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km. 1만5천보.
화창한 날씨. 한낮 최고기온 26도.
약간 더웠다.
운강님이 땀을 많이 흘렸다.
드디어 그늘이 좋은 계절이 왔다.
시간만 되면 자꾸 그늘로 찾아들었다.
7시간 동안 5개의 산을 넘었다.
520m 서응해산을 제외하면
전부 나지막한 산이지만 경사도는 제법 된다.
서응해산 하산길 200m 구간은
여전히 미끄럽고 위험했다.
또한 등로를 뒤덮은 줄딸기 나무와 잡초 때문에
내려가는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은재님이 선두에서
큰 도움을 주셨다.
이 어려운 길에 참여하신
도보행복님 은재님 선향님
운강님 푸른강님 마일도님에게
감사드린다.
서응해산 산행이
행복한 산행이 된 것은 전부 이분들 덕이다.
고도 그래프
1. 점심 전 (오전 10:20 ㅡ 오후 1:20) 4km
팔공보성 50m ~ 160m ~ 120m ~ 왕산 190m~
용두산 360m ~ 280m ~ 350m ~ 290m ~ 명밭봉 370m
획득고도 계산해보면
160-50= 110. 190-120= 70.
360-190= 170. 350-280= 70.
370-290= 80.
110 + 70 + 170 + 70 + 80 = 500m.
2. 점심 후 (오후 2:40ㅡ오후 5:10) 4km
명밭봉 370m ~ 300m ~ 서응해산 520m ~
도덕산 갈림길 350m ~ 덕산마을 240m ~ 버스정류장 180m
신숭겸 장군 유적지 뒷편 왕산(250).
서쪽 왕산보다 60m 높다.
지묘초등 옆 지묘천
팔공보성3차
나팔고개.
지묘동에서 연경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다.
왕건의 팔공산 전투 때 진군 나팔을
이곳에서 불었다고 한다.
파군재. 무태. 불로. 왕산. 독좌암.
살내. 지묘. 시랑이 등의 지명으로 볼 때
대규모 전투가 있었던 게 확실하다.
김유신은 젊은 시절 팔공산에서 수련하여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왕건은 팔공산에서의 패배를
절치부심의 기회로 삼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팔공산은 6.25 전쟁 동안
절체절명의 시기에
낙동강 방어선의 중심이 되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적 전기마다
팔공산 지역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외지인에게 자랑할 만한
역사적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다.
5월 23일부로 팔공산이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예산도 배로 늘어나고
관리하는 주체도 좀 더 전문적이다.
등산로 입구 연경지구 신축 아파트
이쯤에서 '보리밭' 발표회가 열렸다.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대구시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벌채가 심해져 인근 산은 벌거숭이가 많았다.
팔공산 기슭에선 땔나무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1970년대가 되면서 연탄이 난방연료의 주력으로 등장했다.
등산객을 위한 의자가 등산로에 놓여있다.
고마운 마음씨다.
파계로 동쪽에도 왕산이 있다.
동쪽 전망이 터진 곳에서 공산을 바라보았다.
연경지구
동네 주변 산은 어린 소나무가 많다.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높이가 100m 안팍의 산은
70년대까지도 아궁이 땔감용 나무 구하는 곳이었다.
군불을 넣거나 쇠죽을 끓이려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나무하러 다닌 기억이 있다.
싸리나무는 빗자루. 회초리. 땔감으로 많이 쓰였다.
용두산 정상. 옛 이름은 성도봉.
싸리 나무가 한 곳에 모여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연경지구 팔공중학교 앞에 대원사가 있다.
그 자리는 본래 연경서원이 있던 곳이다.
연경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올라
북쪽 도덕산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이황의 도와 덕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 지역에서 제일 높은 산을
도덕산(660)이라 명명하고,
도덕산이 잘 보이는 이 봉우리를
유생들의 학문 성취를
기원하는 뜻에서 성도봉이라 불렀다.
동응해산
파계사 골짜기
제일 먼 곳부터 도덕산 서응해산 명밭봉.
명밭봉 밑 골짜기가 명밭골이다.
근처에 지묘천 건너 디어밸리 카페로 가는 명밭다리도 있다.
360m 용두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바라보았다.
서응해산 정상은 500m 길이의 평평한 탁상지다.
서응해산 오르기 전에
300m 안부에서
마일도님이 매골로 먼저 하산했다.
화요일 산행 피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 4월에 서응해산은 이미 경험하였다.
가는그늘사초
백선 꽃. 꽃 냄새가 고약하다.
서응해산 (520) 정상.
급경사지를 기어오르다시피
빠득빠득 용을 서가며 앞으로 나갔다.
고도를 300에서 520으로
220m 한 번에 올리는게
쉽지 않았다.
'응해' 한자말을 풀면
하늘을 나는 조류 '매'와
땅을 기어다니는 갑각류 '게'다.
대학 한문과 나와도 읽지 못하는 鷹(응).
蟹(해). 이런 어려운 한자를 동원하였다.
게(해)의 천적은 매(응)다.
이곳은 매가 많은 곳이라서
옛날부터 매골이라 불렀다.
그런데 게가 매골에 왜 찾아왔을까?
최고속도를 자랑하는 매와
느린 걸음의 대명사 게가
만났다.
엉개산. 엉기산 영구산 안기산 엉구산.
그 유래는 도통 짐작조차 어렵다.
옛날에 '응기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엉개산은 여기서 이름을 따온 것일 수도 있다
올라갈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가 땅에 닿일 만큼 가플막진 산이다.
내려갈 때는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지가
짧게 있다.
서응해산 하산길.
많이 미끄러웠다.
450m 지점에서 약간 우틀하면
급경사가 나온다.
200m 내려가기가
몹시 불편하다.
나일론 로프가 도움이 되었다.
줄딸기 군락지.
줄딸기. 식물 분류가 산딸기와 다르다.
이파리가 다르다. 열매로는 구분이 어렵다.
원시림같은 분위기가 나는 하산길.
숲가꾸기가 전혀 안된 곳이다.
죽은 나뭇가지만 걷어내어도
토양의 수분 함유량과
목재 생산량이 증가한다.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토지를 가진 산주에게
간벌이나 잔가지 정리를 요구하기 어렵다.
안전한 길로 들어선 푸른강님.
한없이 미안하다.
도덕산.
도덕산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덕산마을로
내려왔다.
팔공산둘레길 5구간(덕곡삼거리~대왕재)과
하산길이 겹친다.
덕산마을 맞은편 파계사 쪽
덕산마을.
서응해산 바로 밑이다.
신축과 옛날 가옥이 뒤섞여있다.
부쳐먹을 농토가 온 동네 다 합쳐봐야
만 평도 안되겠다.
그나마 있는것도
전부 손바닥만하다.
그런데도 이곳에 옛날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뭘해서 먹고 살았을까 궁금했다.
지금은
새로 들어온 사람이
본래 주민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담장 위에서 잠자고 있는 고양이.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덕산 마을 지켜주는 보호수
산행 완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