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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6월12일-13일(土日)晴 ▲▲▲백두대간 39차(성삼재-노고단-삼도봉-칠선봉-세석산장-거림)
해봉산악회(47명)
♠ 참 고
*노고단(老姑壇)
개 요
전남 구례군 산동면(山洞面)과 토지면(土旨面)의 경계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높이 1,507m. 천왕봉(1,915m), 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봉의 하나이다. 신라시대에 화랑국선(花郞國仙)의 연무도장
이 되는 한편, 제단을 만들어 산신제를 지냈던 영봉(靈峰)으로 지리산국립공원의 남서부를 차지한다.
노고단이란 도교(道敎)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ꡐ할미단ꡑ이며,ꡐ할미ꡑ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仙桃聖母)를
일컫는 말이다.
산정부에 가까운 1,100~1,200m 높이에는 원추리 꽃으로 덮인 광활한 고원이 펼쳐져서 부근이 좋은 피서지를 이루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서양사람들의 별장지가 되었다. 노고단의 경관은 지리산이 그렇듯이 기봉난산(奇峰亂山)의 경치보다
울창한 임상(林相)과 웅대한 산용(山容)의 경치가 훌륭하고, 정상부에서의 조망이 뛰어나다. 남록 계곡에는 화엄사(華嚴寺)가
있는데, 경내에 각황전(覺皇殿)을 비롯하여 국보․보물로 지정된 전각(殿閣)․석등(石燈)․석탑 등이 많다.
*삼도봉(三道峯)
경남-전남․북 경계기점
종주등반 요충 섬진강 잇는 불무장등 시발점. 경상남도의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의
구례군 등 5개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지리산은 그 구역을 구분 짓고 있다.
그 광활한 지리산 자락은 또한 이들 3개 도, 5개 시․군, 15개 면단위에서 계곡과 산등성이를 기점으로 해 수많은 자연마을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지리산의 역할은 경계로서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이러한 지리산의
특성을 단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산봉우리가 있다. 바로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 짓는 삼도봉(三道峯)이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아주 이름 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삼신봉을 중심으로 한 삼도의 경계선은 대략 이러하다. 경남은 삼도봉-불무장대-통족봉-촛대봉-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
장등 능선을 경계로 해 전남과 구분되며 전북과는 삼도봉-토끼봉-명선봉-삼각고지-영원령-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
로 하고 있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는 삼도봉-반야봉-도계삼거리-만목대-다름재 구간으로 이 경우는 능선으로 경계선을 만들
다 계곡을 건너 다시 능선이 경계선이 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삼도를 나누는 삼도봉의 지명은 그동안 삼도봉이란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
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고 정착된 것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리봉
등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어울린다.
*토끼봉-묘방(卯方)
토끼봉이란 지명이 토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토끼봉으로 불리는 데는 방위 개념에서 비롯됐다.
지리산의 상징적 봉우리인 반야봉 정상에서 정동 쪽에 위치해 있다는 뜻으로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이라해 토끼봉, 즉 묘봉으로 이름 지어진 것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이름 가운데에서 가장 특색
있는 어원에서 비롯된 지명임.
*연하천(烟霞泉)
서정적 느낌의 말을 굳이 해석한다면 '오묘한 대자연(烟霞) 속의 정취어린 샘(泉)'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여기 연하천
과 연하봉(烟霞峯) 등은 지리산악회(전신은 연하반{烟霞伴})에서 명명하였다.
※형제봉
높이 10m가 넘는 두 개의 바위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이 입석바위를 형제바위라고 한다. 옛날 성불수도 하던 두 형제가
산의 요정 지리산녀(智異山女)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버려 지금의 모습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이 바위 옆으로 조금 내려가면 자그마한 동굴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연하굴'이다. 비박하기에 괜찮은 관통굴이다.
연하굴에서 두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나들다가 북쪽사면으로 내려서면 나무뿌리와 모난 돌길이 펼쳐지고 벽소령 공터로
나오게 된다.
※벽소령(碧宵嶺)
벽소령(일명 뱁실령)은 화개면과 마천면을 잇는 작전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종주 등반 코스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곳인데
이정표가 1㎞ 이상의 거리를 두고 동편과 서편에 각각 두 곳 있다.
서편의 벽소령을 '큰 벽소령', '구(旧)벽소령'으로 부르고 동쪽을 '작은 벽소령', '신(新)벽소령'으로 부른다.
벽소령의 샘, 뱁실샘은 구벽소령. 남쪽 소로길을 200m쯤 내려가면 공터에 솟아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초 작전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능선 위로 등반로가 나 있었지만 지금은 넓고 편한 작전도로를 따라갈 수 있다
※선비샘
덕평봉 남쪽 사면을 돌아 내려가면 넓다란 평지와 함께 선비샘이 나온다. 옛날 선비샘 아래 상덕평(上徳坪)마을에는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 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
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 끔 하였다고 한다.
생전에 갖은 고생과 천대 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아온 한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실제로 몇 년 전까지 실현되고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얘기
로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세석평전(細石平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세석고원은 그 둘레가 12㎞, 약 30만 평의 면적을 차지한다. 작은 돌밖에 없는 토양지대라
해서 잔돌평전, 세석평전(細石平田)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식 표기이므로 세석고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매년 5월말~6월초에 만개하는 수십만 그루의 철쭉이 장관인 세석의 식물대는 상,중,하 3대(帯)가 뚜렷하여 식물연구의
좋은 교육장 노릇도 하고 있다.
초원지대인 상대, 철쭉군락의 관목지대인 중대, 그리고 구상나무와 굴참나무의 하대가 등고선별로 분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세석고원의 면모가 드러난 계기는 약 100년전(혹은 300년 전이라는 얘기도 있음) 큰 산불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15세기경 지리산을 찾은 김종직, 김일손 등의 기행문에서도 세석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없는
걸로 보아 타당한 얘기 같다.
세석고원 서쪽사면에 자리잡은 세석산장은 1983년 66평방미터의 규모로 지어졌는데 6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 산장 전에는 고 허우천 씨가 관리하던 구산장이 세석고원 중앙에 위치했지만 지반이 튼튼하지 못해 철거된 바 있다.
*거림[巨林] : 마을이 밀림지대라 하여 거림이라 한다.(국립지리원)
♣ 산행 코스
성삼재(01시30분)-노고단(02시10분)-삼도봉(03시40분)-토끼봉(05시)-연하천산장(6시30분)-형제봉(7시45분)-
벽소령산장(8시27분)-선비샘(9시27분)-칠선봉(10시30분)-영신봉(11시20분)-세석산장(11시40분)-거림(13시45분)
총12시간15분
☞☞☞ 이제 백두대간종주는 막바지의 지리산 구역에 들어선다. 목요일 신문 등산 가이드 란에 무박2일 지리산종주라
고 소개한 탓인가 이번에도 만원이 되어 출발한다.
남해고속도로에 올라 임대장이 인사말 끝에 본대는 정상적으로 세석에서 거림으로 하산하고 지리종주 할 분과 안대장등
체력이 충분한 사람은 천왕봉, 중산리로 하산하는 두개 팀으로 운영하겠다고 안내방송 한다.
지난번에 촬영한 비디오를 보며가다 왼편으로 야간열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린다.
의령 갈림길에서 조문기 대원과 그의 아버지와 형이 동승하여 초만원이 되어 산행 들머리인 성삼재 도착이 01시20분,
바로 하차하여 관광버스의 헤드라이트의 조명 속에 임 대장의 주제로 인원점검이 끝나자 산행 일정, 집행부 소개와 세석
산장에 12시까지 통과 못하는 회원은 거림으로 하산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01시30분, 상견례를 끝으로 곧 출발한다.
캠코더는 나이트숏 기능으로 전환하여 촬영한다. 등산로를 두고 간이도로를 따라 헤드램프와 플래시를 비추며 속보로
올라간다. 노고단 대피소 앞을 거쳐
02시10분, 노고단에 올라 이제 본격적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이건 등산이 아니라 작전중인 야간 강행군이다.
02시33분, 조대원이 형을 거느리고 뒤따라온다.
02시50분, 플래시 불빛속의 돼지령 이정표를 촬영하고 03시, 임걸령 갈림길 이정표 앞에서 잠시 우유로 목을 축이는데
지리산 종주를 한다는 부산의 ‘극동산악회’선두그룹 2명이 플래시를 번득이며 앞을 지나가버린다.
곧 뒤따라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나선다.
03시40분, ‘반야봉 가는 길’이라고 썬 표지판이 걸린 갈림길에서 간식과 잡담 속에 휴식하고 있는 중간그룹과 만난다.
그러나 그들도 쫓기는 기분인지 바로 일어나 출발한다. 이들을 촬영하며 뒤를 따른다.
04시7분, 은가루를 뿌린 듯 한 별이 방금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깜깜한 삼도봉에 올라 삼각 동판 경계지점 바위위에
처음으로 앉아 휴식을 취한다.
성삼재를 출발하여 2시간37분만이다.
정영길대원이 뒤따라 올라오고 동녘이 희미하게 채색되는 느낌을 받으며 토끼봉을 향해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이제 본격적인 가파른 내림과 오름이 이어진다.
2,3년 전 토끼봉을 올라 삼도봉을 거쳐 불무장등을 탄 기억을 되살리며 아직 암흑천지인 등산로를 불빛만 내려다보고
가다 가물거리는 플래시의 전지를 교환하고
04시30분, 화개재이정표 앞에 선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을 오르며 플래시를 끄고 캠코더로 촬영하며 일출촬영을 기대하며 가쁜 숨을 쉬며 올라간다.
5시2분, 젊은이들이 텐트로 야영하고 있는 해발1522m의 토끼봉에 올라선다.
예상 일출시간이 아직 5,6분이 남아있어 조망이 좋은 지점을 찾는데 적당한곳이 보이지 않아 좀더 걸어보기로 하다
되돌아온다.
적당한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올라선다.
5시10분, 동녘 나뭇잎위로 진홍빛 태양이 솟아오르는 걸
캠코더의 줌으로 잡아 서서히 풀어놓는다.
그리고 바쁘게 캐논을 꺼내어 두어 컷을 촬영하는 행운을 얻는다.
천왕봉의 일출보다는 색조나 장엄미는 떨어져도 토끼봉의 일출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바위위에서 내려오면서 새벽이슬을 먹음은 하얀 산작약꽃을 캠코더에 덤으로 담고 후미를 쫓는다.
얼마가지 않아 극동산악회의 지리산 종주 팀 36명중, 중간 그룹 속에 강산산악회의 이정호 대장을 만난다.
“백두대간 종주가 다음이 마지막이겠네요...”
웃으며 인사한다.
얼마 후 울산에서 왔다는 비만 처녀 등산객이 너무 힘들어 일행과 헤어져 칠불사 쪽으로 내려가려는데 어느 지점까지
가야하는지 묻는다.
토끼봉에서 하산하라고 일렀지만 일행이 좀 무책임한 것 같다.
철주 케이블 가드레인이 쳐져 있는 코스에 노장회원이 힘들게 느릿느릿 올라온다.
6시15분, 해발1588m의 명선봉 이정표(연하천산장 0.6km)를 지나친다.
토사유출방지를 위한 고무깔판을 올라가는데 주변 숲이 잘 보존되어있고 두 줄기 야광나무가 시선을 끈다.
긴 나무계단을 내려가
6시30분,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연하천산장에 도착한다.
우선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인다.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쇠사슬에 묶여있는 어미 애비 진도개 주변에 귀여운 진도개 강아지 네 마리가
재롱을 피우고 있는 걸 캠코더에 담는다.
6시45분, 철망으로 보호하고 있는 ‘주목군락지생태계보존지역’을 촬영하며 다시 움직인다.
얼마가지 않아 우로 조망이 확 트이는 고사목 한그루가 인상적인 곳에서 멀리 능선을 촬영한다.
7시7분, 삼각봉 이정표(벽소령대피소4.2km)를 지나고 오른편 암벽에 자일이 내려져 있는 지점을 거쳐
다시 우로 조망이 트인다.
얼마가지 않아 노고단까지 간다는 스님이 낀 부녀등산객 4명과 마주쳐 인사를 나눈다.
다시 우로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이정호대장과 다시 만난다.
7시45분, 거대한 바위덩이인 형제봉을 마주보고 내려오다 오른쪽으로 돌아
바위 길을 내려가 왼쪽으로 돌아간다.
오른편으로 멀리 삼신봉 능선을 촬영하며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선다.
계속 험난한 너덜지대를 거쳐
8시27분, 오른편의 벽소령대피소 앞을 그냥 통과한다.
화개면과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 마천면으로 연결되는 임도공사로 만든 석축이 오른편으로 보이고
왼편으로 방금이라도 문어져 내릴 것 같은 바위를 쳐다보며 임도공사를 포기한 평탄한 길을 걷는다.
8시52분, 마천면 ‘음정’갈림길 이정표를 거쳐 다시 숲 속 길로 올라간다.
집행부 정영길 대원이 기다리고 있다.
얼마가지 않아 ‘송정환, 강의치, 김충희’라고 쓴 시그널을 발견한다.
앞서 간 송정환 대원이 메달아 놓은 모양이다.
9시27분, 덕평봉 아래의 이정표에 ‘벽소령2.4km’라고 쓰여 있는 선비샘에 도착한다.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빈 우유병에 한 병 가득 물을 채운다.
10시10분, 우측으로 전망이 확 트이는 곳에 잡담을 나누고 있는 극동산악회 회원들과 만난다.
칠선봉과 영신봉 사이로 멀리 촛대봉이 보여 캠코더에 담고 두어군데 된비알을 거쳐
10시30분, 해발1576m 칠선봉 이정표(천왕봉8.8km)를 지나친다.
성장한 분홍색 앵초를 촬영하고 철 계단을 거쳐 자일과 철주 케이블가드레인과 다시 철계단을 올라서니
11시7분, 바위위에 조문기, 정영길을 비롯해 6,7명의 대원들이 휴식을 하고 있다.
우측으로 ‘추락주의’라고 쓴
경고판이 붙어있는데 가드레인 밖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오른편으로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손짓하는데
주 대원이 사탕을 들라며 몇 개를 챙겨준다.
주변을 촬영하는 동안 그들은 출발하고 그 뒤를 이어 쉬지 않고 휘돌아 철계단을 올라 바위위에 올라선다.
전면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영신봉이 우뚝 서있고 그 옆으로 촛대봉과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적당한 내림과 오름을 거쳐 고속도로처럼 넓은 평탄한 등산로가 이어지고
11시27분, 오른편으로 ‘세석대피소0.6km’의 이정표 앞을 지나친다.
전면에 촛대봉아래의 널따란 분지의 세석평전. 녹색 허허벌판이다.
보안공사가 한창인 마사토의 등산로를 거쳐
11시35분,
‘해봉산악회 회원은 세석산장으로 하산 거림으로 진행해주세요.’
라고 쓴 쪽지가 붙은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간다.
컷트라인이 12시에서 11시30분으로 단축된 건가.
잠시 대피소에서 조문기 대원이 세석평전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해 준다.
11시45분, 벌 나비가 모여드는 야생화를 촬영하고 하산 길로 접어든다.
몇 번 촬영하며 오르내려 눈에 익은 길이라 캠코더는 배낭에 넣고
바위길, 너덜 길을 지루하게 논스톱으로 내려간다.
지쳐서인가 끝날 것 같은 바위 돌길이 계속이어지고 약 6km의 하산 길, ‘거림’들머리 매점에 도착한 게 13시45분,
12시간15분의 산행이 끝난다.
좀 전에 도착했다는 주 대원이 평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 비디오를 잘 부탁한다며 찬 물수건으로 등을 닦아주겠다며,
건네주는 시원한 맥주로 몸을 식히는데
내려오면서 발목을 다쳤다는 허 대원과 양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장년회원을 삼능침으로 응급치료해주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조 문기 대원의 형이 왼쪽 다리오금에 통증이 온다고 해 다시 삼능침으로 치료해준다.
모두 통증이 많이 완화되었다는 기분 좋은 소리에 피로를 씻는다.
14시45분, 중산리로 출발한다.
한때 두 회원이 빈다고 임대장이 걱정했는데 뒤늦게 천왕봉으로 올라갔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하고
12명이 계획 밖의 완주를 한 걸 확인한다.
뜻밖에, 도착한 중산리 주차장에서 메아리산악회의 박 대장의 인사를 받는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항문주위가 따가워 하차하는 즉시 계곡으로 내려가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 자연인이 되어 시원하게 씻고 금세 신선이 된다.
16시22분,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부산으로 출발.
산청휴게소에 들려 휴식을 취하고 남해고속도로에 진입하여 한참을 달리다
극심한 정체 속에 뻥튀기기 장수가 고속도로 매연과 열기 속에 삶을 위해 땀 흘리며 누비고
먼저 가겠다고 성급하게 양보 않다가 일으킨 접촉사고에 서로 상대방 탓이라며
핏대를 세우는 광경을 캠코더에 담는다.
다시 휴식을 위해 들린 장유휴게소에서 후미그룹에서 힘들게 올라갔든 한 장년회원이
“왜 세석에서 12시가 안되었는데 천왕봉으로 못 가게 했느냐.”
고 뒤늦게 임 대장에게 벌건 얼굴로 항의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간신히 진정시키고
19시10분, 서부산T/G를 무사히 빠져나간다.
몇 시간을 두고 울분을 썩힌 그 장년회원은 필시 스트레스를 풀려고 지리산 종주를 시도했을 터인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지 못한 조급한 마음 탓으로 돈과 시간낭비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만 안고 돌아가게 된 게 아닐까?
모든 질병은 마음으로부터 왔다 마음으로 치유한다고 했다.
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선 의연한 산처럼 자신의 마음부터 느긋하게 다스려야 할 것 같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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