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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Who ls This Melchisedec?)
미국 인디애나주 제퍼슨빌 파크뷰 중학교 강당
1965년 2월 21일 저녁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히브리서7: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7: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2.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3.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이제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 한가 깊이 생각해 보라.
심지어 족장 아브라함도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자,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이 남자는 누구인가?" 가 질문입니다. 신학자들은 지금까지 서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10장7절에서 닫혀있었던 하나님의 신비인 “일곱 인봉” 이 우리들이 볼 수 있도록 계시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그 동안 볼 수 없도록 일곱 인봉으로 닫혀있었던 신비스러운 책은 계시록10:1~7절에 의하면,
계시록10:1.또 내가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으로 옷 입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의 얼굴은 해 같으며 그의 발은 불기둥 같더라.
2.그가 펴 놓은 작은 책을 손에 들고 오른발은 바다 위에 왼발은 땅 위에 두고
3.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음성으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천둥이 자기 음성을 내어 말하더라.
4.일곱 천둥이 자기 음성을 내어 말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개 이르기를, 일곱 천둥이 말한 그것들을 봉인하고 그것들을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7.일곱째 천사가 음성을 내는 날들에 즉 그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그분께서
자신의 종 선지자들에게 밝히 드러내신 것 같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마지막 시대를 위해 이 책 속에 일곱 인으로 봉해져서, 종교개혁자들의 시대를 거쳐 쭉 숨겨져 오던 모든 비밀들이,
이방인의 마지막 일곱 교회 시대에 보내진 일곱 번째 사자에 의해 그 비밀이 계시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신비스러운 책의 모든 비밀들이 라오디게아 시대의 사자에게 계시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멜기세덱 그는 누구인가? 이 신비에 쌓여진 인물은 오늘날도 여전히 비밀에 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나는 날도 없기 때문에 지금도 그는 여전히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과 이 주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저는 우리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도 살아 있다면 그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에 대해서 여러 갈래의 학파들이 있습니다.
어떤 학파는, "그는 그저 신화적인 존재이다. 그는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학파들은 말하길, "그건 제사장직 이었다, 그것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 이었다." 고 주장합니다.
그건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생각입니다, 그들이 다른 학파들보다는 좀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사장직 이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7:4절에 보시면 그는 한 사람이고, 한 "남자"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려면, 그는 “한 인격체” 여야 하며, "남자"여야만 합니다. 반열이 아니라, 한 인격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제사장직의 반열도 아니었고, 신화적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영원한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7장3절 말씀에서 보시면,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었습니다. 시작한 날도 없었고 끝난 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누구였든지 간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는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영원한 사람이었어야만 합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영원한 사람! 그래서 그것은 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자, 그는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멜기세덱 그는 모습을 바꾸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생명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더라.”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학자들과 많은 목회자들이 "신성 안에 세 인격체가 있다." 고 잘못 가르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사람이 아니면 인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마태복음16장18절에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 위에 세워져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방식 외에는; 다른 방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그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학교 교육을 고집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그것이 하나님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지식들을 더 신봉합니다.
고린도전서2:8.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신학자들, 교수들, 선생들, 학원 강사들, 온갖 전문가들=이 세상을 인간의 지식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오늘날은 그들이 가진 가르침과 신조들과 교리들과 교회 전통들로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를 전하려 해도 그들은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신학적인 체제(틀)와 이 세상 재물과 조직의 체제(틀)들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고, 귀를 멀게 했습니다.
고린도전서2:10.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느니라.
11.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
13.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
14.그러니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느니라.
신학적인 체제(틀)와 인간의 지식은 항상 하나님의 지혜와 원수가 되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그건 증명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시를 원하신다면 신학과 여러분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들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의 지혜와는 완전히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과 같습니다.
세상 지식과 신학적인 체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동시에 취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 둘 다 사용할 수 없고, 둘 다를 망가트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새 가죽주머니(인간의 혼)에는 새 포도주(계시의 자극)를 담아야 합니다.
이 글은 신학적인 이해와 그 동안 교회에서 배운 여러분의 지식을 가지고는 이해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완전히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의 부어주심과 인도하심이 전적으로 요구됩니다.
"아들이 그에 대해서 계시해 줄자에게." 전적으로 성령으로부터 오는 계시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것은, 그러면 여러분은 단지 미지근한 교인입니다.
그리고 단지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일 뿐이고, 당신은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엔 모피(en morphe).” 그 말은, 헬라어인데, "바꾸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바꾸셔서 “엔 모피(en morphe).” 하셨습니다.;
그 헬라어, 엔 모피의 뜻은...그 말은 무대에서 배우가 연기할 때 쓰이던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인물로 바꾸려고, 자기 가면을 바꿉니다.
한 예로 배우들이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공연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는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그는 혼자서 두세 가지 역을 연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한 번은 악당으로 나왔고, 다음번에 나오면, 그는 또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헬라어, 엔 모피는 그가 "자기 가면을 바꾸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항상 똑같은 하나님” 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으로, 성령의 모습으로, 불기둥으로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 동일하신 하나님은 육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엔 모피”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눈에 보일 수 있게 하려고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하나님은 지금은 성령이십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 그것은 세분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세 직분들로 나타나셨습니다, 한 하나님의 세 가지 연기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엔 모피” 하셨습니다.
항상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모습으로, 성령의 모습으로, 불기둥으로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 동일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육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동일한 “엔 모피” 입니다,
자신이 우리들이 알 수 있도록 보일 수 있게 하려고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하나님은 성령이십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분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 직분들, 한 하나님의 세 가지 연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 고 말씀했습니다, 세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펴서 세 하나님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유대인들에게 절대로 이해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조각가가 그 위에다 베일(커튼)을 씌워 가립니다. 하나님도 이 마지막 시대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감춰져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감춰져 있었고, 그런데 이 시대에 계시되어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자, 성경은 그것들이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내어지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조각가가 자기의 작품을 때가 될 때까지 다 덮어두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덮어 두었던 휘장 베일을 조각가가 벗기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작품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작품을 만든 조각가가 베일을 벗기게 되면 그때서야 그 작품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었는데 “일곱 인봉”에 의해서 덮여 있었습니다.
창세 이후로 그것은 감춰져 있었고, 요한은 그것을 들었지만 성령은 그것을 기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이 라오디게아 마지막 교회 시대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가면을 벗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불기둥 안에 “엔 모피,” 가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엔 모피, 예수”라 불리우는 사람 안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엔 모피, 그분의 참 교회(신부)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한때 “우리 위에” 계셨고, 하나님은 한때 “우리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은 이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겸손하심으로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그분을 더 잘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극히 높은 저 위에 계실 때, 거룩한 분으로 계실 때, 아무도 그분을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인간과 함께하기 위해서 산 위에 내려오셨고, 동물이 그 산에 닿기만 하더라도,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내려오셔서 자신의 장막을 바꾸어서, 우리와 함께 사셨고, 엔 모피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 눈이 그를 보았고, 우리가 그를 만졌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디모데전서3:16.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신 안에(in) 나타나시고...
하나님은 고기를 드셨으며, 물을 마셨으며,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우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분이셨습니다.
성경에는 예표로, 그 장면들이 멋있게 나타나 있습니다! 한때는 그것은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아버지)이셨습니다.
한때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아들)이셨고; 이제는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성령)이십니다,
성령으로. 세 번째 분이 아니시고,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엔 모피(en morphe).”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려오셔서 육신이 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의 몸 된 교회를 깨끗케 하여, 그들과 다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교회 안에 들어가시기 위해서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교제를 좋아하십니다. 그 목적 때문에 처음에 인간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교제를 나누시려고; 하나님은 그룹천사들과, 홀로 거하셨습니다.
자,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고, 그런데 말씀대신에 세상 지식을 취함으로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내려 오셔서, 인간을 속량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경배 받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신)이란 말은"경배의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불기둥으로 오신 이 분은, 우리 마음을 바꾸시는 뭔가로 오시는 이 분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있었던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 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들을 지니고, 홀로 거하셨습니다. 그 속성들은 자신의 생각들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하나님 홀로 계셨는데, 하나님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건축가가 앉아서, 마음속으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으려고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자, 건축가는 창조할 수 없습니다. 이미 창조된 것을 가지고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건 그분의 생각들, 그분의 소원들입니다.
자 그건 그분의 생각입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그 생각을 말하면, 그 때 그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옵니다.
생각이 표현되면, 그건 말입니다. 표현된 생각은 말이고, 그래서 처음에는 생각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건 하나님의 속성들입니다.; 다음에 그것은 생각, 다음에는 말이 됩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천사, 별, 그룹, 또는 어떤 것들이 생기기도 전에.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이 땅에 있는 여러분의 존재 말고, 창세전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과 형태로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무한하신 분이 아니시라면, 그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편재(遍在)하셨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십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그는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곳을 아시는데, 편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지하다는 건 편재하시는 분을 만듭니다. 그는 한 존재 이십니다; 그렇다고 바람 같은 게 아닙니다.
그는 한 존재이며, 하늘의 보좌 위에 거합니다. 그런데 전지하다는 것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그분을 모든 곳에
계시는 분으로 만드는데, 그는 진행 대어지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 말씀을 어떻게 읽었는지 생각나십니까?
로마서9:16.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오직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11.(그 아이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으되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하나님의 예정이 진실되이 서게 하려 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있기도 전에, 창세전에 누구를 택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심에 있어서 주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거 아셨습니까?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누가 세상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께 일을 잘못 꾸려가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요? 말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주권적입니다.
계시만 해도 주권적입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에게 계시를 주십니다."
계시만 해도,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주권적으로 역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때리고, 뛰고, 치고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들을 주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태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속성들을 봅니다.
자, 여러분은 그때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가 생명책이 보이게 되는 때입니다.
자, 우리는 여기 계시록13장, 8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계시록13:8.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짐승) 그에게 경배하리라.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 땅에 오시기 사천 년 전, 여러분이 땅에 나오기 수천 년 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위해서 여러분 대신에 죽으셨고, 그 결과로 생명책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이름은 그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진리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창세전에 하나님의 속성들 안에 있었습니다. 그걸 기억은 못하시지만, 못합니다, 지금도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분의 생명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부분입니다. 여러분이 땅의 아버지의 일부분인 것처럼! 여러분은 그렇습니다.
남자는 헤모글로빈, 피를 지니고 있는데, 그게 난자 안으로 가면, 여러분은…아버지의 일부분이 됩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도 역시 여러분의 아버지의 일부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다 여러분의 아버지의 분신입니다.
영광! 그건 모든 교파와 신학자들을 다 나가떨어지게 만듭니다. 맞습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고, 우리들이 돌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이제 그분의 속성을 보십시오. 처음에 그 속성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생각, 그 속성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한 분 안에 다 있었고, 표현되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다음에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표현하셨을 때,
그는 다음에는 말씀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1장1절입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태초에." 하지만, 전에는, 영원한 분이셨습니다! 보십시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시간이 시작되자,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기 전에, 그것은 속성, 생각이었습니다.
다음에 그 생각이 표현되었고, "태초에," 표현이, "말씀이 계시니라."
자, 이제 우리는 멜기세덱이 있는 곳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신비스러운 사람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고 말씀했습니다.
"다음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자, 거기 잠깐 계십시오, 보십시오.
그분의 첫 번째 존재는 영이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이었습니다,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셨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자신을 육으로 만드시기 시작합니다,
“신의 현현(顯現)”(theophany,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내신 몸), 그것은 "말씀; 몸" 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그가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그분이 그 안에 몸담고 계셨던 단계입니다, 멜기세덱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분은 이제는 “신의 현현의 형태 안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면을 볼 수 있는 형태로 “엔 모피” 하셨습니다.
자 우리는 잠시 후에, 주님의 뜻이라면 그것을 알아보고 증명하겠습니다. 그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신의 현현이란 여러분이 볼 수 없는 뭔가 입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텔레비젼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텔레비젼; 사람들은 지금, 노래를 하면서 이 방 안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색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오직 오감(五感)에 매여 있습니다....아니, 여러분의 전 존재가 오직 오감에 매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한된 시력이 보는 것에 매여 있을 뿐입니다. 3차원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형에 의해, 텔레비젼으로 보여 질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텔레비젼은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텔레비젼은 다만 그것을 채널로 끌어들여 순환을 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텔레비젼의 스크린이 그것을 뽑아냅니다. 하지만 장면은 처음부터 원래 있던 것입니다.
텔레비젼은 아담이 살았을 때에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텔레비젼은 엘리야가 갈멜 산 위에 앉아 있을 때에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텔레비젼은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거니실 때에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에 와서야 그것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그들은 전에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여러분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은 실제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천사들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그 위대한 천년왕국이 오게 되면,
우리는 텔레비젼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것을 더욱 생생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신의 종들 안에다 “엔 모피” 하시고 자신을 증명해 보이시면서,
그가 말씀하신 위대한 형태로 자신을 계시합니다.
자, 여기 하나님은 영의 형태로 계십니다.
다음에 하나님은 “엔 모피의 형태로” 들어갑니다.
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엔 모피.” 아브라함이 왕들을 죽이고 돌아오고 있었을 때,
여기 멜기세덱이 나옵니다,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이 여기 룻과 보아스 안에서 계시되는 것을 봅니다,
근족 구속자로, 어떻게 주님이 육신이 되셔야 했는지를. “엔 모피” 하십니다.
자 우리는 속성, 하나님의 영의 아들들은 아직은 말씀으로 이루어진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음을 봅니다.
그러나 신의 현현; 우리의 몸은 말씀과 보증에 복종하고, 보증으로, 몸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예수님과 자녀들인 여러분의 차이는, 보십시오, 태초에 그는 “말씀, 엔 모피 몸” 이셨습니다.
그는 멜기세덱이라는 사람 안에 들어가셔서 사셨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은 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은 그 몸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몸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모든 것을 아셨고,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담처럼, 저처럼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 속성에서 벗어나서, 시험을 받으려고, 이 땅의 육신을 입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생명이 끝나면, “이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우리에게는 이미 기다리고 있는 집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 때 우리는 뒤돌아보고 우리가 행한 일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직은 말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육신을 입은 사람이 되었지, 아직은 말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 보십시오, 명확하게 그것을 분명히 하자면, 여러분이 태초에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말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다시 한 번 증명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었다면, 여러분은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생각 속에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시죠, 여러분은 시험을 받고 그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여러분은 그 “신의 현현” 을 지나쳐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죄의 유혹을 받기 위하여, 이 세상으로 육신을 입고 그 몸을 우회해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기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다 내게 올 것이고,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은 정상적인 노선으로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에서 그는 말씀으로, “신의 현현이” 되었습니다.;
그 몸은 나타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몸이죠. 다음에 그는 육신이 되사 구속주가 되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몸, 영광스럽게 된 “신의 현현의 상태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우리의 이 육신의 몸이 하나님의 영을 받게 된다면, 이 시대 메시지를 영접하면,
여러분 안에 그 불멸의 생명이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이 몸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만듭니다. 할렐루야!
요한1서5장18절 말씀에서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죄를 지을 수도 없음이니라."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지을 수 없는데,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3장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들어 갈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풍성하신 지혜와 부요하심과
모든 선하신 의의 열매들을 볼 수도, 이해하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지적인 깨달음은 다른 곳에서도 배울 수 있을 줄 모르나,…여러분이 거듭난다는 것은 여러분의 시대에
“계시되고 있는 메시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새로운 탄생(거듭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사도행전2장38절에 있는 말씀대로 천하 만민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이름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습니다... 그리하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먼데 있는 사람들에게 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분의 생각 안에 미리 아신 구속 받아야할 잃어버린 양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로마서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아시겠죠,
새로운 탄생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아멘”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복종하게 만듭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 시대 하나님의 생각의 속성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가 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 내가 술을 끊을 수만 있다면! 내가 뭘 할 수만 있다면."
그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그런 모든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죠, 아시겠죠,
여러분의 몸은 성령에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세상 것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죽었습니다.
그것들은 죽었습니다. 여러분의 죄는 침례 받을 때 물에 장사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몸이, 성령에 복종하게 되면, 올바른 생활을 하려고 애씁니다.
성령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여자분들, 나가서는 짧은 옷이나 그런 부도덕한 옷을,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있는데 그와 같은 일을 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성령은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성령은 더러운 영이 아니고 거룩한 영입니다.
다음에 여러분이 그 성령에 복종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여러분의 전 존재를 그 말씀에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다름 아닌 이 씨인 말씀이 표명된 것, 또는 소생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살아난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몸은 재빨리 그 말씀으로 향합니다. 질문이 없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건 부활의 보증입니다. 이 몸은 다시 일으켜질 것인데, 이미 부활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 그 몸은 죄와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복종했었지만, 이제는 보증을 가지고 있고, 천국으로 향한 몸입니다.
여러분이 휴거할 수 있는 것은 그 보증입니다. 아프신 분이 누워서 죽어가고 있다면, 죽음 밖에 남은 게 없습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암과 결핵이 퍼져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완전히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치료하심이라는 게 없다면,
부활도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병 고치심은 부활의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러분 보증금이 뭔지 아시죠? 그건 선불입니다. "그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받았도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얼마나 좋은지 보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몸은 성령에 복종합니다.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아직은 말씀의 형태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육신의 모습으로 있지만 말씀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하늘로부터, 거듭나게 되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영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육신의 옷이 떨어지게 되면, 자연적인 몸이 있고, 신의 현현이 있습니다,
손으로 짓지 아니하고, 여자에게서 나오지 아니한, 우리가 가게 될 몸입니다.
다음에 그 몸은 돌아와서 영광의 몸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지옥에 내려가셔서, 노아의 메시지를 거절한 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설교하시고;
그 “신의 현현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오, 정말 경이롭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린도후서5: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보십시오, 우리는 그 몸을 거치지 않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우회해서 땅의 육신을 입고 왔습니다.
아담처럼 죄의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기 위해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의 시험이 끝나고 나면, 말입니다.
우리는 창세전에 우리를 위해 예비 된 예수님이 입었던 그 동일한 하늘들에 예비 된 그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 몸은 우리가 이 아래서 유혹과 시험을 받기 위해서, 곧바로 내려오기 위하여, 건너뛴 거기 있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몸을 거쳤다면, 우리는 아무 유혹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육신이 되기 전에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말씀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말씀의 이미지로 변해가고, 말씀에 참예하는 자가 됩니다,
창세전에 이미 예정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 여행을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여러분 안에 그 조그마한
생명의 불씨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은 그것을 아실 겁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도 나가보고 저 교회도 나가보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맞습니다.
팔백 년 뒤, 팔백 년이 지난 뒤에, 변화 산에서, 여기에 그들 두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모세의 몸은 수백 년 동안 썩었는데, 여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알아볼 정도의 모습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아멘! "이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여러분이 여기 “땅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속성” 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기다리고 있는 몸을 갖게 됩니다."
거기에 “그들이 신의 현현을 입고,” 변화산 위에 서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이 임했었던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멜기세덱에 대한 진짜 계시가 나타나 보이게 되었습니다. 뭐죠?
멜기세덱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기 전에, 말씀이신 하나님 이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 그 전에는 영이신 하나님,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처럼 죽지 않을 존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시작한 때가 있었지만; 이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생명이셨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항상 늘 동일한 한 인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것을 계시로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동일 인물입니다.
멜기세덱의 직함을 보십시오, 첫째는 "의의 왕." 이요.
히브리서7:2....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그는 두 왕이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가 육신이 되사 죽으시고, 부활하신 몸을 받은 이후에, 계시록 21:16절에 그는 "만왕의 왕" 이라고 불리 웁니다.
그는 그 세 가지 다 입니다. 자, 잘 보십시오, 왕이신 하나님, 왕이신 신의 현현, 왕이신 예수입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의의 왕," 성령의 속성입니다; "평강의 왕," 신의 현현입니다;
육신으로 그는 "만왕의 왕" 이셨습니다, 동일 인물입니다. 자, 그 멜기세덱은 육신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 아들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인자),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아들, 그는 항상 동일하신 분입니다.
출애굽기33장에 보시면 모세는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가 만난 분은 “신의 현현”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거기 가시덤불 속에서 커다란 불기둥으로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때 모세는 말하길,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당신이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모세는 너무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내가 내 손을 네 눈 위에 두리라. 그리고 지나가리라. 너는 내 등을 보겠지만,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지나가셨을 때, 그건 한 남자의 등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의 현현” 이었습니다.
다음에 모세에게 온 말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불기둥의 형태로 모세에게 오셨던 말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남자로 오셨습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서. 자, 거기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한 남자가 옵니다, 세 남자가, 그리고는 세 남자가 상수리나무 아래 앉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얘기하신 후에... 하나님이 왜 오셨습니까?
아브라함은, 태어날 아들의 약속과 메시지를 가진 자였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은 다 없는 것 같이
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얼마나 완벽한 지 아시겠습니까?
말씀은 선지자에게 왔습니다. 그렇죠, 거기에 “신의 현현”으로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이 선지자에게 임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신의 현현”으로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 힘(Elohim)이라” 불렀습니다. 자 창세기1장을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태초에 “엘로 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18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 사람을 뭐라고 불렀는지 알게 됩니다...
거기 앉아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의 마음의 비밀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뒤에 있는 장막 뒤에서 사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실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하길, "그는 엘로 힘이다." 그는 “신의 현현의 형태로” 계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십시오. 후에… 자 우리는 그 때 하나님이 “신의 현현의 형태로”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여호와 하나님, 엘로 힘"이라고 불렀습니다.
자, 창세기18장에서,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봅니다. 자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세 남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 셋을 만났을 때, 아브라함은 "내 주여"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저 아래 소돔에서 롯은; 그 두 사람이 그리로 내려갔을 때, 롯은 그 둘이 오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내 주들이여"하고 불렀습니다. 아시겠죠, 왜 그렇죠? 우선, 롯은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맞습니다,
또 롯은 그 시대의 사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건 정말로 맞습니다. 롯은 그들을 "주들"로 불렀습니다. 열 둘 정도가 있다고 해도,
롯은 여전히 "주들"로 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본다 해도, 그 분은 여전히 “한 주님” 이셨습니다.
거기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멜기세덱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
멜기세덱은 승리한 자기 자녀에게 성찬을 베풀었습니다.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일부분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보기를 원합니다. 예표로 나타난 여기에, 성찬이 있음을 봅니다.
싸움이 있고 난 뒤에, 멜기세덱이 자신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찬은 그리스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투쟁이 끝나고, 여러분이 고난에 참예한 뒤에, 그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참예하고, 이 존재의 일부가 될 때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야곱은 밤새도록 씨름을 했고, 그가 자기를 축복해 줄 때까지 그를 놓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참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것입니다.
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자신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주시는 진정한 성찬입니다.
여기 조그마한 떡과 성체는 그것을 상징으로 나타냅니다. 여러분이 씨름을 하고 하나님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때에, 성찬은 결코 제도가 아니었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수백 년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 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자기 자녀인 아브라함이 승리를 거두었을 때,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만나 포도주와 떡을 주었습니다.
이 땅에서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혼인 만찬에서 그분을 만나 다시 성찬을 나누리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내가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먹고 마시기 전까지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
하리라." 맞습니까? 다시 보십시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집에 돌아가기 전에 아브라함을 만나러 갔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예표입니까! 싸움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에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우리는 본향 집에 이르기 전에,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맞습니다. 완벽한 예표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리브가가 저물녘에 빈들에서, 이삭을 만나는 아름다운 광경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의 예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가 그렇게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4:15...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완벽합니다, 이런 모든 예표들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현현”, 여러분의 육신이 무너지고 그 “신의 현현” 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죠?)
그 “신의 현현” 은 땅으로 내려와서 그 구속 받은 몸을 일으키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기 공중에 휴거 된다면, 여러분은 그 “신의 현현”을 만나려고 그 몸을 가지고 갑니다, 그렇습니다,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러 갑니다.”
이 멜기세덱이 “신의 현현으로 나타나신” “엔 모피 하신” “영원하신 하나님” 이 아니고 누구였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분명하게 이 땅에서 여행 중에 있는 우리의 생명과, 죽음과 죽은 뒤에 갈 곳에 대한 비밀을 전부 다
지금 살펴보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하나님의 예정과 택하심이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자, 지금 이것을 말씀드리는 동안에, 여러분 자세히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비밀로 가지고 계시던 영원하신 목적의 단계들은 이제 계시되었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여전히 완벽함으로 나아가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속하신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서는 같은 방법으로 그의 교회를 구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세 단계로 사람들을 구속하십니다. 자, 처음에는 의롭게 됨(칭의)이며, 루터가 전했던 복음입니다.
두 번째는 성화인데,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입니다. 웨슬리가 전한 복음이죠. 세 번째는 성령의 침례입니다.
자,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모두 하나님이 구속 하고나면, 그 후에는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도, 세 단계로 구속 하십니다. 왜냐하면, 땅도 하나님의 속성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하신 일은, 세상이 더럽혀졌을 때, 노아의 시대 물 침례로 세상을 씻으셨습니다. 맞습니다.
다음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떨어뜨려서, 세상을 성화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 부르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시죠? 하나님은 여러분을 성령의 불 침례로 세상적인 모든 것을 여러분 안에서 불태워서
여러분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었듯이, 또한 세상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불로 불살라질 것입니다.
수백만 마일의 높이에 있는 모든 세균을 없애시고, 바다도 없애시고 땅은 다시 회복되어 정결해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됩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붙들었을 때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자명합니다. 모든 것이 셋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입증하십니다. 그건 항상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게 사실임을 입증하십니다.
그것이 예정된 자들이 자신의 구속을 고려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억지로 만들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그렇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짜 구속은 예정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구속한다(redeem)는 말은 "원래로 되돌린다." 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
구속한다는 것은 뭔가...뭔가를 구속하는 것은, "원래의 자리에 되돌리는 것" 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정된 자들만이 되돌려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자들은 거기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 되돌립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여러분이 가졌던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습을 생각하시고,
하나님은 여러분이 오늘날 이곳에 태어나서 그분의 계시되고 있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영접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그분의 뜻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본향 집을 떠났던 자들만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땅으로 내려올 수 있는 자였습니다. 맞습니다.
다음에,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 영광스런 상태로 되돌려집니다. 여러분이 성숙되고 나면 다시 되돌려집니다.
그들이 바울의 머리를 자르려고 단두대를 짓고 있을 때,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바울은 말하길,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나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는 말하길, "사망아, 네가 날 어디서 소리 지르게 할 수 있는지 말해 보아라!
무덤아, 네가 어떻게 날 붙잡을 지 말해보아라! 나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이다!" 아멘!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망, 지옥, 무덤, 어떤 것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을 붙들 수 없었습니다.
어떤 것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복을 받은 자임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작은 이슬방울처럼. 만일 제가 이해하고 있다면, 그건...저는 화학을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이슬이란 습기
또는 대기가 응고된 것입니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어두워지면, 하늘에서 이슬이 떨어져 땅에 내립니다.
그것은 어딘가로 부터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해가 올라오기 전에 다음 날 아침, 그 이슬은 거기에,
그 작은 놈은 떨면서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해가 뜨기만 하면, 그 이슬방울이 반짝거리는 것을 한 번 보십시오.
그건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죠? 해가 자기가 있었던 곳으로 다시 불러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 안에 있는 뭔가가
우리는 어딘가로 부터 왔고, 우리를 당기고 있는 그 능력에 의해 다시 되돌아 갈 것을 말해줍니다.
작은 이슬방울은, 자기가 위에서 왔다는 사실과 그 태양이 자기를 다시 위로 끌어올릴 것을 알기 때문에, 반짝이며,
빛을 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람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만나게 되면,
그가 어느 날엔가는 여기에서 위로 끌어올려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땅에서 들리게 되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아멘! 자 보십시오,
자, 우리는 멜기세덱을 보았고, 왜 그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었는지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여," 하고 불렀던 것을 아십니까? "그는 아비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버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머니도 없었습니다," 물론 없죠.
그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였으니까요. 한 번은 시인이 예수님께 큰 찬사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길: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도다." 아시겠죠?
정말로,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은 육신이 되었습니다. 선지자로 오셨을 때, 그는 자신을 인자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세 아들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선지자), 하나님의 아들(성령), 다윗의 아들(천년 왕국 왕으로)
그가 여기 땅에 계셨을 때, 그는 성경을 성취하기 위한 사람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모세는 말하길,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 그는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그는 결코 이렇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길, "나는 인자라. 너희가 인자를 믿느냐?"
왜냐하면, 그는 인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증거 하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차별 대우자”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셨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차별 대우자입니다.
피부색으로, 인종으로, 교육으로, 부자와 가난한 것으로,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등등 차별하는 게 아닙니다.
영을 차별하는 겁니다. 피부색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고 적음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거듭나면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그들로부터 분리되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리하시는 분입니다,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것을, 어두움에서 빛을, 옳고 그른 것을. 그런데 자 보십시오,
그때 그들 유대인들은 차별대우가, 인종 차별을 했는데, 사마리아인들에게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면; 땅에는 세 인종만이 있었습니다. 그건,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노아의 세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들로부터 뻗어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다 아담에게로 연결되는데, 결국 우리는 다 형제간입니다.
성경은 말하길, "하나님께서 한 피로 만국을 지으시니라." 우리는 다 핏줄이 같은 한 형제간입니다.
흑인은 백인에게 수혈을 할 수 있고, 그 반대로도 가능합니다. 백인은 황인인 일본 사람이나, 인디언이나, 황색인이나,
누구든지, 또는 야벳의 후손들이나, 누구에게나, 피를 줄 수 있는데, 우리는 다 한 핏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우리 피부색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면(거듭나면), 세상으로부터, 우리는 분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처럼, 그때 우리는 세상 것들로부터 분리가 됩니다.
우리는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건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은 반은 유대인이고 반은 이방인들입니다.
발람의 계책이 있었을 때, 이방인들과, 모압과 결혼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면서 이방인이었습니다.
자, 우리 앵글로-색슨족은 그것과는 아무 연관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으로 메시야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무 것도. 우리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나중에서야 믿어 들어오게 된 자들 이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었고, 왕족의 씨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예정과, 택하심과, 미리 아심에 의해서, 그분의 은혜의 풍성하심을 오는 세대에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의 그 왕의 씨는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그들의 징조는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소돔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의 때, 그때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으로 내려오셔서 자신을 표명하셨습니다.
자기 뒤 장막 안에 있는 사라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이 자신이 말씀하신 약속에 흔들리지 않음을 보셨습니다.
아브람에게 왕족의 이름인 “아브라함” 으로 그의 이름을 바꾸시고는 그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창세기18장에서 소돔이 불과 유황에 의해 불타서 멸망되기 직전, 하나님께서 “띠아퍼니((theophany)” 하셨습니다.
인간은 볼 수 없었던 그 위대하신 무한하신 존재가 “신의 현현의 모습으로” 스스로 인간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그 시대 하나님의 약속을 갖고 있었던 “선지자"였던, 아브라함에게 “신의 현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스스로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이방인 세계가 불로 멸망당하기 직전에 있을 마지막 때의 징조이며, 예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참 교회” 는 전 세계가 멸망되기 전에 그 마지막 징조를 다시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방인 왕국은 불과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반드시 믿으셔야 합니다.
이 땅을 불태우기 전 사라에게 약속의 자녀가 잉태된 것처럼, 우리의 이삭 되시는 그 왕족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잉태되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잉태 되어야합니다.
그 멜기세덱은 육신이었고, 자신을 인간의 몸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육신이 되셨습니다.
자, 이 시간,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걸 믿으시면, 그분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립시다.
이 멜기세덱,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만나셨고, 어떤 징조를 행하셨죠?
그가 육이 되었을 때, 그는 그 일이 마지막 때, 직전에 다시 재현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믿으십니까?
저는 믿습니다. ["아멘."]{할렐루야, 주님 찬양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성경말씀을 믿습니다, 당신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진심으로, 저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음을 압니다. 저는 꼬집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 무슨 말을 하기도 두렵습니다. 당신은 당신 종의 마음을 아십니다.
수 세대를 걸쳐 내려오면서, 당신이 보내신 것들을 사람들이 보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과거에 하나님이 행한 일들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앞으로 하실 위대한 일들을 말하지만,
현재 하나님이 하시고 계신 일은 무시합니다. 매 시대마다 그랬습니다.
왜 로마 교회가 성 패트릭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까?
왜 그들은 예언자인 쟌다르크를, 마녀라고 화형 시켜, 죽였습니까? 아버지, 그것은 항상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의 눈에서 감추셨습니다. 당신이 그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회칠한다, 그들을 거기에 넣은 자들은 너희이다." 선지자들이 죽고 난 뒤,
그들은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그들은 항상 당신을 핍박합니다, 당신이 어느 형태로 오시든지 말입니다.
오늘 밤, 꼭 한 번 더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일 우리는 투산에 갈 예정입니다. 세계의 다른 곳들, 다른 도시에서도,
우리는 설교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밤 이곳에는 한 번도...
말씀의 설교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말씀이 표명되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처음 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처음에 당신께 간구했듯이. 그 제자들, 글로바와 그의 친구는, 엠마오에서 왔습니다,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당신은 수풀 속에서 걸어 나와 그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설교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미련하여,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그리스도가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당신과 걸었지만, 여전히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자, 그들은 당신더러 함께 유숙하자고 강권했습니다. 그들이 조그마한 여관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그때 당신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행하셨던 그대로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잠시 후 당신은 그 장막 뒤로 들어가 사라지셨습니다.
재빨리 그들은 뛰어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정말로 살아나셨습니다!"라고.
아버지, 하나님, 저는 당신이 여전히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여러 번 그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다시 그 일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일을 다시 한 번 일어나게 하소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곳에 계신 이 분들도 당신의 종들입니다. 주님, 제가 말한 모든 말은 결코...당신이 하시는 한 마디가 제가 다섯
날에 걸쳐, 다섯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는 말 보다 더 효력이 있을 겁니다. 당신이 주시는 한 마디가 말입니다.
주님, 사람들이 제가 그들에게 진리를 말했다는 것을 알도록, 당신이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들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번 한 번을 더 구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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