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여행작가 : 전윤선
놀멍, 쉬멍, 걸멍, 제주 올레 길의 슬로건이다 지난봄 k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올레 길을 소개하면서부터 제주 올레길 걷기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표적 휴양지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인 화산섬 제주에 만들어지고 있는 제주 올레길은 바다와 오름(작은 산이나 언덕처럼 보이는 휴화산의 일종), 검은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 사시사철 푸르른 들, 길가에 만발한 들꽃, 주황색 과실이 주렁주렁 달린 귤나무 밭 등 제주도는 빼어난 풍광 속으로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자연을 해지치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사람들을 걷게 하면서 생긴 길이다 올렛길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은 것 같지만 제주엔 아주 오래전부터 올레라는 집으로 들어가는 길 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이며 골목⦁골목길의 제주도의 사투리,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하여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돌(현무암)로 쌓은 골목을 말한다.
제주올레코스는 현재 총 23개 코스 376km에 올렛길을 조성중이며, 올렛길을 여행하는 모든 이에게 평화와 행복, 마음의 치유를 안겨준다. 제주올레는 해안을 따라 제주도 전역을 여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계속 찾아나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흐르는 물과 같은 ‘선(善)한 여행’으로 비유되는 ‘걷기’가 뜻밖에 어떤 이들에게는 ‘소외’를 의미하기도 한다. 제주 올레길 에서 시작한 걷는 길의 열풍이 전국을 휩쓸면서 자고 나면 걷는 길이 새로 생겨나고 있지만, 두 발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에게 열린 길은 한 곳도 없었다. 지난 봄. 제주 올레길 장애인도 함께 걸어요. 라는 행사를 가졌다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 올렛길에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열린 길이라면 제주가 세계 7대 자연경관 도전에 큰 흠이 될 것이다 올레길 코스는 길게는 20키로가 넘는 구간도 많이 있다 물런 이 길을 휠체어를 이용해서 모두 걷기란 불가능하다 올레길 답게 산도 있고 비탈도 있고 흙길도 있고 계단도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이용해서 올렛길을 걸으려면 계단이나 산길 등은 둘러가야 한다. 둘러가다보면 올레길 코스가 더 길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둘러가는 코스 또한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동안 올렛길은 장애인이 걷기 불편한길로 알려져 왔지만 이젠 장애인도 올레길 걷기 여행이 가능해졌다 물런 올렛길 전체를 걸을 순 없지만 구간구간 휠체어로도 걸을 수 있는 길을 정비해 올레사무국에서 공개했다 이번 여행은 올레길 10코스이다 송악산을 낀 올레 10코스는 제주의 올렛길에 새로 난 ‘휠체어 구간’이다. 올레길 휠체어 구간은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23개 코스 중에서 10개 코스의 일부에 조성한 것. 장애인을 위한 ‘걷기 코스’는 아마도 이것이 최초일 것이다. 제주 올레의 휠체어코스 중에서 짧은 것은 1㎞ 남짓이고, 긴 코스는 5.5㎞에 이른다. 그중 가장 긴 코스인 사계포구부터 송악산에 이르는 10코스 중 휠체어구간 5.5㎞ 걸었다.
사계포구 해안도로를 지나서 송악산으로 오르는 구간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절벽 아래 바다는 옥색으로 빛났고, 해안가에는 은갈치처럼 빛나는 은빛 가을 억새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바람에 흔들고 있다. 바다 위에는 고기잡이배와 가파도를 오가는 유람선이 분주히 움직이고 잠수함을 띄울 수 있는 잠수정이 떠 있었다. 그 너머로 형제바위가 보이고 가파도와 마라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보인다. 전동휠체어의 최고 속도는 시속 12㎞ 정도. 한번 충전하면 길게는 30㎞를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옥색 바다의 풍광을 그냥 빠르게 지나칠 수 없는 탓에 휠체어의 속도는 한껏 늦춰졌다. 느리게 이동하는 휠체어 속도에 제주의 들꽃과 제주 말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얼굴에 부딪치는 가을바람은 선선했고, 절벽을 끼고 펼쳐진 제주바다 풍경은 서정이 넘쳤다.
송악산 윗자락 올렛길을 따라 걷다보니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이 손짓을 한다. “어이 젊은이들, 어여와서 말 한번만 타봐, 아주 재미나, 오매 저 휠체어는 자동으로 가는가보네, 참말로 세상 좋아졌구먼. 장애자들이 자동으로 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 말여, 오늘은 손님이 어째 그려 없는 겨, 어여와바 싸게 해줄텐게 말한번타봐, 여그는 장애자들도 많이 와서 말 타고 한 바퀴 돌구 하는구먼, 그라구 이 말은 제주에서 가장 좋은 말이여 바바 얼매나 잘생겼는감. 생긴 것만 잘생긴 게 아녀 말도 아주 잘 듣고 관광객도 잘 실어날러, 사람들이 나보고 이 말을 팔라고 했는데 나랑 이십년 넘게 살아서 몬 팔어.” 노인은 쌀쌀한 가을 날씨탓에 손님이 없다고 투덜대면서 한 사람당 오천 원에 태워준다고 했다 함께간 일행은 노인의 부축을 받고 말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잘생긴 제주 말은 이네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아스라이 점처럼 작아지기 시작했다 노인과 말, 말 등에 사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메밀꽃 필 무렵 소설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소금을 뿌려논듯한 메밀밭 대신 가을억새밭에서 말고삐를 쥐고 가는 노인은 소금대신 체구가 작은A를 말 등에 태우고 억새밭으로 사라졌다.
가을빛이 물든 제주바다에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계포구는 하나둘씩 조명을 밝히고 저 멀리 수평선엔 훤한 불빛이 켜지면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면 숙소를 찾기가 여간 성가시기 때문이다. 송악산 아랜 듬성듬성 상점들이 조명을 켜고 해안도로는 인적이 드물다 조금 걷다보니 나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그 냄새를 따라 가보니 7080이라는 작은 카페 간판에 불이 켜져있고 비닐로 둘러친 포장마차 안에 모닥불이 지펴지는 것이 투명비닐 밖으로 새어나온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벽난로에 둘러 앉아 언 손을 녹였다 한참을 불을 쬐고 있는데 테이블에 한상 차려져 나온다. 제주에 왔으니 제주산 해산물로 만든 전복죽을 시켜 가을바람 맞은 몸을 녹인다. 그리곤 그곳을 나와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그렇게 어둠뿐인 해안도를 따라 무작정 걷고 싶었다. 피곤한 몸을 뉘울만한 곳을 찾기도 귀찮아져서 하염없이 잘 생긴 해안도로를 따라 걷고 또 걸어 이길 끝 어디엔가 알 수 없는 평온의 안식처가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소리에 놀라서 깼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바다를 뚫고 나오는 아침 해가 산고의 고통을 토해 내며 비명을 지른 소리에 놀란 것 같다 주섬주섬 나설 채비를 하고 창밖을 보니 형제바위가 태양의 호위를 받고 제주 바다위에 용맹스럽게 서있다 그리고 간밤에 그렇게 걷고 싶었던 해안도로는 구불부굴 잘 닦여져 있었다. 그 길 위엔 자전거 가 누워있고 올렛길을 표시한 표지판이 함께 향하고 있는 곳은 산방산이다 송악산과 산방산 두 산은 제주 동쪽을 장승처럼 지키며 파도를 막고 바람을 막아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병풍 노릇을 톡톡히 하며 서있었다 형제 해안도를 따라 삼키로 남짓 걸어 가다보니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 아래에 둥지를 튼 농부와 어부가 아침이 가는것이 서운한지 부지런히 몸을 놀린다.
산방산 입구에 도착했다 산방산은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사냥을 갔다 그날따라 사슴이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아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급히 활을 치켜들다 잘못하여 한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들이고 말아서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서쪽으로 내던져 버렸고 그것이 날아와 박힌 것이 산방산이고 그 패인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산방산 주차장에서 용머리 해안을 내려다보니 진짜 용머리가 꿈틀거리는 듯 하다 그리고 아쉽게도 산방산은 먼 발자취에서만 봐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산방산엔 산방굴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계단으로만 되어있어 접근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하고 길걸었다
제주엔 걷기좋은길이 참 많고도 많다 바람길, 연인길, 사색길, 그중에 3코스 ‘사색의 길’은 대정향교에서 산방산을 거쳐 사색을 즐겼던 안덕계곡까지 이어는 10키로 코스다 이 길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사색의 길 어디쯤 추사가 유배를 갔던 길이라고 하여 산방산을 향하는 길이 있다 한적하고 인적이 드문 이 길을 휠체어로 걸어가려 하니 수풀이 우거지고 비포장 길이여서 진입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여 추사유배길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옛날 추사가 이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겨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추사 당신은 이 길이 마음에 드오.? “글쎄올시다. 그런 질문은 이 길 끝이 산방산을 향하고 있고 산방산에 오르면 동쪽 제주바다가 훤히 내려다보는데 어찌 이 길에서 사색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저 아래 제주 바다가 금방이도 일렁일 것 같지 않소, 저 산방산 소나무는 또 나를 부르고 있잖소. 이 길을 걷은 것만으로도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그 예날 추사와 함께 한 듯 하다 산으로 가는 길은 설렌다. 늘 발견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의 발로겠지만. 산방산 사색의 길……. 길 위에 또 길이 있는 제주 길은…….사람을 불러들이는 마법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