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7: 19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 히 7: 25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히 7: 19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
율법은 사람의 죄 문제를 참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구원을 주지 못한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나 율법 제도는 그 자체로는 연약하고 무익했다.
그것은 앞으로 오실 완전하신 메시아에 대한 예표이셨다. 그러므로 메시아께서 오셨으므로 율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더 좋은 소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義)가 되셨기 때문이다.
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온전하게'(에델레이오센)은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는 온전한 관계를 의미한다(11절).
율법은 외형적인 것만 깨끗하게 하고 내적인 양심은 깨끗케 할 수 없다.(9: 9, 14) 그러므로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즉 사람들은 제사장직이나 성결 의식과 같은 율법적인 제도에 의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Riggenbach , Michel).
2]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더 좋은'(크레이트토노스)이란 표현은 히브리서 저자의 독특한 표현이다(19, 22절. 8: 6. 9: 23).
'더 좋은 소망' 즉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레위적인 율법 제도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Lane).
더 좋은 소망은 온전하지 못한 율법에 따라 드리는 헛된 제사가 아니라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리는 신령한 제사를 가리킨다.
히 7: 20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 -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써 제사장이 되셨다는 점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더 나으시다.
율법 제도 아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심으로 메시아를 제사장으로 세우셨다.
본 절과 다음절은 새로운 제사장이신 예수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사이의 비교이다.
1]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된 것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엄숙하신 맹세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 지목된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맹세 없이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부여받았다(28 절).
2]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우 코리스 호르코모시아스)는 시 110: 4의 추론으로 하나님의 맹세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 됨으로 신자들은 그의 제사장직에 소망의 닻을 드리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6: 18-20, Schneider, Thompson).
히 7: 21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 (그들은(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는 시 110: 4의 인용이다(17절).
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 부여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이 맹세하신 약속의 신실성으로 인해(Cockerill) 보증된 것이다.
반면에 율법하에서 이루어진 레위인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나 약속 혹은 보증이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다만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16 절)을 좇아 이루어진 직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두 제사장직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며, 완전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언약에 대한 보증임을 암시한다(22 절).
다시 말하면 레위인의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맹세없이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 곧 율법에 따라 주어진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맹세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맹세는 절대 불변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도 결코 변하거나 바뀌지 아니하는 영원한 직분이기 때문이다(24 절)
3.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7: 22 – 28 )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 7: 22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이와 같이'(카타 토수톤)는 이렇게 큰 것에 의해[이만큼]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큰 것이란 하나님의 맹세를 가리킨다. 즉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저자는 '언약'의 헬라어 '디아데케스'를 본서에서 17회나 사용하여 중시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처음 나타난다.
1]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디아데케'는 '유언', '서약', '의지'라는 의미로 70인 역(LXX)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의지'를 가리킨다(Lane). 동시에 그 단어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함축되어 있다(Morris).
문맥상 본 절의 언약은 제의적(祭儀的)인 것으로(Lane) 옛 언약 즉 구약의 제의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었으나 외형적인 것만 정결케 하고 내적인 양심은 정결케 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었다(18 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수립하시고(8: 8-10. 9: 15-20), 새 언약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온전히 나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25 절. 9; 14,15).
새 언약은 구약의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더 좋은 언약'인 새 언약에 대한 '보증'은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9 절. 13: 20).
'보증'(엥귀오스)는 '보증인'이라는 의미로 이 보증인은 '중재자'(메시테스)와는 달리(8: 6. 9: 15. 12: 24) 보증인 자신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행한 말에 대해 보증한다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Michel).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의 구원에 대한 담보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되신다.
히 7: 23 죽음으로 말미암아 - (저희) 제사장 된 그들의(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살아계신다'는 점에서도 구약의 제사장들보다 더 나으시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죽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효가 많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
1] (저희) 제사장 된 그들의(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저자는 새 언약의 제사장은 예수 한 분뿐인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 수효가 많음에 주목한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론부터 시작해서 A. D. 70년 예루살렘 멸망에 이르기까지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취임했다고 한다(Antiq. 20,227).
2] 죽음으로 말미암아(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수효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그들이 행하는 제의가 불완전함을 반영한다(1: 1. 10: 1-4, Michel, Thompson).
히 7: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아니하나니).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
'갈리지 않는다'는 원어(아파라바토스)는 '임시적이지 않다, 변하지 않다, 영속적이다'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하시다.
1]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을 인하여 제사장직을 감당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반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므로 뒤를 이을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뒤이을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행하신 사역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의미한다.
'아파라바톤'은 70인 역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로 제사장이 그의 의무를 계속한다는 의미이다(Josephus).
예수의 영원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일시성과는 달리 그의 제사장직이 영구적임과 동시에 최종적(最終的)인 것임을 시사한다(Lane).
히 7: 25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자기를 힘입어'(디 아우투)은 '그를 통하여'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끝까지, 영원히,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은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해 간구하시고 중보의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1] 그러므로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덴'은 본 절이23-24절의 논리적 귀결임을 나타낸다.
2]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온전히'(에이스 토 판텔레스)는 '완전히', '절대적으로'라는 의미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구원의 완전성을 뜻한다.
'구원하실'(소제인)은 현재시상이다.
본서에 나타나는 '구원'이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유업을 가리키는 반면(1: 14. 5: 9. 9: 28) 본 절의 '소제인'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시사한다(2: 3-4. 6: 4-5, 9, Lane).
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제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새 언약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에게 현재 구원에 참여케 하며 동시에 종말론적 구원에의 참여를 보증하신다.
3]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간구하심이니라'(엔튕카네인)은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을 가리킨다(Lane, Snell, Morris).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 할 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