대 동상 조각품이다. Las Dos o'clock 또는 간단히 Las Marias로도 알려져 있다.
이 동상은 1994년 César Lombera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Maruxa와 Coralia Fandiño Ricart 자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커플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매일 구시가지를 항상 2시에 산책한 결과로 도시에서 매우 인기를 얻었다.
두 자매는 엉뚱한 옷차림으로 대학생들과 시시덕거리며 갈리시아 수도의 구시가지를 산책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들은 독재정권의 최악의 시기를 겪었고 저항했다. 그의 형제 몇 명은 무정부주의 운동의 저명한 투사가 되었고 체포 영장에 따라 박해를 받았다.
자매들은 수년 동안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거리에서 알몸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들은 도망친 형제들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밤중에 집에 침입했다.
형제들의 행방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지만 형제들을 찾아 살해하고서야 괴롭힘이 끝났다고 한다. 이웃들은 그들을 감추어 주었다. 몰래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가 있을 때 모금까지 했다고 한다.
공원에는 화려하고 풍성한 꽃들이 가득 피어있다. 분수와 아치 다리가 있는 인공 연못 에는 장미꽃도 많이 보인다. 연못 가운데에는 칼을 찬 누네즈의 동상(Escultura de Méndez Núñez)이 있다.
스페인 함대의 영웅이란다. 동상 뒤로 성당(Capela do Pilar)이 있다. 그 옆에 3단으로 된 둥근 접시 모양의 분수가 있다. 그 뒤에 백악관 같이 생긴 하얀 건물은 유아원이란다.
알라메다 공원에서 오른쪽으로 Senra 거리를 돌아가면서 시내를 걷는다. 먼저 광장(Praza de Galicia)을 끼고 있는 작은 공원을 만났다.
광장 정면에는 궁전같은 호텔 건물이 있다. 공원에서 안경을 쓴 석조상(Busto de Valle Inclán)을 만났다. 흐르는 수로와 놀이터와 숲이 있는 조용한 공원이다.
골목길을 걸어 검은 고양이 (O GATO NEGRO)선술집을 찾았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번화가 골목 안에 있다. 녹색 문에 영업시간이 적혀있다.
깜찍한 간판 막걸리처럼 생긴 하우스 화이트 와인과 풀포, 고추튀김 등이 있다. 다시 큰길로 나와 오른쪽으로 계속 걸어가 마자렐로스 광장(Mazarelos)에 도착했다.
책을 들고 있는 인물 동상(Escultura de Eugenio Monteros Ríos)이 있다. 1916년에 조각가 Mariano Benlliure의 의해 만들어진 정치인 Eugenio Montero Ríos의 동상이다.
그가 사망한 지 2년 후인 1916년에 만들어져 오브라도이로 광장 중앙에 있었다. 12년 후 그것은 이곳 광장(Plaza de Mazarelos)로 옮겨졌다.
주변에는 대학 도서관을 비롯해 성당(Igrexa da Universidade) 건물도 있다. 좀 더 걸어가니 대학 광장(Universidade)이 나온다. 대학 건물이 있다.
우크라이나 깃발이 걸려있다. 카스트로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좀더 걸어가니 또 엔트레프라치나스 광장(Entrepracinas)이 나오고 동상이 있다.
아스투리아스의 알폰소 2세의 동상이다. 814년 성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었을 때, 그는 사도의 무덤을 기리고 존경과 숭배의 표시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오비에도에서 산티아고까지 여행한 최초의 순례자였다.
최초로 산티아고를 방문한 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란다. 무겁게 느껴지는 중세의 거리다. 동쪽으로 난 대학로를 걸어가니 또 작은 산 펠릭스 광장(San Felix)이 나온다.
십자가 조각품(Cruceiro de San Fiz ou de Ramírez)이 세워져 있고 성당(Iglesia de San Félix de Solovio)이 있다. 성당 정면 앞에 있는 공간이 솔로비오 광장(San Fiz de Solovio)이다.
아메아스(Ameas) 거리를 따라가니 재래 시장(Mercado de Abastos)이 나온다. 음식과 꽃을 판매하는 곳도 있고 정육점과 수산물을 파는 코너도 있다.
해산물 요리하는 식당들도 있다. 매장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식당 코너에만 사람들이 있다. 시장 시계탑 건물의 시계는 10분전 6시다.
다시 북쪽 방향으로 돌아 걸어가다보니 오전에 만났던 성당(Igrexa de Santa María do Camiño)을 또 만났다. 좀 더 걸어가 광장 위에 있는 성당(Convent of San Domingos de Bonaval)도 다시 만났다.
스페인 민속 박물관(Museo del Pueblo Gallego)도 함께 있다. 맞은편에는 현대 미술 박물관(Contemporary Art Center of Galicia) 건물도 있다.
깔끔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공간에 현지 및 국제적인 현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더 걸어간다. 왼편에 작은 성당(Capela de San Roque)을 보인다.
연구소 건물과 붙어있다. 오른편으로 돌아간다. 기온이 좀 뜨겁다.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제단이 아름답다는 산타 클라라 성당(Convento de Santa Clara)이 나온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성당이다. 첨탑 꼭대기에 왜 원기둥 장식이 무겁게 올려져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산타 클라라 거리 아래쪽에 수녀 그림이 붙어 있는 성당(Igrexa e Convento das Carmelitas Descalzas)도 있다.
입구를 찾으러 내려 가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다시 올라왔다. 길가에 작은 정원(Xardín de San Roque)이 있다. 십자가 석상도 만나고 작은 광장의 식수대(Fonte de San Roque)도 만났다.
담벼락길을 따라 내려가서 산 프란시스코 성당(Convento de San Francisco)을 만난다. 화려하고 멋진 성당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순례를 기념하는 일종의 프란시스코 성당이다.
기둥 4개와 종탑이 2개 있는 것이 특이하다. 성당 앞에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산프란시스코와 일행이 산티아고를 방문하는 장면을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다.
바로 옆 광장에는 현대식 구조물(BUS AVDA XOÁN XXIII Park)이 길게 펼쳐져 있다.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도 많고 단체로 모여든 사람들로 복잡하다.
대형 버스들도 보인다. 갈레라스 거리(Galeras)를 따라 다시 알라메다 공원으로 왔다. 나무 그늘이 너무 좋다. 공원에서 건너다 보이는 대성당의 첨탑이 너무 아름답게 시야에 들어온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있는 동상(Estatua Diaz Pardo)과 함께 앉아 사진을 찍는다. 디아즈 파르도(Isaac Díaz Pardo 1866~1936)라는 영감님이다.
코루냐(Coruña) 출신의 갈리시아인 지식인, 화가, 도예가, 디자이너, 출판사 및 사업가였다. 2020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 알라메다 공원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예술가 세자르 롬베라(Cesar Lombera)의 작품에서 벤치에 앉아 갈리시아 수도의 구시가지를 바라보는 지식인을 볼 수 있다. 고목나무 아래 조형물(Monumento Homenaxe a Carlos Maside)이 있다.
사람 형상을 세워둔 것이다. 여기에서 서 대성당을 본다. 120년 이상 된 유칼립투스 나무가 있다. 높이가 약 45미터, 줄기 둘레가 8미터 이상으로 갈리시아에 심어진 최초의 표본 중 하나다.
연인들이 나무 껍질에 이곳을 찾은 흔적이 새겨져 있어 연인의 나무라고도 불린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주변에 벤치가 있지만 사실은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러나 이 인상적이고 거대한 나무의 위엄을 만나니 감탄이 나온다. 공원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물이 넘치는 조형물(Fonte de mármore)도 만나고 머리에 물통을 이고 있는 여인상(Escultura da Leiteira)도 만났다.
작가로 알려진 로살리아(Estatua de Rosalía de Castro) 기념물도 만났다. 모든 스페인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란다. 로살리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태어난 갈리시아 인 작가다.
그의 걸작은 1884 년에 쓰여진 책인 "사르의 은행에서"였다. 낭만주의 작가로 스페인어와 시로 글을 썼을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장르를 발전 시켰으며 갈리시아어로 여러 작품을 썼다.
유명한 작가의 동상을 자세히 보니 여성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는 남자의 동상(Escultura de Federico García Lorca)이 계단에 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1898년~1936년)는 스페인의 시인·극작가이다. 2020년에는알라메다 공원의 특히 Paseo de la Herradura에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를 기리는 동상이 설치되었다.
조각가 알바로 데 라 베가의 이 작품은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안달루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존경하던 작가 로잘리아 데 카스트로(Rosalía de Castro)의 동상을 바라보며 산타 수산나의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공동 연출한 극단인 La Barraca 극단과의 순회 공연에서 사용했던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있다. 그 뒤로 산타 수산나 성당(Igrexa de Santa Susana)이 있다.
좀더 걸어가면 또 하나의 기념물(Monumento a Pedro Pais Lapido)이 있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범퍼카도 있고 회전차도 있고 여러 가지 인형을 파는 이도 보인다.
젊은이들이 많다. 멀리 신도시와 언덕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우리가 넘어온 고소산이다. 현대식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철도 건너편이다. 역으로 간다.
관공서(Parlamento de Galicia)건물을 지난다. 의사당 건물인 것 같다. 울타리 안에는 조형물이 보이고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잠시 기차역사를 내려다 보고 돌아섰다.
날이 어두워진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2인실 침대로 넓고 쾌적하다. 저녁은 슈퍼에서 여러 가지 식품을 사다가 조합해서 먹었다. 햄, 치즈, 토마토를 샀다. 4.82유로다.
물과 요플레도 샀다. 시내를 조금 돌아보았는데 피곤하다. 모두 중세의 건축물이고 동상들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인 것 같다. 공원에서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걸어보니 도시를 좀 알 것 같다. 바로 시간 그 자체가 여행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시간은 무지에서 출발하여 영적 지식에 닿는 여행이다. 시간은 불완전하여 선을 향한 열망에 불타고 서서히 진화한다. 시간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상대적 과정이다. -티모시 크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