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태조의 참회(懺悔)
기원 3251년에 개경(開京)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 고려를 다시 선포하고 또 홍악군에 도읍을 정함도 반포하시고 사방이 다 평정하여 삼한 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후에 태조께서도 참회의 마음이 있었다. 다년 전쟁에 인명의 살상이 많고 또 신라 일천년 왕국이 일조에 자기 손에 잡게 된 것이 모두 정의 인도로 되었다 할 수도 없고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왕위에 오른 것이 자연 마음에 부끄러운 것이 있고 따라서 광명정대치 못한 것도 있어 마음에 깊이 뉘우치는 생각이 불을 담아 붓는 듯이 마음이 화끈하였다. 깊은 밤 벼개 위에서와 옥루(屋漏)와 하늘을 쳐다 볼 때 자연 머리를 숙이고 반성하게 된다.
부처는 참회하는 자에게 죄를 사한다는 불교를 믿고 위안을 받을까 하고 일변 불교를 장려하여 태조 자신이 불교를 믿고 도성 내에 법왕사(法王寺) 왕륜사(王輪寺) 등 10사를 세우고 탑묘(塔廟)를 수축하고 지방에도 큰 절을 많이 세우며 후백제군을 격파하던 황산군(黃山郡)에 세운 개태사(開泰寺)가 가장 유명하고 또 팔관연등회(八關燃燈會)를 열고 크게 불사를 일으켜 경도는 등수(燈穗)천지가 되었다. 개태사에서는 크게 불사를 일으켜 전망 장사의 영령을 제사하고 그들을 위하여 명복(冥福)을 빌고 태조 친히 조위문을 드리었다. 그리고 태조 또 열가지 요훈(要訓)을 기록하여 자손만대에 지키게 하였으니
1) 우리나라 대업이 불의 보호로 되었으니 절을 이룩하여 분수사(焚修師)를 보내어 그 업을 다스리게 할 것
2) 사원을 받아서 도선(道詵)의 말을 따라 창설하고 그 외에는 망령되이 정하지 말 것
3) 나라를 전하는 것은 상예가 있으니 원자(元子)가 불초하여 차자를 세우고 차자가 불초하면 그 형제 중에 택하여 대통을 이을 것
4) 우리 동방은 당(唐)의 문물(文物) 예악(禮樂)을 본받을 것이요 금수와 같은 걸단 나라는 언어와 의관제도가 다르니 결코 본받지 말 것.
5) 내가 산천의 도움을 입어 대업을 이루었으니 서경은 수덕(水德)이 조순하여 우리나라 땅의 근본이요 대업 만대의 땅이니 마땅히 주둔한지 백일을 지나쳐 안정을 이루어라.
6) 연등팔관회는 천령(天靈)과 명산대천을 제사함이니 마땅히 공경하여 잊지 말 것
7) 임금은 민심을 얻기 어려우니 그 마음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간언(諫言)을 좇고 참언(讒言)을 멀리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부역을 경하게 하고 부세를 엷게 한라.
8)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외(公州江外)는 산형지세(山形地勢)가 배역의 세가 있으니 민심도 그러할지라 그 땅의 사람을 쓰지 말고 국권을 맡기지 말 것
9) 백관의 봉록은 국의 대소에 비하여 제정 증감할 것이니 공이 없거나 혹 친척들에게 헛되이 천록(天祿)을 주지 말 것
10) 국가를 가진 자는 마땅히 경계하여 근심이 없게 하고 주공무일도(周公無逸圖)를 그림으로 만들어 걸고 출입에 항상 보고 살필 것
이 요훈을 받은 후왕들은 잘 지켜 행하지 않고 요훈은 지상공문이 되고 말았다. 태조의 요훈 만든 것은 참회에 근본 하여 된 것이요 자손들로 하여금 불교를 믿고 죄를 범치 말라는 것이요, 만세 불변의 교훈은 되지 못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