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인터넷 유튜브에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는 '한자 창제 주체가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이다' 라는 동영상이 우후 죽순으로 올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한자의 모태가되는 갑골문이 은(殷, 商)나라 문자이고 은나라는 동이족이고 조선땅 한민족이 동이족의 후손이기에 결론적으로 한민족의 선조뻘인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논리이다.
민족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국뽕'식 논리인 셈이다. 이는 아전인수이자 견강부회(牽强附會)다 . 또는 왜곡이다. 그 단적인 예는 중국 본토의 한자의 역사가 가장 길고 문헌도 최고로 많다는 점이다. 한국이 동이족의 분파일지는 몰라도 정통을 주장할 수는 없다. 가령 수천년이 넘는 요.순 임금 시대의 치적을 다룬 「서경」이라는 문헌은 중국에서 작성되어 전승되어 오는데 비해 한반도의 한자 사용 문헌은 그래봐야 중국의 한(漢)나라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자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갑골문자가 아무리 한자의 기반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점치기 위해서 거북이 배딱지나 소뼈의 견갑골 등에 새겨진 이른바 '書契(서계)' 가운데 '契'에 해당할 될 뿐이다('주역 계사하전 제2장' 강의 참조)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 「서경」을 통해서 볼 때 황하문명권에서 천자의 도읍지를 중심으로 이뤄진 대륙 땅을 화하(華夏)라고 일컬은 최초의 문헌은 周書 武成편으로, 중심부와 변방까지를 아우르는 '華夏蠻貊(화하만맥)'이 단 한번 나오고, 전체적으로는 '九州, 九有'로 통용되었다. 오늘날에 중국신문에서도 '九有'와 함께 '华夏(華夏)'가 쓰이고 있다.
表意文字인 한자는 중앙의 천자권력이 안정되어 있던 堯舜과 夏殷周시대에는 통일된 문자정책이 안정적으로 이뤄졌과, 주나라의 중앙권력이 쇠해진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국별로 문자는 물론 율도량형까지 조금씩 달라졌다가 통일 진(秦)에 이르러 6, 7백년만에 다시 문자와 율도량형의 통일이 이뤄졌고, 한(漢)나라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정비를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불려지는 '한문(漢文)' '한자(漢字)'라는 문자이다. 따라서 '한자(漢字)'를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하는 논리는 비약이다.
앞서도 살폈지만 갑골문자가 '한자'의 본류는 아니다. 그 갑골문자라는 것도 지금의 '한자(漢字)'에 이르기까지 많이 변형되어 문자창제단계와 과정 파악에는 참고가 되지만 그 자체를 漢字창제의 정통성으로 삼을 수는 없다. 앞서 요순시대 뿐만 아니라 그 앞선 시대의 기록(기호 및 문자)들이 있었다.
더욱이 한(漢)나라 때 주역과 음양오행이라는 기본 원칙과 원리를 적용하여 갑골문자를 비롯한 여러 문자들이 혼용되어 오던 한자를 대대적으로 정비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본토에 있는 동이족과 화하족 등이 합쳐져 漢族이 되었기 때문에 한자의 주체는 당연히 중국 본토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갑골문자만을 한자 창제 어원으로 보는 주장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게 인용되는 허신의 「 설문해자」는 주로 진(秦)나라가 문자통일한 '소전체'를 토대로 하되 대체로 음양오행 원리와 이치를 적용하여 파자해 하고 있다. 즉 갑골문자를 한자의 어원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러니 갑골문자를 동이족이 만들고 한(韓)민족이 동이족의 후예라고 해서 한자를 한민족의 선조가 만들었다면서 마치 한 (韓) 민족에게 한자의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억지이다. 그리고 동이족의 후예가 한민족만인 것도 아니잖는가?
한자문화권에서 한자라는 문자의 보편적 사용을 통해 문화적 문명적 동질성을 갖고 서로 간의 공감대와 교류를 확대하여
양국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더욱 주요한 과제이다. 이들은 무조건 우리가 만든 것이라며 우월성을 내세우지만 그렇다면
한글 전용으로 한자를 거의 폐기처분하듯이 내버려 놓고는 한자가 우리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https://youtu.be/L5Y4oShcd4o?si=KNMOoUJUcolIN1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