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55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고요한 밤 산 속의 집에
(山堂靜夜坐無言)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
산당정야좌무언
(山堂靜夜坐無言)
적적요요본자연
(寂寂寥寥本自然)
하사서풍동임야
(何事西風動林野)
일성한안려장천
(一聲寒雁戾長天)
고요하여 깊고 깊은 가을 밤
산 속의 집에 말없이 앉았으니
적막하기 짝이 없어
본래(본래면목) 그대로인데
그 무슨 일로 서쪽 바람은
고요히 잠든 숲을 흔들고있나
기러기 한 목소리로 울음내며
차가운 하늘 장천을 날아가네.
"
이러한
시(詩, 禪詩, 게송)를
산중 시(山中詩 산중문답시)
라고 한다.
산 속(山中)에 숨어서
은둔(隱遁)한
자취(自取, 발자취)를
나타내면서
자연(大自然)으로
돌아가는(廻歸, 만법귀일)
탈속(脫俗, 속세를 떠남)한
정취(情趣,
고요한 느낌이나 맛.
또는, 고요 속의 흥취,
내지,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와
때로는
인생의 무상(人生無常)을
노래하였다.
산 속(山中)의
적막 고요(寂寞高窈)한
가을 밤 풍경(秋日夜景)을
읊으면서(頌)
인간의 내면(人間內面)을
살피고 헤아려서 관조(觀照)한
시(詩, 禪詩)이다
이 시(詩, 禪詩, 게송)는
너무나
많이 회자(膾炙,
여러사람의 칭찬을 받으며
입(口)에 자주 오르내림을
하는 말))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觀心)과 사랑을 받는
애송시(愛頌詩)이다.
인간(人間, 중생)의
본래(본래면목, 본성, 자성)
한 생각(一念,
知見, 알음알이, 견해)의
번뇌 망상(煩惱,
望想, 잡념)을 일으키기
이전(以前)에는
오로지
깨끗하여 고요(高窈)한
적멸(寂滅) 뿐이었다.
즉, 아무 일이 없는
고요(高窈寂滅) 그 자체로
적적성성(寂寂惺惺)
존재(存在,
있다 없다, 생명)의
의식(意識, 알음알이, 知見)마저
일어나지 않았다.
나(我)라는 것도 없었고
너(汝, 他)라는 것도 없었다.
주객(主客,
주인과 방문객)이 나누어져
서로 갈라서기 이전
시비분별(是非分別)
차별(差別)하기 이전의
태초(太初)의 경계(境界)
곧 본성의 세계(本性世界)에는
무명(無明,
어둠, 無知)의 바람(風波)이
부는(生起) 일이 없다.
《법화경(法華經)》의
사구게(四句偈)에서도 기록하길
“
일체 모든 제법은
항상(언제나) 고요할 뿐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
이라고 하였다.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산스크리트어:
सद्धर्मपुण्डरीक सूत्र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 →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
또는《법화경(法華經)》은
대승경전(大乘經典)의 하나로
예로 부터
팔만사천 모든 경전(經典)의
왕(王, 으뜸)으로 생각했으며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如來佛 세존)의
40년 동안 모든 설법(說法)을
집약(集約)하고
함축(含縮)한 경전(經典)으로
초기(初期)
대승경전(大乘經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전(經典)이다.
※
각설(恪說)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
나의 생(生涯)에 있어서
언제부터
우리(人間, 중생)는
이토록
많은 근심(愁, 번뇌)과
걱정(憂, 망상, 잡념)이
쌓이기 시작했는가 ?
인연(因緣)이 닿아
관계(關係)가 맺어지기
이전(以前)에는
그저 무심(無心,
무관심)할 뿐이었는데
인연(12緣起 因緣)이
맺어진 이후(以後)에는
이리도 그립고
초조하기만 하다.
고요하고
깊고 깊은 가을 밤(秋夜景)
서풍(西風)이 불어와서
숲(森林)을 흔든다는 것은
생멸심(生滅心,
고집멸도, 태어나고 죽음,
생사윤회, 희노애락)의
번뇌(근심 걱정, 煩惱)가
바람(알음알이, 風波)이 되어
내 마음(心, 靈魂)을
뒤흔드는 것을 말하고
기러기(雁)가 울며(一聲)
하늘(靑天)을 날아간다는 것은
우리(人間, 중생)들
존재(存在, 생명)의 고민이
현실에 부딪혀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음을
뜻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
내가 왜 이러는가 ?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
"
하는 것이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생사윤회(生死輪廻)
희(喜)
노(怒)
애(愛)
락(樂)을
싣고 살아가는
일엽편주(一葉片舟)
인생(人生)
이 것이
바로 숲(成佛道,깨달음)을
흔드는 바람(風, 번뇌)이요.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이다.
위(上記)에
올린 시(禪詩, 게송)는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의
시(禪詩, 게송)이다.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禪師) 스님(僧, 沙門)은
당(唐) 나라 때
스님(僧, 沙門)이지만
생몰연대(生歿年代)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금강경오가해설의
(金剛經五家解說誼)에
수록(隨錄) 된
야보(冶父 ,
아버지 '부'자가 사람이름으로
쓰일 때 보로 읽는다.)의
송(頌)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송(偈頌)도
금강경오가해설의
(金剛經五家解說誼)에
나오는 선시(禪詩) 가운데(中)
하나(一句)이다.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후배(先後輩)
제현(諸賢)님들 께서는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