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눈꽃피정 참가기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하는
제주 눈꽃피정을 다녀와서
2016년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 동안 제주도 '이시돌 피정의 집' 에 모인 가톨릭 신자들 129명. 초등학교 어린이에서부터 대학생, 예비신랑신부의 양쪽집안 가족들, 부부, 형제, 자매, 모녀, 모자, 친구, 그리고 우리 쌍둥이, 혼자 온 사람, 성당 및 모임 동료, 지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하는 눈꽃피정’ 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마다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이해인 수녀님을 뵙자마자, 인사하고 사진부터 찍으면서 좋아서 어쩔줄들을 몰라 했다. 암 말기 위독설에 이어 죽음을 맞았다는 선종설까지 나돌면서 가슴이 저리셨을텐데, 이해인 수녀님은 너무나 태연하셨다.
“나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어요.” 환한 웃음으로 당신의 건재함을 증명해 보이셨다. 우매한 사람들의 떠도는 헛소문인 줄 알면서도 얼마나 가슴 철렁했을까? 정말 수녀님은 계단도 아주 잘 오르시고, 웃음꽃도 많이 피워주셨다.
기도와 화합 프로그램의 일종인 가톨릭 피정, 그중에서도 이해인 수녀님의 시문학 강의와 함께 기도의 참 의미를 새겨보는 제주지역에서의 눈꽃피정은 참가자들에게 무한 기대를 안게 해주었다. 피정의 집 진행자들이 출입구, 계단, 강당, 숙소, 성당 곳곳의 환경에서부터 프로그램의 진행 내내 얼마나 정성껏 마음을 다했는지를 오고 가면서 새록새록 느낄 수 있었다. 섬세하고 따뜻하며 세련되게 진행된 배려심에도 진한 감동이 흘렀다. 피정의 시작은 대강당에서 만남의 시간부터 진행되었다. 설레고 들뜬 참가자들은 자기소개에서부터 화기애애하고, 참가하게 된 동기 설명에도 모두 신명들이 났다.
드디어 이해인 수녀님만의 신선하고 소박하며, 수도자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삶이 묻어나는 시문학 강의가 이루어졌다. 어쩌면 이토록 신비로운 기도의 말로 희망을 주실 수 있는지 순간순간마다 번득이는 주옥같은 단어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해인 수녀님의 표정들은 세상의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들꽃이며 별꽃이었다. 한라산 정상의 하얀 눈꽃보다 더 영롱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고정된 카메라 앵글 속에서 수녀님의 다양한 웃음꽃을 보며 천국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해인 수녀님의 강의에 이어, 참가자들도 자신의 생각을 차례차례 나와서 발표했다. 모두가 경청과 공감으로 때로 목이 메이고 때로 먹먹해지며, 때로 눈물도 흘렸다.
제주의 특산물 옥돔구이를 저녁밥으로 맛있게 먹고 나니, 저녁 강의 시간에 그룹 부활의 보컬이었던 가수 정동하가 눈꽃처럼 하얀 니트 상의에, 검정모자를 쓰고 들어왔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환호성에 비명까지 터졌다. 이해인 수녀님의 초대에 몹시 바쁘고 목 상태가 안 좋은 피곤한 상태로도 먼길 마다않고 달려와준 정동하는 첫인상부터 부드러운 이미지에 미소년 상으로 싱글거리는 미소가 정말 반할 정도였다. 정동하는 우리에게 약간 목이 갈라지는 듯한 아픈 음색으로도 최선을 다해 feel을 살려가며 열정을 다해 끝까지 노랠 불렀다. 매니저 코디와 온 것도 아니어서 생얼굴에 의상도 너무나 수수했다. MR 등 어떤 반주도 없는 생음악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시 '친구야, 너는 아니?' 를 열창하는데,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였다. 이해인 수녀님과의 인터뷰와 우리들과의 대화에도 정동하는 웃음과 유머가 끊이질 않았다. 연예인이라고 재거나 빼지 않고 우리들의 앵콜을 수차례나 받으면서 그 아픈 목소리로도 화답해 주었다. 정말 멋진 청년, 최고의 가수다. 한참동안 팬으로 크게 자리할 것 같다. 우리는 정동하 주위로 모여들어 V표시와 하트표시를 하며 십대처럼 사진들을 찍었다.
눈꽃피정의 둘째날 아침은 외국인으로서 이 땅 제주도에 와 농부로 선교사로 뿌리를 내리신 이시돌 성인 삶의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담당 수녀님으로부터 이시돌 성인의 삶을 이야기 듣고, 제주사람으로 뼈를 묻은 위대한 모습을 전시관의 사진과 동영상 등을 통해 보았다. 인간 이상의 삶을 살다 가신 이시돌 성인의 뜻을 조금이나마 본받으려 십자가를 그으며 마음을 다졌다.
이어서 피정의 집 뒤쪽으로 파란 하늘이 유난히 시원스레 펼쳐진 동산, 새미은총의 동산엘 올라갔다. 빨간 구슬같은 열매가 풍성하게 매달린 먼대나무와 한껏 피어난 붉은 동백꽃이 선연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의 길 14처의 모습과 곳곳에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이 나를 부르시며 손짓하고 계셨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 마음을 바치며 내디뎠다. 로사리오 묵주 형상의 동그란 새미 연못엔 하늘하늘 파란 하늘과 아롱아롱 흰구름이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찰랑거리며 곱게 반영되었다.
눈꽃피정이란 주제로 우리가 찾은 탐방지 ‘1,100고지’엔 눈꽃은 없이 봄처럼 포근했지만, 나무데크 아래엔 눈이 조금 깔려 있었다. 너무도 파래서 시린 겨울하늘을 하얀 사슴상이 높이 우러르고 있었다. 멀리 제주의 오름들이 하얀 눈에 덮여 아스라한 설경도 보여주었다. 팔각정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편안한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며 촬영하는 기쁨도 누릴수 있었다.
제주에서는 쑥스러워 표현을 하지 못할 때 '사랑해' 대신 '동백해' 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그만큼 제주 동백꽃 속에 숨어있는 말의 표현은 사랑 그 자체라고 한다. 동백꽃이 ‘카멜리아’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동백꽃의 총출동 잔치인 ‘카멜리아 힐’ 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동백꽃, 서양 각국의 동백꽃들이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으로, 분홍 빨강 하양 겹겹의 형형색색 온 들판이 꽃천지였다. 'I Love You' 하트 표시에서부터 이길 저길 이언덕 저언덕 길마다 온갖 알록달록 이벤트 장식들이 넘쳐났다. 이미 핀 동백꽃들은 벌써 다 져버리고, 아직 피지 못한 꽃들은 봉오리인채로 환희의 아름다움은 느낄수가 없어 조금은 안타까웠다. 시기를 잘 맞추어 오면 바람이 부는 날 색색의 동백꽃잎이 후두두둑 떨어지는 그 찬란한 광경을 볼수 있지 않을까?
셋째날 아침 성지순례길은 정난주 마리아의 묘소가 있는 대성성지로, 정난주는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 순교자의 부인이다. 황사영이 당시 이승훈신부님과 함께 비밀리에 교회 활동으로 몸을 숨기자, 가족들과 함께 체포된 정난주는 모진 고문과 박해를 당하였으며, 결국 한양에서 가장 먼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끝까지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을 증거하다 순교한 인간 이상의 실로 거룩한 여인이다. 가는 길엔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리는 모두 보랏빛 파랑빛의 우비들을 입은 채로,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한 조선의 여인 정난주 마리아를 생각하면서 침묵 속 기도들을 했다.
부슬부슬 젖는 제주바다 금능으뜸원 해변에 도착하니, 하늘도 시커멓고 바다 바위들은 아주 새까맣다. 물밭을 지나 조심조심 검은 바위들을 건너니 진짜 파란 바닷물이 출렁거린다. 하얀 파도가 철썩철썩 치고 빠지면, 초록의 해초류들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푸른 제주 싸한 겨울바다에서 두팔 벌려 실컷 바다내음 바닷바람을 마시고, 가슴속 응어리들을 모두 토해 내었다.
2박 3일의 눈꽃피정은 너무나 짧았다. 참가자들은 너나 할것 없이 서로가 받은 치유의 은혜, 감사와 사랑의 마음들을 나눠 갖기에 바빴다. 성이시돌 피정의 집에서 준비해준 모든 친절과 겸허한 마음을 선물로 받고, 이해인 수녀님으로부터 손수 사인한 소중한 시집과 엄청난 삶의 은총을 잔에 넘치도록 받았다. 함께 한 모든 이들은 진솔하고도 따뜻한 정들에 푹 빠져들었다. 헤어져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서도 더 진실하게 더 열심히 살면서, 서로서로를 위해 기도하자고 악수와 포옹들을 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 한참을 제주 눈꽃피정 기억 속에 있었다. 3일간 찍은 950장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면서 약 300장의 사진을 선정 편집작업을 했다. 꼬박 닷새가 걸렸다. 영하 16, 17, 18도에 체감온도 영하 20도가 넘는 연일 강추위는 밖에 나가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눈꽃피정의 폰밴드가 조성되니, 사진들을 올리고 동영상에 소감과 댓글들이 주루룩 달려온다. 그날의 잔잔한 감동들이 바람처럼 파도처럼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첫댓글 이해인수녀님으로부터 받은
시를 통한 은총의 선물로
한참동안은 행복하다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