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7:1-10
천둥과 번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체의 한계를 가진 인간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드높고 넓은 하늘, 거기에 떠가는 하얀 구름, 그리고 계곡의 푸른 숲,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 동편에 떠오르는 밝은 태양, 초롱초롱한 새벽별들, 해안에 하얗게 바스러지는 물보라등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은 없고, 그 분의 음성과 숨결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잠언이 그 내면에 스미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엘리후는 <천둥 소리와 번개빛>을 하나님의 행위와 연관시켜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어떤 교훈을 주는가? 본문이 주는 교훈을 생각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 1.천둥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같습니다
본문 2절...<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그런데 본문에 보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천둥소리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은, 욥기 37장 전부는 자연 현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천둥소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아마 천둥이 치고, 벼락이 내리는 소리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직전에 우뢰 소리가 산을 진동시켰던 일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음성의 위엄(威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또한 천둥 벼락 소리를 들으며 두려워 떨면서 자기의 죄를 생각지 않은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뜻을 좇아 법률 연구를 하려고 결심할 무렵이었습니다. 절친한 친구 알렉시스 고향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따갑게 내리쬐던 하늘에 느닷없이 몰아닥친 소낙비가 내렸고 이를 피하려고 나무 밑으로 뛰어 가던 중에 산을 찢는 듯한 천둥소리에 엎드려 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는 나무 밑에 엎드려 있는 친구에게로 다가갔을 때 벼락에 맞아 타죽은 친구 알렉시스를 목격합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위엄 앞에 아루런 대항도 할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인간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학문과 능력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그 길로 즉시 수도원으로 들어가 일생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천둥소리를 통하여서 자신의 음성을 들려 주시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천둥 소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할 것입니다.
##### 2.번개 빛은 하나님의 눈빛과 같습니다
본문 3,4절...<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사....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니라.>
칠흙같은 밤에 번개 빛이 번쩍번쩍 한다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낍니다. 엘리후는 그 빛을 가리켜 하나님의 눈빛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직전에 우뢰 소리와 함께 빽빽한 구름 사이에서 번갯불도 번쩍번쩍 하였습니다. 번개 빛은 하나님의 눈빛,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나타나는 번개빛은 모든 것이 다 드러나도록 만듭니다. 번개 빛은 하나님의 눈빛이 얼마나 빠르고 넓고 밝은가를 잘 보여 주는 자연의 현상입니다. 이렇게 번개불이 번쩍할 때 인간은 자기의 죄를 돌아다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자기를 숨길 수 없다는 직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라고 시편 97:4)절에서 말씀하였고, 또 시편 97편 5,6절에서는 <하늘이 번개를 토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기 때문에 산들이 주 앞에서 밀같이 녹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눈빛으로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젊은이가 꿈에 하나님을 만나 하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 하늘 나라를 구경하던 중 각 사람의 살아온 발자취를 그려 놓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겨 살펴 보았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모래밭에는 발자욱이 두개가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발자욱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이가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 내버려 두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나는 너와 늘 함께 있었단다. 너가 어려울 때는 내가 너를 업어주었단다.>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까?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나 혼자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지도 버리시지도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살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깊은 산 속에 홀로 있어도, 낯선 사람들 무리에 버려져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만의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순간 시련 가운데 빠져있는 당신을 지켜보시며 적절한 도움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있습니까?
번개와 같은 눈빛으로 우리의 삶을 관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사십니까?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 37:11-24
구름이 주는 교훈
지난 수요일에 천둥과 번개가 어떤 교훈을 주는가를 생각했다.
--천둥 : 하나님의 음성
번개 : 하나님의 눈빛
구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1.징벌에 이용하십니다
엘리후는 구름이 하나님의 명을 세계상에 이루려고 두루 떠다니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께서 구름을 징벌에 이용하고 계신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혹 징벌을 위하여'(13절)
모세가 바로 왕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달라고 간청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다. 바로 왕의 강팍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우박을 쏟아내려 사람과 짐승과 모든 채소를 쳐서 엄청난 재난을 입혔습니다. 물론 이때 우박을 실어 나른 것은 구름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 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의 흉내를 내면서 또 다른 왕을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징계하시려고 천둥과 벼락을 내려 천지를 진동케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때 천둥과 벼락을 실어 나른 것도 구름이었습니다.
##### 2.땅에 비를 내리게 하십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구름을 이용하시어 땅에 단비를 내리게 만드신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혹 토지를 위하여'(13절)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
물의 소중함!
##### 3.긍휼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구름을 긍휼의 도구로 삼으신다는 점도 들었습니다.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13절)
그런데 구름을 가지고 긍휼을 베푸신다고 하면 우리는 얼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폭염이 줄곧 쏟아지고 있는 열대 지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재빨리 알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따가운 햇빛으로 인해 해마다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는 사람이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적들의 함성을 그치게 만드는 일을 하나님께서 구름을 가지고 폭양을 가리는 일에 비유하여 들여 주었습니다.(사25:5)
불볕을 가려주는 구름 생각하면 이 얼마나 시원한 구름입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 121:5,6절에서 <여호와께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나 낮이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진하는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이 저들을 인도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크신 자비의 표현이었습니다.
성지 순례 : 뜨거운 태양
자연을 토해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자.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