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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감각이 없는 사람들(눅7:31-35) - YouTube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주님 앞에 이르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감동하심이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더 정확한 제목은 영적 감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지지난번 예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백부장과 관련된 말씀을 드리면서 반응하는 믿음을 가지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기쁨은 말씀을 전하고 난 다음 성도들이 그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제가 봉사하는 기간이 앞으로 3개월이 될지 5개월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동안에 우리 성도님들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을 소원합니다.
아무리 외쳐도 무 반응인 모습은 말씀을 전하는 자의 힘을 소진 시키는 일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섬기는 동안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도 다른 분이 와서 말씀을 전할 때 즉각적인 반응은 그의 섬김의 봉사에 활력을 주는 일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런 말씀이죠?
눅 7:31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저는 이 말씀을 이 세대를 죄송 스런 마음이 있지만 우리 교회로 넣어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눅 7:31 “또 이르시되 장유 교회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다음 말씀입니다.
눅 7: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피리를 불어도 춤 주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울지 아니하였다.
우리 나라 정서에는 피리 분다고 춤 출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 정서에 어깨를 들먹이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농악이 그러합니까?
아 꽹과리 소리가 어떨 때는 시끄럽게 들리다가도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습디까?
여자분들에게도 같은 감동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저는 꽹과리 소리만 나면 가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요 괜히 어깨가 들썩이려고 하는 충동을 느낍니다.
우리 정서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유명 가수들 무대가 열리면 사람들이 많이 몰립니까?
오래전에 이곳 장유에 태진아가 왔습니다.
그당시 교회에서 영어교실 한문교실을 했었습니다.
대부분이 할머니분들인데 몇분이 저희들을 보고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지금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곳에 무대를 설치를 했었는데 주차장에는 아예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모였습니다.
장유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다 모였나 할 정도로 사람들이 그렇게 모였습니다.
태진아가 힘이 날까요? 아! 힘이 나죠, 그래서 더 힘차게 노래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한 열 명 정도 무대 앞에 사람이 앉아 있다면 힘이 나겠습니까?
저는 사람이 적은 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이 몸에 베여서 사람 적은 것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좀 더 앉아 계신다면 저도 힘이 나겠습니까?
힘이 나는지 나지 않는지는 몰라도 제가 드린 말씀을 제가 들어보면 어떨 때는 톤이 좀 높아졌고요. 어떨 때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씀을 전하는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자급 사역을 하는 한 형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교회에는 교회 일은 열심히 하면서 예배 시간에는 참여를 잘 하지 않는 성도분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던 중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금요일 오후 예배 시간이 거의 되어서 교회로 가서 기도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여성 한분이 교회를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동안 성도분이 교회 오셨다가 볼일이 있어 잠간 나가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들어오지 않아서 마침 얼마 전에 침례를 받으신 분이 그분을 보았다고 하길래 누구냐고 물으니 어떤 분이라고 대답을 하드랍니다.
예배시간 거의 되어서 교회에 와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기 위하여 교회로 왔다가 그냥 간다, 그것도 초신자가 보는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형제가 정말 죽고 싶도록 절망적인 교회의 모습의 한 면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들은 교회를 섬기는 사람에게 그런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보다는 저 자신에게 실망을 하고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저 자신에게 많은 절망을 느낍니다.
섬김의 기도를 드리면서 그러한 말씀을 전하면서 제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회개하면서 제가 있는 것이 교회에 유익이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사를 하였고요.
교회를 섬길 신실한 종이 오시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만을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죄악 적인 모습을 깊이 회개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형제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만 우리 장유교회에 대한 소문이 이제 곧 문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오기가 났습니다.
그래다시 생각하여서 교회를 위하여 더 충성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시는지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기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장구를 쳐도 북을 쳐도 징을 쳐도 음직이지 않는 우리 모두의 신앙적인 모습을 깊이 회개하는 은혜가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서 일어나게 되길 소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럼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피리를 불어도 노래를 불러도 꽹과리를 쳐도 반응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면서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의 성령의 호홉이 임하여서 성령의 사람들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바른 나팔이 울리지 않아서
저는 그 첫 번째의 이유를 재림 교회 강단에서 바른 나팔 소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증언의 말씀 중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적 361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의 영적 감각이 위험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마비되어 경고하는데 실패함으로 백성들이 멸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의 피를 그들의 손에서 요구하실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바른 나팔소리를 내어야 할 파수꾼들의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바른 기별을 전하여야 하는 강단을 지키는 자들의 영적으로 마비되어 있다면 어떻게 바른 기별이 이 강단에서 나올 수가 있을까 하는 말씀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잃어버린바 된다면 그들의 피 값을 강단을 지키는 자들에게서 찾으실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강단을 지키는 자들의 책임이 큽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내 마음과 맞지 않는다고 미워 하지들 마시고
강단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살아야 누구도 살 수가 있습니까?
다 그렇다고는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엘리와 같은 사람과 함께 사무엘과 같은 사람도 있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특별한 경우이고요.
대부분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영성에 따라서 그 교회의 성도들의 영성이 좌우된다고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회의 성도들의 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저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깨어 있지 못하고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으면서 어떻게 바른 기별이 저의 입을 통해 나올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를 깨워 주시고 영적 지각을 예민하게 하시어서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바른 기별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드리고 있습니다만 저의 기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허물 투성이 뿐인 이 죄인을 위하여 기도 많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4T 403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은 시온의 성벽에 파수꾼처럼 서야 하며, 전쟁이 오는 것을 보면 그들은 경고의 말을 발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졸고 있는 파수꾼이 되어, 그들의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서 보고도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패망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를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다”
같은 말씀이 에스겔을 통하여 주셨습니다.
겔 33:6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말씀을 전하는 자가 바른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멸망하면 그들은 그 죄악중에 멸망할 것이지만 그 죄의 값을 누구 손에서 찾을 것이라 합니까?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파수꾼이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고 또한 졸고 있다면 적군이 쳐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못한 백성들은 망할 것이지만 그 피 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일차적인 파수꾼은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저는요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한 죄책감을 많이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저를 지금까지 인도하셨던 하나님께 허물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도 용서를 구합니다.
바른 말씀 바르게 다 전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후임 사역자가 오셨을 때 그가 바른 기별을 전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힘을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같으면 누가 와도 바른 기별을 다 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열심을 보이면 파수꾼의 나팔 수리는 더 크게 울리게 될 것이고요.
지금처럼 무감각 상태에 있다면 누구도 그 무감각을 깨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재림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 성경이 없던 시대에서는 설교하는 자들과 성도들은 판이 하게 달랐습니다.
말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성경이 얼마나 많이 보급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더 나은 성경 이해를 원하신다면 더 많은 번역 본들을 참고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 우리 젊은 집사님들이 성경을 함께 나누다가 조금 어려운 내용이 있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도 이해하기 힘이 들어서 함께 다른 번역본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파수꾼의 소리 없이도 원하기만 하면 준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 시킬 수가 없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함께 준비되어서 교회가 살고 나도 살고 이웃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손길들로 바른 복음을 함께 전할 수 있는 신실한 파수꾼들로 살아가길 되길 축복합니다.
2. 말씀을 무시할 때
이제 두 번째 이유를 진단해 볼 때 말씀을 무시할 때 무기력이 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 저만 병든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병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병이 어떻게 온다는 것입니까?
증언의 말씀 보겠습니다.
시소 322 “빛은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종을 통하여 혹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통하여 사람에게 임한다. 그러나 한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에 영적 감각력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서 두번째에 나타나는 빛은 그만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암흑은 증가되고 마침내 영혼이 밤과 같이 어두워진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어떨 때 영적 감각력이 마비된다고 합니까?
“한 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
우리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들의 영적인 모습은 밤을 지나는 것 같습니까?
밝은 대 낮을 지나는 것 같습니까?
제가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볼 때 여러분들의 모습은 물론 저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요. 여러분들의 모습은 밤에 깊은 잠에 취해서 일어나라고 외쳐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제가 과장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너의 모습이나 잘 보고 바르게 하여라 하실 것입니까?
제가 한번씩 말씀드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죽어도요, 성경이 말하는 바른 기별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래서 제가 멸망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바른 기별을 전하여서 그 기별로 인하여 우리 성도님들이 깨어난다면 저는 감사하면서 멸망을 당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지만 요한 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은 무엇이라 합디까?
계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무엇을 아신다고 합니까? 너희들의 행위를 안다. 어떠하다고 합니까?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이곳에 미지근하다는 표현은 물을 불에 올려 놓고 뜨거워지기 전의 미지근이 아니고요 점차로 식어지는 미지근입니다.
뜨거움은 신앙의 뜨거움을 말하고요 찬 상태는 불신앙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이 어떠하다는 것입니까? 가능성이 없다.
올려진 사진은 참된 증인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토하여 내침을 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참된 증인은 그 다음 말씀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상태를 알려 줍니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어떤 상태라고 합니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 벗은 몸이다.
그러면서 무엇이라 한다고요? 나는 괜찮다라고 한다.
이게 누구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까?
다른 교회 집사님 이야기가 아니고요.
누구의 이야기라고요? 나의 이야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증언의 말씀에서 이미 그 답을 드렸습니다.
“한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에” 한 줄기 빛이라도 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중 하나라도 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 말씀을 어떻게 할 때에요?
무시할 때에... 우리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말씀을 무시한 죄악을 회개하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의 성령께서는 이 부족한 종의 입술을 통하여서 여러분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네가 회개하라고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묵살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시는 참된 증인의 음성을 묵살하지 마시고 정말 회개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회개가 우리에게 있을 수가 있을까요?
길을 지나다가 어떤 교회 입구에 보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예수가 답이다” 무엇이 답이라고요? 예수가 답이다.
진정한 회개에도 무엇이 답이라는 말씀입니까? 예수가 답이다.
그 답인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어떤 자가 새힘을 얻으리니 합니까? 여호와를 앙망하는자.
앙망이 무슨 말입니까?
앙망을 현대인의 성경은 바라보고 의지 하는 자는 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바라보고 의지 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씀일까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 38: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앙망하기를 어떻게 될 때까지 한다고 합니까?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한다.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눈이 멀었다? 이해가 됩니까? 그렇게 바라보자.
그런 사람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이 쇠하도록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마음이 괴로워서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 일이 걱정이 되십니까? 도와 주리라는 말씀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도 염려가 되시나요?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을 믿고 온전한 순종을 할 때 하나님께서 어떤 기적으로 이끌어 가시는지를 우리 함께 경험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지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입니다,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잡지에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엔진 폭발 여객기 비상착륙시켜 구출
여성 조종사 태미 조 슐츠
댈러스로 향하던 사우스웨스트 보잉 737
펑 소리와 함께 추락하기 시작
생사 오가는 위기와 판단의 순간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부기장·승무원·승객 모두 침착하게 대응
20분간의 사투 끝에 필라델피아 착륙
무슨 큰 사고가 있었는 것 같죠?
흔하지 않은 여성 조종사인 테미죠 술츠가 조종간을 맡고 있는 사우스 웨스트 보잉 737기는 148명을 태우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여 댈러스로 날아 가고 있었습니다.
필라델비아 하늘을 날고 있을 때 갑자기 귀청이 터질 듯한 굉음이 일어나면서 비행기는 미끄러지는 듯이 하강하고 있었습니다.
엔진이 폭팔한 것입니다.
갑자기 눈앞에 지상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떠 올랐습니다.
과연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교통하던 하나님께 그의 마음이 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승객 144명과 승무원 5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내 힘이 닿는데 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지금까지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구합니다.
어디든 착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비행기는 죄축과 우측에 두 개의 엔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 좌측 엔진이 폭팔한 것입니다.
가까운 항공 교통 관제소에 우리 비행기가 엔진 폭팔로 하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어디에 착륙하려 합니까?
그때 옆에서 도와 주던 부기장이 지도에 나타난 필라델피아를 가리켰습니다.
필라델피아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제 객실이 염려가 된 기장은 지금 비행기의 상태를 알리고 안전을 위해 조심할 사항을 알립니다.
그때 승무원이 끔찍한 소식을 하나 전해 줍니다.
창문이 하나 깨졌습니다. 그리고 승객 한분이 밖으로 빨려 나갔습니다.
다른 승객들이 그 여성의 몸을 잡고 안으로 끌어 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기장은 비행기의 속도를 최대한 낮추었고 결국 그 여성의 몸을 안으로 끌어당길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조종간을 손에 잡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라면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149명의 생명을 지켜 주소서.
마침내 필라델비아 활주로에 착륙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활주로를 굴러가면서 감사합니다 주님이라는 기도를 연거푸하였다고 합니다.
엔진이 폭발하고 20분만에 비상착륙한 것입니다.
그 사고로 두 아이의 엄마인 제니퍼 이로르단이라는 여인 한명이 심한 부상을 당하여 결국은 살아 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테미죠 술츠는 말합니다. 재난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재난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고요.
그 하나님께서 우리 장유교회를 인도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비록 한쪽 엔진이 폭발하여 추락할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게 되길 호소 합니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 칭찬듣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눅 7:31-35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침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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