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전설>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마음 속의 내 꽃
맛깔나는 영화여행/2004 건방떨기
2011-06-26 14:53:24
<2004년 4월 9일 / 15세 관람가 / 132분>
<감독 : 박정우 / 출연 : 이성재, 박솔미, 김수로, 이칸희>
<바람의 전설>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마음 속의 내 꽃 - 에델바이스에 맞추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춤을 춘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사이같다. 그런데, 여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줄기 나온다. 그런데, 그것은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도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인 것만 같다. 남자와 여자의 춤은 너무도 아름답고, 그 어떤 명사로도 표현할 수 없이 세련된 것만 같다. 그렇다. 그들의 춤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행복하게 추는 춤인 것이다. 음악이 끝난 후, 그들은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여자는 말한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1. 렉시는 댄스가수다. 그러나, 그녀는 여타의 댄스가수들처럼 화려한 율동을 선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여타의 도발적인 가수들에 비하면 그다지 섹시함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뛰어나게 예쁘다거나 뭇 장정들의 가슴을 후벼팔 정도의 귀여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 어느 쪽도 아니지만, 그 어느 쪽에도 어설프게 걸쳐 있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늘 신이 나고, 그녀를 보면 어설픔의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른다. 이른바 그녀는 회색인인 것이다. 영화 <바람의 전설>은 바로 그런 류의 영화다. 그들이 추는 춤은 TV를 켜면 볼 수 있고, 고고장에 가면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다. 심지어 나이트나 길거리에서도 그들의 춤은 볼 수 있다. 그들에겐 세계를 평정할 정도의 천재성이 있는 것도 아니요, 이 춤을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겠다는 장인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춤을 추는 것이 좋을 뿐이고, 그것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요인이다. 우리는 그들의 춤바람에 쉽게 동화되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해지는 게 너무 쉬워서, 우리는 영화가 아닌 현실을 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지 모른다. 그들이 추는 춤이 어설픈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사는 세계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박풍식은 사교댄스에 입문하고,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춤이 좋아서 출 뿐이라 말하는 ‘자아도취’형 인간이다. 그의 문제는 남들은 ‘제비’라 부르는데,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우기는’데에 있다. 연화는 그런 그의 ‘춤 세계’에 점점 빠져든다. 가끔 그의 태도가 못마땅하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에 그녀는 풍식을 이해한다. <바람의 전설>은 그렇게 그들의 행복에 마침표를 찍는다.
2. 세상에 태어나 단 한사람이라도 나를 이해해 준다면, 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예술을 이해해 준다면 나는 계속 예술을 하겠어, 라고 많은 ‘예술가’들은 말한다. 박풍식은 춤이 좋아서 춤을 시작했고, 그런 그에게 내리쬐는 현실은 햇빛이 아니라 먹구름 잔뜩 씌운 구름이다. 그가 춤출 수 있는 공간은 ‘돈 많고 외로운 사모님들이 모여드는 나쁜 장소’이고, 그런 장소에서 그는 제비가 될 수밖에 없다. 풍식은 단지 좋아서 추는 춤이지만, 세간의 이목은 그에게 “전설의 제비”란 별명을 준다. 현실이 닿는 공간에서 그는 엄연히 사기꾼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절대로 자신을 “제비”로 인정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풍식은 혼란스럽다. 그 혼란스러움이 예술가로서의 삶을 접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엔딩은 너무나 아름다운 삶의 전율이 느껴진다. 원, 투, 원, 투, 트리타포. 풍식과 연화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어느덧 풍식의 눈에선 눈물이 글썽인다. 너무도 행복해서, 너무도 행복해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너무나 하고 싶던, 너무나 이루고 싶던 꿈이 이루어져서, 그때에 드디어 감격으로 벅차오르던… 그런 순간들을 내가 이루진 못했어도, 그렇게 이룬 사람들의 눈물을 본 적은 많다. 그러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순간이 오겠지, 하며 꿈꾸던 순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어떤 불화의 순간에서도 나는 내가 지키려는 하나의 예술을 지켰기에, 그래서 나를 이해해 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아, 그때에 이룬 말 못할 행복감! <바람의 전설>은 그렇게 전설이 되어간 인물의 이야기다.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툭 던져놓고 사라져버린다. 가끔은 상투적인 그들의 대화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것은 진정 스쳐가는 일상의 어설픔일 뿐이다. <바람의 전설>은 프로의 성공적인 춤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춤에 미쳐 사는 한 인간의 어설픈 삶을 다루었기에 매력적이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아, 세상은 그렇게 전설이 만들어져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