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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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문학(文學)을 좋아하였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았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문학에 대하여는 잘 알지도 못하였고 배우지도 못하였다. 다만 막연히 내가 만일 대학에 간다면 국문학과에 가서 문학도 배우고, 그래서 글도 쓰고 책도 많이 읽고 싶었다.
나는 소설이나 수필, 시(詩) 이런 것들을 다 좋아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시를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장차 커서 대학에 가면 문학을 공부하고 나중에는 시인(詩人)이 되어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말하자면 김용택시인 같은 분처럼 살고 싶었다.
시인은 눈이 맑고 따뜻하고
시인은 가슴이 깊고 고요하고
시인은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을 것 같고
기쁨대신 슬픔이 많고
향락대신 고통이 많고
웃음보다 눈물이 많아도
시인이 된다면
나는 무작정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고향을 떠났고, 이리에서도 중학교는 채 1년도 다니지 못한 채 서울로 왔기 때문에 대학교에는 가 보지도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학이 좋았고 문학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고작해야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뿐이었고 책을 읽을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의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에는 고작해야 내가 접할 수 있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동요나 동시가 전부였던 것 같다.
1969년 봄, 이리로 이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문학을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동네 만화방을 통해서였다. 틈만 나면 찾아갔던 그 만화방에는 만화 외에도 문고판 소설책들이 한 쪽 서가(書架)에 가득 꽂혀 있었다. 나는 무턱대고 이 문고판에 망라된 한국문학작품을 한권씩 빌려다가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마 그렇게 동네만화방에 있던 문고판 소설은 거의 다 읽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빌려다가 읽을 책이 없을 정도로 한국문학작품 중 비교적 많이 알려진 작품들을 거의 다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책들을 보면 이광수의 ‘흙’을 시작으로 ‘무정’, ‘유정’, ‘사랑’, 박종화의 ‘다정불심’, 심 훈의 ‘상록수’, 현진건의 ‘무영탑’, 박계주의 ‘순애보’, 김내성의 ‘청춘극장’, 채만식의 ‘탁류’, 염상섭의 ‘삼대’ 등 장편소설과 김유정, 김동인, 나도향, 이효석, 황순원, 김동리 등의 단편소설을 읽었다.
아, 그것은 정말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그 속에는 여태껏 내가 전혀 몰랐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현대사의 고난과 질곡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우리 대다수 국민들 삶의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던 것이다.
우리 한국의 문학사를 어찌 내 서툰 글로 다 이야기할 수 있으랴. 나는 그저 하얀 도화지 같은 내 가슴 속으로 우리나라 유명 문인들의 작품들(특히 소설)이 단숨에 스며드는 것 같았고, 그러한 작품들을 통해 그려지는 수많은 주인공들의 인생을 보며 나도 함께 울고 웃고 하였던 것이다. 내 나이 불과 열네 살 때 찾아온 이 문학의 불같은 경험은 그대로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나는 이때 비로소 문학의 깊은 향기를 느꼈던 것이다.
그랬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접한 문학, 그것은 너무나도 향기로운 것이었다. 비록 현실 속 나의 삶은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거나 자전거에 막걸리통을 싣고 이리역 굴다리를 지나 형의 가게로 배달을 하거나, 동이리까지 10여리를 걸어 학교에 가도 수업료를 못 내서 쫓겨 오곤 하던 서글픈 생활이었지만, 담배연기 가득한 만화방 구석에 앉아 문고판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어느새 나를 잊어버리고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그들과 같이 흐느끼고 울분을 토하면서 현실을 곧잘 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한 때 책 속의 세계는 과연 신세계였고, 그 속에서는 언제나 문학적 향기가 났다. 나는 ‘무영탑’을 읽으면서 ‘주만’의 아름다운 용모를 마음속으로 그려보았고, 아사녀와 아사달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가슴 아파 하였으며, ‘다정불심’을 읽으면서는 노국공주를 향한 공민왕의 사랑에 함께 울었다. 그 뿐인가, 나의 가슴 속 여성상(女性想)은 작품을 읽을 때마다 달라졌으니 이광수의 ‘흙’을 읽을 때는 ‘유 순’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고, 이광수의 또 다른 작품 ‘사랑’을 읽을 때는 ‘석순옥’ 같은 여인이 나의 이상형이 되었으며, 같은 작가의 ‘유정’에서는 ‘정임’이와 바이칼호수가 떠올라서, 바이칼호수가 내 평생 가고 싶은 곳 1순위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소년(少年)에 불과하였는데도 상록수를 읽을 때는 주인공 동혁이 되어 있었고, ‘영신’이라는 이름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또한 나는 나의 상상 속에서 어떤 때는 의로운 조선의 선비가 되어 있었고, 어떤 때는 동경유학생 백영민이 되어 저 가련한 여인 허운옥의 한없는 사랑을 받는 청춘극장(김내성) 속 주인공이 되곤 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문학의 보고(寶庫)도 이제 바닥이 나고 말았으니 그 만화방에는 문고판 밖에 없었으며, 세계문학은 전혀 접해보지도 못하였다. 더 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었고, 나는 끝없는 문학의 마력에 취한 나머지 마치 목이 타는 듯 갈증을 느끼면서도 더 이상 문학을 접해보지 못한 채 서울로 오고 말았다.
물론 서울에 와서도 동네 만화방을 기웃거리면서 틈만 나면 소설책을 빌려다 읽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세 세대의 진로」 라는 내 인생의 책을 읽고 나서 부터는 그것마저 억제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공부를 할 시간도 없었던 시간에 소설책을 붙들고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굴뚝같았고, 항상 무엇인가 마음이 갈급하고 허전한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나도 남들처럼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싶었고, 학교 도서관에 앉아서 마음껏 문학작품들을 읽고, 책을 만지고, 책의 향기를 느끼며 그 속에서 주인공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과 같이 세상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지독한 가난이 나를 공장으로 내몰았으며, 내 빈약한 신체는 낮과 밤이 바뀐 채 공장의 기계소리에 늘 휘청거리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래도 나는 배우고 싶은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새 세대의 진로」에서 시인 조지훈은 그 시절의 소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리움과 바램은 그 자체가 사람이 지닌바 근원적인 본성의 하나이다. 완전을 위하여 모자라는 것을 찾는 그리움, 그리운 것을 찾고 바라게 하는 마음의 힘, 이것은 비단 사랑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생 일반 또는 나아가서 우주의 한 원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움과 생각함이 모두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하는 소년들아, 너희들이 지닌바 사랑에 대한 감정은 곧 그대로 육체적인 것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이다. 사랑(愛)을 사랑(思)하여라. 이성(異姓)에 대한 그리움을 학문에 대한 그리움과 같이 깨끗이 지녀라. 학문에 대한 사랑을 이성을 사랑하듯이 열렬히 사랑하여라.”
“사랑하는 소년들아, < 첫사랑이 없으면 구원의 길이 막힌다 >고 한다. 너희 첫사랑을 경건히 마음하여 너희 일생의 좋은 기억과 교육이 되게 하여라. 르네상스의 선구자의 한 사람인 단테는 그의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영원한 영혼의 거울로 삼아 마침내 그 필생의 명작인 ‘신곡(神曲)’이란 작품 속에서 단테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여성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첫사랑인 베아트리체의 얼굴의 아름다움보다는 정신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잊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육체의 아름다움이 사랑에 중하지 않음이 아니지만 육체의 아름다움은 불과 30년 안팎에 기울기 시작하는 법이다. 늙은 뒤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무엇을 노력해야 하겠는가, 이에는 오직 높은 교양만이 필요하다고 믿어라. 마음의 아름다움 그 것뿐이라고 믿어라.”
이러한 시인의 가르침대로 나는 다만 이성(異姓)에 대한 그리움을 학문에 대한 그리움과 같이 깨끗이 지니고자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누나의 도움으로 늦은 나이에 야간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다. 온통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교실에 가득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어머니와 누나들 외에는 이성(異性)으로서의 여성(女性)을 가까이에서 본적이 없었다. 공장이나 버스 안에서 본 여성들 또는 한림학원의 서무나 경리누나들은 엄밀히 말해서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 여성도 아니었고, 이성으로 느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내게 있어 여성은 오로지 영화나 소설, 시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추상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그들은 나의 상상 속에서 때로는 어머니로 누나로 이상적인 연인으로 다가왔고, 나도 영화나 문학작품 속 인물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다.
나는 사실 어려서도 소설 속의 여주인공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거지가 얌전하고 조신하다든가, 용모가 아름답다던가 성격이 상냥하다든가, 남성을 만나면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삼가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혼인을 하면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런 여인상만을 보았다. 그리하여 내가 꿈꾸던 여인상은 늘 상냥하고 부드럽고 지고지순하며 순종적인 조선의 여인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여자라는 존재는 너무도 순결하다고 생각했고, 상상 속에서나마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고귀한 존재로 인식했었다.
나는 그때 처음 본 여학생들이 입은 교복이 너무 눈부셔서 시선을 똑바로 던질 수 없었다. 아마 얼굴도 빨개졌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전부 나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였고, 그들의 희고 앳된 얼굴은 누구랄 것도 없이 비슷해 보였으며, 다만 가슴이 설레고 부끄러웠다. 내 눈에는 그때 여학생들이 입고 있던 새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이 이제껏 본 옷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