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우사인볼트와 갓난아기가 붙으면>의 줄거리:
100m 9초58 신기록의 번개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아기를 절대 이길 수 없는 경주가 있습니다. 100m를 달리는 중간에 갑자기 결승점이 본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바뀌는 경주입니다. 말도 안된다 하시겠지만 이것이 바로 천국 결승점을 향한 경주의 실상입니다.
우사인볼트와 갓난아기가 붙으면
(마19:27-30)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우사인볼트와 갓난아기가 붙으면>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100미터 9초 58 세계신기록이죠, 그리고 200미터 19초 19 이것도 세계신기록입니다.
또 400미터 계주 37초10으로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라이트닝 볼트, 번개 볼트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이 우사인볼트입니다.
이 우사인볼트와 갓난아기가 달리기 시합에서 붙었다, 이런 시합은 있을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겁니다마는 주님께서 이러한 시합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말씀을 해주고 계신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면 우사인볼트와 갓난아기가 붙었을 때, 갓난아기가 이기는 경주를 위해서 주님께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우사인볼트가 절대 갓난아기를 이길 수가 없는 경주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바람에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경주입니다, 구원을 얻는 경주라는 거예요.
믿음의 경주가 바로 절대로 갓난아기를 우사인볼트가 이길 수 없는 경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경주는 어떤 경주입니까?
한번 상상을 해보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거지만 어떡하겠습니까? 그게 바로 믿음의 경준데.
믿음의 경주는 이런 것과 같아요, 200미터 경주 출발선에서 우사인볼트가 서있고, 세계 각국의 육상선수 말고 - 그들은 다 우사인볼트에게 졌으니까 우사인볼트와 한 번도 안 해본 자들을 세웁니다.
누구냐 하면 우리나라 고등학생을 세워요, 그리고 중학생, 또 초등학생 유치원생을 세우고, 기는 아이를 세우고, 기지도 못하는 갓난아기를 출발점에 세워둡니다.
그리고 ‘땅~!’ 하고 출발신호를 알렸어요.
우사인볼트가 10초쯤 지났을 때 벌써 110미터 가량을 뛰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 가장 잘 뛰는 애가 10초 지나는 사이에 한 70미터정도 뛰어갔다고 합시다, 중학생 아이는 한 60미터, 초등생은 50미터, 유치원생은 30미터, 기는 아이는 3미터, 그리고 갓난아기는 출발점에서 꼼짝 못하고 ‘응애!’ 하고 있습니다, 출발신호에 깜짝 놀라가지고.
이때, 10초쯤 지났을 때 갑자기 주님께서 천국을 가져오시면서 ‘결승점이 바뀌었다!’고 소리를 치십니다.
그리고 천국이라는 결승점을 어디다 두시는가 하면 출발점의 자리에다가 천국을 갖다 놓으시는 겁니다.
이미 우사인볼트는 가속도 때문에 140미터 지점까지 간 상태입니다.
거기서부터 돌아옵니다, 모든 사람이 달리던 길을 돌아서서 천국이라는 결승점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는 이런 시합, 이게 바로 믿음의 시합이라는 것이에요, 이게.
주님이 천국의 경주를 가져오신 이 형태가 참 특이합니다.
그 점을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건데…
부자청년의 영생과 구원에 관한 질문을 받으시고 대화가 발전되면서, ‘부자가 천국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제자들이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 베드로가 주님께 나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모든 걸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 ‘천국에서 나와 함께 열두 보좌에 앉을 것이고, 그리고 이 땅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이야기는 어느 상황에서 벌어지는 겁니까?
이게 바로 천국경주에서 벌어지는 것이에요.
천국경주에서 벌어지는데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태신앙인 나보다 20세가 되어서 회개하고 세례 받고 믿기 시작한 사람이 더 잘 믿는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요.
‘장로님보다 집사님이 더 믿음이 좋다’ 이걸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해서 믿는 사람들끼리 농담하거나 덕담을 나눌 때 사용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지금 부자청년과의 대화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결론입니다.
부자청년과의 대화 속에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는 것은 주님이 갖고 계신 독특한 관점이 있다는 뜻이에요.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의 모습을 주님은 경주로 보고 계신다는 겁니다.
시합으로, 달리기 시합 같은 경주로 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청년 같은 경우는 거의 우사인볼트에 해당이 되는 사람입니다.
돈 벌기 경주에서 그 젊은 나이에 세계신기록을 세우듯이 앞서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젊은 나이에 유대관원이에요, 유대사회에서 엘리트로서 지위를 갖고 있고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생과 구원에 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만큼 내면적인 면과 영적인 면에 관심이 많은 전인적으로 갖추어진 사람입니다.
외모에 대해서 언급이 안 되었습니다만 외모까지 장동건 같았다면 이런 청년이 있을 수 없겠지요.
이 인생의 경주에서 이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가 영생에 관해서 천국에 관해서 물어볼 때에 예수님께서 그 대화의 결론을 어떻게 내리시느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천국이라는 결승지점을 갖고 오셔서 그 결승지점으로 오라고 얘기하실 때에, 그 천국이라는 결승지점을 향해 가게 되는 이 시합, 레이스는 인생의 경주 위에다가 덮어씌웠다는 얘기예요.
덮어씌우시되 결승점을 완전히 인생의 경주가 출발되는 출발점에다 가져다 놓아버렸다는 얘깁니다.
덮어씌웠다는 얘기는 어떤 거냐?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돈 많이 벌기 위해, 오래 살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기 위해서 경주를 합니다.
혼자서 돈 많이 벌어서는 재미가 없어요, 돈 못 버는 사람이 있어야 돈 버는 사람이 위대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 개의 기업이 돈 버는 경쟁을 하고 있으니까 돈 많이 버는 기업이 훌륭하고, 그 기업의 회장이 탁월하게 보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닙니까?
다 경주예요,
그런데 돈 많이 벌고, 오래 살고, 높아지고, 학식이 많고, 이러한 결승점을 향해 가고 있는데, 같은 방향에다가 천국을 놓아두었더라면, 천국을 얻는 것과 사업에 성공하는 것과 학, 박사 되는 것과 이런 모든 것이 같이 물려갈 텐데, 주님께서 천국이라는 결승점을 출발점에다가 놓아버렸기 때문에 인생의 경주를 뛰던 모든 사람들이 되돌아갈 수밖에 없게 돼버렸다는 겁니다.
되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인생의 경주에서 먼저 된 자가 천국을 가지려면 돌아가야 될 거리가 많아요.
그러니까 나중 될 수밖에 없게 돼버렸다는 얘기예요.
부자청년을 보면서 의식하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자청년이 우사인볼트라고 한다면 제자들은 고등학생 정도의 달리기 실력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죠.
그러면 그들보다도 더 못한 자, 세리와 창기들은 중학교 수준, 초등학생 수준이지요.
고아와 과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유치원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라는 얘기는 그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땅!’ 하고 달리는 경주에서 가장 뒤처진 자가 어린아이 아닙니까?
아직까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 인생의 경주에서 획득한 부분이 없는 겁니다.
획득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 도달하기가 쉬워져 버린 겁니다.
그래서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라는 얘깁니다.
어린아이는 인생의 경주에서 자기 스스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갓난아기? 우사인볼트가 이길 수가 없어요.
출발점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인데, 천국이 왔을 때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그 상태의 사람이 가장 천국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다’는 말이 나옵니다.
왜 버린다는 얘기가 나옵니까?
이미 인생의 경주에서 많이 진척이 되었기 때문에 되돌아가야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천국이 거기 있으니까 되돌아가야 된다.
천국이 이미 달리고 있는 이 시합의 앞부분에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돈 많이 번 사람이 천국에 가깝고 인생의 경주에서 앞서 가고 있는 사람이 천국에 가까우니까 좋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실제로 유대사회에서 바리새인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제자들도 그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쫓아다녔던 거죠.
예수님 쫓아가면 돈 많이 버는 지점에 도달하고, 건강한 지점에 도달하고, 높아지는 지점에 도달한다고 믿었던 겁니다.
그런 시합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리고 또 정 그게 아니라면, 또 착각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갖고 오신 천국경주가 세상의 경주와 전혀 별개의 레이스, 예를 들어 우사인볼트가 100미터 뛰고, 200미터 뛰고, 400미터 계주를 뛰는 것처럼 전혀 다른 경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또 오해예요.
예를 들어, 장로님도 선거로 뽑지요, 목사님들은 누가 동기 목사님들 중에서 더 큰 목회를 하느냐, 더 많은 숫자, 더 비싼 예배당을 짓고 목회를 하느냐? 이런 경주로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기독교사회 안에서의 경주를 뜁니다, 이게 천국경주인줄 알아요.
충성하라, 봉사하라, 누가 새벽기도 빠지지 않느냐, 누가 금식기도를 많이 하느냐, 기도 많이 하는 권사님, 이러면서 경주합니다.
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천국경주에는 이런 경주는 없습니다.
천국경주는 이 인생의 경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경주 위에 갖다 붙여놓으신 것이고 결승점을 거꾸로 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돈 벌며 살고 있고, 높아지고 살고 있고, 공부하며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과 무관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을 가지려면 반드시 돌아가야 됩니다.
왜 돌아가야 됩니까?
어제 말씀드린 대로 세상 물먹은 소가 되지 않으려고, 내 자아가 팽창되지 않으려고…
세상 물먹고 자아가 팽창된 상태에서는 절대로 하나님 못 만나니까, 천국 못 가지니까…
그렇게 내 자아가 채워져 있는 한 천국으로 채워질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인 한, 자식에게 물먹어서 아버지이고 어머니인 한 천국은 안 채워집니다.
그래서 오늘 자식을 버리라는 거예요.
내가 누구의 자식인 한,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물먹고 누구의 아들, 딸이라는 의식으로 채워져 있는 한, 절대 천국은 못 갖습니다.
내가 돈이 많아서, 돈으로 물먹어서 내 자아의식 속에 부자라는 의식이 있는 한, 천국은 못 갖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있고 자식이 있고, 집이 있고, 전토가 있고, 이 모든 것이 있어서 인생의 경주에 나름대로 달리고 있을 경우에, 많이 달리고, 깊이 달리고, 멀리 달릴수록 천국은 되돌아와야 되고, 버려야 할 것이 많은 거라는 얘기예요.
싹 다 버리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얻은 것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내 자아의식을 채워주고 있는 것들, ‘나는 누구다, 아버지다, 엄마다, 형이다, 동생이다, 누나다’ 이런 모든 자아의식이 완전히 다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천국이 내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우사인볼트처럼, 본문에 나오는 부자청년처럼 인생의 경주에서 많이 나가고 많이 이뤘을수록 되돌아가야 될 길이 멀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갓난아기 같은 경우는 ‘응애 응애…’ 하면서 뛰지도 못하고 출발점에서 한 발도 못 떼었기 때문에 얘가 1등 되는 거예요, 천국경주에서는.
십자가의 의미가 뭡니까? 토해내는 것이고 뱉어내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은 내 자아의식의 뱃속에 집어넣었던 모든 것을 다 토해내는 겁니다.
내가 아버지다, 부자다, 가난뱅이다, 이 모든 걸 다 토해내야 됩니다.
그래야 도달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이걸 다 버리면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몇 배를 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 이름 때문에 마음에서 집을 버렸더니 집이 다섯 채 생긴다는 얘기일까요?
예수님 이름으로 엄마를 버렸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다섯 명 생깁니까?
영생을 얻고 엄마 다섯에 아빠 다섯, 형제도 하나 버렸더니 셋이 생겼습니까?
이런 뜻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무슨 뜻일까요?
이 세상 것을 다 뱉어냅니다, 앞서 간 만큼 다 뱉어내야 돼요.
십자가를 붙잡는다는 건 날마다 뱉어내기예요, 되돌아가기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로 되돌아가는 거고 어린아이로 돌이키라는 말씀도 그 뜻이에요.
이렇게 되돌아가면 천국이 주어지면서 이 세상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도대체 세상에서는 이유가 없는 기쁨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홀로 있으면서 기쁜 거예요, 홀로 있으면서 기뻐요.
돈 때문에 기쁜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건강 때문에 기쁜 것도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 때문에 기쁜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기쁜 것도 아닌, 이 세상과는 관계가 없이 그냥 홀로 천국 때문에 기뻐져 버린 겁니다.
다 버려야 천국을 갖게 되니까…
그래서 다 버리고 천국 갖는 과정 중에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해야 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다 버리는 과정이 십자가의 과정이지요.
이렇게 나 홀로 혼자 기쁠 때, 천국 때문에 기쁜 상태에서 나 홀로 기쁜 자가 되어서 엄마를 만나고 아빠를 만나세요.
엄마 아빠를 의지해서 엄마 아빠로 기쁘기를 바랐던 상태와 비교해볼 때 그 관계에서 나오는 기쁨과 행복과 감사가 비교 안 된다는 거예요.
형제, 자매, 애인, 그 누구를 만나기 전에 홀로 이미 기쁘게 되고 난 뒤에 그들을 만날 때, 형제와의 관계가 형제로 인해서 기쁘기를 바라던 관계 때와 비교해보면 다섯 배, 여섯 배, 기쁨과 감사와 보람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혼자 충분히 기쁜 사람에게 돈이 주어졌을 때 그 사람은 부자가 안 될 수 있어요.
나 혼자 충분히 기쁜 사람에게 돈이 없을 때, 그는 가난하지만 가난뱅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나 혼자 충분히 기쁠 때 돈이 있어서 기쁠 수밖에 없을 때와 비교하면 그 돈은 황금 같은 돈이 되는 거예요, 다이아몬드 같은 돈이 되는 겁니다.
쓰는 곳마다 빛이 나는 거예요, 천국의 빛이 나는 거예요.
여러분, 돈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돈 없다고 걱정하는 건 인생의 경주에서 뒤쳐졌다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돈 없습니까? 잘 됐네요.
버릴 게 없잖아요? 버려야 될 수고가 없지 않습니까?
우선 천국을 갖는 겁니다.
자식이 말썽입니까? 잘 됐네요.
내 마음에 자긍심으로 둘 필요도 없네요, 버리세요, 다 버리세요.
세상 일이 안 됩니까? 잘 됐어요, 천국에 가까운 거예요.
그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실패자예요? 잘 된 거예요.
사람들에게 욕먹습니까? 잘 됐어요.
명예 없어요, 명예의 경주에서 뒤쳐져 있습니까?
천국을 갖기에 편한 자리에 있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요?
천국 갖기가 어렵습니다.
천국만으로 기쁜 자리, 그 자리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 섰을지라도, 우사인볼트처럼 앞서 갈지라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되돌아와야 돼요.
먼 거리라도 되돌아와야 됩니다.
그러므로 많이 이룬 자들이 힘들 수밖에 없고,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거지요.
천국은 뒤에 있으니까, 출발점에 있으니까, 멀리 떨어져 왔을수록 돌아갈 길이 머니까…
가십시다, 가요!
십자가 붙잡고 다 버리고 우선 나 홀로 기쁜 자가 되십시다.
천국 때문에 기쁜 자, 주님 때문에 기쁜 자, 하나님 때문에 기쁜 자, 이 세상에서 이유가 발견되지 않는 나 홀로의 기쁨 - 세상에서 볼 때 나 홀로인 거예요, 기쁨의 이유가 하나님이고 천국이고 예수님이죠, - 그 나 홀로의 기쁨을 가진 상태에서 이제 인생을 바라볼 때 완전히 다른 인생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사인볼트가 되기를 원하지 마세요!
갓난아기처럼 되십시다, 가졌던 세상 것도 놓아야 될 판인데 세상 것을 자꾸 갖겠다고 그러지 마십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사인볼트가 인생의 이상이었던 우리의 마음이 이제 갓난아기를 모델로 삼게 해주시고, 그러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빨리 인생의 출발점, 아무것도 없던 제로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여 주셔서 홀로 기쁜 자가 되게 해주시고, 홀로 기쁜 자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