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큰 바위 얼굴’은 누구인가?
-영화 ‘사조영웅전-항룡십팔장’
내가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물론 초등학교 시절에도 마을까지 영사기를 들고 와서 틀어주는 영화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저축 장려, 산아제한과 같은 계몽영화였다. 중학교시절 처음 본 영화는 ‘증언’이라는 반공영화였다. 1970년대만 해도 교육청에서는 종종 정부시책과 부합되는 영화를 단체 관람시켰다.
중학교가 있던 비인면소재지에는 ‘비인극장’이라는 영화관이 있었다. 100명 남짓 들어가는 작은 극장이었는데 그것도 영업이 잘 안 돼서 비워두기 일쑤였다. ‘증언’을 볼 때도 오랫동안 비워뒀다가 학교 측 요청으로 잠시 개방한 것이었다. 비인극장은 공간은 좁고 화면은 작고 영사기는 매우 불량했다. 더운 초여름 우리는 100명이 정원이었던 영화관에 200명쯤 들어가서 쉴 새 없이 필름이 끊어지는 영화를 땀을 뻘뻘 흘리며 봤다.
아버지의 성화 덕분에 고향 근처에 있는 장항읍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버스통학을 해도 1시간 30분 넘게 걸려서 나는 친구와 학교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고등학교가 소재한 장항에는 극장이 두 군데나 있었다. 장항극장과 중앙극장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학교와 자취집에서는 중앙극장이 가까웠다. 당시만 해도 학교의 허락 없는 극장 출입은 불법(?)이라 학생부 선생님들이나 선도부원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정학을 받았다. 하지만 모처럼 근대문물에 눈뜬 나에게 처벌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무협지나 무협영화를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 영화계는 두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할리우드 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홍콩무협영화였다. 나는 모든 영화를 좋아했지만 굳이 한 쪽을 선택하라면 무협영화 쪽을 더 좋아했다. 특히 소림사 계통의 정통무협을 좋아해서 ‘소림통천문’, ‘소림사 흑표’, ‘소림사 18나한’과 같은 영화를 즐겨 봤다.
학교에서도 종종 단체영화를 봤다. 전교생이 학교에서부터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영화관까지 20분씩 걸어가서 관람했다. 단체관람영화는 할리우드영화나 반공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스티브 맥퀀이 주연한 빠삐용, 안소니 퀸이 나온 ‘타워링’이라는 재난영화가 기억에 남는다.
배고팠던 대학시절에는 심야영화를 즐겨 봤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방배동 근처에는 가수 조하문씨가 운영했던 ‘방배예술극장’이 있었다. 빌딩의 지하 3층에 작은 상영관 두 개로 운영했는데 심야극장인데다 동시상영관이었고 값이 싸서 자주 드나들었다. 동시상영관에서는 한물 간 영화들을 틀었다. 필름영화시절이라 전국순회상영을 마친 필름들은 상처투성이였다. 종종 끊어지기도 했고 화면 한쪽에서 치지직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동시상영관을 통해 개봉관에서 보지 못했던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었고 굶주린 문화욕구도 채울 수 있었다.
고전영화는 텔레비전에서 시청했다. 1970, 80년대에는 주말이면 KBS나 MBC에서 ‘명화극장’, ‘주말의 명화’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주로 고전명작을 더빙해서 내보냈는데 정작 영화보다 사전에 영화를 소개하는 평론가들의 멘트가 재미있었다. 시골집에 있을 때는 벽장 속에 감춰진 텔레비전으로 고전영화를 많이 봤다. 당시만 해도 잘 생긴 남자를 보고는 ‘신성일 같다’라든가 ‘알랭 드롱 닮았다’라고 말했는데 미남의 대명사 알랭 드롱의 ‘태양은 가득히’도 명화극장에서 봤고 지금도 좋아하는 그레고리 팩의 ‘로마의 휴일’, 비비안 리의 ‘초원의 빛’, 도 명화극장에서 봤다.
1990년대 전후 비디오테입이 보급되면서 집안에서도 손쉽게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파트단지나 골목 어귀 어느 곳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결혼하고 가정이 안정되면서 ‘지나간 비디오테입’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가 됐다. 내 책장에는 수많은 역사책과 함께 비디오영화 테입이 늘어만 갔다. 그것을 모아 ‘영화로 떠나는 역사여행’같은 대중강연도 진행했다. 하지만 2010년대 전후 디지털시대가 보편화되면서 비디오테입은 애물단지가 됐다. 내가 애지중지하던 비디오테입도 기쁜어린이도서관에 기증했다.
비디오테입을 처분하고부터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 소장한다. 요즘 영화들은 대부분 용량이 커서 넉넉한 외장하드 두 개에다 따로 보관하고 있다. 시중에 나오는 따끈따끈한 영화들은 대략 1만 원정도 한다. 1만 원짜리 영화는 소장하거나 당장 시급히 봐야할 영화들은 아니어서 보통은 2, 3년 동안 꾹 참고 기다린다. 그러다보면 슬그머니 값이 내려간다. 출시된 지 오래된 영화들은 명작을 제외하고는 개 당 1천원쯤으로 할인해서 파는 영화가 많다. 영화선택의 기준은 역사영화, 음악관련 영화, 스포츠관련 영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영화 순이다. 중국 무협영화도 가끔씩 다운받는다.
오랜만에 내 영화창고에서 영화를 한 편 꺼냈다. 날씨도 덥고 기분도 전환할 겸 해서 고른 영화가 김용의 ‘사조영웅전-항룡십팔장’이다. 김용(진융)은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소설가다. 1972년 ‘녹정기’까지 모두 15편의 작품을 냈는데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등 모든 작품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김용의 소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나라에서 출간됐다. 판매량도 1억 부가 넘고 설산비호 같은 작품은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김용 작품은 내용도 스펙타클하지만 철학을 담고 있어서 감상 후 여운이 많이 남는다.
‘사조영웅전’의 배경은 송원(宋元) 교체기다. 송(宋)의 정치가 흔들리면서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민중들은 난세가 닥치면 미륵이나 애기동자와 같은 영웅을 기다린다. 난세의 영웅임을 자처하는 인물들도 속출한다. 어떤 이는 재력으로, 어떤 이는 학문으로, 또 어떤 이는 무력으로 영웅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은 야심만만하고 헛된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말한다. 영웅은 사조영웅전의 주인공 곽정처럼 때론 순박하리만큼 정직하고 뜻이 곧으며 자신이 가진 달란트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조영웅전의 주인공 ‘곽정’에게서는 ‘바보 이반’의 냄새도 나고 호오도손의 ‘큰 바위 얼굴’의 모습도 엿보인다. 김용은 ‘이반’같은 정직한 바보만이 난세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202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