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면회
아들이 훈련소에서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홍천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아들의 부대에서 부모님들에게 부대를 개방한다고 하여 아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다녀왔다. 남들 다오는데 우리 아들만 부모가 가지 않으면 왠지 쓸쓸히 지낼 것 같아서 평일 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시간을 냈다.
아들은 군에 가기 전보다 살이 올라 있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도 면회를 두 번이나 간 터라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들의 상사가 특별히 부탁해서 가게 되었다.
군에 가서 받은 상담 내용 중에 아들이 성장하면서 겪은 성장 통속에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다고 전했다. 이번 기회에 부대에 와서 아들과 같이 자면서 지난 서운한 것을 풀어 보라는 것이었다.
아들과 함께 홍천의 시내로 나와서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부대 밖에서 밥을 먹게 되니 좀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소주도 한 병 시켜서 먹고 싶다고 했다. 덩치가 커도 내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이는데 얼른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콜라와 함께 마신다. 아직 제대로 된 술맛을 모르면서 어른 흉내를 내는 녀석이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아들을 군대 보내기 전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았다.
예전에는 나라에서 무조건 군인들의 일반 소모품을 지급 해주는 줄 알았는데 지금 군대는 필요한 것을 밖에서 사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 준다고 한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어찌나 많은지 아예 노트에 메모해서 나온 모양이다.
자식 둔 어미 마음은 다 똑같겠지만 자식에게 쓰는 것은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다.
군에 가기 전 몇 달 동안 머리 컸다고 고분고분 말은 안 들으면서 자기 멋대로 하는 아들이 매우 힘들었다. 골을 부리며 근처 할머니 집에 가서 지낸다기에 말리지 않고 그냥 두었다. 솔직히 나도 아들만큼 힘이 들었다.
아들이 나를 많이 원망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괘씸하기 까기 했었다. 잘해주지는 못했어도
원망을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부대 가까운 펜션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묵은 감정들을 풀어 보고자 했지만, 아들도 나도 별 말 없이 하룻밤을 보냈다. 내륙보다 산간이라 그런지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정도는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10리 길을 변변한 옷도 입지 않고 걸어 다니던 때 생각이 났다. 그때 그 시절
만큼 춥게 느껴졌다. 하룻밤을 지내고 산속에 있는 펜션을 나오려니 주인집 강아지들이 먼저 달려와 인사를 한다.
앙상한 엉겅퀴며 겨울을 준비하는 산자락은 움츠리고 있는듯하다.
자동차는 천천히 산길을 내려와 아스팔트위로 올라 왔다. 꼬불거리는 도로를 한참을 달려와서 어제의 그 거리를 아들과 같이 걸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군부대가 민간인을 전혀 만날 수 없는 뚝 떨어진 곳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전방은 아니라 오히려 다행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저곳에서 아들 또래의 군인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었다. 태극기가 달린 얼룩 한 군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군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외박이나 휴가 나온 군인들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아침에 부대찌개를 하는 식당이 문을 열어 놓았다.
주인아주머니가 반찬을 날라다 주며 군인들이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는 만드는 중이라며 아들을 쳐다보며 미안한 미소를 건넨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아들은 수저로 떠먹는다. 군대가 좋기는 좋구나!
자기 밥을 먹고도 엄마가 들어주는 밥도 한 숟가락씩 뚝뚝 떠먹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군에 가기 전에는 먹는 것이 너무 없어서 정말 말랐었다.
아들이 군화를 고쳐 매는 모습도 의젓해 보인다.
생활관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야 할 것이 더 있다며 다이소에 들렸다.
요즘 군인 월급이 올랐다고 하는데 이것저것 밖에서 필요한 것을 사려면 그 월급으로는
어림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을 산후 전날 아들을 태웠던 부대 앞에 도로 내려 주고 왔다.
돌아오는 길이 왠지 기분이 좋지가 않다. 아들에게 그동안 서운했던 것은 다 풀어 라고 말하고 싶어서 수 백릿길을 달려왔는데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늘 시간에 쫓기며 돈에 쪼들리며 살았다.
남들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다. 아이들을 그 흔한 어학연수 한번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은 있다.
시간 맞추어 이 학원 저 학원 태우고 다니며 픽업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들이 위험하다거나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것이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인 것으로 알며 지냈다.
좀 혼란스럽다.
밥을 떠먹여 키우던 어린아이가 자라 자신의 발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일일이 어디 가는지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들이 스스로 결정하여 책임감을 가질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늦게 되면 전화는 한 통 해달라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아들은 간섭으로 여겼다. 자식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체념하고 내버려 둘 때도 있었다.
아들은 엄마 때문에 친구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식을 낳았으니까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여태 자식을 키운 것은 아닌데 마주 앉아 한번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들이 힘들어한다니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왔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나 잘 살아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을 나도 아들에게 해주고 싶다. 네가 잘사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다.
아들이 성숙한 어른이 되어 돌아오길 바란다.
올해는 유난히 춥다기에 보초 설 때 옷 속에 붙이면 추위가 들 할 것 같아서 핫 팩 을 사서 갔다. 필요 없다고 도로 가져가라며 던져준다. 아들이 참 철없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지고 간 가방에서 핫 팩이 든 비닐 주머니를 꺼내는데 속이 상하다.
네 놈이 싫다면 추운데 나나 붙이고 다녀야지 하며 비닐 팩을 텃어서 내 등에다 붙였다.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열기가 12시간을 간다는 핫 팩을 식기도 전에 떼어 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옷 속에 붙이면 들들 떨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텐데 엄마 마음도 몰라주는 아들 녀석이 야속하다.
자식 낳아 키워 보면 부모 마음 이해하게 된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2018.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