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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정리 2: 누가 저자인가?(Hebrews Summary 2: Who is the Author?)
할렐루야!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성경을 배우는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히브리서를 통해서 배우는 즐거움은 세상이 주는 어떤 즐거움보다 더 큽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게 우리가 알 수 없는 저자를 통해서 귀한 말씀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를 구약의 율법과 제사 제도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배울 때 하나님께서 배우는 모든 분께 놀라운 지혜와 기쁨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또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행복하게 배우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샬롬! 히브리서 정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첫 시간에는 간단하게 정리한 자료를 보여 드렸는데 이제 며칠 동안 틈을 내어서 쉬지 않고 정리를 해서 올립니다. 사진도 군데군데 넣었는데 합당한 사진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같이 보시면서 히브리서를 잘 이해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자에 대해서 같이 공부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선생님은 예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1부 서두 | 2부 그리스도의 우월성 대제사장직 | 2-3 우월성 4-10 대제사장직 11-12 구원에 머물라 | 3부 인사 기원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
1부 | 1 | 서두 그리스도의 우월성 | 하나님 아들의 위대성 천사보다 뛰어난 아들 | 부 | 8 | 대제사장직 | 사장 | 새 언약의 중보자 | |
2 | 2 | 그리스도의 우월성 | 구원 | 그리스도의 고난과 낮아지심 | 9 | 희생물 | 희생제물의 완성자 그리스도 | ||
3 | 모세보다 |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안식 | 10 | 새 언약 | 완전하고 영원한 새 언약 | ||||
4 | 그리스도의 | 안식 |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 | 11 | 신앙의 길 | 믿음 | 믿음, 믿음의 위인들 | ||
5 | 대제사장 | 아론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 12 | 징계 | 하나님의 징계 | ||||
6 | 약속 |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 3부 | 13 | 인사 | 권면 | 믿음의 생활 | ||
7 | 대제 | 예수의 대제사장의 직분 |
11 장 |
서두: 천사보다 뛰어난 그리스도
1-4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다.
1-2 옛적에 선지자를 통해서 조상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아들을 상속자로 세우시고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창조되다.
3-4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본체로서 인간의 죄를 씻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5-14 아들은 천사보다 뛰어나시다.
5-7 천사를 일군으로 삼으시는 하나님께서 아들은 낳았다 하시고 예배를 그에게 드리라 명하심
8-9 아들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왕권은 영원무궁함, 그분의 지팡이는 정의이다.
10-12 주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만물은 낡아지나 주의 연대는 영원하다.
13-14 내가 네 원수로 내 발등상이 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리라/ 천사는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섬기는 역할을 함
2 장 |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람과 같이 되셔서 대제사장으로 백성의 죄를 속량하심
1-4 귀중한 구원
1-2 우리가 들은 바를 유념하자, 천사들이 명한 바도 범죄와 불순종으로 징벌을 받음
3-4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구원을 등한히 하면 징벌을 피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기사와 이적으로 또 성령으로 그들의 증언을 뒷받침하심
5-18 예수님의 낮아지심. 고난. 승귀
5-9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 후에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심,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임
10-13 하나님께서 당신의 많은 자녀가 영광에 참여하도록 구원의 창시자로 고난을 받게 하심, 예수님께서 구원을 받는 사람을 자녀로 부르심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14-15 자녀가 피와 살이 있으므로 예수님께서 피와 살을 가지시고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지닌 마귀를 멸하시고 그 자녀들이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누리게 하심
16-18 그분이 형제와 같이 되심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 그분이 고난을 받은즉 시험받는 사람을 능히 도우심
3장 |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자
1-6 예수님은 모세보다 우월하시다.
1-2 거룩한 형제들아 믿는 도리의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그분께서 세우신 분께 충실함이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 하신 것과 같이 하심
3-4 예수님께서 모세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집을 지으신 주인이시기 때문
5-6 모세는 하나님 온 집의 종으로 신실했고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 충성하심
7-19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자
7-11 너희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반역하던 것과 같이 마음을 완악하게 말라, 그들이 40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믿지 않고 시험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다.
12-13 형제들아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질까 조심하라
서로 피자 권면하면서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지 않게 하라
14-19 안식에 들지 못하는 것은 불신 때문: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시절 하나님을 격노케 한 것과 같이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4장 |
순종과 안식,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1-13 순종하여 안식에 들어가자
1-2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있을지라도 혹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복음을 듣고 믿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다.
3 하나님의 진노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함, 우리는 믿음으로 안식에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안식하셨음
4-6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복음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탓
다른 사람들은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7 오늘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
8-11 여호수아가 안식을 논하지 않음, 믿는 이에게 아직 참 안식이 남아있다.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안식한다. 힘써 안식을 누리도록 하자
12-13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살았다. 운동력이 있다. 좌우 날선 검보다 예리, 혼과 영과 관절을 찔러 쪼갬, 마음과 뜻과 생각을 감찰함,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심판을 받게 되니라
14-16 예수는 위대한 대제사장입니다.
우리에겐 승천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이 계시는데, 우리의 연약한 사정을 아신다. 죄가 없으신데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자.
히브리서 4장 강해
yourcrown 추천 0 조회 901 13.11.18 16:35 댓글 0
히브리서 4장 강해
히브리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1장 1절에서 4장 13절까지 말씀으로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은 4장 14절에서 10장 18절까지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 부분은 10장 19절부터 13장 25절까지 말씀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뛰어난 성도의 능력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절에서 13절까지는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14절부터 16절까지는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증하고 있는 대단원(1:1-4:13)과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을 논증하는 대단원(4:14-10:18)을 연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히브리서 4장은 히브리서 3장 후반부 3장 7절에서 19절까지에서 언급하기 시작한 ‘안식’에 대한 권고를 4장에서 이어감과 동시에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서론적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3장 7절에서부터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열조가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처럼 저자가 구약 성경 본문(70인 역)을 인용하면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옛 계약과 새 계약,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신약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연속성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성경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히 3:7-11 ; 시 95편, 히 5:11-6:12 ; 시 110편, 히 10:32-36 ; 합 2장, 히 12:25-29 ; 잠 3장) 이처럼 저자가 구약 성경 본문을 인용하는 것은, 본 서신의 독자들인 유대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약의 본문을 인용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을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히브리서 4장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선 히브리서의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히브리서 3장의 말씀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3장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 4장에 보면 그 안식의 약속이 폐지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세대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안식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 여전히 적용됩니다.
출애굽 세대에게 주어진 안식의 개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본 저자에 의하면 이것은 안식에 대한 하나의 유형입니다. 그러면 안식의 원형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칠 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이 말입니다, “일곱째 날에 대하여는 성경에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나온 안식일에 관한 말씀이 구약 성경 어디에 쓰여 있습니까? 창세기 2장 2절입니다. 우리가 찾아서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이 창세기의 말씀이 ‘안식의 원형’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야훼 하나님께서 창조의 수고를 다 하신 후 경험하신 완성과 조화(‘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상태는 그 상태는 이후에 경험되는 모든 안식의 원형이자 목표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선택으로 약속의 자손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안식은 하나님의 최초의 안식을 원형으로 해서 예표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최초의 안식을 원형으로 해서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정착한 것을 유형으로 말합니다. 히브리서 4장 8절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 하셨으리라.” 이 말씀을 새 번역 성경으로 보면,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뒤에 다른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벽한 안식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는 것도 아니고 주었던들 그 안식은 완벽한 안식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창세기에 나온 안식의 원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에 정착한 유형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대형으로 설명하는 데 그 대형을 antitype 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원형과 유형과 대형은 구속사의 연장 선상에 있으며 현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안식 또한 장차 성취될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 계획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예배로 특징 지워지는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안식을 일부분 경험하지만,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안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적은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단지 구속과 영원한 안식, 약속과 성취의 중간 기간에 살고 있는 성도로써 신앙이 없는 공허한 마음으로 약속된 안식만을 자랑해서도 안 되고 나는 완벽한 안식을 이루었다고 자만해도 안 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감으로 삼아 불신앙으로 약속된 안식을 얻지 못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난한 복지에 대하여 그리고 거기 거하는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주 하리라는 승리의 기쁜 예언도 모두 들어왔었습니다(민 13:).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이 말씀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축복도 경고도 무시하게 되었고 그 안식에 대한 축복의 말씀들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들어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 창조를 마치시고 쉬심과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안식을 주셨습니다.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안식은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안식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즉 이 안식은 하나님의 평화로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평화, 기쁨, 새 힘의 정신적 최고봉에 이르는 은혜요, 하나님의 나라 저 천국의 안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안식에 대한 약속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으로 실패한 전철을 밟지 말고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생명과 복을 얻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으므로 우리의 마음에 받아 순종할 때 생명과 힘을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에겐 심판이 주어집니다. 약속의 말씀은 불신앙을 용납지 않습니다. 불신앙으로 가득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우리 자신을 깨끗게 하며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구약에서 대제사장은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입니다. 사람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사를 집행하고 또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잇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완벽하고 가장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화목 제물로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변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경험하심으로 우리를 동정하시며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짐을 져 주셨으니 그분만이 능히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5장 |
아론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1-10 예수는 위대한 대제사장
1-3 대제사장: 자신과 사람을 위해 속죄제 드림, 자기가 연약하기에 무식하고 미혹한 자 능히 용납
4-6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 내 아들이니 네가 오늘 너를 낳았다/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
7-10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는 소원을 올림, 그의 경건하심으로 들으심 얻음/ 아들이면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케 하심-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
11-14 배반에 대한 경고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자가 말씀의 초보로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을 먹고 있다. 어린아이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 그들은 지각을 사용해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
6장 |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과 맹세: 희망(소망)의 닻
1-12 배반에 대한 경고
1-2 그리스도 교의 초보를 버리라: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
3-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
7-9 땅이 엉컹퀴 가지를 내면 불살음, 땅이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받음
9-12 여러분은 구원의 축복 속에 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섬김을 아신다. 끝까지 열심을 내어 각 사람의 희망을 성취하라
13-20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13-15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약속: 자기를 가리켜 맹세, 아브라함의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받음
16-17 하나님의 맹세: 맹세는 보증으로 모든 논쟁을 종식시킴, 하나님께서 맹세로 자신의 약속에 대해서 보증하심
18-20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약속과 맹세는 변치 않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우리는 이로 인해 희망을 굳게 붙잡는데, 이 희망이 닻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보호해 주어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게 한다. 예수님께서 멜기세덱 제사장 직분에 따라서 먼저 들어가심
7장 |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1-28 멜기세덱의 계통을 이은 제사장 그리스도
1-2 멜기세덱 정의: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 평강의 왕, 정의의 왕.
2-7 아버지도 없으며,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음,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을 닮으심, 레위 가문이 아니지만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고 축복함
8-10 십일조는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 바침
11-17 이스라엘 백성이 레위의 제사 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율법을 받음, 이 제도의 불완전성 때문에 율법이 아닌 불멸의 생명의 힘에 의한 새로운 제사장직, 따라서 성경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
18-21 전에 있던 율법의 규정이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세우심
22-25 예수님께서 영원히 사시니 그분의 제사장직도 영원함, 이렇게 예수님께서 항상 살아계셔서 중재일을 하시니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가 있음
26-28 율법에 따른 대제사장들은 날마다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단번에 제사를 드림, 율법에 따른 대제사장은 불완전한 인간이지마,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에 따라서 대제사장이 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히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8장 |
새 언약과 언약의 중보자
1-13 새 언약의 대제사장
1-2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은 하늘 성전일을 맡아보시는데 이 성전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것임
3-5 대제사장은 예물과 제사를 드림을 위해 세우심 받음, 예수님께서 땅에 계셨으면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있기에 제사장이 될 수 없었음, 그들은 하늘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를 섬김, 모세가 장막을 지을 때 산에서 보여 주신 본을 따라서 지음
6 예수님께서 더 아름다운 직분을 받으심;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7-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으실 약속: 첫 언약이 흠이 있다. 그 언약과 같지 않은데 그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
10-13 새 언약의 내용: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함,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됨,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함, 첫 계약은 낡아지고 사라지게 됨
9 장 |
땅의 성전과 하늘 성전,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1-22 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
1-5 첫 언약의 성소: 인간이 마련한 예배의 장소와 규칙, 첫 성막 성소에는 등잔과 상과 진설병, 그리고 휘장이 있고 지성소가 있음, 금향로, 금으로 된 언약궤,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 언약의 돌판이 있음,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이 있음
6-7 성전에서 사제들의 제사: 사제들은 성소에서 제사드림, 일 년에 한 번 대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감, 반드시 피를 가지고 들어감, 자신의 죄와 백성이 모르게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들어감,
8-10 이러한 제도의 성령의 설명: 아직 지성소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 이것은 현재까지 상징으로 아직 이 제사를 통해서 제사를 드리는 양심까지 온전하게 못함
이는 먹고 마시고 씻는 인간적인 규칙으로서 새로운 질서(order)가 올 때까지 유효
11-14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 그분의 성전은 더 크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님, 창조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짐승의 피가 아닌 그분의 피로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 받는 길을 열어주심, 짐승의 피와 재가 육체를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늘, 어찌 성령을 통하여 흠 없이 바쳐진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행위들로부터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못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돕지 못하겠느냐?
15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님은 첫 번째 계약 아래에서 죽은 사람을 속량하시려고 죽으셨음, 부름받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유업을 이어받게 됨
16-22 유언의 효력과 피의 언약: 유언은 사람이 죽어야 효력이 발생, 첫 계약도 피를 통해서 맺음,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피, 성전 예배에도 피, 율법에 따르면 피를 통해서 거룩해지고 깨끗해짐,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음
23-28 그리스도의 단 한 번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
23-26 땅의 이런 하늘의 것을 본 딴 의식과 달리 예수님께서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셔서 더 나은 재물이 되심, 인간 대제사장과 달리 한 번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죄를 없이 하심,
27-28 인간은 한 번 죽게 마련이고 심판이 있음: 예수님께서 단번에 사람들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제물이 되셨고 두 번째 나타나실 땐 죄와 상관없이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실 것입니다.
10 장10장 |
완전하고 영원한 새 언약과 믿음의 전진
1-20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와 새 언약
1 율법은 장차 나타날 것의 그림자, 해마다 계속 희생제물을 드려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완전하게 못함
2-4 해마다 제물을 바치면서 죄를 되새겨야 하는 것은 황소와 염소와 피로서 죄를 없앨 수 없기 때문
5-9 그리스도께서 나중 것을 세우기 위해 먼저 것을 폐기, 하나님께서 번제물과 속죄제물을 기뻐하지 않음,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러 오심
10-14 예수님의 속죄 희생: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단 한 번 몸을 바치셨고 이로 인해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됨, 이로써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원수들이 발아래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심
16-20 성령의 증언: 새 계약- 주님의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고 그들의 생각에 새겨줌, 죄가 용서받았기에 봉헌물이 필요 없음,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기에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간다. 예수님께서 휘장을 뚫고 열어주심, 휘장은 그분의 육체임
21-39 믿음을 굳세게 죄를 멀리, 앞으로만 전진
21-25 서로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쓰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마음에 뿌려져서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6-31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 제사는 없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김,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한 자, 맹렬한 불의 심판이 기다림
32-35 담대하라: 전에 겪은 고난을 기억하라 큰 상이 있다.
36-39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 하리라
11장 |
믿음의 정의와 믿음의 예
1-3 믿음의 정의
1 믿음의 정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2-3 옛사람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로 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옴
4-40 믿음의 위인들과 행위, 고난
4-12 믿음의 위인들: 아벨(제사), 에녹(산 채), 노아(방주), 아브라함(순종, 떠남), 사라(출산) 믿음 없이 기뻐시게 못하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상주는 이심을 믿어야 함
13-16 본향을 찾는 자: 믿음을 따라 죽음,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을 사모하며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함, 지상에선 나그네로 지냄
17-32 믿음으로 행위한 예: 아브라함 이삭을 드림, 이삭 야곱에게 축복, 야곱 요셉의 아들 축복 이스라엘 출애굽과 자신의 뼈에 대해 말함, 모세 부모가 숨김, 공주의 아들을 거부함, 하나님과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거보다 좋아함, 그리스도를 위해 수난 받음, 애굽 떠남, 유월절 피, 홍해 건넘/ 여리고 성 돎, 라합 정탐꾼 숨김,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선지자
33-35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은 받았으나 약속된 것 받지 못함: 믿음으로 나라 이김, 의를 행함, 약속으로 받음, 사자 입, 맹렬한 불을 껌, 약했지만 강해짐, 전쟁 용맹, 외국 군대 물리침, 부활한 식구 만남,
36-40 믿음으로 당한 고난: 고문, 조롱, 채찍, 투옥, 돌에 맞음, 톱질, 칼에 맞아 죽음, 영소 가죽 두름, 가난, 고난, 학대, 광야, 토굴-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하심
12 장12장 |
하나님의 징계와 반역자에 대한 경고
1-13 주님의 훈련
1-4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죄인들에게 심한 마음을 받고 참으신 것 기억- 모든 것을 견디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
5-13 징계의 이유와 유익: 주께서 사랑하시는 이는 징계하신다. 우리는 그분과 같이 거룩하게 하심- 훈련을 잘 받으면 의와 평강의 열매, 힘없는 손을 쳐들고 쇠약한 무릎을 세우고 바른길로 걸어가라
14-29 반역자에 대한 경고
14-17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고 거룩함을 따르라, 공동체에 독초가 없게 하라, 음행하는 자,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불경스러운 자가 없게 하라
18-24 너희가 이른 시온: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과거 이스라엘의 불과 구름으로 폭풍의 시나이산이 아니다. 수많은 천사, 장자들의 교회, 만민의 심판자 하나님,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 예수님께서 계시고 속죄의 피가 있다.
25-29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 그때에는 하늘과 땅이 뒤흔들어진다. 피조물이 없어지며 흔들리지 않는 것은 남아 있으리라
13 장13장 |
믿음의 생활과 인사
1-18 믿음의 생활
1-5 교훈: 1) 형제를 계속 사랑하라, 2) 손임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3) 갇힌 자를 생각하며,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4) 결혼을 귀히 여기라, 음란자, 간음자는 하나님의 심판, 5) 돈을 사랑하지 말라, 주께서 결코 떠나지 않겠고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6-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 주께서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리라.
9 이상한 교훈에 끌리지 말라: 음식 규정에 얽매이지 말라,
10-13 예수님의 성문 밖에서의 고난: 우리도 진 밖으로 나가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지자
14-15 장차 올 영원한 도시를 찾는 우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
16-19 선행과 친교, 지도자들에게 순종, 우리를 위해 기도, 저자가 속히 그들에게 돌아가게 되도록 기도,
20-25 축복과 작별 인사
20-21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바를 이루어 주시길 기도함
22-25 디모데에게 풀려난 것 알림, 그가 오면 그와 함께 여러분을 만날 것임, 지도자와 성도에게 문안, 이딸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문안,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이제 이렇게 정리된 자료를 보면서 과연 히브리서 저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디에도 누가 썼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바울 서신은 스스로 저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서신서도 대부분 저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라는 표현도 역시 없습니다. 누구나 히브리서를 읽으면 알게 될 것인데 구약의 율법과 성막과 제사와 제사장에 대한 표현이 많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직분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구약의 상당한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했습니다. 이런 능력이 있는 분이 썼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데 대해서 잘 설명하신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96.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구일까?
조경철 ・ 2020. 7. 8. 8:57
히브리서는 저자를 말하지 않는다.
저자를 추론할 수 있는 유일한 구절은 “우리 형제 디모데”를 말하는 13:23이다.
여기에 의거해서 바울이 저자라는 추측이 생겨났다.
여기서 말하는 디모데가 바울의 동역자 디모데라면, 저자는 바울이거나 혹은 바울 주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디모데라는 이름은 고대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근거해서 저자가 바울이나 바울의 영향권 하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히브리서 13:23-24는 지금까지의 히브리서 내용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13:23-25는 바울의 서신 형식에 따라서 나중에 첨가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추정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히브리서를 바울 서신의 범주 안에 넣으려고 한 것이다.
13:23-25를 원래의 히브리서에 속한 것으로 본다고 해도, 그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그의 문서 설교가 바울 신학의 영향권 아래 읽혀지기를 바랐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1) 바울이 저자가 아닌 이유
바울의 저작 설은 이집트 교회에서 제일 먼저 생겨났다.
20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자라고 했다.
200년경에 기록된 P46사본은 히브리서를 로마서와 고린도 서신들 사이에 배치함으로써 바울의 저작임을 간접적으로 주장했다.
시내 산 사본(א)은 히브리 10:34의 본문을 “너희가 나의 매임에 함께 고통을 당했다”로 변경함으로써 역시 간접적으로 바울의 저작을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은 동방교회에서 관철되었고, 후에 서방교회도 382년의 로마회의와 397년 카르타고회의에서 그에 동의하였다.
중세 가톨릭교회도 바울의 저작을 확신했다.
그러나 루터나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바울의 저작을 부정했다.
오늘날은 거의 모든 학자들이 바울의 저작을 부정한다.
바울의 저작을 부정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a) 만일 히브리서가 바울 서신이라면, 13개의 바울 이름으로 기록된 바울 서신들 중에서 저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유일한 서신이다.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서신들은 모두가 그 서두에 발신자가 사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히브리서의 어디에도 발신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더구나 히브리서는 “사도”라는 칭호를 바울에게 붙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인다(3:1).
바울에게 “사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는 예수를 사도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진기한 현상이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부르지만,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라고 부른 적은 없고, 또 바울에게는 예수에 대한 그런 호칭은 신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바울이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거꾸로 사도라고 부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b) 히브리서의 저자는 매우 희귀한 헬라어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며, 정교한 문장 구성, 수사학적 기법이나 감정 표현 등은 신약성서의 다른 문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다른 서신들과는 이런 점에서도 매우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c) 히브리서의 신학적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론은 바울의 서신들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는 히브리서만의 독특한 신학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 어디에서도 대제사장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히브리서가 바울이 쓴 문헌이라면,
대제사장 기독론이 오직 히브리서에만 집중적으로 전개되고, 그의 다른 서신들에는 암시조차도 없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d) 이 맥락에서 히브리서 2:3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① 주 예수 --> ② 믿을만한 증인들(예수 자신에게서 직접 들은 사람들 곧 사도) --> ③ “우리” 곧 히브리서의 저자와 수신자들이라는 단계가 구분되어 있다.
바울을 포함한 사도는 위의 두 번째 단계에 속하고, 히브리서의 저자와 수신자들은 세 번째 단계에 속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자신과 수신자들이 사도 이후 시대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예수 사건을 직접 보고 들은 목격자가 아니며, 그러므로 사도가 아니다.
히브리서 저자와 예수 사이에는 목격자로서의 증인들 곧 사도들이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1; 갈라디아서 1:12에서 그가 주님을 직접 보고 들은 증인 곧 사도임을 분명히 밝힌다.
e) 믿음 이해가 히브리서와 바울에게서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은 구원에 참여하는 방식(Modus)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이 나의 구원이 되는 통로와 방식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은 인간의 활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따라서 바울에게는 “믿음을 통해서”와 “은혜로써”는 동일한 의미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구원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써 구원의 조건(Conditio)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 따르면, 예수 자신도 믿었다(12:2).
예수가 믿음의 대상이기보다는 오히려 믿음의 행위자이고 모범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16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다.
히브리서가 믿음을 인간의 행위로서 구원의 조건으로 보기 때문에, 믿음을 상실할 가능성을 인정하며 그래서 두 번째 회개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었다.
스스로 믿음을 버린 사람은 다시는 회개할 수 없다.
반면에 바울에게서 믿음은 변덕스러운 인간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상실될 수 없다.
그리스도가 믿음을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인간의 행위이지만, 바울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f) 히브리서의 율법 이해가 바울의 율법 이해와 다르다.
바울에게서는 율법이냐 그리스도냐 하는 날카로운 대립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때 율법은 시내 산 율법, 하나님의 계명들과 교훈들의 총체로서 율법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는 제의적인 율법과 윤리적인 율법의 구분이 없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하며, 그에 합당한 제사를 드려야 하며, 또한 이웃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아담 이래 어느 인간도 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율법의 순종을 통해서는 구원이 없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울의 율법이해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율법에 관해서 다르게 말한다.
히브리서에서 율법은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극복된 율법 곧 주로 제의적인 율법을 말한다.
이러한 율법의 조항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진리로 밝혀진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대속죄일에 지성소에서 행해지는 제의를 통해서 속죄된다고 레위기 16장이 말한다면, 히브리서에서는 이러한 제의는 단지 인간에게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줄 뿐이고, 속죄 자체를 가져올 수는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속죄가 가능하다.
시내 산의 율법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바울과 히브리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진술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g)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버린다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히브리서의 주장 곧 두 번째 회개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는 용서가 깃들 자리가 없다.
이러한 언급을 바울이 했다고 상상할 수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화해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타락한 그리스도인까지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인과 원수를 향한 사랑이다(롬 5:8.10).
그러므로 바울에 의하면, 두 번이 아니라 백 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2) 저자는 익명의 목회자이다.
오리겐, 로마의 클레멘스 그리고 칼빈 등은 저자를 누가복음의 저자와 동일인이라고 했으나, 터툴리안은 바나바가 저자라고 했다.
히브리서 13:23이 “권면의 말씀”을 말한다면, 이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나바의 이름이 상기되기 때문이다(행 4:36).
그러나 “권면의 말씀”은 설교를 말하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저자의 이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아볼로가 저자라는 주장도 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학식이 높은 사람이었다(행 18:24이하).
아볼로는 바울과 독립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디도서 3:13에 따르면, 아볼로는 바울 권역과 연결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아볼로가 저자라는 가설이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확실하다고 할 수 없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저자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면 히브리서가 저자를 말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는 1인칭 복수 “우리”가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오리겐이 말한 바와 같이 누가 이 문헌을 기록했는지 알고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누가 기록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히브리서의 익명성을 신학적으로 의도적인 것으로 본다. 히브리서의 신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저자가 아니라, 신학적인 내용이 중요하다.
저자는 구약성서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구약성서에 대한 헬라주의-유대교적인 해석 전승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학적인 헬라어 저술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교회의 스승이며(6:1-2; 또 5:12; 13:9도 참조),
동시에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서(1:2; 2:1.3)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해석하여 믿음의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도우려는 목회자다.
그는 아마도 헬라주의 유대교에서 교육받은, 사도 이후 시대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에 대하여 이 이상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96.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구일까?|작성자 조경철
윗분의 모든 부분을 그대로 수긍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잘 정리를 해 주셔서 많이 배웁니다. 단지 바울의 율법관에 대해선 조금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히브리서의 율법의 내용이 저는 별로 차이가 없고 바울의 논하는 폐지되었다는 율법은 히브리서의 율법 즉 제사와 관계된 율법으로 저는 이해를 하고 늘 이렇게 이해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면 모든 율법 중에서 지키지 않아도 되는 율법은 제사와 관계된 율법, 음식과 관계된 율법이 주로 될 것이고 나머지 모든 율법은 지금도 모든 믿는 사람이 지켜야 하는 천국 백성의 법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외에는 모든 부분의 설명이 너무나 잘 정리를 하셔서 크게 도움이 됩니다. 특히 아랫부분은 위의 글에서 다시 강조하기 위해서 다시 인용을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어떤 사람의 설명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저자는 구약성서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구약성서에 대한 헬라주의-유대교적인 해석 전승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학적인 헬라어 저술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교회의 스승이며(6:1-2; 또 5:12; 13:9도 참조),
동시에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서(1:2; 2:1.3)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해석하여 믿음의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도우려는 목회자다.
그는 아마도 헬라주의 유대교에서 교육받은, 사도 이후 시대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에 대하여 이 이상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제가 히브리서를 읽고 정리를 하는데 어떤 인물이 갑자기 떠올라서 그분에 대한 설명이 있는 모든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성경의 본문을 보시면서 히브리서 저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행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개역개정)
24. 한편 에페소에는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와 있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구변이 좋고 성서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도하는 것을 들은 브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27. 에페소의 교우들은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그를 격려하며 아카이아의 신도들에게 그를 환영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아카이아에 도착하여 이미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도가 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서를 근거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떳떳하게 증명하여 유다인들을 여지없이 논박했기 때문이다. (공동번역)
저는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과 정말로 완벽하게 일치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성령세례 혹은 성령의 임함에 대해서 일치된 견해도 없고 그리고 성령세례에 대해서 너무나 세례를 받을 때 받는다는 주장이 많고 사도행전과 똑같이 성령을 받을 수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강하게 설명을 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토레이 신부님은 저와 똑같이 주장하심) 이 부분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사도행전의 세례에 대해서 정리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그리고 요한의 세례, 그리고 성령의 세례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다가 아볼로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볼로는 아시는 바와 같이 요한의 세례만 아는 분이십니다. 아마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이며 성경에 정통했다고 하는데 이는 구약 성경에 정통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고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열성을 다해서 전하고 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배운 아굴라 브리스길라가 데려다가 주의 도를 더 정확히 풀어서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유대인이면서 바울과 함께 천막 일을 하는 분이고 아볼로는 구약학자요,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아시고 가르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학자를 천막 일을 하시던 분이 성경을 풀어서 가르칠 수가 있습니까? 이 부분이 바로 성령에 대한 부분입니다. 아직 성령세례를 모르고 경험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구약에 대해서 잘 알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그러나 성령은 받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와 당시의 사도의 사역은 믿지 않던 분께 예수님을 전하는 일과 함께 똑같이 중요한 일로 예수님의 세례만 알고 혹은 아볼로와 같이 요한의 세례만 아는 분들께 성령세례가 또 있다고 가르치고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도표를 보시겠습니다.
저는 성경에는 표현된 내용이 없지만 이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성령세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바로 순종해서 성령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즉 이들 부부를 만나고 나서 아볼로는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개역개정)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미군부대에서 근무 중에 20세 된 유대인 미국 군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늘 전도를 했기에 이 젊은이에게도 전도를 하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제게 소개를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유대인을 전도를 해 하는 마음이 오면서 스스로 포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볼로가 성경으로써 예수를 그리스도를 증언했다는 것은 이제 성령께서 임하셔서 아볼로에게 능력을 주셨고 이에 능력의 말씀이 나갔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힘 있게 유대인의 주장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주장이 무엇입니까? 율법이고 제사이고 예수님은 구세주가 아니다라는 말 아닙니까? 이런 주장을 이길 말이 바로 우리가 읽고 배우고 있는 히브리서의 내용이 아니면 어떤 내용이겠습니까? 제가 지금과 같이 히브리서를 조금 배우고 그 히브리 군인을 만났더라면 할 말이 있었을 것인데 아쉽게도 그때는 제가 말문이 막히고 어떤 내용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오늘날에도 믿지 않는 유대인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귀한 말씀이 되고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너무나 귀한 말씀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말씀도 구약의 이해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니 얼마나 구약의 공부가 중요하고 율법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지 잘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후의 아볼로의 행적도 또 검색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행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크게 유대인을 이기며 사역을 하고 있을 때 바울 사도는 에베소에 가서 역시 요한의 세레만 아는 사람을 만나서 성령의 세례에 대해서 소개하고 안수하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린도전서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고린도전서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린도전서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린도전서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고린도전서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다시 아볼로에 대한 성경 말씀을 보니 고린도 교회에서 아볼로는 바울과 같은 사역자로 인식이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고 바울조차 자신은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고 하는 것을 통해서 아볼로의 사역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볼로의 추종자가 고린도 교회에서도 어느 정도 있었음이 보여집니다.
고린도전서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디도서 3: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그리고 나중에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로 가라고 하니 이를 많이 권했지만 아볼로가 가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고 디도서엔 율법교사로 소개가 되어 있는데 교회 속의 율법학자의 일이 무엇입니까? 율법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서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내용을 알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속의 율법과 복음의 이해가 아직 부족한 분들에게 전한 내용이 무엇인지 또 알 수가 있는데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힘 있게 공중에게 예수님을 전해서 유대인을 이긴 사람이 누구이며, 또 교회 속의 유대인을 율법의 설명을 통해서 예수님을 잘 설명한 교사가 누구인지 밝혀지고 있으니 이분이 바로 아볼로입니다. 문득 제가 히브리서 공부하면서 떠오른 인물이 아볼로이며 이 아볼로에 대해서 성경 구절을 검색하고 또 귀한 분의 잘 설명된 글을 보면서 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가 있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요, 성도의 합력인 줄로 믿습니다. 이 아볼로보다 더 히브리서에 적합한 인물이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어떤 분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없다면 아볼로가 히브리서의 저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저는 봅니다. 저는 참고를 성경학자도 신학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사람이며 목사로서 세상에서 일반일을 하면서 믿는 분, 믿지 않는 분들의 틈 속에서 믿는 분들의 하나 됨을 기도하고 믿지 않는 분들의 회개를 간절히 역시 기도하면서 하루하루 영적인 전투를 쉬지 않고 있으며 모든 분들이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위해서 늘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를 보며 늘 웃으시는 우리의 선생님이시며, 주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