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냄새가 싱그러웠다.
왁자지껄한 어시장너머로 잔잔한 수평선은 아름다운 도시 시애틀을 품어 안고 아침을 채색했다.
맞은편 워싱턴 레이크에서 바다를 건너오는 차들이 다리 위로 줄줄이다.
어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시장통에서 찾아낸 스타박스 1호점은 상점이 아니라 관광명소였다. 지구촌에서 커피 좀 마신다는 방문객들은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다.
시애틀의 명소 레인이어 마운틴의 보물 같은 자연이나 보잉사의 비행기 공장견학은 다음이다.
문밖까지 늘어선 사람들 틈에 끼어 기다리노라니 커피공화국 성지순례에 나선 기분이다.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받아들고 부두로 나왔다.
별 볼일 없었던 가게를 인수해 오늘날 글로벌 최고 브랜드로 키워낸 하워드 슐츠는 1982년부터
이곳 파이크 플레이스에서 일했다.
그는 좋은 집안의 피가 아니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난과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겨우 대학을 마치고 아내 셔리와 함께 무작정 시애틀로
떠났다. 방황하다가 처음 일자리를 잡은 곳이 스타벅스였다. 33년 전의 일이다.
스타벅스는 허먼 맬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에 나오는 고래잡이 배 파쿼드 호의 일등항해사 이름 '스타벅(Starbuck)' 이 유래다.
인간의 모험과 집념의 세계를 그려낸 수작이다.
오래전 밤을 세우며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슐츠는 본래 ‘지오날레’ 라는 상호를 좋아했지만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속 우상을 떠올려 ‘스타벅스’ 로 개명하고 본격적인 커피체인점 몰이에 나섰다.
포브스 기자 조앤 고든과 함께 쓴 자서전 ‘온워드(Onward. 전진 앞으로)’ 를 다시 뒤적거렸다. 미국으로 떠날 때 들고 온 책이다. 세상의 최초가 궁금해지는 병이 도져 또 태평양을 건너고 말았다.
스타박스는 연매출 100억 달러다. 60개국 2만2천개 매장에서 매주 7천 만 명의 손님들이 찾는다.
20만 명의 직원들이 움직인다.
제조업 우상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스타벅스 같은 서비스 기업의 파워는 아직도 실감있게 확 와닿지 않는다. 한국에는 7200개 매장이 있다.
아메리카노 커피만 연간 3000만 잔이 팔린다. 이중 절반이 임대로 비싼 서울지역에 몰려있다.
서울 수도권에서 임차료에 쏟는 돈은 1000억원이다. 별다방 콩다방 몇 만개를 모아놔도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체인파워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시애틀 스타벅스 1호점 앞에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어시장 1호점에서 치른 아메리카노 한잔은 2500원쯤 했다.
원두는 너무 쓰고 우유나 다른 이물질을 타면 본래의 향이 사라져 언제부턴가 연한 것을 골라 마신 것이 ‘숭늉커피’ 매니아가 되었다. 문제는 똑같은 아메리카노 한잔이 서울에서는 무려 4100원씩에 팔린다는 사실이다. 시애틀보다 1600원 비싸다. 스타벅스가 없는 이탈리아를 빼고 중국, 일본, 독일, 캐나다의 11개 주요도시 평균가격이 3200원이니까 이들 지역보다 30%정도가 비싼 셈이다.
구내식당 5천 원짜리 밥 먹고 밥값만큼 비싼 커피를 찾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처음엔 서울의 풍경이었으나 이제 전국적인 모습이다. 참다못한 한 소비자 단체가 전세계 스타벅스 가격을 조사해서 내놨다.
그런데 비교가격표가 꽤 자존심을 건드린다. 커피제국을 위해 한국의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대가가 너무 혹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또 같은 종류를 마시면 점심값보다 비싼 결재를 감수해야 한다. 스타벅스 뿐인가. 도심지 목 좋은 곳은 이름과 종류를 셀 수 없는 수많은 커피점들로 장악된지 오래다.
커피홍수에 밀려 둥둥 떠다니는 분위기다. 한국시장은 확실히 국제 상인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다. 비싸도 군말없이 잘 사먹고 또 아무도 잘 따져보지 않으니까. 그래서 기막힌 상권일지도 모른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지난해 수익은 350억 원에 달했다. 해마다 30% 정도 늘어나는 추세다.
엄청난 속도다. 마케팅 전문가들도 이변으로 여기는 수준이다.
커피 제조원가는 팔리는 값의 10분의 1이다. 뒤집어보면 열배 튀겨 파는 것이다. 빛나는 커피그룹 ‘스타벅스’ 를 떠받쳐주는 일등공신중에 우리 소비자들이 맨 앞줄에 서있다.
커피만 비싼가. 와인은 점입가경이다.
칠레와 FTA협약을 맺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한국인의 베스트셀러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쇼비뇽’ 은 한 병에 4만2천원이다. 중국(2만7천원), 영국(2만 1500원)보다 한참 비싸다.
병당 만 8천 원대인 네덜란드나 캐나다에서는 두병을 사고도 4천원이 남는 돈이다. 비싼 이유는 많다. 뭉뚱그려 따져보면 우리소비자들이 바보다.
청포도, 치즈, 파인애플, 탄산수, 캔맥주. 모두가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 값의 두 배 가량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들은 국제적인 '봉'으로 여겨지고 있지다.
소비자들이 깨어나야 한다.
정보가 완전히 오픈된 지금 세상에서 우리만 바가지를 쓰고 사먹는 것은 뭔가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그만한 대가를 치루고 사야하는 필수품이면 모르겠지만 다른나라에서 팔리는 제품이나
똑같은 기호식품을 이렇게 비싸게 사먹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커피 한잔을 들이키고 다시 돌아보니 시애틀 스타벅스 1호점은 아까보다 줄이 더 길어졌다.
어시장 사람들 말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부터 밤까지 이모양이란다.
부럽기도 하고 배도 아프다.
슐츠 회장은 늘 말한다. “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유대감을 형성해주는 매개체다. 커피는 단순한 유통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다”.
그들이 만든 유대와 문화를 위해 우리는 날마다 너무 비싼 대가로 ‘호갱님(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손님)’ 노릇을 하고 있다.
바가지는 알고 쓰면 탓할일이 못되지만 모르고 쓰면 바보요 감정의 독이 된다. 그러나 저러나 스타벅스는 오늘도 전세계에서 성업중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2015.4.5 오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