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편 박성숙
<짝사랑>
아주 오래전 그대 내게 스며들어 온통 나를
설레게 했던 적이 있었지요
명랑한 옷을 입고 파란 웃음을 피워대던 어린 날
무얼 잘못 했나요 내가 날 찾지 않네요 그대
내게 오지 않더라도 날 잊지는 말아 주세요
그대가 있는 곳 어디든 거긴 내 고향입니다
무얼 잘못 했나요 내가 나를 잊지 말아요 제발
<불면을 위하여 2>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푸푸
술 냄새를 쏟아 내는 남편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고단함도
인중을 타고 느릿느릿 기어 나온다
오래전 죽여 버린 벽시계에서도
똑딱똑딱 소리가 나는 것 같애
늦은 밤이 되어도 세상은 온통
하양 투성이야
빛 하나 없는 적막이 흐른대도
난 거기서 또 귀 기울여
누군가의 무언가의 기척을
온 밤 찾아 헤매겠지 내 머릿속엔 잠을
먹어 치우는 생명체가 있는 모양이야
오래전 어머니에게 얻은 수면제 한 알
고 작은 토막 어디에 내 잠이 들어 있기는 한 걸까
오늘도 잠들기엔 턱없이 짧은 밤이다
<오늘 하루는>
땅만 보고 걷는 습관은 참 안 고쳐지더라
작정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아주 오래
자주 보면서 하루를 보냈어
젊은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고
늙은 사람은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한다고?
그럼 나는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면서
계속 살거나 아니면 그렇지 않기 위해
하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일단
곰곰이 생각을 좀 해보기로 했어
<일요일>
가고 싶은 곳도 없어요
보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먹고 싶은 음식도 없어요
에이, 그럼 왜 살아요
그러게요 왜 사는 걸까요
바보로군요
내게 오고 싶은 거잖아요
날 보고 싶은 거잖아요
나와 함께 보리밥을 비벼 먹고
싶은 거 아니었나요
에이, 이리로 와요 내게로
난 언제나 여기에 그대로 있어요
아직도 바보로군요
수필 박성숙
<그냥 옛날이야기 1 >
얼른 나갔어야 했을까?
이른 겨울 아침 집 앞에 시동 걸어 놓은 차가 없어졌다. 큰 언니네가 타던 차를 받아 와 첫 차로 갖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첫아이가 돌도 안되었던 27년 전 지금의 설봉공원이 설봉 저수지라고 불릴 때의 일이다.
충청남도 당진 시어머니께 가기 위해 난, 어린 딸아이를 꽁꽁 싸 놓고 기저귀와 분유 등이 담긴 가방을 챙겼다. 남편은 차 안을 덥혀 놓기 위해 시동을 켜 놓고 들어와 짐가방을 들고 나갔다가 놀라 뛰어 들어왔다. 그 시절 자동차 키가 당연히 꽂혀 있었으니, 누군가 냉큼 끌고 간 모양이었다. 집 주변을 뛰어다니며 둘러보던 남편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우린 당진에 가기를 포기하고 막막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왜 이때까지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못 했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근처에 있는 친정집에서 남동생을 불러 그의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설봉 저수지에 가보자는 생각이 났다. 그때만 해도 설봉 저수지는 주변이 가꾸어지지 않은 채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졌고 가로등도 그리 많지 않아 밤에는 특히 우범 지역이었던 것 같다.
설봉 저수지를 두어 바퀴쯤 돌고 내려가려다, 지금으로 말하면 경기 도자 미술관쯤에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였을까 그 사이로 흰색의 뭔가가 보이는 것이었다. 혹시 하고 가보니, 세상에나 우리 차였다. 밤이 되면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 했던 걸까. 우리는 풀숲에 숨겨 놓은 차를 찾아 보조키로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어쨌든 차를 찾았으니, 늦은 밤 시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당진으로 갔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시어머니와 딸아이의 재롱 그리고 풍성한 해산물과 함께하는 이박 삼일은 우리를 즐거운 여행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이후에 일어날 더 끔찍한 일에 대해 아무 예상도 못하도록.
고구마와 들기름 바지락 등 시어머니가 챙겨주신 먹거리를 트렁크에 싣고 늦은 밤
이천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차를 집 앞에 주차하려다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친정 근처 골목에 주차를 해 두고 와 잠이 들었다.
고단했던 탓에 늦잠을 자고 늦은 아침을 먹고, 그제서야 트렁크에 있던 먹거리가 생각이 났다. 얼마 후 차를 가지러 나갔던 남편은 황당하고 놀란 얼굴로 집으로 들어왔다. 차가 없더란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우리 집 주변 골목골목을 샅샅이 뒤지고 더 멀리까지 뒤져 결국 먼지 뒤집어 쓴 차를 찾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끌고 갔을 생각을 하니, 이때의 끔찍함과 소름끼침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다시 남동생을 불러 설봉 저수지도 가보고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우리 차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진짜 우린 차를 잃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덜컥 겁이 더 났던 것은 처음 차를 잃어 버린 날 우린 차를 집 앞에 주차했었고, 자동차 키에는 집 키까지 매달려 있던 것이었다. 차를 훔쳐 간 도둑이 우리 집을 알 수도 있고 열쇠가 있으니 집 안으로 들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정말 무서운 생각만 들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우린 그제서야 경찰에 차량 도난 신고를 하고 현관 열쇠와 자물쇠를 바꾸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무서워서 친정집에 가서 잠을 잤다.
CCTV가 도처에 깔려 있는 지금 같으면 금방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때는 경찰이 그랬다 아마 못 찾을 가능성이 많다고.
며칠이 지나서 경찰서에 전화를 해보니,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우리 차를 찾고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 보름도 더 지났던 것 같다.
여주 금사 파출소라고 전화가 왔다. 남한강에 차가 한 대 빠져 있는데 우리 차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우린 다시 남동생을 호출해서 남한강으로 갔다. 멀리 흰색의 차가 강물에 둥둥 떠서 출렁이는 게 보였다. 우리 차였다.
파출소에 전화해 보니, 우리가 알아서 끌고 가야 한다고 했다. 11월 말쯤 제법 추운 날 누군가는 물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다. 견인차들은 돈을 더 줘도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지인 아저씨가 트럭을 끌고 가 주었고, 늦은 오후가 다 되어서야 겨우 남편이 강물에 들어가서 고리를 걸고 끌어낼 수가 있었다. 어디에서 사고라도 낸 모양으로 잔뜩 찌그러진 채 되찾은 우리 차는 그렇게 우리와 인연을 다하고 폐차되고 말았다.
그날은 첫눈이 내렸고 차가운 강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남편은 된통 걸린 감기로 며칠을 고생했었다. 트렁크를 열어 보기라도 할 걸 그때는 그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요즘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나의 첫 차에 대한 기억은 추억이라고 할 수도 없는 특별한 기억 속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2024년 설봉공원은 다시 새 단장을 하고 밤이고 낮이고 오는 이들을 환하게 반기며 이천의 보물로 자리했지만, 나는 요즘에도 설봉공원에 가게 되면 종종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첫댓글 사람이 다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간 큰 도둑 지금은 콩밥 먹고 있으려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