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심성의 차이
세상에서 선한 것이 인간이고, 악한 것도 인간이다. 황혼기에 와 보니 그동안 많은 교제와 언행을 통해 사람의 본성과 심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심령이나 성령이 아닌 스스로 알게 된 혜안인데, 메타포로 가득 찬 인간의 삶에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공자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와 의미를 같이 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공부는 지식을 축적하고 남에게 내세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완성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뜻이었다.’ 이렇듯 인간들이 성과에 대한 경쟁이 아닌 나를 자각하고 성숙한 길을 지향한다면 본성으로 사는 것이 아닌 심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본성은 ‘타고난 성질’이고, 심성은 ‘타고난 마음씨’다. 동의어 같지만, 속뜻의 차이가 있다. 사람을 깊이 알면 본성과 심성을 파악할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돈 앞에서 본성이 먼저 드러난다. 다음으로 심성인데 측은지심을 가졌는지 여부에 따라 파악할 수 있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이는 선하게 태어났어도 환경에 의해 악해질 수 있고, 악하게 태어났어도 환경에 의해 선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황혼에 걱정 없이 살아도 배려라는 단어를 모른 채 인색하다면 심성을 좋게 볼 수 없다. 그것은 자라면서 선행에 대한 학습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를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헤아리는 것을 보고 자랐다면 어른이 돼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요즘 세대야 사는 방식과 추구하는 것이 달라 선행을 강요할 수 없지만 베이비 부머 세대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세대를 막론하고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다.
추운 겨울 임산부 걸인이 구걸한다면, 외면할 수 있을까? 눈앞의 딱한 상황을 보고도 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한 번도 남을 도와준 체험이 없거나, 냉철한 환경 속에서 자랐거나, 본인의 삶이 더 팍팍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가계는 넉넉하지 않아도 걸인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도 가난한데 왜 호기를 부리는지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야 당신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우러나온 선행이었다는 걸 알았다.
본성과 심성은 연계성은 있으나 원칙은 없다. 본성이 좋은데 심성이 외면하는 경우는 없다. 본성이 나빠도 심성이 움직이면 선한 행동이 나온다. 본성과 심성은 구분될 수 있고 분리할 수 있다.
심성은 어떤 냄새일까. 달콤한 냄새, 쉰 냄새, 썩은 냄새. 본성은 어떤 색깔일까. 검은색, 회색. 본성의 색은 탁하고 심성의 색은 투명하다. 심리학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과정을 배우기 전에 오감, 감정, 생각, 행동을 담당하는 뇌 과학을 먼저 습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본성과 심성은 천성이지만 과학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건데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가수 김재중의 가족사가 뜨겁다. 네 살 때 딸만 여덟인 집에 입양되어 양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한다. 딸 부잣집이라 아들이 꼭 필요했나, 라는 근원적인 문제보다 양부모가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으로 키워 양자에게 효도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 감동적이다. 재중의 친부모는 철없을 때 자식을 낳아, 사는 게 힘들다고 입양 보낸 후 아들이 성공하자 친모. 친부라고 나타났는데, 이것이 본성적 행동이다. 과연 김재중이 성공하지 않았어도 아들을 찾았을까? 재중은 친모와 양모 사이에서 냉철하게 처신을 잘하고 있다.
자식을 버렸다가 자식이 성공하자 재산을 약탈하기 위해 나타나는 파렴치한 부모들은 본성이 안 좋은 경우다. 양심을 내버린 부모들을 처벌하는 대신 2024년 8월 28일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지 않거나 학대한 경우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구하라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이는 고무적인 일이다.
가수 션은 심성이 남다른 사람이다. 미국 영주권자인데 입대를 번복한 유승준과 인식을 달리한다. 만일 유승준이 미래에 버림받을 자신의 운명을 과학적으로 대처했다면 군복무를 마쳤을 테고, 가수로서 승승장구했을지도 모른다. 심성이란 성질을 감당하지 못하는 고운 마음씨다. 마음씨와 성질은 감정과 행동을 담당한다. 션은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치지 못한 양심을 선행으로 바꿈으로써 지난 과오를 덮을 수 있었다. 22년째 한국 땅을 밟지 못하는 유승준에 비해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하지 않다. 어린 환자들에게 57억을 기부한 션은 14년간 꿈꾸어 왔던 239억 루게릭 요양병원을 완공했다. 이는 행동 양식을 수렴한 뇌 과학적 처신이다.
살아가는 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본성보다 심성이다. 본성이 강한 사람은 양심이란 게 없다. 남을 의식하지 않기에 죄의식도 없다. 가끔 뉴스에서 남모르게 선행하는 사람들이 보도되는데 이는 타인에게 힐링을 주고 변화하게 하니, 민들레 홀씨가 퍼져 민들레밭을 이룬 것과 같다. 심성의 밭은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