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합성생물학
염색체 조합해 퍼즐 맞추면 '인공 생물' 출현해요
입력 : 2023.11.28 03:30 조선일보
합성생물학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 거예요?"
혹시 부모님에게 이런 질문 해본 적 있나요? 사람은 물론 강아지·물고기 등 지구상에 있는 많은 생명체가 어떻게 태어나고 존재하게 되는지 누구나 한 번쯤은 호기심을 가져봤을 거예요. 과학자들은 그 비밀을 알아내려고 오랜 기간 연구해 왔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도 많아요. 그래서 생명과 탄생이 '신의 영역'으로 불리기도 하죠.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이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고 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미생물의 일종인 효모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거든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탄생시킨 '인공 생명체'인 셈이에요.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들은 "유전체 절반이 인위적으로 합성한 DNA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걸까요?
유전 정보를 정하는 작은 단위, 염기
인공 효모를 이해하려면 우선 유전체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유전체란 한 생물이 갖고 있는 모든 유전 정보를 말해요. 유전자와 염색체 등을 통틀어 말하지요. 이 중 염색체는 유전 물질이 굵직하게 응축된 형태입니다. 인간은 총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빵이나 맥주를 만들 때 쓰는 미생물인 효모는 염색체 16개로 구성돼 있지요.
염색체를 확대해 보면, 더 작은 단위인 DNA를 볼 수 있어요. DNA는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유전 물질로, 이중나선 구조입니다.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처음 알아냈는데,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 두 선 사이에 막대기가 끼워져 있는 형태예요.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두 선 사이에 끼워져 있는 막대입니다. 막대 이름은 '염기'라고 해요. A(아데닌), G(구아닌), T(티민), C(시토신) 이렇게 4종류가 있고, 이 염기들이 둘씩 짝을 지어 이중나선 구조를 구성해요. 예를 들면 A와 T, A와 G, A와 C, T와 C, 이렇게 여러 모양의 짝이 만들어지죠. 이 짝들이 그대로 줄을 서서 DNA를 이룹니다. 이때 어떤 짝을 이뤘는지, 어떤 배열로 줄을 섰는지에 따라 우리의 유전 정보가 정해집니다. 성별·쌍꺼풀·곱슬머리·피부색 등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모든 특징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염기를 조합해 인공 효모를 만들다
연구진은 염기에 주목했습니다. 유전체를 한 사람에 대해 설명한 책에 비유한다면, DNA는 책을 구성하는 문장이고 염기들은 글자로 볼 수 있어요. 어떤 글자를 조합해 문장을 만드느냐에 따라 책 내용이 달라지는 것과 같죠. 그러니 글자에 해당하는 염기를 직접 만들고 조합하면, 원하는 형질의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거예요.
연구진은 우선 염기 4종류를 합성한 DNA로 인공 염색체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퍼즐을 빼고 넣듯, 인공 염색체를 실제 효모 염색체 16개 중 하나와 교체해 넣었지요. 이렇게 인공 염색체 하나를 가진 효모 여러 개를 만들어서 준비 단계를 마쳤습니다.
이후부터는 멘델의 유전 법칙을 따랐어요. 그레고어 멘델은 색과 모양이 다른 완두콩을 교배해 여러 형질의 자손 완두콩을 만들었거든요. 마찬가지로 합성 염색체를 가진 효모를 교배해 얻은 자손 효모 중에 합성 염색체 비율이 늘어난 개체를 구분했습니다.
자연 상태의 염색체가 A, 합성 염색체가 a라고 가정할게요. 이 둘을 교배하면 AA, Aa, aa 이렇게 세 종류의 효모를 얻을 수 있어요. 연구진은 합성 염색체가 많은 aa 효모만 골라내 교배를 반복하는 식으로 염색체 16개 중 합성 염색체 비율이 높은 효모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염색체 16개 중 절반이 합성 염색체로 이뤄진 효모를 얻어냈고, 이 효모가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하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합성생물학, 신의 영역에 도전?
이렇게 퍼즐을 맞추듯 합성 염색체를 만들고,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걸 합성생물학이라고 해요.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이후, 유전자 편집이나 생명 복제를 넘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단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거죠.
연구팀은 10여 년 전부터 해당 연구를 진행해 왔어요. 연구진이 포함된 팀은 '국제 연구 컨소시엄 Sc2.0'으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모인 다국적 연구팀이에요. 2007년부터 인공 효모를 개발하는 연구를 해왔죠. 지난 7월에는 유전자 493개를 합성해 만든 박테리아가 300일 정도 생존하며 번식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효모는 박테리아와 달리 핵이 있는 진핵생물이어서 구조가 훨씬 복잡해요. 연구팀은 합성생물학에서 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연구 성과라고 설명했지요.
연구팀은 앞으로 염색체 16개가 모두 인공 염색체로 구성된 인공 효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어요. 합성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친환경 생물을 생산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반면 세상에 없는 인공 염색체가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며, 이것이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어요. 과학의 명(明)과 암(暗)을 그대로 보여주는 합성생물학.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다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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