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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 여행 스크랩 낙동강 본류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33 14.08.05 02: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낙동강 본류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문화재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우리가 살아 온 역사를 보여주는 위대한 유산이다. 또한 민족적, 국민적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다양한 것들을 포괄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우리 문화재의 보호 및 보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최근 이러한 문화재와 관련하여, 문화재 지표 조사 사업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질타가 문화재를 후손에게 잘 물려 줄 수 있는 방법이란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인 문화재가 올바르게 보호되고 보전 되게 관심을 가지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슈가 된 문화재 지표 조사 사업은 '졸속·부실'이란 단어로 형용되어 많은 이들이 차가운 태도로 냉소하게 한다. 그래서 최근 문화재 지표 조사 사업이 이루어진 현장과 기관 중 한 곳을 찾아가 보았다.

 

  낙동강 본류 중 대구를 가로지르는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되는 지점으로부터 고령군을 가로지르는 회천과 낙동강이 합류 되는 지점까지로 총 연장거리 46.5km, 면적은 약 20,400,000㎡의 구간에 지표 조사를 담당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을 찾았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2006년 1월에 설립되어, 현재 고고학 분야의 전공 연구자 34명을 보유한 기관이다. 많은 사람들 중 대동문화재연구원의 배성혁 실장님께서 환한 미소와 함께 반겨주었다. 방문에 대해 사전 연락을 받은 배실장님께서는 도면, 사진, 연구보고서 등의 자료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 (좌 ) - 인공위성에서 본 낙동강() 및 조사대상구간()의 위치

  (우)- 낙동강 금호강 합류점 ~ 회천 합류점 구간의 위치 및 주변 유적 분포도

 

 

 ▶ 문화재 지표 조사란 무엇인가요?

 

  지표면의 조사를 통해 지하에 남겨진 유구나 유물을 확인하는 조사를 말해요. 지하에 유존하는 유구?유물들은 자연의 힘이나 사람들에 의한 지형의 변경, 도굴 등으로 말미암아 지표상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정밀조사를 통해 이 유구?유물들의 흔적을 확인함으로서 유적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지표조사지요. 그 외에 유구?유물은 없지만 자연적인 입지나 지형, 고문헌, 주변유적과의 관계분석 등을 통해 유적의 존재를 확인하는 경우도 많이 있답니다. 따라서 지표조사는 문화재의 조사경험이 풍부한 전문 학술 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 지역에 대한 문화재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해당지역의 인근의 전문학술기관이 조사함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 문화재 지표 조사 뒤에 어떤 과정이 이루어지나요?

 

  지표조사에서 유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그 중요도에 따라 1차적으로 입회조사, 분포확인조사, 표본시굴조사, 시굴조사를 해요. 이를 통해 유구의 유존여부, 분포범위, 성격 등을 확인하죠. 이후 유구가 확인된 유적에 대해 2차적으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하며 조사결과에 따라 보존이나 이전, 공사 진행 등의 사후 조치를 하게 된답니다.

 

 

▶ 문화재 지표 조사가 시행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

 

  금번 문화재지표조사는 대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그 면적도 광대한 만큼 조사기관들은 많은 심리적인 부담을 안고 조사를 실시하였답니다. 그래서 이 조사를 위해 문화재 조사에 대한 경험이 가장 풍부하고, 많은 조사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문화재조사전문기관이 모인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이하 한문협)에서 적극 대처하고자, 2008년 12월부터 4대강별 주관기관 선정과 조사기관을 선정하여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 하였죠. 지역별 조사기관 역시 조사지역에 대한 문화재 정보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기관을 선정하였답니다.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하여 조사방법, 기간, 보고서작성에 이르기까지 체제를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모든 기관에서 총력을 펼친 정밀조사와 자문회의를 거쳐 무사히 조사를 종료를 할 수 있었어요.

 

 

▶ 금번 문화재 지표조사 사업에는 어떤 사람들이 투입되었고, 얼마동안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금번 조사는 2009년 2월 13일부터 4월 30일 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진행되었어요.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업이니만큼 우리 연구원에서 조사가 가능한 인력을 총 동원하였죠. 현장조사에는 105명, 사전조사?보고서작성에는 63명이 투입되어 모두 168명이 동원되었어요. 조사는 6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죠. 먼저 조사 착수 전 기 조사된 문헌을 통해 주변유적에 대한 정보와 위치를 확인하는 1단계 사전조사를 하였어요. 이어 4차에 걸친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는데, 5개 팀으로 나누어 2단계 현장정밀조사를 실시 하였답니다. 이후 유적의 가능성이 있는 부분과 미비한 부분에 대해서는 3단계 보완 조사를 실시하였어요. 확인된 유적의 범위와 성격파악을 위한 4단계 유적범위 확인조사, 최종 유적의 성격과 범위확정과 혹시라도 간과할 수 있는 유적이 있지는 않은지 최종 점검을 위해 원장과 실장 및 팀장들로 이루어진 5단계 확정조사를 다시 한 번 실시하였구요. 이후 조사결과와 고지도, 고문헌 등을 기초로 하여 입지, 지형, 유적분석을 통해 6단계로 최종보고서를 작성하였답니다.

 

 

▶ 문화재 지표조사 사업이 현재는 어떤 단계인가요?

 

  낙동강 본류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는 이미 4월 말에 종료가 된 상태입니다. 현재는 유적을 본격적으로 확인하는 본 조사(입회, 분포확인, 표본시굴, 시굴)를 진행하는 단계에요.

 

 

▶ 문화재 지표 조사 사업의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낙동강을 중심으로 제방과 제방사이에 대한 조사결과, 선사~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5개소와 삼국시대 석곽묘군 1개소, 조선시대~근대 나루터 19개소가 확인되었죠. 제방 외곽으로 50m 범위내에서는 청동기~조선시대 유물산포지 2개소, 삼국시대 고분군 5개소, 삼국~조선시대 토성?봉수지?건물 등 기타유적 9개소가 확인되었어요. 그리고 500m 범위내에서는 청동기~조선시대 유물산포지 6개소, 삼국시대 고분군 2개소, 삼국~조선시대 토성?봉수지?건물 등 기타유적 17개소를 확인 하였어요.

 

 

▲ 제5 구간 지표 산포 유물 (원천리 유물 산포지)       ▲ 제 6구간 지표 산포 유물 (개진제 부근)

 

 

▶ 성과와 지표조사가 어떤 관계가 있나요?

 

  금번의 성과는 이전의 문헌기록에 나와 있는 것도 있지만 금번 지표조사를 통하여 새롭게 밝혀낸 유적도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유적관리의 특성상 한번 획득한 정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관공서와 문화재기관을 통해 동시 관리되는 아주 효율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답니다. 금번에 조사된 유적이 본 사업범위에 포함되지 않을 지라도 향후 주변지역에 어떠한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금번 조사 성과가 즉시 반영될 수 있을 거에요. 지속적으로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는 이중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 앞으로 추가 조사를 해야 하나요? 해야 한다면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낙동강 본류에 대한 지표조사는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 졌으므로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사업범위의 확대나 지류에 대한 사업이 진행될 시에는 사업범위에 대해서 별도로 지표조사를 실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향후의 조사는 확인된 유적에 대해 그 범위와 성격을 알기 위해 조사기관에서 제시한 조사(입회, 분포확인, 표본시굴, 시굴)를 진행하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문화재 지표 조사가 긴박하고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시선들이 부실 조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입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3개월에 걸친 조사기간과 인력을 통상적인 지표조사와 비교하여 보면 매우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답니다. 지표조사는 현재의 지표면을 잘 관찰하여 관련된 유물이나 입지, 지형, 주변유적과의 관련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게 되는데, 가장 1차적인 조사가 현장조사에요. 특히 현장조사는 계절에 가장 민감한데, 최적의 조사기간은 11월에서 4월까지 수확이 끝나고 경작이 시작되지 않은 계절이죠. 금번 조사는 다행히 2월에서 4월 사이에 진행되었고, 낙동강의 수위도 가장 낮은 갈수기라 최적의 환경에서 조사가 진행되어 조사기간에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세밀한 정밀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고 많은 유적을 새로이 확인할 수도 있었답니다. 조사의 시기, 투입 인력과 같은 종합적 요인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기간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문화재 지표 조사가 부실조사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 문화재 지표 조사에 참여한 일원으로써,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조사의 진행과 성과 등 모든 과정들은 일일이 전 국민들에게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당연히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예견하지 못한 바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구심이 없도록 더욱 더 정밀한 조사를 실시하고자 전 기관이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답니다. 금번 조사가 졸속·부실조사라는 등의 내용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이번 조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실소 했을 거에요. 그렇게 주장하던 분들이 조사기간 중 단 한번이라도 조사 기관과 같이 낙동강가를 조사하면서, 그들이 가진 의구심에 대해 물어보았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지표조사 역사상 가장 정밀하게 진행된 조사라 단언할 수도 있지 않은가 생각되네요.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에 발언의 자유가 있다할 지라도 휴일까지 반납하고 하루에 10시간씩 강가를 걸어 다니며 작은 유물조각 하나라도 더 확인하고자 했던 수 백 명 고고학도의 노력이 문화재조사에 대한 경험도 이해도 전무한 분들의 정치적인 발언 한마디에 싸잡아 매도당하는 결과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지 않은가란 생각이 드네요.

 

 

 ▲  제 8구간 오산리 유물 산포지 문화재 지표 조사 모습 

 

"현재 낙동강가에 설치된 인공제방을 기준으로 강 안쪽의 전부와 제방외곽의 500m 범위 안을 정밀 조사하였어요. 그리고 주변의 중요 유적은 1km 범위까지 확대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답니다. 그런데 수 백 명의 고고학도의 노력들이 참담하게 외면당하니, 찹찹한 심정이 든 답니다. 문화재가 하나라도 더 밝혀지길 바라고, 진정으로 문화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차라리 본 조사단을 찾아 위문이라도 해 주셨으면 힘이 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는 지표조사에 투입된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신념 없이 본 사업을 담당한 것처럼 매도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문화재지표조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따갑게 내리쬐는 뜨거운 볕 아래에서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근원에는 누구나 탐내는 사회적 희소가치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이어가고, 후손들에게 소중한 유산인 문화재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전한 '위문공연'이란 표현은 그들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답답함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라 생각되었다. 

 

  문뜩 다빈치의 인체 해부 스케치가 떠오른다. 이를 보면 예술인지 과학인지 혼돈에 빠질 때가 있다. 다빈치는 근대 과학이 탄생하기 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예술과 과학을 거론하며 질문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이 있을까. 아마도 그에게 예술과 과학이란 거시적 틀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눈에 비치는 대로 사람을 그렸을 것이다. 즉, 그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눈을 통해 들어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문화재 지표 조사 사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하였던 것 또한 그 맥락이 닿아 있어 보였다. 보이는 찬웃음에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위해, 거시적인 틀에 가려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자신의 눈을 통해 들어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여 봐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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