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교방면
중종과 명종시대에 정치에 있어서는 가위 암흑시대라 할 수 있다. 사화가 연발하여 일대 충량이 모두 살육을 당하여 사림들이 공포 중에 살아왔고 글 읽는 것이 도리어 큰 화환을 불러드리는 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 핍박을 받을수록 선배들의 원기는 더욱 왕성하여 한 옆에 참형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글 읽는 소리가 곳곳에 쉬지 않았다. 조선에 들어 온 유교는 고려 때부터 일반인민의 마음속에 뿌리가 깊이 박혀 여간 환란을 당할지라도 용이하게 뽑히지 않았다.
고려 말에 정몽주로 이학의 조종을 삼아 내려옴으로부터 이조에 와서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으로부터 유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고 그때 유교 중 유명한 선배는 다 점필재 문인이다. 그 학통으로 난 한헌당 김굉필 일두(一蠹) 정여창이 전하여 왔고 김굉필은 적소(謫所)에서 그 학통을 이은 조광조가 전하여 왔고 그 외에도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반계(磻溪) 유호인(俞好仁), 매계(梅溪) 조위(曺偉) 등이 다 점필재의 문인이었다.
또 자성(自成)으로 사숙(私淑)하여 얻은 큰 학자도 있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퇴계(退溪) 이황(李滉), 율곡(栗谷) 이이(李珥),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미암(眉庵) 유희춘(柳希春),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북창(北窓) 정염(鄭𥖝), 청송당(聽松堂) 성수침(成守琛) 등이 다 이때 선배들이다. 중종 36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안유(安裕) 선생 구거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립하고 조선유교를 소개한 안유선생을 제사하고 또 도서 유수한 선배를 택하여 강학에 전력하였으니 이것이 조선서원의 시작이다.
조선 유학의 융성기는 이중명 시대를 가르쳐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높은 선배가 산림에 숨어서 도리를 강구하고 이름과 행실을 가지더니 하야 일대의 표방이 되게 하고 국가에서도 이런 선배를 사랑하여 정치를 맡기려 하나 나아와 벼슬하기를 부끄러워하고 강학에 전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