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호를 펴내면서
간월도
이정옥
그는 물수제비를 잘 뜬다고 하였다
간월도에서 걸어 나오며
그에게 물수제비 한 그릇 먹고 싶다고 말할 걸
아직도 입덧처럼 허하다
목울대에서 머뭇거리던 말말
한 삽 그 섬에 심어 놓는다
얼마만큼을 배워야 모국어를 반짝이게 빚을까
간월도에서 물수제비 한 그릇 탁발한다
바다에 뜬 간월도
한 대접 후루루 마신다
---{애지}, 2024년 가을호에서
나는 ‘물수제비 놀이’를 아주 좋아했고,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물수제비 놀이’를 아주 많이 했었다. 지금도, 가끔씩 잔잔한 강이나 호숫가를 거닐을 때면 그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동그랗고 얇은 돌을 골라 물수제비를 뜨곤 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잔잔한 수면 위에서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며 마치 징검다리를건너 듯이 돌이 날아갈 때 그 짜릿한 쾌감과 흥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정옥 시인의 [간월도]는 ‘물수제비의 본고장’이자 ‘한국 연애시의 진수’라고 할 수가 있다. 그가 애인인지, 단순한 남자 친구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와 함께 간월도를 갔을 때, “그는 물수제비를 잘 뜬다고” 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에는 그 말을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러나 “간월도에서 걸어 나오며/ 그에게 물수제비 한 그릇 먹고 싶다고 말할 걸”하고 후회를 했던 것이다. 물수제비는 단순한 물놀이가 아닌 음식이 되고, 이 물수제비는 연애와 그 연애의 결과인 입덧이 된다. 물수제비를 아주 잘 뜬다는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고, 그가 만든 물수제비를 먹고, “아직도 입덧처럼 허하다”라는 시구에서처럼 그와의 통정 끝에 그의 아이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추억은 때늦은 연애사건을 미화시키고, 그 이루지 못한 사랑을 서해 바다의 ‘간월도看月島’로 우뚝 솟아나게 한다. 간월도는 충남 서산시에 부속된 섬이지만, 서산간척사업 이후, 간조시에는 뭍이 되고, 만조시에는 섬이 되는 간월암看月庵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간월암은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이자 ‘달보기의 명소’이며, 아주 아름답고 유명한 암자라고 할 수가 있다.
이정옥 시인은 간월도에서의 연애사건을 미화시키며, “목울대에서 머뭇거리던 말들”을 제일급의 시인답게 “한 삽 그 섬에 심어 놓는다.” “얼마만큼을 배워야 모국어를 반짝이게 빚을까”라는 소망처럼, 사랑의 씨앗은 모국어가 되고, 이 모국어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간월도]가 우뚝 솟아나오게 된다. 그는 물수제비가 되고, 물수제비는 모국어가 되고, 모국어는 바다에 뜬 [간월도]가 된다. 요컨대 간월도는 나와 그가 연애를 하던 성지가 되고, 따라는 나는 “간월도에서 물수제비 한 그릇 탁발”하여 “바다에 뜬 간월도/ 한 대접을 후루루 마”시게 된다.
말, 말, 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국어, 우리 한국인들의 영원한 모국어의 성지인 간월도----.
간월도는 이정옥 시인의 영원한 사랑의 무대이자 영원한 모국어의 텃밭이다.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물수제비를 뜨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을 보며 모국어를 낳고, 또 낳는다.
이정옥 시인은 ‘간월도의 시인’이며, 그 이름은 [간월도]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기획특집: 논쟁문화의 장’은 아흔 일곱 번째로 반경환 명시감상 {사상의 꽃} 15-16권에 수록된 글들을 내보낸다. 반경환 명시감상 {사상의 꽃들}은 2008년 제1, 2권을 출간하고, 2024년 반경환 명시감상 {사상의 꽃들} 제15권, 16권을 출간하기까지 지난 16년 동안 총 20권에 1,170여 명의 시를 다룬 기념비적인 명시감상이며, 한국문학사의 가장 기념비적인 역작이 될 것이다.
이번 호의 ‘애지의 초대석’에는 정복선 시인과 이병률 시인, 그리고 최병근 시인을 초대했다. 정복선 시인의 시 [담다, 수풍석 뮤지엄] 외 4편과 조동범의 작품론 [채우고 비우며 돌아가고 싶은 길 위에서]와 이병률 시인의 시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과 배옥주의 작품론 {눈냄새의 기록}, 그리고 최병근 시인의 [어머니] 외 4편과 김수이의 작품론 [공들여 지은 빈집의 시학]을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애지의 초점: 이 시인을 조명한다’에서는 김선옥 시인의 [몸을 맡기다] 외 4편과 권온의 작품론 {깊은 여운과 무한한 자유를 선물하는 언어]를 내보낸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두루미처럼] 외 4편을 응모해온 이희석 씨와 [바코드의 비밀] 외 4편을 응모해온 황순각 씨, 그리고 [가방 속 보르헤스] 외 4편을 응모해온 홍정미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저출산--고령화 탓’으로 문학시장과 출판시장이 급격히 붕괴되어가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미래의 앞날이 캄캄하기만 한 이때에 도대체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인간의 자기 위로와 자기 찬양의 최고급의 수단이며, 부디 이처럼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시를 쓰며 미래의 앞날을 설계하고 개척해나가기를 바랄뿐이다.
지난 7월 20일 동학사 풍경(한정식)에서 김명이 시집 {섬, 몽상주머니}, 송영숙 시집 {남자들이여 출산하라}, 조숙진 시집 {우리, 구면이지요}, 김재언 시집 {꽃의 속도}의 출간기념회가 있었다. 최병근 회장을 비롯하여 20여 명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주었고, 김명이, 송영숙, 조숙진, 김재언 시인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지혜사랑과 지혜클래식의 시집들이 속속들이 출간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시집들이 출간 대기중에 있다. {애지} 필자 선생님들과 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애지문학회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무튼 계간시전문지 {애지}와 편집진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고한 걸음으로 ‘애지의 창간 이념과 목표’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
첫댓글 벌써 가을호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군요. 참 부지런하신 주간님 큰 수고 하셨습니다.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