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게 뭔가? 교과서랑 교육과정이 또 바뀐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건 옛말이고, 정권 따라 골로 가게 생겼다. 세월호 사건으로 꽃 같은 아이들을 수장시킨 정권이 한낯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제 2015 교육과정 개악으로 교육을 수장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 2009년은 우리나라 교육역사상 치욕스런 해로 기록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2007개정교육과정을 현장에 적용하기도 전에 폐기시켜버리고, 2009개정총론을 버젓이 들고 들어와 학교 현장에 혼란을 부추긴 해이다. 총론은 2009개정, 각론은 2007개정을 적용하라는 이 명백한 ‘교육과정 찬탈’의 사건 앞에서 우리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부터 초등학교는 해마다 교과서가 바뀌는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다.
2009년 1~2학년 교과서 전체, 2010년 3~4학년 교과서 전체, 2011년 5~6학년 교과서 전체와 3~4학년 영어교과서, 2012년 5~6학년 영어교과서, 2013년 1~2학년 교과서 전체, 2014년 3~4학년 교과서 전체, 2015년 5~6학년 교과서 전체가 바뀌었다. 교과서만 보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적용되는 총론까지 따지면 이 분야의 전문가도 한참을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난맥상이다.
바뀌는 교과서가 개정의 필요에 맞고, 충분한 연구와 검토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이는 환영할 일이다. 2013년 이명박 교과서가 초등학교 1~2학년에 적용되던 첫 해 몇몇 언론사에서 특종을 썼다. 통합교과서 3권의 표지 사진이 일본 어린이 사진이었던 것이다. 교과서는 이미 다 배부되고, 한참 배우고 있는 5월에서야 이런 기사가 나왔다. 이명박 교과서 중 5~6학년 교과서가 처음 사용된 2015년 3월에는 어땠나? 6학년 국어 교과서 중 40쪽이 5학년 때 배웠던 국어교과서와 삽화까지 똑같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각 교과 학습 내용의 중복이나 누락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문제다. 그것은 지금 저기 교육부에 앉아 계신 분들이 더 잘 알거라 생각한다.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중복이나 누락 찾아서 알려주면서 학교에서 잘 가르치라고 친절하게 공문까지 보내주었다.
이런 문제가 왜 자꾸 발생하는가?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따져야 한다. 첫째, 정권의 조급증. 둘째,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의 비밀주의. 셋째, 개정된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현장 적용 방식의 문제다.
먼저, 정권의 조급증은 정권의 욕망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불어넣는데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현 정권 내’에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명박 교육과정을 4대강 교육과정이라고 비판한 이유가 여기 있다. 노무현 교육과정이 현장에 적용되기 직전에 폐기처분하고, 6개월 만에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6개월 만에 교과서를 개발해서 현장에 쑤셔 넣었다. 박근혜 교육과정 개발 일정을 보면 이것 역시 다르지 않다. 자기 임기가 끝난 다음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연구개발의 시간을 두면 노무현 교육과정처럼 폐기처분될 것이 두려웠던 건지 모르지만, 2014년 9월 시안 발표, 2015년 8~9월 총론 고시, 2016년 8~9월 각론 고시, 2017년부터 현장 적용의 일정을 기획하고 있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끝나기 전에 박근혜 교육과정을 어떻게든 학교 현장에 쑤셔 박겠다는 것이다. 4개월만에 교과서 만들고, 실험본 교과서로 현장 검토도 거치지 않고 무작정 2017년부터 초등 1~2학년에 밀어 넣겠다는 것이다.
둘째,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의 비밀주의다. 이명박 정권부터 시작된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의 비밀주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노무현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4~5년의 과정을 거쳤다. 그것도 부족하다고 현장에서는 아우성이었지만, 적어도 실험본 교과서가 현장에 적용되기 1년 전에는 개발되었고, 그 실험본 교과서는 연구자나 현장교사가 원하면 받아볼 수 있었고, 나름대로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교육과정은 이런 과정을 철저히 봉쇄했다. 실험본 교과서를 갖고 현장 적용연구를 하는 학교의 교사들에게 밖으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게 했다. 그런 식으로 개발하니 초등 1~2학년 교과서 표지에 버젓이 일본 사진이 등장하고, 5학년 때 나온 게 40쪽이나 6학년 때도 나오는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6학년 1학기용으로 개발되고 있는 사회 교과서 실험본은 조선 이후의 역사를 다루는데 무슨 007 작전하듯이 실험본 연구학교 보고회에 참관하여 전시된 교과서를 사진으로 찍어오고 PDF로 떠서 확인해 봤더니 360여 곳이나 오류가 나왔다. 교육부에 강력히 항의하여 지금 수정 작업 중이지만, 그 결과가 어떨지 기대가 되는 게 아니라 한숨이 먼저 나온다. 경제 영역을 배우는 5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를 보면, 구제금융이라는 IMF는 있는데 그 원인 설명이 단 한 줄도 없으며, 실업자가 많아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그래프는 있는데 이에 대한 원인 설명은 단 한 줄도 없다. 이와 반대로 복지국가라고 자랑하면서 바우처 지원에 대해서는 줄줄이 설명을 늘어놓아서 교육비지원대상자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들어 놓았다. 한 선생님께서 “IMF 설명해 놓은 거 보고 그 담부터 교과서 안보고 가르쳐요!” 하시는 이 현실을 누가 만들었나? 이명박 교육과정이 만들고 박근혜 교육부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의 비밀주의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셋째, 개정된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현장적용 방식의 문제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교과서와 교육과정이 바뀌는 첫해에 2학년, 4학년, 6학년이 되는 학생들은 한 마디로 ‘재수가 없어서’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2013년 1~2학년 교과서가 바뀔 때 2학년 학생들은 1학년 때는 듣기․말하기, 읽기, 쓰기, 수학, 수익, 바생, 즐생, 슬생으로 된 교과서로 배우다가 갑자기 2학년이 되어 국어, 국어활동, 수학, 수익, 봄, 여름, 가을, 겨울, 학교와나, 가족, 이웃, 우리나라라는 교과서로 배우게 되었다. 무엇이 누락되었는지, 무엇이 중복되는지 어떤 설명도 없이. 2014년에 4학년이었던 학생들 역시 과학, 수학, 영어 등에서 중복과 누락이 있었다. 2015년에 6학년인 학생들은 5학년 때 배웠던 국어 교과서를 또 배우는 격이고, 수학, 과학, 영어, 체육 등에서도 중복과 누락이 있었다. 이런 불이익의 근원은 재수 없게도 교과서가 바뀌는 첫 해에 2, 4, 6학년이었을 뿐인 것이다.
정권의 조급증,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의 비밀주의, 현장적용 방식의 문제는 다 다른 것 같지만 뿌리는 하나다. 바로 빨리 개발해서 빨리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빨리 그 다음 교육과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교육과정이 바뀌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1학년데 이명박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명박 교육과정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육과정 책임제다. 그렇다면 두 개 학년 동시 적용으로 인한 짝수학년의 중복이나 누락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리가 없다. 그리고 정권 책임제가 되기 때문에 훨씬 더 책임감을 갖고 개발할 것이다. 또 하나,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개발하는데 12년이라는 여유가 생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차근차근 천천히 가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을 토대로 2학년을, 초등 교육과정을 토대로 중등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런 상상을 하게 되면, 교과서 한자병기, 소프트웨어 교육 강제, 안전교과 신설과 1-2학년 수업시수 확대와 같은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도리어 확인하게 된다. 실험본 교과서에 대한 현장 적용 일정도 맞추지 못하면서 조급하게 2017년부터 적용하려고 강행하는 이 현실이 박근혜 교육과정의 부당성을 오히려 반증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2015 교육과정, 당장 중단하라 외치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