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통신 36> 세계지질공원을 아시나요?
몇 해 전 제주도를 세계 7대자연경관으로 선정시키자는 운동이 있었다. 그런 영광을 염원하는 전화걸기 운동이었는데, 전화가 많은 순으로 결정한다는 방식에 고개를 갸우뚱거린 사람이 많았다. 행사주체가 알려지지 않은 민간단체이고, 중복전화도 카운트에 인정된다는 소리에 ‘장삿속 아니냐’는 비판이 잇달았다.
선정이 되고 난 뒤에야 그것이 공인될 수 없는 명예임이 드러났다. 제주자치도와 산하 자치단체들이 전화걸기에 지원한 적잖은 예산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이름의 효용성은 컸다. 남미 여러 나라가 걸쳐있는 아마존 우림, 이구아수 폭포(브라질 아르헨티나), 하롱 베이(베트남), 테이블 산(남아공), 코모도 국립공원(인도네시아) 같은 유명 관광지와 어깨를 겨루는 명승지가 되었으니 결코 해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 비공인 타이틀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공인된 타이틀의 영광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지···. 제주도가 2002년 생물권 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것 말이다. 자연환경 면에서 ‘3관왕 타이틀’을 가진 곳이 드물다는 사실도 그렇다.
나 자신도 명예 제주도민이 되기 전에는 몰랐던 일이다. 특히 제주 섬 서남단 수월봉 해안이 세계 화산지질학의 교과서 현장으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는 것을 몰랐던 게 민망스럽다. 지질학자들이 살아생전 꼭 한 번 와보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제주도와 맺은 인연이 새삼 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올레길 12번 코스인 한경면 수월봉 해안엘 가보면 과연 그럴 만하다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깎아지른 해안선 단층에 지질과 선이 제각각인 지층이 마치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그 한 층 한 층 세월의 두께를 가늠할 수는 없어도, 다 합쳐 몇 십, 몇 만 년 세월이 거기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놀라움이다.
화산학 ‘교과서 현장’을 안내한 전문가에 따르면 “화산이 폭발한 화구 가까운 곳에는 크고 작은 화산탄들이 지층에 촘촘히 박혀 있고, 먼 지역에는 화산재만이 쌓여 시루떡 선이 곱다”고 한다. 사화산 지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 말을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화구는 어디고, 화산탄은 또 무언가?
이런 의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건성으로 둘러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산활동이 잦은 일본이나 인도네시아의 활화산을 떠올리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땅속에서 부글부글 끓던 마그마가 폭발해 움푹 파인 자리가 화구이고, 그 때 허공에 치솟아 오른 용암 덩어리가 떨어져 돌로 굳어진 것이 화산탄이며, 가루처럼 부서져 날아가 쌓인 것이 화산재다. 화구 가까운 곳에는 무거운 것이 많이 낙하할 것이고, 먼 곳에는 재만 쌓이게 되니까 단층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화구는? 수월봉과 인근 당산봉 꼭대기까지 올라보았지만 어디에도 화구는 없다. 그것은 바다에서 터진 수성화산이기 때문이라 한다. 지금부터 1만 8천 년 전 마지막 폭발 이후 야트막한 화구는 물에 잠기고, 화산탄 화산재 같은 화산체가 떨어져 생긴 뭍이 바닷물 침식작용으로 시루떡 같은 단층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산일출봉의 경우도 같다. 일출봉도 수성화산으로 생겨난 산이라 한다. 원래는 두 개이던 화구 중 하나가 물에 잠기고, 그 화산체들이 연안에 쌓여 뭍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다가 뭍이 될 만큼 많은 화산체가 분출되었다는 이야기다.
몇 해 전 일본 큐슈 여행길에 화산체의 위력을 실감한 일이 있었다. 1991년 6월 대폭발이 있었던 나가사키 현 운젠다케(雲仙岳) 산록에는 아직도 화산재에 파묻힌 집과 공공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화산이 터진 해발 1360m 봉우리에서 해안선까지는 4~5km 거리로 보였는데, 바닷가 마을이 그렇게 쑥대밭이 된 것을 보니 화산의 위력을 짐작할 만했다.
그 때 현장을 취재하던 소방관 기자 경찰관 등 34명의 업무 종사자들이 순직한 것은 화쇄류(火碎流)라는 불 폭풍 때문이었다. 분화구에서 섭씨 600가 넘는 가스가 분출되어 삽시간에 골짜기를 내리 달리며 산록을 휩쓸었던 것이다. 산꼭대기에는 폭발한 주봉보다 120m나 높은 화산 돔이 생겨나 헤이세이 신산(平成新山)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런 위력을 보면 오랜 세월 몇 차례였을지 모를 폭발이 거듭돼 화산체가 차곡차곡 쌓여 산을 이루고, 해안 단애와 평지를 이룬 지질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열두 곳 가운데 수월봉, 용머리 해안, 중문 주상절리, 천지연 폭포, 성산 일출봉, 우도, 비양도 등이 그런 지각활동의 산물이다. 한라산 화구벽, 산방산, 만장굴, 선흘리 곶자왈 등은 뭍에서 터진 화산활동으로 태어났다.
수월봉과 당산봉을 품고 있는 한경면 고산리 일대에는 제주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선사유적지가 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유적지 발굴조사에서는 화살촉 등 석기류 2만여 점과 토기편 400여점이 발굴되었다. 제주도 서남단 일대의 평지에 까만 옛날부터 그만큼 많은 선사인들이 살았다는 증거다.
동북아시아 신석기 문화는 시베리아에서 연해주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데, 제주도에서 신석기 문화 유물이 대량 발견됨으로써 그 통설에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다.
고산리 유적은 대략 8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송악산 해안 암반에 사람과 사슴 발자국 화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도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안에 나타난 사슴을 잡으려고 추격하는 사람과 쫓기는 사슴이 채 굳어지지 않은 용암을 밟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수월봉 해안선에는 그런 ‘자연의 순리’에 역행한 흔적도 남아있어 올레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동굴진지가 그것이다. 미군의 제주도 상륙을 겁낸 일본 해군은 미군 상륙정을 격파하겠다고 육탄 특공대를 조직, 해안 단애에 갱도를 파고 그 속에 ‘진양(震洋) 5형’ 특공정을 숨겨 놓았었다.
이 배는 유사시 2명의 특공대원이 250kg의 폭약을 싣고 출격, 미군함정에 돌진하도록 예정되었던 ‘인간어뢰정’이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나 아직도 문이 잠긴 채 올레꾼들을 맞고 있다. 진양5형 특공선 25척을 보유했던 제120 진양대 수월봉 특공기지는 흔적이 없어졌다.
올레 길을 걷다가 저녁이 되면 당산봉 아래 자구내 포구에서 다리를 쉬며 석양을 감상할 일이다. 포구에서 1km 떨어진 차귀 섬 너머로 떨어지는 저녁 해는 소문난 풍광이다. 요즈음 제철을 만난 오징어 배가 들어오면 산 오징어에 소주 한잔이 올레 길의 정취를 더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