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 톡톡 일요시사]
영화 ‘오디세이’ 인생 귀환!
평생 풍랑 견뎌온 어르신께 드리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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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채우는 와플 한 접시
뉴질랜드의 9월은 길었던 겨울의 묵은 때를 털어내고, 향긋한 후리지아 향기로 이른 봄기운이 감도는 계절이다. 와이라우 호이츠(Wairau Hoyts) 영화관의 오전 상영 편을 막 보고 나온 터라 여유로운 시간이 좋았다. 영화 《오디세이》의 웅장한 열기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두 시니어 ‘지금’과 ‘여기’가 근처 물가에 호젓하게 자리한 웬디스(Wendy's)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햇살이 비치는 잔잔한 물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쪽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앞에는 방금 구워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툼한 와플과 노릇하게 구워진 브런치 케이크, 그리고 갓 추출한 부드럽고 쌉싸름한 롱블랙 커피 두 잔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웃음 꽃 머금은 상냥한 종업원에게서 잔을 받아 들던 ‘지금’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자네, 아까 영화 끝날 즈음 엔딩 크레디트 불빛이 켜질 때 눈가 훔치는 거 내가 옆에서 다 봤지. 나도 마찬가지로 울컥하더라고. 특히 마지막 혈투 끝에 승리의 팔을 치켜든 모습에. “
‘여기’가 감싸 쥐었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공감을 표하듯 허허 웃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3시간짜리 《오디세이》를 보고 울지 않을 우리 또래 시니어가 몇이나 있겠나. 20년 동안 거친 바다와 트로이 전쟁터를 떠돌던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고향 이타카로 돌아와, 먼지 덮인 옛 활시위를 겨우 당겨내는 그 흉터투성이 얼굴을 보는데... 이상하게 그 굳은살 배긴 손과 지친 눈빛에 우리가 살아온 지루하고 모진 세월이 겹쳐 보이더라고.“
‘지금’이 와플을 먹기 좋게 썰어 ‘여기’의 접시에 놓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아니래나. 세상은 언제나 노년의 지난 세월을 그저 거창한 영웅담이나 성공담으로 포장하려 들거나, 거꾸로 기력 떨어진 은퇴자로 치부하며 무대 뒤로 치워버리곤 하지 않나.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시인들의 화려한 칭송 노래를 들으며 기뻐하기는커녕 슬픔에 잠겼듯이, 우리 삶에서 진짜 위대한 것은 남들이 달아준 훈장이나 평판이 아니지. 수많은 흉터와 고독을 안고도 온갖 유혹을 견뎌내며 마침내 '나 자신'이라는 본향으로 돌아오는 그 묵묵한 견딤 그 자체가 인생의 참된 숭고함으로 느껴지더라고."
‘여기’가 와플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맞네, 자네 말이 맞아. 타인이 만들어준 가짜 영웅의 탈을 벗어던지고, 흉터투성이인 내 진짜 삶을 스스로 인정하고 안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나이에 비로소 얻게 되는 노년의 가장 단단한 자존감이겠지."
제우스의 법 제니아 어른의 성찰
쌉싸름한 커피와 와플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어우러지며,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영화 속을 관통하던 깊은 메시지와 현대 사회의 성찰로 이어졌다.
‘지금’이 잔을 가만히 감싸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영화 속 대사 중에 유독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문장이 있었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나그네를 대접하라, 변장한 신일 수도 있으니.'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법이라 불리는 '제니아' 즉 상호 존중과 환대의 법도를 가장 거룩하게 지켰지. 배가 난파되어 찾아온 신원 불량의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성품이나 신분을 따지기 전에 따뜻한 물잔을 내어주고 음식을 대접하던 그 영접의 법도 말일세."
‘여기’가 씁쓸한 표정으로 창밖 물가 위로 불어오는 봄바람을 바라보았다.
"요즘 세상을 보면 그 아름답던 상호 존중과 환대의 법도가 싹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네. 영화 속 대사처럼 '인간의 본성은 밑바닥에서 가장 잘 보인다'지만, 이 야박하고 조급해진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의심하고 배척하며 서로에게 상처 주기에 바쁘지 않은가. 정치나 사회나 온통 편 가르기와 이기심뿐이니 말일세. 여유가 없고 그저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
‘지금’도 깊은 한숨을 쉬며 차분하게 맞장구를 쳤다.
"누가 아니래나. 하지만 세상의 신뢰와 법도가 무너져 내린다 해서 우리까지 따라 메말라갈 수는 없지 않겠나. '사람에게서 신을 찾지 마라, 결국 실망하게 될 테니.'라는 말처럼 타인이나 세상에 헛된 기대를 품어 조바심 내기보다, '싸우지 말고, 통제하려 하지 말고 살아남아. 믿음을 갖고 자신을 던지라고.'했던 대사처럼 덤덤하게 나만의 법도를 지켜내는 것이 어른의 무게겠지. 찾아온 이웃에게 정겨운 차 한 잔을 먼저 건네고 타인의 상처를 응시해 주는 그 너그러운 품격이 이 시대 시니어들이 간직해야 할 진짜 가치 아니겠나."
‘여기’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듣고 보니 그렇구먼. 영화에서 '가장 갈망하는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이고,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미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땐 지나간 청춘의 날들이 스쳐 지나가 아련했네만, 잃어버린 옛날을 아쉬워하기보다 오늘 이렇게 자네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이미 쥐고 있는 참된 복이 아닌가 싶네."
선선한 봄바람 속을 굳건히 걸어가며
와플과 브런치 케이크, 그리고 커피 잔을 깨끗이 비운 두 사람은 테이블 위를 가지런히 정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 유리문이 열리자 와이라우 호이츠 9월의 선선한 이른 봄바람이 두 사람의 뺨을 부드럽게 스쳤다. 하지만 물가 옆 도로 위를 힘차게 달리는 차들의 엔진 소리처럼, 두 시니어의 가슴속에는 따뜻한 온기와 삶에 대한 담담한 확신이 묵직하게 맴돌고 있었다.
모진 풍랑과 20년의 방황을 뚫고 끝내 자신의 이타카로 돌아간 오디세우스처럼, 오랜 세월을 품위 있게 살아낸 시니어들의 발걸음은 세상의 평가나 세월의 바람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진정한 어른의 품격이란 지나간 화려함이나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음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오늘 내 앞에 놓인 소소한 와플 한 조각의 온기를 따뜻하게 느끼고, 오랜 친구와 마음을 트는 온화한 담소를 나누며, 나 자신이라는 영혼의 집을 소박하게 지켜내는 것일 지니.
물가로 불어오는 선선한 봄바람을 맞서며 굳건히 걷는 두 남성 시니어의 발걸음 뒤로, 9월의 햇살아래 푸른 잔디와 나무들 풍경이 한층 더 평화롭고 여유롭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