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중곡 둑방길을 따라 (고향길 걷기 1)
총 길이 : 약 5km, 구간: 신호1교-신호교-중곡동 덕산아파트-다나카 농장-MP 다리- 임전마을-효촌마을-연효교 효촌교-죽토교-죽토1교-죽전교
중곡동 신호 1교에서 출발한다. 일반인들은 이 다리가 신 호1교인지 잘 모른다. 그냥 오비가는 다리로 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고현항을 매립하고 중곡동과 연결하기 위해 다리를 공사 중에 있다. 금년 8월쯤 완공되면 장평에서 연초와 중곡동으로 통행하는 이들은 모두 이 다리를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연초~중곡 둑방 길의 특징 중의 하나는 MP 다리에서 신호 1교까지 오는 산책길은 소도 비 쪽으로 가는 길은 인도가 없고 그 반대쪽인 덕산아파트 쪽에만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전 구간이 나무테크로 조성되어 걷기에 편하다. 길이 비좁아 파워워킹 하기는 불편하지만, 하천을 따라 산책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김복율 씨 증언. 1970년대 이전에는 자기 집과 술도가 두 집이 있었으며 그 인근에 10여 채의 집이 있었고 작은 부두에는 선창이 있어 부산, 통영 가는 배가 있었기에 연초 사람들과 수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고깃배, 모래내, 옹기 배, 소금 배, 장작 배, 가축을 싣고 다니는 등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제법 모앗다우.... 이런 추억이 깃던 중통골은 나중에 中谷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런 추억이 잠들어 있는 중통골(중곡)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폭이 200m 정도인 하천만 민물과 썰물이 교차하고 있다. 나무테크를 따라 한동안 가노라면 수월 천과 만나는 지점에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다온교라 하는데 야간에 특히 아름답다. 다시 100m 가면 적은 소공원이 나온다.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고, 수월 배수펌프장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진짜 둑방 길이다. 폭은 3m 정도이며 6m 간격으로 벚나무가 심겨 있다. 곳곳에 운동기구가 한두 개 설치되어 있고 아래쪽으로 농로가 있어 일반인도 걸어갈 수 있게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고형매립지-중곡동 연결나리 (인도교) 신 고현매립지-중곡동 연결다리 (차량용)
왼쪽은 연초 천이고 오른쪽은 다나카 농장이다. 일본 강점기시대 1924년부터 1930년까지 일본이 다나카 씨가 매립한 장소를 말한다. 현재 임전 앞과 해명 앞 개벌을 말한다. 일부는 농사를 짓고 일부는 건물이 들어선 곳도 있다. 옛 토박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활한 갯벌이 이었는데. 해조류인 감태와 조개류와 숭어 등이 많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오비 쪽 사람들은 작은 어선들을 가지고 어업활동을 했다. 지금은 한 척의 배도 없다. 둑방 길 남간 쪽으로는 간간이 게시물이 있다. 황새, 기수 식물, 삵, 갈대 등 그러나 보는 이들은 없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라 다양한 물새들이 보인다. 백로, 왜가리, 청둥오리,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흰죽지, 가마우지 모인다. 철새 공부가 되는 곳이지만 새들을 관찰 할 수 있는 망원경 하나도 없다, 어떤 이는 담박질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모을 부르르 떨며 물방울을 사방으로 날려버리기도 한다. 물갈퀴로 유유히 헤엄치는가 하면 불안을 느꼈는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반사 신경이 뛰어나다. 중곡동 덕산아파트 다리( 다온교)
오른쪽으로 바라다 보니 깨밭골(임전)마을이 보이고 그 뒤 산인 약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전에서 약 30분 올라가면 약수봉 정상 부분에 돌탑이 420여 개나 있다. 장관을 이룬다. 매미성은 대우조선 다니는 신순삼씨가 20여 년 쌓아 거제도 명물을 만들었는데, 이곳도 그에 견줄 바는 아니나 그 정성이 대단하다. 산 정상에는 화단을 만들어 봄이면 꽃, 동산을 이룬다고 한다. 벌써 MP 다리(연초교)에 도달했다. 1952년 5월 7일 ‘돗드’ 준장이 친공 포로에게 납치되었을 때 이 사건은 세계를 경악하게 하였습니다. 포로들은 온갖 무리한 요구를 들이대며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등 전쟁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 다리 위에 소개된 주민의 출입을 통제하는 유엔군 헌병검문소가 설치되었으며 일명 MP 다리가 되었습니다. ◎ MP: 군사경찰(헌병)
MP 다리 옆에 돌다리가 있는데 여기에 멸종위기 2급인 기수갈고둥이 서식한다. 겨울이라 볼 수 없는데 봄부터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오른쪽으로 가는 길은 하천 변으로는 길이 없고 엉장위로 차로로 나무테크가 있어 걷기에 편리하게 되어있다. 다시 둑방 길로 들어서면 효촌마을이다. 효촌마을이란 이 마을 이돌대란 사람이 효자상을 받아 孝子旌門이 세워져 효자문이라 하였는데 그 후 효촌이라 바뀌었다. 200년대까지만 해도 39호 중 15호가 옥 씨로 옥 씨 집성촌이다. 제16대 연초면장 옥두석씨의 아들 옥영상 씨가 동기생이기에 정감이 가는 동네이다. 효촌교를 지나 합수덤벙(합수천)에 이룬다. 이곳은 다공 천과 송전 천이 합치는 곳이다. 이어서 죽토교를 통과하면 열려 천과 열려 비가 보인다. 정자가 있고 열려비(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2~3년 전에 설치한 인공폭포가 있어 눈 즐거움을 더해준다. 열녀정려비[烈女旌閭碑]란 열녀를 기리기 위하여 그 행적을 새겨 세운 비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열려는 고사하고 남편 수난 시대이다. 죽전교 여기가 연초~중곡 둑방길의 종점이다. 되돌아가다. 죽전(竹田)이란 마을은 옛 이름은 ‘대밭몰’ 대밭늘‘이다. 옛날 60가구 중 40가구가 윤 씨다. 우리 할아버지 큰집 고무가 대밭날로 시집갔는데 아들 4명에 딸 3명이었는데 아들 4명 중 3명이 서울대학교를 나왔으니 천재 집안이라 할 수 있다. 윤개금 교장 선생님 집안도 무시하지 못할 집안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그 집안에서 똑똑한 사람이 있었는데 21살에 부산대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연좌제에 걸려 큰 인물이 못되었다고 한다. 몇십 년 전 간첩단 사건으로 큰 곤욕을 치른 동네이기도 한 곳이다. 연초 관암마을... 육각정 폭포 열려비(정려비)
열려촌 주변을 관암마을이라 하며 중심지다. 연초면사무소와 연초농협이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을 冠岩마을이라 하는데 이는 연초 재건학교 뒤편에 갓처럼 생긴 마을이라 하여 관암마을이라 이름을 지었다. 1940년까지는 15호 정도가 살았으며 현재 농협이 있던 장소에는 2가구가 살았는데 이 마을이 외진 곳이라 하여 西 間島 마을이라 불렸다. 현재 농협이 있는 이 주변에는 6·25전쟁 시 피난민으로 각종 시설물이 들어섰다. (우유 배급소, 목욕탕, 연초 항공학교, 함흥 중·고등학교, 홀하우스, 양공주 촌, 연초극장, 판자촌, 버스생산공장, 콩나물공장, 보건진료소 등). 하천변에는 극장이 있어 1950년대 ~1960년대 여기에 천막을 치고 무성영화를 상영했다. 스크린만 돌아가고 소리는 변사가 혼자서 다 했다. 변사는 “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 오빠, 잘돼서 꼭 돌아와야 해요. ‘그래 이 오빠만 믿어라. 이어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야외극장 앞에서 표를 받는 사람은 6·25전쟁 때 부상 당한 상이군경이 갈고리를 내보이며 과시를 한다. 돈이 없을 때는 천막 밑으로 들어가다 몽둥이 듬질을 당하기도 했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연초초등학교 앞에 1,000여 평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흥남철수작전으로 북한 피난민이 거제도에 거주하게 됐고 포로수용소 주변에 무질서하게 난전이 형성되자 돗드 준장이 장사를 할 수 있는 일정한 구역을 정해주었는데 이 거리를 상인들은 ‘돗드시장’ 이라 불렀고 자연스럽게 도떼기가 됐다는 설이다. 가까이 돗떼기 시장... 저 멀리 재건학교 터 연사와 효촌마을 앞에 있는 Y교
이후 피난민들은 거제를 떠나 주로 부산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억지일 수는 있지만 도떼기시장은 돗드 준장이 정해준 거리시장이라는 말에서 변형되었으며 부산 자유시장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거제에 있는 돗드시장처럼 북적거린다고 해서 도떼기시장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믿거나 말거나? 지금도 추억을 떠 올리면 이곳에서 구입한 담요가 2000년대 초까지 우리 집 고스톱 깔판으로 사용되었다. 각종 군복과 깡통(캔) 등 포로들에게 지급된 군수물자 들이 수없이 흘러나와 유통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둑방길을 걷는다. 저 멀리 연초초등학교와 옛날 재건학교 자리가 보이고 옥은숙 집 뒤로 갓바위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어서 마주하는 곳이 Y자 다리 모양의 인도교이다. 죽토와 연사, 효촌, 임전의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며칠 전 팔뚝만 한 잉어를 잡았다고 자랑한다. 옛날에는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접하는 지역으로 다양한 고기들이 서식했다. 1995년쯤인가 거제도 생태조사를 하면서. 변영호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변 선생님은 잠자리와 거제도 민물고기 등을 조사하여 전국대회 최우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분은 조사에 의하면 연초 천에는 40여 종의 다양한 민물고기가 살고 있다. (갈겨니, 붕어, 송사리, 버들치·치리, 은어, 빙어, 숭어, 사백어, 뱀장어, 개볼락, 망둥이,남방동사리)
연초천의 기수고둥
변영호 선생님이 처음 발견한 남방동사리
연초 천의 발원지는 도천골 제석산이다. 제석산 물줄기는 오면서 율촌 산과 대금산의 물줄기를 받고 천곡천의 물줄기를 받아 이목 저수지가 되고 다공 남녀 산과 송정 지애산과 야부 삼봉산과 와야산이 합쳐 죽 토 천이되고, 연사 석름봉 국사봉 물을 받아 효촌 와야산과 임전 약수 봉의 물을 받아 마지막에는 중곡 천이된다. 옛날에는 임전 마을 앞 해명 자이 아파트까지 갯벌이어서 다양한 어패류들이 서식하고 민물고기와 바다고기가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온갖 바다생물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총길이는 15km 정도이다. 고현항의 옛사진...툭 티어 나온 산을 깎아 중곡동을 만듬
중곡동(중통골) 옛사진...( 저 멀리 임전마을.. 가까이 중통골마을(집이 서너채있었다.)
우리 눈에 자세히 보이지 않으나 연초 천에는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며 생태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주민들이 버리는 오염물질 때문에 1~2급수는 아니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맑은 시냇물이 될 것이다. 우리 주민들이 실천해야 할 사항은 무엇보다 세탁할 때 무작정 집어넣는 첨가제나 주방 설거지하면서 사용하는 세제 등을 줄여나가야 하고, 그릇을 씻는 행주도 천연수세미를 사용함이 어떨는지??? 연초 MP 다리 오기 직전에 하천에 돌다리가 있다. 이곳에서 둘러오던지 다리 위로 오면 된다. 오른쪽 소오비 쪽으로는 인도가 없어 다니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오른쪽 오던 길로 가야 한다. 현재 잘 다루어지지 않지마는 자동차 연료에서 나오는 매연보다는 타이어 마찰로 생기는 고무 가루가 자연을 심하게 오염시킨다고 한다. 자귀나무가 있는 중곡동...무지한 거제시에서 2년 전 베어 버림 중곡동의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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