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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36구간(도래기재-화방재)
1.산 이름 : 구룡산, 신선봉
2.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3.산행코스 :도래기재 ←(5.4km)→ 구룡산 ←(1.2km)→ 고직령 ←(1.8km)→ 곰넘이재
←(2.0km) → 신선봉 ←(1.9km)→ 차돌배기 ←(1.9km)→ 사거리안부
←(1.5km)→ 깃대배기봉 ←(2.5km)→ 1461봉 ←(0.73km)→ 부소봉 ←(0.85km)
→ 천제단 ←(1.6km)→ 유일사갈림길 ←(2.4km)→ 매표소 ←(0.55km)→ 화방재
0.도래기재-구룡산(2시간)-곰넘이재(1시간)-신선봉(1시간)- 차돌배기(1시간) -
깃대배기봉(1시간30분) -천재단(2시간)- 유일사 사거리(1시간)- 화방재 (1시간10분)
4.산행거리 및 시간 : 24.7km, 11시간
5.산행 안내 : 춘양숙박-도래기재 택시(15,000원)출발, 화방재도착-신태백산식당 숙박.
동서울-태백 07:00, 07:20, 08:00 태백택시-화방재 10.000원
태백-동서울 16:30, 17:10, 18:00, 18:40, 19:20
도래기재-화방재 구간
구룡산(↖민백산, 삼동산으로 가는 경북과 강원의 도계, ↑ 태백산으로 가는 대간)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있는 구룡산은 태백산, 청옥산, 각화산, 옥석산 등과 함께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있다.
구룡산은 영월의 서쪽 수주면 운학리와 도원리 사이에 운학천과 구절양장 굽이치는 섬안이강에 감싸여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구룡산 남쪽 산자락 끝에 위치한 '섬안'이라는 마을을 동, 남, 서쪽으로 감싸 흐르는 강줄기 이름이 서만이 강인데 옛날 명칭은 '섬안이 강'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산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치악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백덕산과 사자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비산 넘어 용두산이 보여 전망이 좋은 산이다.
여기서 부터 경북도계와 대간은 부쇠봉까지 함께 간다.
부쇠봉
단군의 4명의 아들인 부루, 부소, 부우, 부여 중 부소의 이름을 빌리다..
부쇠봉은 단 군의 아들인 부소(扶蘇)에서 따왔다고 하고, 이 산에 불을 지필 때 쓰는 부싯돌(부쇠)이 많 아서 ‘부쇠봉’이라는 설도 있다.
태백산 천제단에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한배검’은 단군의 다른 말인 점에 비추어 보면 전자일 공산이 크다.경북도계는 여기까지다.
이제 도계는 면산과 응봉산을 거쳐 울진 고포마을로 맥을 다 하지만 대간은 태백산과 함백산을 거쳐 설악산으로 맥이 살아가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도계와의 이별은 아쉽기만 하다.
태백산은 예로부터 하늘에 천제를 올린 ‘민족의 영산’으로 일컬어져온 곳이다.
남쪽 백두대간의 허리에 해당하는 민족의 영산(靈山)인 태백산이 국내에서 22번째 국립공원이 됐다.
태백산은 남쪽으로 향하던 백두대간이 지리산 방향으로 기우는 분기점에 위치해 있다. 국립공원 공식 지정일인 지난 2016.8.22일 국내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날 오후 4시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를 개설,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고 23일 밝혔다. 국립공원 지정 기념식은 오는 10월 18일 열린다.
태백산은 198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27년 만에 국립공원이 됐다. 강원도에선 설악산과 오대산, 치악산에 이어 4번째 국립공원이 탄생했다. 태백산국립공원 면적은 태백시 51.2㎢, 영월군 0.1㎢, 정선군 0.9㎢, 경북 봉화군 17.9㎢ 등 4개 시·군 지역에 걸쳐 70.1㎢다. 기존 도립공원 면적(17.4㎢)의 4배가 넘는다.
정상에는 삼국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국내 최대 규모의 천제단(중요민속문화재 228호)이 있어 해마다 개천절에 제를 올린다. 또 백두대간 핵심지역으로 2637종의 야생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주목군락지와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등이 위치해 생태·경관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는 올해 하반기부터 자연자원 조사를 벌여 태백산의 자원 현황을 파악하고 탐방로 훼손지 정비 등의 사업을 펼 계획이다.
특히 일제가 이 일대를 탄광으로 개발하면서 주변의 나무를 마구 베어낸 뒤 짧은 시간 안에 자라는 일본잎갈나무 등을 마구 심어 삼림을 훼손한 터라 소나무 등 토종나무로 바꾸는 수종갱신 사업도 본격 추진된다.
태백산(천제단의 천왕단)강원도 태백시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566.7m.태백산맥의 종주(宗主)이자 모산(母山)이다. 함경남도 원산의 남쪽에 있는 황룡산(黃龍山)에서 비롯한 태백산맥이 금강산·설악산·오대산·두타산(頭陀山) 등을 거쳐 이곳에서 힘껏 솟구쳤으며,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소백산맥이 분기된다.
태백산은 북쪽에 함백산(咸白山, 1,573m), 서쪽에 장산(壯山, 1,409m), 남서쪽에 구운산(九雲山, 1,346m), 동남쪽에 청옥산(靑玉山, 1,277m), 동쪽에 연화봉(蓮花峰, 1,053m) 등 1,000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싸여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이 산은 1,560m의 고봉군(高峰群)이지만 산세는 험하지 않다.
북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고 산정 부근에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이 잘 발달되어 있으나 서남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태백산지는 함백산과 함께 지질구조가 복잡하며 남한 제일의 탄전지대를 이룬다.
대한석탄공사의 장성탄광을 비롯하여 황지 일대에 많은 탄광이 개발됨으로써 작은 마을에 불과하던 지역이 대표적인 광산도시인 태백시로 승격되었다.
태백산은 천년병화(千年兵火)가 들지 않는 영산(靈山)이며, 단종이 악령(嶽靈)이 되었다 하여 단종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단종비가 망경대(望鏡臺)에 있다. 또한 이 산에는 태백산사(太白山祠)라는 사당이 있었고, 소도동에는 단군성전(檀君聖殿)이 자리하고 있다. 1989년에 이 일대는 태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천제단은 자연석으로 만든 상·중·하단 3기가 있다. 태백산의 천제단은 단군신화가 시작된 그 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신라시대 북악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오늘날 태백산 일대가 신산으로서 당제가 계속 열리고,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이는 것도 천제단의 기운과 무관치 않다.
태백산 천제단 3기는 천왕단, 장군단, 하단으로 구성돼 있다. 천왕단은 중심에, 북쪽엔 장군단, 남쪽에는 가장 낮고 규모가 작은 제단으로 하단이 있다.
천제단은 다른 이름으로 구령단(九靈壇)이라 하고, 마고탑(麻姑塔)이라고도 한다. 해마다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중앙에 태극기와 칠성기를 꽂고 주변에는 33천기와 28수기를 세우며 9종류의 제물을 갖춰 제를 올린다
태백산 천제단(太白山天祭壇)- 천왕단
중요민속자료 제228호. ‘천왕단(天王壇)’이라고도 한다. 산 정상의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 뒤에는 장군단이 있고, 남쪽 언덕 아래 하단(下壇)이 있다. 천제단에서는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제의를 행하는데 이를 천제 또는 천왕제라고 한다.
태백산은 일찍이 신라 삼산오악(三山五岳) 중 북악(北岳)으로 이를 진산으로 여겨 나라에서 제사한 기록이 『삼국사기』 제사조에 전하며, 『고려사』에도 무녀(巫女)가 참여하여 제의를 행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처럼 태백산은 이미 신라 초기부터 신산(神山)으로 여겨 제의를 행하여왔다. 천제단은 돌을 쌓아 만든 제단으로 높이 2.4m, 둘레 27.5m, 좌우너비 7.36m, 전후너비 8.26m나 되는 타원형의 거대한 석단이다.
남쪽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올라가면 단 상부에 제단이 있어 여기에 제물을 진설하고 제사를 올린다. 돌계단은 원래 아홉 단이어서 9단 탑이라 불리기도 한다. 개천절 때 제의는 원래 지방 관장(官長)이 맡았으나 지금은 선출된 제관에 의해서 집례된다.
홀기(笏記 : 의식에 대한 여러 절차를 적은 글)에 의하면 제의절차는 개의(開儀)·참령(參靈)·전폐(奠幣)·진찬(進餐)·주유(奏由)·주악(奏樂)·원도(願禱)·사령(辭靈)·폐의(閉儀)의 순서로 진행된다. 진설은 천수(天水)·천래(天來)·천과(天果)·천탕(天湯)·천채(天菜)·사지(絲贄)·곡지(穀贄)·화지(貨贄)·천반(天飯)을 올린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춘추제사 때 소를 매어 신에게 바쳤는데, 산에 소를 매어놓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내려와야 했다고 하여 엄격한 금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천제단 중앙에는 칠성기와 현무기를 세우고 33천기와 28수기를 꽂았으며 제관들은 모두 흰 도포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관이 되면 1년 동안 목욕재계하고 제사 때는 산에서 자고 자정에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이 천제단은 그 규모가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클 뿐만 아니라 민족사의 시초설화에도 등장하며 지금도 제의가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오늘날도 태백산일대는 신산으로서 성무(成巫)와 수련(修鍊)의 도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일사/ 강원도 태백시 태백산로 4246-167 (혈동)
태백산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사찰이다.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 백일기도를 하던 중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아 창건하게 되었다.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기도 하다. 시설물로는 법당, 인법당,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사길령..
사길령은 ‘새로 낸 고개’, 즉 새길령의 향찰식 표기
가 아닐까? “신라시대에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이라 했는데 높
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새로이 길을 낸 것이 사길령이다
화방재
화방재[花房嶺]는 현리에서 어평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31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흔히 어평재라고 부르는 이 고개는 해발 936m의 높이로 고개마루 부근에 진달래, 철쭉이 무성하기에 화방재[花房峙]라 하였다. 화방재를 정거리재라고도 한다.
어평재란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 (禦坪)이라고 해서 어평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춘양 서벽의 아침은 쌀쌀하였다.
오늘 산행은 중간 석문동으로 내려오는냐? 태백산을 거쳐 화방재까지 가는냐가 문제이다. 만약 돌배기까지 가서 날씨가 좋고 산행에 무리가 없다면 화방재까지 갈 예정이다. 아침 7시경 택시를 타고 도래기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산행지 태백산은 이미 나의 발걸음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이라 크게 새롭지는 않지만 대간이라는 이름으로 산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빼면 신선감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로 옆으로 거대한 춘양목들이 광합성을 위해 그들의 키를 더욱 키운다.
춘양목 사이로 비쳐오는 햇빛을 받으며 소나무의 기를 받고 무사산행을 기원하기 위해 거대한 춘양목과의 프리허그를 한참동안 하고는 편안한 등로를 따라 첫 번째 임도에 닿았다. 쉼터가 마련되었지만 크게 쉴 일이 없어 임도를 가로질러 데크를 따라 구룡산으로 바로 오른다.
점차 깊은 가을로 들어가는 계절이라 활엽수들은 연신 자기들의 색을 과시를 하려는 듯 온통 울긋불긋하게 치장을 한다. 차쯤 고도를 높이다 보면 1,070m봉 헬기장을 지나 완만하고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줄달음한다. 구룡산 전위봉인 1,240m봉이 점차 장대한 거벽으로 다가오고 뚝 떨어져 바닥 친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임도에 설치한 쉼터가 있고 팔각정자를 떠나 산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절개지 석축 왼쪽 옆으로 풀숲 헤치면 데크계단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구룡산까지가 된비알을 이룬다. 아침의 선선한 기후지만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등로는 1,240m봉 오른쪽 어깨를 넘으며 길은 유순해 진다. 1,240m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우회하면 바로 구룡산이려니 했는데 멀었다. 공제선이 세 차례나 뒤로 물러난다. 그러고 구룡산 정상. 너른 헬기장이다. 사방 나무숲 빙 둘러 맑은 날이라도 태백산 방향을 제외하고는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 할 때 아낙이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지면서 뱀이 되어버렸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는 구룡산은 벌써 세 번째 오른다. 또한 구룡산은 경북도계의 갈림길이며 여기서부터 부쇠봉까지는 도계와 대간은 함께 간다.
구룡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에 울창한 숲길이다. 지난봄에 비바람과 벼락을 맞아 꺼꾸러진 나무들이 등로에 가로놓여 길을 끊어 놓아 번거롭게 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내림 길이라 큰 어려움 없이 고직령을 넘는다. 멀리 잡목들 사이에 신선봉의 우람한 자태가 나의 발걸음에 의해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그의 고도는 상대적으로 점점 높아지고 있음이 불안할 뿐 산행 속도는 빠르다. 길옆의 야생화들의 흔들림에 눈 돌림 틈도 없이 예전 웅현(熊峴)이라고 했던 곰넘이재라는 안부에 닿았다. 이 고갯길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를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특히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가는 관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곰넘이재에서 시작한 임도는 당분간 나지막한 봉우리들을 넘으며 능선 마루금으로 향해 간다. 가을이 만든 붉은 색들을 감상하며 20분쯤 잰걸음으로 가면 임도가 끝나고 가파른 소로가 이어진다. 무덤이 나오고 산죽지대를 지나 로프를 따라 된비알을 오르면 신선봉인 첨봉이 나를 반긴다.
신선봉!
산정에 잘 정리된 경주 손씨 묘가 자리 잡은 곳에서 간식을 하며 차돌배기로 향하는 남동진 방향으로 이어진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차돌배기의 능선이 파란하늘의 배경아래 붉은 기운이 물든 가을을 노래한다. 신선봉에서 고도를 그렇게 크게는 내리지 않고 곧 단풍들이 제 나름의 가을을 노래하듯 몸부림치는 펑퍼짐한 능선을 숨 가쁘게 오르면 석문동 갈림길인 차돌배기 쉼터다. 예전에 차돌이 박혀있었다고 하여 차돌배기라고 한 모양인데...... 물 한 잔만 하고 몇 분 뒤 각화산지맥 분기점에 닿는다.
왼쪽으로 꺾어가는 대간 길을 따르는데 오르막이 멈칫하여 경상도와 강원도의 도계인 깃대배기봉이다. 태백시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이 있다. 원래는 안개가 연기처럼 보여서 백연봉(白煙峰)인데, 일제강점기에 측량하느라 깃대를 꽂아서 깃대배기봉이라 했단다. 등로옆에 산림청에서 설치한 또 다른 깃대배기봉이 있다. 두 개씩이나 왜?
깃대배기봉에서 부쇠봉으로 가는 울창한 숲길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발걸음이 유난스럽게 편하게 한다. 숲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데크에 가득 내려앉은 낙엽 밟는 소리에 민감하게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긴다. 조릿대 사이로 난 등로를 품고 있는 숲은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나목으로 변화고 있어 안타깝게 하기도 하지만 길은 너무나 유순하여 빠르게 산행을 진행할 수 있다. 잡목들 사이로 부쇠봉이 보이는가 싶더니 오른쪽으로 문수봉 그리고 왼쪽으로 태백산이 잡목들 사이로 어렵게 조망이 된다.
붉게 물든 마가목 열매의 유혹을 뿌리치고 데크 전망대를 지나 경북도계와 대간의 꼭짓점이기도 한 부쇠봉에 오른다. 경북도계는 문수봉을 거쳐 울진 고포마을로 향하고, 대간은 화방재를 지나 진부령으로 향한다. 다시는 경북도계의 추억에 젖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벌써 이렇게 많이 걸어왔음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을 담아 뜨거운 몸짓으로 용광로와도 같은 열정으로 달려갔던 경북도계 능선을 바라본다. 세월은 망각의 시간을 필연적으로 갖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친다.
부쇠봉은 단군의 아들인 부소(扶蘇)에서 따왔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일부 지도에는 부소봉이라는 이름도 있더라.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파란 하늘 아래 주목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인고의 세월 속에 의연한 주목들에게 알록달록 나뭇잎 대신 하얀 구름이 살짝 친구가 되어 주는가 하면 부쇠봉에서 천제단 가는 길을 신라시대에는 하늘고개라는 뜻인 천령 이라 불렸다. 바로 천령을 따라 천제단 하단을 거쳐 민족의 영산이라고 하는 태백산 정상.............
소백산 비로봉만큼이나 칼바람으로 유명한 태백산의 너른 평지에 서니 이 세상엔 나 혼자만 존재한다는 적막감이 밀려온다. 저 멀리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는 능선미 앞에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오늘 내 발걸음의 궤적을 따라 눈으로 다시 한 번 대간을 따라 걸어본다. 태백산 천제단은 냉기마저 흐를만큼 조용하다. 천제단의 천왕단 안에 제물을 차리고 제를 올리고 또 술과 음식을 아무렇게나 널브러 놓은 모습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의 샤머니즘적인 사고를 탓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이렇게 할까라는 생각이 왜 들지 않겠나. 한데 이런 의식을 하려면 행락객이 거의 없는 시점에 하면 될 일을...... 많은 사람에게 세를 과시하려는 것도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인적이 드문 태백산!
정상의 너른 공터엔 인적이 드물고 공허함이 밀려온다. 아직도 화방재까지 먼대 이렇게 여유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도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언제 보아도 단아한 태백산 정상 표지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 처럼 여러 번 인증을 한다. 그리고 절정의 조망을 자랑하는 곳에서 다음 구간에 갈 함백산과 바람의 언덕인 매봉산, 태백시내를 조망하고는 이 산의 최고봉이라는 장군봉으로 향한다.
장군봉에서 인증을 마치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앞에서니 주목이 주는 애절함 때문에 발걸음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태백산에는 새로이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과 주검들이 혼재되어 있었고, 언제나 한 생명의 주검은 다른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숲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곳이 숲이고, 서로 다른 삶과 죽음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를 살리고 있는 곳이 숲이지만 주목의 존귀함으로 인해 아쉬움으로 남아 이리저리 보고 또 본다.
한겨울의 상고대 속에서 기품을 잃지 않았던 주목이건만 자꾸만 생의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에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나무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큰 주목들이 푸른 기상을 떨치며 위용을 자랑하는가 하면 고사목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다. 거센 바람과 폭설에 뒤틀리고, 휘어지고 속이 일부 썩어도 한쪽에선 여전히 강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생명력으로 인해 주목은 우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겨울의 주목의 아름다움에만 찬가를 불렸건만 하늘 높은 가을 하늘에서도 주목의 고고함은 잃지 않고 있어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진다. 어떤 주목은 생명 연장을 위해 시멘트로 몸을 치장을 하고 있었지만 또 다른 녀석들은 이미 생을 다하여 박제되어 천 년의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주목이란 주목은 모두 카메라에 담고서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사길령으로 향한다.
사길령으로 가다 왼쪽으로 100m 아래에 위치한 유일사!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기도 한 유일사 저절로 숙연해진다. 우리네 사랑이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면 어쩌면 이런 식으로 이어진 모태적 신앙이 아닐까 싶다.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대를 이어 온 우리의 삶의 방식이 아니던가? 다시 대간을 접하여 가는 길에 가을을 위한 자연이 펼치고 있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우리의 가을은 또 이렇게 허무한 가슴을 남기고 떠나가는 모양이다.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나 친구와 발걸음에 맞추어 하산하며 이런저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길이 너무나 편하다. 느림이 세상을 살아가는 철학임을 알아야 하는데......나는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활짝 웃으며 산행을 즐기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1,174m봉 내리면 산령각이다. 맹수와 산적들에게서 보호받고 싶은 심정에서 산령각을 짓고 제를 올렸으며 지금도 4월 15일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믿음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산령각 옆에는 제단 비슷하게 쌓아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음료수 등 제물을 놓고 갔다. 절실함으로 행함에 있어 탓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부디 태백산 산신이신 단종대왕님이 그 청을 받아 주시기를 기원해 본다.
고도를 급하게 내리면 바로 사길령매표소가 나오고 우람한 자연석의 사길령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뒤면에 사길령의 유래를 새겼다. 사길령은 ‘새로 낸 고개’, 즉 새길령의 향찰식 표기가 아닐까? “신라시대에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이라 했는데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새로이 길을 낸 것이 사길령이다.” 사길령에서 다소 어설픈 등로를 따라 화방재에 닿으며 산행은 끝났다. 늦은 가을이라 7시간 되었는데 어두워졌고 태백가는 버스를 기달렸으나 이미 막차는 떠나고 할 수없이 유일사 입구에 있는 신태백산식당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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