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50번째 강연이 플로리다 주의 잭슨빌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8월26일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첫번째 강연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늘 50번째 강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세계 100회 강연도 이제 중반에 접어 들었습니다.
플로리다는 스페인어로 ‘꽃이 피는 나라’라는 뜻이며, 멕시코만, 대서양, 플로리다 해협 사이의 큰 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여러 아름다운 해변과 볼 곳이 많으며, 전체 인구는 약 2천만명 정도입니다. 스페인 땅이었던 이유로 남미계가 많은 주 중의 하나이며, 연평균 기온이 섭씨 21.5도나 되어 미국에서 가장 따뜻한 주이며 은퇴한 미국인들이 살려고 내려오는 주이기도 합니다. 플로리다는 열대에 가까운 날씨 때문에 사탕수수와 바나나, 파인애플 등을 포함하여 각종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며 오렌지와 포도 생산량은 미국 내 1위이며, 각종 과일 생산으로 통조림과 쥬스 제조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 오늘의 경로 : 랄리 ▷ 잭슨빌 / 거리 : 450마일(725km)
오늘 강연이 열리는 잭슨빌은 플로리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단일 시로는 미국에서 제일 넓은 시 면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843,000명 정도이고, 유학생을 포함하여 한인들은 약 2,5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먼 거리를 운전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 6시50분 Inn에서 제공하는 아침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7시 10분에 출발을 하였습니다. 오전 10시에 사우스 캐로라이나의 St. George에서 잭슨빌의 최영태 교수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랄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오늘 또 촬영장비와 감독님을 모시고 운전 봉사를 해 준 NC의 김성현님께 스님 사인을 한 금강경을 감사의 선물로 드리고 내년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 랄리에서 St. George까지 운전 봉사를 해준 김성현님
오늘은 하루 만에 약 450마일(725km)을 운전하며 95번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였는데, 고속도로 양 옆으로 빼꼭히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후 2시경에 오늘 숙소인 잭슨빌 정토법회 김성순 총무님과 최영태 교수님 댁에 도착하니, 김성순총무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고, 두 분은 삼배를 하면서 스님께서 플로리다에 오심을 환영하였습니다. 김성순 총무님이 준비한 음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원고교정 및 업무를 보시다가 오후 5시 30분에 강연장으로 출발하여 차 안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 St. Johns river
오늘 강연이 열리는 최경환 성프란시스코 한인 천주교회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 오늘 강연장인 '최경환 성프란시스코 한인 천주교회'
스님께서는 강연 전에 김영수 신부님과 인사 및 환담을 나누시다가 강연장으로 함께 이동하셨습니다.
먼저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7시에 김영수 신부님의 환영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삶의 용기를 주고 삶의 지혜를 주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리를 위해서 저 멀리서 어려운 걸음으로 지친 몸을 이끄시고 세상을 다니시는 스님의 그 열정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자리를 통해서 삶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고 문제를 직면하고 문제를 다루어가고 그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께서 먼 길을 달려오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었습니다.
오늘은 총 85명 정도가 강연에 참석하였는데, 어린 아이들을 대동하고 와서 강연을 듣는 젊은 부부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종교가 다름에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런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김영수 신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김영수 신부님이 성당을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성당에서 스님이 강의를 하는데, 이렇게 서로 이질적인 것이 어우러지면 조화를 이룹니다. 요즘 시대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같이 가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정반대 같은데 같이 가는 것, 이것이 어쩌면 미래사회의 새로운 흐름인 ‘융합’입니다. 성당에서 스님이 강의를 할 수도 있고, 법당에서 신부님이 법문도 할 수 있는, 그래서 성당에 나오는 사람들도 인류의 문화유산 가운데 소중한 지혜의 가르침인 불교를 배울 수 있고, 또 불교인들도 인류 문화유산 가운데 중요한 사랑의 가르침인 기독교를 배울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함께 더 지혜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좋아 보이시는 일이지 나쁜 일로 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신부님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더불어서 오늘이 세계 100회 강연의 절반인 50번째 강연을 하는 날임을 알리면서 바쁜 중에도 강연장을 찾아준 청중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전 세계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만나는 세계 100회 강연을 하고 있는데, 미국보다 유럽을 먼저 시작하게 되었어요. 유럽은 이동 거리도 멀고 매일 나라를 바꿔서 다니느라 몸이 좀 아팠어요. 그래서 고생을 좀 했는데, 그래도 안 죽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걸어서 못 가면 기어서라도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오늘이 50번째 강연입니다.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의 도움으로 금전적인 어려움 없이 공부하며 살고 있는데 사업을 하거나 취업을 한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아직도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인 분, 매일 희망편지를 받아보며 힘을 얻고 있는데 이렇게 무리한 일정으로 세계 100회 강연을 하시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묻는 분, 모든 사물은 만든 목적이 있을 텐데 사람은 누가 만들었으며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 아들이 타이완 여성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어머니로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이제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문제로 갈등하는 두 분의 질문을 연달아 소개합니다. 같은 주제로 묻는 것 같지만 두 질문의 내용은 차이가 있습니다. 함께 비교해 보시면서 같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온지 14년이 되었고, 아버지는 환갑이 넘으셨고 엄마는 곧 환갑이 되십니다. 적응하는데 힘들었지만 이제 생활도 안정되니 만족을 하세요. 아버지는 연세가 드시고 외로움이 커지시니까 점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십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여기에 계속 남아서 남동생이 결혼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것을 보고 싶어 하세요. 남동생은 31살입니다. 어머니는 몇 년째 고민을 하고 계시다가 지금은 체념 단계에 이르셔서 가능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쪽으로 마음을 많이 비우셨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머니 본인이 여기 있고 싶다면 여기 있어도 되고, 가고 싶다면 가는 것도 좋은데, 아들딸을 장가 보낸다는 등의 이유로 여기 있는다 하는 것은 올바르지는 않습니다. 항상 어떤 말을 할 때는 그 밑 마음을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부가 이혼을 하겠다고 찾아와서 제가 ”그럼 이혼하세요“ 그러면 ”애는 어떡하고요?“ 그러거든요. 그럼 벌써 이것은 이혼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제가 ”애는 고아원에 갖다 주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혼은 안 할래요“ 그럽니다. 그래서 다시 ”그럼 같이 살아라“ 그러면 또 ”남편이 이런 데 어떻게 같이 살아요?“ 그래요. ”그럼 이혼해라“ 그러면 또 ”애는 어떡해요?“ 그럽니다. 이것은 두 가지 떡을 가지고 이걸 가질까 저걸 가질까 망설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한국에 가고 싶다는 것은 아버지의 자유의사입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면 됩니다. 어머니도 가고 싶으면 가고, 있고 싶으면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꼭 가야 된다고 계속 그런다면 어머니는 선택을 해줘야 해요. 즉 이혼을 하고 가시게 하든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육십 밖에 안 된 남자라면 앞으로 20년 더 살 텐데 혼자 살기는 어렵잖아요. 같이 가서 살아주든지 아니면 이혼을 해주고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든지, 이런 의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여기 살려면 이혼을 각오해야 되고, 그게 싫다면 여기 살고 싶지만 한국으로 가야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아들딸을 핑계 삼는 것은 논의에서 제외시켜야 돼요. 그래야 문제가 아주 심플해집니다. 아들딸을 핑계 대면 복잡하게 얽힙니다. 자녀가 스무살 미만일 때는 자녀를 고려할 수 있지만, 스무살 넘었으면 자녀는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해서 아버지와 의논해서 결정을 하면 됩니다.
선택은 여러 가지입니다. 연말 부부를 하자고 해서 일년에 한번만 만나고 아버지는 한국에 살고 어머니는 미국에 살고 이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주말 부부도 있고 월말 부부도 있는데 연말 부부가 없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각자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견해가 다르면 각자 자기 갈 길을 가는 수밖에 없어요. 달리 해결책은 없습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선택하면 여기를 포기해야 하고, 여기에 있겠다고 하면 아버지를 포기해야 해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는 회귀성이 있습니다. 어릴 때 밥하고 김치를 먹었다면, 젊을 때는 미국에 와서 빵 먹고 우유 먹는 게 되는데 나이가 들면 식성이 다시 밥과 김치로 돌아갑니다. 누구나 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귀소 본능이 있습니다. 이건 자연의 법칙이에요. 그래서 어릴때 농촌에서 자란 남자들은 은퇴하면 시골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어때요? 도시 아파트에서 살 때와 시골에서 살 때를 비교해보면 일거리가 완전히 다릅니다. 시골에 가서 살면 집안 청소부터 시작해서 밭농사까지 하면 일이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시골에 있으면 문화생활도 못하고 여자가 많이 힘들어요. 그래서 남자는 돌아가고 싶은데 여자는 안 가려고 하니까 이것이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서로 논의를 해서 해결하는 길 밖에 없어요.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그것을 막을 권리는 없어요.
그런데 이건 어머니 문제이지 자기 문제는 아니니까 딱히 뭐라고 제가 얘기하기도 어려워요. 그러니 그건 엄마의 고민이니까 딸은 거기에 상관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엄마는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구나’ 이 정도로만 하고 나는 내 일을 해야 합니다. 엄마의 고민에 같이 빨려들어가는 것은 엄마 삶의 수렁에 자기도 한 발 같이 디디게 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즉답을 한다면 “그런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살아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질문자도 스님의 답변에 수긍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예, 알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뒤에 앉은 남자 분도 이어서 질문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앞의 질문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들어보니 비슷한 고민이 아니고 다른 고민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질문 내용을 자기한테만 유리하게 듣고 있다며 꼬집어 주셨는데 청중들도 통쾌했는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앞의 분 질문과 같은 질문입니다. 미국에 온지 17년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공부도 하고, 여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가게도 열고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드는 생각이 딱 두 가지입니다. 가족이 모두 한국에 있고 저와 와이프만 여기에 살고 있는데, 저는 한국에 가고 싶은데 아내는 반대합니다. 아내는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여기서 아이 공부를 다 끝내고 돌아가자고 합니다. 저는 가족은 항상 같이 있어야 하고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자꾸 총돌을 하게 됩니다. 앞에 질문과 같은 얘기입니다.”
“아이가 몇 살이예요?”
“아이는 12살짜리 하나 있습니다.”
“아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는 아내 말을 들어야 합니다. 앞에 질문과 같은 얘기가 전혀 아닌데 같은 얘기라고 하시네요. 자기한테만 유리하게 들으려고 같은 얘기라고 말하네요.” (청중들 박장대소하며 박수)
“왜냐하면 저의 부모님도 나이가 많으시고, 장인 장모님도 나이가 많으시거든요.”
“자식이 부모를 걱정하는 것은 선택사항입니다. 동물계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걱정하는 일이 없잖아요. 자식이 늙은 부모를 걱정하는 것은 선한 일에 속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닙니다. 동물계에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은 동물계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나쁜 일에 속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선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입니다. 즉,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안 돌보면 나쁜 일이 되고 돌보면 당연한 일이 됩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안 돌보면 그만이고 돌보면 선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을 같이 데리고 가면 되지 않습니까? 아이가 꼭 여기서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요.”
“그런데 부인이 지금 안 가겠다고 하잖아요. 결혼을 하는 순간 이미 절반은 자기 권리를 포기해야 해요. 그러니 아이의 공부가 끝날 때까지는 더 이상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모는 중간에 돌아가셔도 질문자의 죄가 아니에요. 질문자는 한 여인의 아들로서는 괜찮은 남자예요. 그러나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는 빵점입니다. 남자가 한 여인의 아들로서 괜찮은 것과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괜찮은 것은 전혀 다릅니다. 결혼을 했다면 한 여인의 아들로서의 관계는 끊고 한 여인의 남편이 되어주는 것이 질문자의 핵심 역할입니다. 그렇게 본분을 잊어버리고 양다리를 걸치면 안돼요.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의 자세를 갖고, 한 여인의 아들 역할은 형편이 되면 하고 안 해도 그만입니다.”
“제가 그 정도의 효자는 아니거든요.”
“그럼 왜 부모 핑계를 대요? 자기가 한국 가고 싶으면 그냥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하시지요.”
“가족은 같이 있어야죠.”
“가족은 같이 있어야 하니까 여기 있으라고 말하잖아요.(청중들 웃음)”
“많이 설득을 해서 지금은 같이 한국으로 가는 것으로 넘어왔어요.”
“부인이 동의하면 괜찮아요. 그런데 어느 여자가 동의를 해주었겠어요? 하도 고집을 피우니 봐 준 거지요. 그러다가 억지로 가면 한국 가서 틀림없이 부부싸움을 하게 됩니다. 만약에 한국으로 가서 질문자가 여기보다 자리를 더 잘 잡으면 문제가 없는데, 조금만 어려워지면 계속 바가지 긁힙니다. ‘그 좋은 곳 놔두고 미쳐서 여기 와가지고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 이렇게 계속 바가지 긁히게 되는 거요. 여자들은 대부분 여기 사는 것을 좋아해요. 남자들은 여기가 한국보다 못하지요. 왜냐하면 한국 가면 술집도 있고 노래방도 있고 친구도 있고 온갖 것이 낫지요.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이면 결혼을 안했어야 하지요.
그러니까 결정을 했으면 가도 좋지만 아내와 한 번 더 얘기해 보세요. 지금은 자기가 결정을 잘한 것 같지만 2~3년 후에 이 후유증이 나타나면 또 문제가 되니까 충분하게 다시 토론을 해 보세요. 정말 가고 싶으면 아들이 중학생이니까 앞으로 4~5년만 더 있으면 되잖아요. 지금 사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니라면 4~5년 더 있다가 돌아가도 되지요. 부모님 돌아가시는 것은 질문자의 죄가 아니에요. 돌아가시면 장례 치러주면 돼요. 부모님이 이러다가 돌아가시더라도 ‘너가 안 가서 내가 효도를 못했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됩니다. 스무살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지 누구 때문에 라는 핑계를 대면 안돼요.”
“그런데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제 나이가 육십이 다 되는데 그 때 한국에 가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비즈니스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거든요.”
“지금 가도 별로 할 일 없어요.(청중들 웃음) 한국이 지금 자기 일자리 줄려고 기다리고 있는 줄 아세요? 10년 후에 가서 안 될 일이면 지금 가서도 안 되는 일이에요. 사람이 한번 미쳐서 꽂히면 눈에 뵈는 게 없어요. 모든 게 다 될 것 같아요.
부인이 동의하고 아이가 동의하면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남편이 외국 가자고 하면 따라가야 하고, 다시 한국 가자고 하면 따라가야 된다는 이 생각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에요. 삶의 문제는 부부가 의논해서 결정해야 됩니다. 결혼을 할 때는 이미 내 것의 절반은 접고 결혼을 하는 겁니다. 결혼을 했는데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안 되지요. 부인을 억지로 설득해서 한국 데려가면 자기 사업은 잘 될지 몰라도 평생 욕 얻어먹을 겁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질문자도 스님이 답하신 뜻을 알아듣고는 “예, 알겠습니다” 하고 웃었습니다. 질문자가 웃는 모습을 보며 스님께서도 흡족하셨는지 “전혀 같지 않은 문제를 같다고 그러시네요” 라고 농담을 던지니 청중들은 또 한번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항상 좋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아침에 눈을 딱 뜨자마자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해보세요. 살았다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에요. 항상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몸과 마음에서 에너지가 팍팍 솟습니다. 아침에 눈떠서 ‘또 일어나야 하나?’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니까 매사가 찌뿌둥한 겁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기뻐하면 나머지는 사실 아무 문제가 안돼요. 한국이니 미국이니 가고 싶니 오고 싶니 이런 것들이 다 사치스런 고민이 됩니다. 아침에 딱 일어나보고 살아있다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았습니다’ 이렇게 딱 마음을 내서 생활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미국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더 있으면 행복해진다’, ‘나이가 들면 더 행복해진다’, ‘애 다 키우면 행복해진다’ 그러다가 죽을 때까지 행복 한번 못해보고 행복 찾다가 죽는 거예요.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지금!
그 다음에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한국을 가든 여기 있든 그건 여러분들의 자유예요. 그것이 행복의 근원은 절대 아니에요. 자기가 무슨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건 괜찮은데 거기 가면 조금 나을까? 그건 아닙니다. 가만히 보세요. 부모가 없으면 부모가 없어서 허전하다고 그러고, 부모가 있으면 있어서 귀찮다고 그러잖아요. 늘 우리는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상태를 말합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주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수처작주’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가 주인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기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편이 주인이고 자식이 주인이고 부모가 주인이고 세상이 주인입니다. 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 생각 크게 바꾸셔야 돼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남 핑계 대지 말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행복을 염원하는 축원에 청중들도 크게 기뻐했습니다. 어느덧 2시간 30분이 흘러 9시 30분이 되어서야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내려오셨습니다. 곧바로 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장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신부님께 새로운 백년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후 자원봉사자들과도 기념 촬영을 하고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한명 한명에게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면서 수고하셨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잭슨빌 강연은 잭슨빌정토법회의 김성순 총무님이 총괄하여 신도님들과 함께 힘을 모아 준비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 김성순 총무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는데 모두 수행법회에 참석하시는 분들로 "여러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점점 노하우가 생겨 작은 인원으로도 충분히 강연을 잘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대학원생 자원봉사자는 "바쁜 가운데 도울 수 있어서 뿌듯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오늘 행사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도 함께 하였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강연장을 출발하여 10시 20분 경에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내일 일정에 대하여 잠깐 의논을 하고 스님은 업무를 보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50번째 강연인 플로리다주 잭슨빌 강연도 잘 끝났습니다. 내일은 51번째 강연이 탬파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탬파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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