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이 아닌 짧은 소설이므로 부담 없이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
이인규
하긴, 그로서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지시였다.
지리산이 가까운 C 군의 도림파출소 회의실에서 모지수 경위가 현 파출소장인 자신에게 대들자, 한 소장은 고함을 질렀다.
“그래서 어쩌려고! 시위한다고 이 사태가 달라져?”
한 소장은 부하 직원 중 가장 아끼던 모 경위가 직원들 보는 앞에서 작심하고 달려들자, 아연실색했다. 그런데도 그는 입에 거품을 물며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면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개별 수사에도 정권 입김이 미칠 우려가 매우 크며, 이는 우리 13만 경찰을 '정권의 시녀'로 두기 위한 경찰 통제장치 즉 경찰 민주·중립·독립성 말살 정책입니다. 저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한 소장은 그의 입바른 소리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끓는 가래만 삼켰다.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부하가 1인 시위에 나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위태로운 일이었다. 하긴 경찰서가 있는 C 군 농협 앞에는 경찰서 직장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이미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모 경위는 읍 상황도 그러한데, 이참에 우리도 내일부터 면 소재지에서 동반 시위를 하자는 요구였다.
그날 밤, 한 소장은 부산의 모 교도소 소장을 지낸 뒤 이곳 C 군으로 귀촌한 김과 술을 마셨다.
“자네 부하들이 용감하구먼. 꼭 자네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아.”
사실, 한 소장과 김은 B 교도소 동기였다. 1989년 그러니까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 한 소장은 교도소 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그만 옷(재소자 복)을 바꿔 입었다. 지금처럼 공무원 노조가 없을 때였다. 다행히 사표를 쓰는 조건으로 호적에 줄은 그이지 않아, 이듬해 한 소장은 경찰 경장으로 특채되었다. 경찰에서도 그는 직장협의회 설립에 크게 관여하여 동료와 부하들에게 신망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늙었고, 아무런 저항할 힘이 생기지 않았다.
“어떡하면 좋겠나?”
한 소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동참하지 않아 내가 교도소장까지 달긴 했어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자네에게도 정말 미안하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이 정부, 이거 정말 정상이 아니다. 숫제 나라를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고 있어. 난 자네의 용기와 진심을 믿네.”
그런데 그때 아내가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예요! 그때 교도소에서 벌인 일, 또 여기서 직장협의회 만들 때 일 때문에 당신은 경감으로 끝나잖아요. 당신 동기생들을 보세요. 경정, 총경, 치안감까지 올라갔어요. 연금이라도 제대로 받고 싶으면 관두세요. 제발.”
아내의 하소연에 김은 머쓱한지 돌아갔고 한 소장은 그날 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다 새벽녘에 그는 오래된 테이프 하나를 틀었다. 작고한 김지하 시인이 쓰고 이성연이 작곡한 ‘타는 목마름으로’ 였다.
다음 날, 파출소에 출근한 한 소장은 도림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 경위의 옆에 섰다. 출근길이었고 마침 장날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한 소장은 크게 숨을 쉬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모 경위의 눈이 휘둥그레질 때 한 소장은 새벽녘에 준비한 현수막을 활짝 펼쳤다.
‘행안부 경찰국 신설반대, 민주주의여 만세!’
첫댓글 이인규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한 두사람의 용기있는 자들에게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