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선배 문인 고인이 되다
심영희
어제는 서울에 있는 한양대병원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왔다.
2주전에 동생들과 점심을 먹기로 약속을 했는데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면 귀가가 늦어질 것 같아 약속장소인 식당에서 만나 함께 점심을 먹지 못하고 서울로 조문을 가야 한다고 예약했던 한 명분을 취소하고 바로 식당을 나와서 남춘천역을 향해 걸었다. 마침 약속장소가 역부근이었기에 빠른 시간 내에 역에 도착해 12시 14분 itx청춘열차 표를 구입하여 10여분 기다린 뒤 춘천을 출발해 청량리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한정거장 가서 왕십리역에 도착했다.
병원장례식장에 도착해 7호실을 찾았다. 영정사진으로 웃고 계신 김병권 선생님과 상봉했다. 참 오랜만이다. 몇 년 전 강원도 영월 김삿갓문화제 때 뵙고 고인이 된 후에 뵙게 되어 아쉬움이 크다. 선생님 고향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이고 내 고향은 평창군 횡계리라 평창군 동향인이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이것 뿐이 아니다. 1995년 "수필과 비평"으로 수필가로 등단할 때 내 작품을 심사한 분이 김병권 선생님과 이철호 선생님이셨다. 1998년 첫 수필집 "아직은 마흔 아홉" 출판기념회 때도 필히 춘천까지 오셔서 축하해 주시고 딸아이가 서울에서 결혼식을 할 때도 결혼식장에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문학회 활동 초창기에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한 작가들의 모임인 수비문학회 행사에서 자주 만나며 늘 고향 이야기를 한 번씩하셨다. 그후 "한국수필가협회"에서 자주 뵈었는데 어느 날 부터 행사에 참여 하시지 않았다.
그래도 그 빈자리를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부고를 받고 보니 선생님 연세가 벌써 93세가 된 것이다. "한국수필가협회 고문"이신 어른 한 분이 또 저 세상으로 가신 것이다. 부고를 받고 돌이켜 보니 선생님께 받은 만큼 대접을 해 드린 것이 없다. 동향인이라 늘 반가워 하면서도 따로 식사대접도 한 번 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선생님 장례식장에서 식사대접을 받고 온 셈이다.
이런 마음을 가슴에 되새기며 그냥 조의금만 달랑 보낸다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선생님 앞에 국화꽃 한 송이 바치고 절을 하면서 그동안의 고마웠던 일들에 감사를 드렸다.
군인 대령으로 예편하신 선생님 발인은 오늘 아침 8시 20분이며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 되어 영원히 계실 새 집을 마련하신다. 김병권 선생님 그동안 진정으로 고마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후배 수필가들은 앞으로 선생님처럼 열심히 수필창작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장례식장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 아니고 김상분 수필가님이 찍어 "한국수필가협회 이사"단톡방에 올릴 것을 그대로 빌려왔습니다.
강원도민일보 3월 6일자 27면 강원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