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책읽기53_반반 무 많이/김소연/서해문집/2021
“진우가 집에서 기다릴 테니 저녁에 일찍 들어가세요!”
순간 진우 아빠의 등이 움찔했다. 그 찰나는 현식만이 알아보는 모습이었다. 현식은 재작년 어느 날 등산을 간다고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등에다 대고 똑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 나 집에서 기다리니까 저녁에 빨리 들어와요!”
움찔하던 아버지의 등이 하루종일 불안했던 현식은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방안을 서성이다 앉은 채로 까무룩 잠이 들었더랬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 아들을 이부자리에 눕히고 그 곁에서 숨죽여 울던 아버지를 현식은 잊지 못했다.(240)
『반반 무 많이』는 『꽃신』, 『명혜』등을 쓴 김소연 작가의 작품이다. 김소연 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전통문화에 대한 작품을 많이 썼다. 이 작품은 <고구마 보퉁이>, <준코 고모와 유엔탕>, <떡라면>, <민주네 떡볶이>, <반반 무 많이!> 다섯 작품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현대사와 우리의 소울푸드라 할 만한 음식을 작품으로 엮었다.
<고구마 보퉁이>는 한국전쟁때 피난길을 작품에 담았다. 피난길에 우연히 얻게 된 고구마는 금시계와 바꿀만한 생명줄이었다. 이를 공짜로 얻었다고 쾡한 눈의 할머니와 그 빈 젖을 빠는 어린 아이에게 내주는 마음이 가상하다. 전쟁의 상흔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단편이다.
<준코 고모와 유엔탕>는 손자(?)에게 50여년 전, 한국전쟁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다. 화자는 서남희로 전쟁 이후 순자고모와 함께 의정부에 정착한 이야기, 유엔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땐 그랬지의 회고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의 애환이 담겨있다. 유엔탕은 지금의 부대찌개의 원조다.
<떡라면>은 1950년 말에서 60년대, 70년대의 풍경이 스케치처럼 담겼다. 청계천 판자집들이 뜯기고 성남으로 강제이주시키고 귀경포기각서 쓰게 하고 폭도로 몰아붙이는 국가권력의 횡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빨리 먹고 빨리 일할 수 있는 음식으로 라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음식이었지만 사실 그것도 귀한 시절이었다. 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는 작품이다. 전태일로 상징되는 청계천 노동자의 외침이 들려온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민주네 떡볶이>는 80년대의 상황을 그대로 옮긴 현대사와 국민 대표 간식인 떡볶이와의 절묘한 조합이 추억을 더듬게 한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포장마차 단속, 무허가 건물 철거가 눈에 아직도 아른거린다. 망연자실한 사람들, 노점상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던 모습이 이 소설 안에도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것인데 결국 싸우는 사람은 힘없는 노점상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었고 그들은 불량음식을 유통한 죄로 유치장에 갇히는 것이다.
<반반 무 많이!>는 IMF시절 수많은 실직자를 떠올리게 한다. 치킨 가게가 무수히 생기고 망하고 가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책을 덮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진다. 우리의 소울 푸드에 담긴 현대사의 한 대목들이 가슴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