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아침에 일어나니 세 명의 칠레 등반가들이 보인다. 어제 밤 북봉 아래 비박터에 머물던 이들은 강한 바람에 위험을 느끼고 새벽 세시에 하포네스 캠프로 내려왔다. 그들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등반가들로 파이네 북봉에 새로운 루트를 만들기 위해 왔다고 한다.
오후에는 어제 구축 해 논 전진 캠프로 이동하였다.배낭이 가벼워서인지 두시간이 채 안돼서 도착한다. 나중에 파악 했는데 우리가 머문 비박터위로 한시간 반을 더 올라가면 칠레 등반가들이 머물던 비박터가 있었다.
12.20
두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새벽 세시 정찰 겸 등반을 시작한다. 경사가 급한 너덜 지대를 올라 본격적으로 벽등반 할 수 있는 꼴 비치로 진입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콜비치는 북봉과 중앙봉 사이의 골짜기를 말한다. 이틀 전에 너덜지대에 내린 눈이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그리고 어디로 나아가 야 할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콜비치로 진입을 하기 위하여 바위 능선을 넘어야 할 것 같은데 바위에 얼음이 얼어 있고 눈이 많이 덮여있다.

꿀르와르 등반을 하는 것 대신 꿀르와르 옆의 릿지로 등반을 해서 올라가면 좀더 쉽게 꼴비치에 다다를 것 같다. 그러나 꼴 비치로 연결 되는 릿지의 크랙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있고 눈이 많이 쌓여 조심스럽게 진행을 하다보니 시간이 엄청 걸린다. 정진이 꼴 비치까지 앞장서서 나아가기로한다. 눈이 많이 덮여 있어 피치 종료 지점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리가 꼴 비치에 도달할 무렵 시간은 오전을 지나 오후로 넘어 가려한다. 9시간이 걸린 것이다. 여기를 올랐던 다른 한국팀은 암벽화를 신고 두어 시간 만에 왔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바위에 덮인 눈과 얼음 때문에 시간을 많이 지체 하였다. 꼴 비치에 올라서니 바람이 몰아친다. 시간도 예상보다 많이 지체 되었고 무엇보다 강하고 차가운 바람이 우리의 의욕을 꺾어 돌아서게 만들었다. 하강도 쉽지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후 8시 우리가 머물었던 비박 캠프에 돌아왔다. 하산 하는 중 북봉 아래 돌담으로 만든 비박터가 있는 것을 발견 하였는데 우리가 어제밤 머물었던 자리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이다. 다음에 오를때는 전진 캠프를 이 비박터로 옮기면 등반시간이 그 만큼 단축 될 것이다.

12.21
베이스 켐프에 내려오자 마자 나는 왕복 4시간 거리에 있는 칠레노 캠프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위성인터넷이 설치가 되어 있는데 30분 단위로 요금을 지불하고 사용 할 수 있는 와이파이가 가능하다. 인터넷을 연결하여 파이네국립공원의 고도 별 일주일치 일기 예보를 검토 해보니 앞으로 닷새간은 비 또는 눈이 오고 바람이 강해 등반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날씨가 나쁘다고 베이스 켐프에서 만 죽치고 있으면 정신 건강에도 안 좋다. 이 참에 파이네 공원의 트레킹 코스를 부분적으로 돌아 보기로 한다.
12.22 - 25
다음날 아침 우리는 텐트와 침낭과 이틀치의 식량을 담은 작은 배낭을 메고 산허리를 돌아 이탈리아 산장으로 향한다. 푸른 빛깔의 노르덴스키욜드 호수가 왼쪽으로 펼쳐있고 오른쪽으로는 구름 사이로 파이네 그란데의 장엄한 모습이 자태를 드러낸다.

이탈리아 캠프에서 하루를 머물고 파이네 그란데 캠핑장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페오에 호수에서 바람본 파이네 산군의 모습이 이채롭고 아름답다.

이틀간의 트레킹을 즐긴 후 하루를 더 쉬었다. 날씨가 나쁘니 자동적인 휴식이다. 베이스에 머무는 칠레 등반가들과 함께 마테차를 돌려 마시며 아침식사를 한다. 파타고니아 등반의 가장 큰 장애물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바람과 급격하게 변하는 날씨라고 한다. 그들은 파타고니아에서는 느긋함이 필요하고 끈기있게 기다리다 기회가 오면 재빨리 등반하는것이 파타고니아 스타일이라고 강조한다.

한 달 일정으로 등반을 왔는데 벌써 두 주가 지나고 있다. 고약한 파타고니아 날씨로 등반도 못하고 집으로 가는 건 아니지? 등반을 못해도 안데스 산맥 끝트머리 파타고니아에서 한 달을 머물고 가는 것으로도 족하지 아니한가 라고 위안을 가져본다.
식량을 점검을 하니 등반 시 먹을 식량은 충분한데 베이스 캠프에서 먹을 식량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앞으로 몇 일간 날씨도 나쁘고 해서 식량을 구입하러 푸에르토 나탈리스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침 6시에 내려가면 밤 11시경에는 돌아 올 수 있을 것 같다. 불행히도 내려간 날은 크리스마스 휴일이라 푸에르토 나탈리스의 슈퍼마켓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지난번 머물었던 호스텔에 가니 주인여자가 반겨준다. 비싼 싱글룸 대신 네명이 묵는 도미토리를 선택했다. 가격은 70 페소. 아마 푸에르토 나탈리스에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 인것 같다. 룸메이트는 세명의 이스라엘 청년들이다. 군대를 마치고 여행을 왔다고 한다. 이스라엘 청년들이 군대 제대후 파타고니아로 여행오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저렴한 숙소라 그런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옆방에선 자정이 넘었는데 키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버스에서도 떠들고 숙소에서도 소란을 피우고...나라망신이다.
12.26
나탈리스에서 하나뿐인 대형 마트에서 식량과 연료를 구입하고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른다. 넘치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선호도가 높은 값싼 소고기와 빵 종류들은 금방 동이 난다. 세시간 후 라구나 아마르가 공원입구에 도착하니 버스에 20대의 한국여성이 올라와 유창한 스페인어로 안내를 한다. 같은 한국인이라고 반갑게 맞아준다. 파라구아이에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라스 토레스 호스텔에 도착하니 트레킹 폴이 안보인다.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신이 팔려 버스를 갈아 타면서 트레킹 폴을 두고 내린것이다. 트레킹폴이 없으면 많이 불편하고 등반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 분명할 것인데 버스는 이미 떠나 버렸고 난감하다. 호스텔 입구에 한 팀이 트레킹을 끝내고 쉬고 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들로 부터 사용하던 트레킹 폴을 구입했다.
오르는 길에 칠레노 산장에 들러 일주일간의 일기 예보를 확보하고 또레스 캠프에 도착하니 어제 내린 눈으로 텐트가 반쯤 무너져있다. 저녁 10시경 하포네스 캠프장에 도착하니 정진과 칠레 등반팀들이 반겨준다.
12.27
바람이 많이 분다는 이유로 오늘은 근처의 또레스 전망대를 가보기로 했다. 하포네스 캠프에서 한 시간 거리의 또레 캠프에 내려가서 30분 정도 오르면 또레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상징인 또레스 전망대가 있다. 남봉, 중앙봉, 북봉이 푸른 호수와 어우러져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중앙봉 상단부에는 아직 눈이 많이 남아 있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날씨가 화창하다. 좋은 날씨는 다음날까지 이어 졋다.

12월 28일.
일기 예보에 따르면 오늘도 날씨가 좋고 오늘 밤에 약간(1mm)의 비가 내린 후 몇 일간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한다. 오후에 비박 캠프로 출발 했다. 지난번 머물었 던 비박 캠프보다 고도 400미터를 더 올라 북봉 아래 있는 비박 캠프이다. 내일 새벽 두 시경 출발하기로 하고 텐트프라이를 덮고 쪼그리고 누워서 잠을 청한다. 열 두 시경이 되니 바람이 불며 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한다. 약간만 내린다는 비는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이어져 침낭과 입고 있는 옷들이 빗물에 젖었다. 밤새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뒤척거리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12월 29일
눈을 뜨니 8시다. 날은 맑고 바람은 없다. 늦었지만 우리는 꼴 비치로까지만 갔다 오기로 한다. 꼴비치에 도착하니 오후 2시다. 이번엔 6시간이 걸렸다. 몸이 젖은 상태에서 밤을 세워서인지 몸의 컨디션이 안 좋고 등반을 하기엔 너무 늦다. 이곳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섯불리 등반을 시도 했다가는 문제가 생길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돌아서 베이스캠프로 내려 왔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조급해진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적인 등반기가 너무나 재밌고 또 내년 저희 등반에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문산악인이 쓰신글이라 현장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원사장님의 체력과 열정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