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루병 여인의 완전한 치유
12년 동안 하혈을 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당시 율법에서는 몸에서 피가 나는 것을 부정하게 보았고, 피를 흘리는 사람과 접촉하는 것도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녀와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레위기 15장에는 몸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에 대한 당시의 율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치 문둥병 환자처럼 그녀는 사람들과 격리된 채 12년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녀는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 가진 것을 다 탕진하도록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어떤 명의도 그녀를 고쳐주지 못했다. 그녀의 고통은 포기할 수 없는 희망 때문에 더욱 가중되었다. 육신의 아픔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욱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었고, 살 소망을 잃어버린 여인의 삶은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다름없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예수의 소문을 듣고 집을 나섰다.
어느 날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의 집으로 가고 계셨을 때에
큰 무리가 뒤따라오면서 예수를 밀어댔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
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므로,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하였다.
막 5:24~33 (새번역)
고통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다
그녀는 혈루병이 모든 불행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건강만 회복된다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가진 것을 다 바쳐 의사를 찾아다니며 낫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언제나 헛되게 무너졌다. 다시는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매일 밤마다 죽고 싶다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로 나아간 것은 죽기를 각오한 결단이었다. ‘오늘 내가 죽든지 살든지 그 끝을 보리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가는 도중에 그녀는 여러 번 넘어지고 사람들의 매정한 손길에 거부당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고통이 그녀를 계속해서 예수님에게로 인도했다. 고통이 그녀에게 용기를 내게 했고, 수치를 견딜 수 있는 담대함을 주었으며, 오직 하나의 구원만을 바라보게 하였다.
멀리서 예수님과 그 일행이 걷는 것을 보고 따라가는데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만 같은 믿음이 강하게 들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예수님의 옷에 달린 옷술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것은 율법을 상징하기 위해 매달려 있는 옷술이었다. 평생 율법으로 정죄받아 온 그녀가 그것을 잡는다는 것은 놀라운 믿음이다. 그녀에겐 더 이상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예수님의 옷자락만 잡아도 내가 살리라는 강한 믿음만이 그녀를 이끌었다. 드디어 그녀는 예수님께로 다가가 옷술을 만졌고 순식간에 몸의 증상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믿음이 현실이 되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뻤지만 아무런 내색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발길을 돌려 조용히 집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그녀를 찾았고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지만 이미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았기에 피할 방법이 없음을 알았다. 사람들을 지나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 그대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예수님께 엎드렸다.
여자의 고백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사람들은 제가 부정하여 저주를 받았다고 하고
가족들은 저를 부끄러워하여 외면하였습니다.
열두 해 동안 가진 것을 모두 탕진했지만
그 어떤 의사도 저의 병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살아 있지만
제 삶은 죽은 자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 이웃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죽기를 작정하고 마지막 힘을 다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저주받은 몸으로 차마 주님을 얼굴을 뵐 수 없었습니다.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멀리서 주님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얼굴을 가리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제가 나을 것만 같은 마음이 간절히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저는 제 마음의 소원을 따라
모든 두려움을 헤치고 예수님께 다가가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평안함이 밀려와서
제 마음의 모든 두려움과 아픔을 깨끗하게 씻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따뜻한 물처럼 제 온몸에 퍼졌고
열 두해 동안이나 저를 고통스럽게 했던 몸의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12년 동안 그녀를 괴롭혀 온 몸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온갖 멸시와 모욕, 버림받음의 상처와 깊은 원한까지 한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급히 가던 발걸음을 멈춰 찾으셨다. 예수님은 빛으로 그녀를 불러 내셨고, 그녀가 말하지 못한 내면의 깊은 고통까지 헤아려 보셨다. 그리고 그녀를 구원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막 5:34 새번역)
그녀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다. 고통은 그녀를 예수님께로 이끌었고 모든 두려움에서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 죽을 만큼의 고통이 그녀에게 영원한 생명을 안겨주었다. 사람은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다가간다. 그러기에 슬픔과 고통은 영혼에게 유익하다.
사람들은 고통의 이유를 환경에서 찾지만, 인간의 모든 고통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되고 내면의 변화로부터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완전한 회복과 치유는 오직 하나님만의 주권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생명과 평안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다. C.S. 루이스는 “천국을 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하면 둘 다 잃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혈루병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받아 온전한 치유를 경험했다.
우리는 육신의 가시를 안고서도 우리는 천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어떤 질병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오늘도 상처 입은 자녀들을 완전한 치유의 길로 인도하시며 남모르게 눈물 흘리는 자녀들을 찾으신다.
세상에 많은 꽃들이 있지만
너는 눈물 속에서 피어난 꽃이란다.
이 세상 아무리 가물고 척박할지라도
내 안에 있는 너는 결코 시들지 않으며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라도
너를 꺽지 못할 거란다.
상처 입었으나 너는 보존되었고
너는 지켜졌으며 보호되었다.
내가 너를 보존하였고,
지켰으며 보호하였단다.
나는 완전한 치유자
내가 치유한 상처는 흔적도 남지 않으리니
너는 내 안에서 고침을 받을지라
사람들 앞에서 상처를 꺼내지 말고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기대하지 말고
오직 내 안에서 네 몸에 박힌 가시를 뽑고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라
또한 내가 네게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주리니
너는 사람에게 묻지 말고
내게 물어라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알려주리라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려 말고
이제 담대하게 빛의 삶으로 나아가라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니
너는 두려워 말고 네게 주어진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라
- 눈물 속에서 피어난 꽃
첫댓글 1월부터 시작한 글이 벌써 10번째가 되었네요. 기독교 문학을 공부하고 나서 성경을 읽으니 상상력이 더해져 묵상이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교회에서도 기독교 문학을 공부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
그때는 외간남자의 겉옷에 손을 댈 수 없는 사회였지요. 오직 혈족만 허용되었기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딸이라 불러주심으로 또 다른 매임에 묶이지 않도록 하신 완전한 치유~~~
성선생님의 말씀에의 깊은 묵상과 온몸의 사력을 다해 쓴 글이 감동이 되고 소망이 됩니다.
말씀의 능력, 글의 치유의 힘을 느낍니다.
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딸로 선포하심으로 그동안의 수치와 슬픔의 베옷을 벗겨주신 거네요~ 굳포인트 감사합니다~ 묵상의 나눔이 참 귀하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