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자의 갈 길
1971.08.17 (화), 한국 청평수련소
통일교회 전체의 상황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중요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교회장' 하면, 교회장은 우리 통일교회의 기둥이 되든가 초석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일면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군교회의 책임자는 통일교회의 선발대
지금 전국에 군을 중심삼고 있는 교회장들을 두고 볼 때, '군(郡)'하게 되면 도나 중앙청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대를 모아 나가는 데 있어서 그 중심이 되는 것처럼, 우리 교회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군 교회장의 입장인 것입니다. 우리가 행정조직을 보더라도 중앙이 있고 도가 있고 군이 있는데, 실무 책임을 어디가 지느냐 하면 군이 모든 실권을 쥐고 횡적으로 면(面)을 통해서 일을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군이 면(面)과 리(里)까지의 횡적 중심의 자리에 있다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전체 조직에 있어서 지금 군을 책임지고 있는, 옛날로 말하면 지역장의 입장에 있는 교회장들이 우리 교회의 선발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죽어 있느냐 살아 있느냐 하는 문제, 또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공적을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통일교회의 부흥 여하를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중요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군대가 강하려면 참모부에 있는 참모들이나 상급 부대의 지휘관들이 좋아야 되겠지만, 아무리 상급 지휘관들이 좋다 하더라도 실전을 책임진 중대장이나 소대장들이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군대는 모든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 통일교회,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이 거대한 단체가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서 선발대와 같은 입장이 누구냐 하면 여기 모여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의기가 양양해 가지고 활동해 나가면 이 단체는 전체가 발전하는 것이요, 만약 여러분이 그러지 못하면 이 단체는 발전을 못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기가 충전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기를 따라 새로운 계획을 하실 수 있지만, 여러분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으면 하나님이 새로운 계획과 발전의 요건을 제시하실 수 없고 아무런 기대도 걸 수 없는 것입니다.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어야 할 통일교인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믿어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믿으라고 하는 데 그 이유가 뭐냐?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구요. 구원은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만 얻는 것이지 사탄과 싸우고 있는 입장에서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강조한 말이냐? 우리의 개인구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보다도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기 때문에 '믿어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신앙, 모범적인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참소하고 하나님을 골탕먹이던 능란하고도 노련한 사탄을 굴복시키는 일은 우리 인간 자체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믿는다 해도 인간만 믿는 것 가지고는 능구렁이 같은 사탄,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유린해 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도의 노정을 따라 완전히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종이요, 오늘날 구원받기를 원하는 인간은 아들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들로서의 책임을 했다 하는 자리에서 종을 종으로서 백 퍼센트 부릴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뭐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탄과 대결하고 있는 입장에 선 것이 오늘날 신앙의 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한 신앙길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강조한 것이 뭐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시니 그 하나님을 믿는 너희들도 전능할 수 있다는 마음 바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동요없이 죽음의 고비도 넘어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거기에 작용을 해 가지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았을 때의 아담 해와를 주관하던 본심적 심정의 작용을 다시 일으켜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에, 사탄은 거기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탄이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일은 우리 자신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완성권내에 설 수 있는 인연의 조건을 세우게 될 때, 내심으로 하나님만을 절대시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아담이 하나님을 절대시하지 않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아담 해와보다 더 나은 자리에 선 것으로 인정을 하시어 우리를 간섭해 가지고 사탄과 대결할 수 있는 발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본심을 작용시켜 가지고 거기에 강력한 힘을 투입시켜 우리에게 사탄을 대해 당당코 나설 수 있는 제2의 신념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우리 앞에 더 이상 대립하지 못하고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무조건의 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무조건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의 신앙태도는 무조건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식입니다. 말은 맞는 말입니다. 무조건 신앙하면 구원 얻기는 얻는데, 무조건 신앙해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믿으면 구원 얻지' 이러고 있어요.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조건 믿으라는 말은 뭐냐?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옛날 아담이 타락할 때,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기준을 넘어선 인연을 갖춘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작용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킬 터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 놓고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성교회 신앙은 사탄이야 있건 없건간에 무조건 믿으면 구원 얻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에 있어서 근본적 차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조건 믿더라도 사탄을 굴복시켜야 구원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것이고, 사탄을 굴복시킨 승리의 실적을 가져야만 천국 갈 수 있는 것이지, 무조건 믿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결국 문제는 뭐냐? 하나님이 협조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갓입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한 것은, 우리 인간이 너무나 타락하여 하나님이 상대할래야 상대할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짐으로써 마음으로라도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는 상징적인 절대기준이라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해 오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상징적 절대기준만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체적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상징적이 아니라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이 다른 거라구요. 하나님이 절대자라면 그 절대자 앞에 우리는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믿음을 초월한 자리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킨 자리입니다. 그렇쟎아요? 절대적 하나님 앞에 참소할 자가 어디 있으며, 절대적 하나님 앞에 대립할 자가 어디 있느냐?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 상대적 실체 절대자의 자리에 선 사람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적 상대의 입장에 선 사람을 누가 참소하겠어요? 세상의 예를 두고 보더라도 남편 있는 여자에게 누가 이러고저러고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 상대, 상대적 절대자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입니다. 여러분이 절대적 실체 기준을 가진 입장에 섰다 할진대는, 하나님 앞에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고 지상에 천국이 전개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남겨 놓고는 지상천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천국은 커녕, 오히려 천국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망치는 사탄이 있으니, 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싸움이 남아 있는 것이지 천국생활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절대적 대상실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이 참소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상에 살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실천자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는 자리에서 천국이 이루어져요? 그 자리는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싸우는 자리지 천국이 이루어진 자리는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해 주실 수 있는 사람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협조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더라도 '아버지여! 저에게 협조해 주시옵소서'라고 하지요? 협조를 받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협조를 받는 데는 어떻게 받느냐? 협조를 받는 데는 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 같지 않습니다. 하늘적으로 보면 전부 다 소생, 장성, 완성과 같은 단계가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협조해 주시는 데 있어서 제일 협조해 주고 싶어하실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한번 협조하면 다시 협조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번 협조해 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해주고 또 해주고, 또 해주고…. 이러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한번 해주면 그것으로 마지막이 되어서 하나님이 협조하실 수 있는 일이 끝나고,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 요구할 수 있는 일이 끝나는 그런 자리에서 협조해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협조해 주고 싶어하시는 데 있어서의 목적점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노정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해 주셨겠느냐? 이것이 문제되는 거라구요. 어때요?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하셨겠어요, 협조해 주고 싶지 않지만 할수없어서 해주셨겠어요?「할수없어서요」 알긴 아는구만. 할 수 없어서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왜? 협조해 줄 필요가 없게 될 그날을 맞기 위해서입니다. 불쾌하고 싫지만 하나님이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해 주실 수 있는 마지막 때를, 하나님이 진정으로 찾으시는 협조의 때를 맞기 위해서, 싫지만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들을 복귀의 책임을 지고 지도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자리를 빨리 벗어나려면
그러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그 자리가 오래 계속되는 것이 좋겠어요, 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어요? 「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똑똑히 대답하라구요. 오래 계속되는 게 좋겠어요, 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어요?「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겠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입장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종의 종의 자리가 빨리 결정나서 그 종의 종으로서의 기간이 그저 하루면 하루, 한 시간이면 한 시간만에 생각과 더불어 끝나기를 바라실 것이 아니겠어요? 나아가 그 기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없을 수는 없고, 어차피 있게 되었으니 그 책임을 빨리 해 가지고 얼른 끝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종의 자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적당히 해라, 그거 그렇게 힘드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니, 그저 오늘 한시간 하고 내일 한 시간 하고 그렇게 살면 종으로서 되지' 그래 가지고 될것 같아요? 종의 종의 자리를 빨리 끝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라면 종의 종이 하는 대로 그저 적당히 내버려 둬서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 될 것 같아요?「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이 자식아, 가라면 싫더라도 가야지 왜 이래,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목을 잡아 끌고 궁둥이를 짓밟고 몽둥이로 후려쳐 가지고라도 가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일생에 걸쳐 할 것을 한 십년 동안에 해서 종의 종의 짐을 벗게 된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느 길을 택하겠어요? 종의 종도 어떤 길을 택하겠어요? 그저 슬쩍슬쩍 하면서 지루하게 백년 동안 가야 하는 길을 택하겠어요? 아니면 눈물 콧물 흘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죽을 상통을 해 가지고 '나 죽는다'고 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길이라 하더라도 한 십년에 갈 수 있는 길을 택하겠어요? 어떤 길을 택하겠어요?「고통스러운 길이요」 왜요?「빨리 끝나니까요」 빨리 끝나면 좋은가? 빨리 끝나면 왜 좋아요? 빨리 끝나 가지고도 종의 종이라면 좋기는 뭐가 좋아요? 그게 그거 아녜요? 그게 그거라면, 백년이 가든 천년이 가든 적당히 슬쩍슬쩍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빨리 끝나 가지고도 종의 종이라는 간판을 그냥 가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그렇지만 종의 종으로서의 기간을 끝내고, 그 다음에는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종의 종에서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종의 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종 새끼의 종입니다. 그렇잖아요? 주인이 종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고 주인의 종이 나를 종으로 부리는 것입니다. 그게 종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의 종으로서는 주인을 만난다는 것은 억천만년이 가도 불가능한 거라구요. 그런 종의 종의 입장에 있는 사람 앞에 '네가 이것만 하고 나면 종의 종이 아니라 종이 된다'고 할 때, 또 사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종의 종으로서 편하게 백년길을 가겠어요, 그저 무너지고 죽어 쓰러져 없어질지라도 종이 될 수 있는 십년 고통길을 가겠어요?「십년 고통길이요」 이것만 알게 되면 못생기고 미욱한 사람일수록 빠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곰 같은 사람, 돼지 같은 사람, 미욱한 사람일수록 빨리 가고,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못 갑니다. 어떻게 된다구요? 그 말 틀림없을 것 같아요? 눈을 깜박깜박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앞뒤를 재고 어떻게 적당히 해 가지고 수고하지 않고 가겠다는 패는 떨어지는 거예요.
곰은 우직하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곰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덕을 매 가지고 거기에서 떨어져 봐 가지고 아파야 거기에 올라가서 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곳을 버리고 다른 데 가서 덕을 매는 거라구요. 얼마나 우직하고 미욱해요?
미욱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보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보면 지금 종의 종들을 모아 가지고 나오는데 그들에게 종의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 종이 되는 길이 있다는 것만 가르쳐 주면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미욱한 사람은 그저 매를 맞든 소같이 부림을 당하든 가지만, 약삭빠른 사람은 '뭐 그럴 게 뭐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적당히 보조를 맞추고 슬쩍슬쩍 가는 거지, 철없고 뭘 모르는 것들이나 저렇게 가지 우리같이 안팎을 다 아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어? 구경이나 하면서 가지'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 패가 있는 거예요. 역사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그런 두 패가 있어 왔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노아 할아버지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미욱합니까? 노아 할아버지가 미욱한 사람이예요, 지혜로운 사람이예요?「미욱한 사람입니다」 미욱해도 그렇게 미욱할 수가 없고, 바보 천치 중에도 그런 바보 천치가 없을 것입니다. 전지전능하고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배를 지으라고 할 때, 강가나 평지 같은 데 지으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요. 나무를 져 나르기도 좋을 것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나가서 일하기도 쉬울 것이고, 이것 저것 한 가지에서부터 천만 가지를 비교하여 생각해 봐도 산에다 짓는 것보다는 강가에다 짓는 것이 낫다 이거예요. 누가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나만 못하다' 그런 생각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나만 못한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는 거예요. 나만 못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요? 나보다 나아야 믿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믿는다는 것은 자기보다 낫든 못하든 간에 믿는 것입니다. 신을 믿는 것은 그거라구요. 믿는 데는 지내 보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구요. 지내 보기 전에 믿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좋건 나쁘건간에 믿는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보면, 하나님이 '120년 후에 네 집안만 남기고 모두 물로 심판할 테니, 내가 시키는 대로 엄청나게 큰 배를 지어라'고 하실 때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에게 노아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 줄 테니, 저 무슨 산인가, 울업산이면 울업산 꼭대기에다 노아가 지은 것 같은 큰 배 말고 그저 조그마한 배를 한 십년쯤 걸려서 지어라 하면 '예이' 할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런 걸 보면, 여러분은 노아 할아버지보다 지혜가 있습니까, 미욱합니까? 미욱해요, 지혜가 있어요?「지혜가 없습니다」(웃음) 오늘날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람 취급 하겠어요? 여러분은 십년이라고 해도 생각도 안 하려고 하고 있는데, 120년! 그 얼마나 미욱해요? 여러분보다 10배 이상 미욱하다구요. 그러니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예요, 살지 못할 종류의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은 살더라도 토굴 파고 거기에 들어가 살아야 할 미욱하기가 한량없는 사람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틀림없이 그렇다구요.
또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장사 해서 어떻게 살든간에 그는 아침 저녁 밥 먹는 데는 불편을 안 느끼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상장사인 그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브라함이 없으면 찾고, 좋은 것이 있으면 아브라함과 같이 먹으려 하고…. 살림살이 하는 데 있어서도 만사를 아브라함을 위주해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브라함의 눈에도 빤히 보였던 것입니다. 그 동네에서 사는 데도 부족함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아 그런데 하나님이 무슨 심술이 나서, 무슨 원수가 되어서 아브라함에게 야간 도망을 하게 했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낮에 '어머니 아버지, 나 오늘 갈대아 우르를 떠나겠소, 하고 인사를 했으면 놓아 주었겠어요? 할수없이 야간 도망을 한 겁니다. 보라구요. 미친 놀음이라구요, 미친 놀음. 아침에 가도 갈 수 있지만 잡히면 안 되거든요.
또 그 일을 누구와 의논했다가는 자기가 미욱한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인지 뭔지 보기나 했어요? 뭐 네 아들딸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케 해서 너를 세계의 복 받는 조상으로 만들겠다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꿈 같은 것 아닙니까? 비몽사몽간에, 혹은 기도 가운데서 들은 허풍 같은 이야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야 너 보따리 싸 가지고 아무 곳 아무 데로 가라' 하는 그 말 듣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떠날 수 있어요? 그 시대로 보면, 아브라함이 그 가정에 있어서 제일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아브라함이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미욱한 사람이예요?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또, 모세를 보자구요. 바로 궁중에서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만판 푸짐한 영광과 영화가 즐비한 가운데에서 가는 데 오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입장에서 살던 모세였습니다. 그는 미래에 국왕까지도 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뭐가 불편해서 이스라엘 민족이면 이스라엘 민족이지, 그들이 싸우는 데 뭐가 배가 아파 야단하다가 사람까지 죽이고, 궁중이고 뭣이고 전부 집어던지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 가서 도 닦은 줄 알아요? 양치기를 했어요. 그것도 이방의 제사장 집에서 종살이를 한 거예요. 보라구요. 왕궁이 변하여 돼지 우리가 된 겁니다. 그렇지요? 왕궁에서 만인이 추앙하는 자리에서 떨어져 가지고 집시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이 골짜기에서 비를 맞고 양떼와 더불어 먹고 살아야 되는 신세가 됐다구요. 그러기를 40년 동안이니 얼마나 미욱해요? 바로 공주한테 사신을 보내 가지고 사바사바하고 알랑거리지 않고 말이예요. 한번 나왔으니 죽어도 못 간다고…. 얼마나 미욱하고 외고집장이냐 이거예요.
그 시대에 그럴 게 뭐 있어요? 노예같이 일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었나요? 수천 수만명이 고생하는데 자기 때문에 죽은 그 한 사람의 패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야단할 필요가 없는 거라구요. 아는 척 모르는 척 그저 슬쩍하면 누가 못 한다고 말할 입장도 아니었다구요. 그걸 보면, 그 시대 사람으로서 그는 미욱하기 짝이 없었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또 세례 요한을 보라구요. 남들은 잘먹고 잘사는데, 그는 뭐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고 무슨 띠를 매었다고요? 성경에서 이렇게 좋게 써 놓으니까 그게 좋은 것인 줄 알아요? 이것은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이라구요. 사람은 집에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역사적인 전통인데도 불구하고 무슨 메뚜기를 잡아 먹고 석청을 먹었는데. 그게 됐어요, 안 됐어요? 생각해 보세요. 무슨 먹을 것이 없어서 메뚜기를 잡아먹겠어요? 좋아서, 맛있어서 메뚜기를 잡아먹었겠어요? 또 석청을 구해 먹기가 쉬울 것 같아요? 벌 둥지 하나를 찾으면 하루 이틀밖엔 못 먹을 거예요. 여러분, 이스라엘에 한번 가 보라구요. 석청이 많게 안 되어 있어요. 반 사막지대라구요. 석청 둥지 하나 얻기 위해서는 며칠이나 돌아다녀야 되겠어요? 매일 그저 꿀이 줄줄 흘러 나오는 것을 받아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요? 거기는 석청 둥지 하나 찾으려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수고하지 않으면 안될 땅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석청 등지가 쭈욱 많이 준비되어 가지고 제1호, 제2호, 제3호…이렇게 있었는 줄 알아요? 또 메뚜기도 춘하추동 언제나 있는 줄 알아요? 천만에요. 여름 한 철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철에 메뚜기를 잡아서 말려 가지고 가루로 빻아서 뭉개떡을 만들어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여름이 되면 메뚜기를 잡으러 돌아다녔겠어요, 메뚜기야 오라 오라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겠어요? 메뚜기가 뭐 둥지를 틀고 떼거리로 모여 있나요? 후다닥 후다닥 뛰어다니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메뚜기 먹기가 편하겠어요? 죽을 지경인 거예요.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그 시대적으로 볼 때, 제일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그는 사람 축에 들어가는 자가 아니라구요.
또 보게 되면 약대 털옷을 입고 다녔다고 했지요. 이스라엘은 반사막지대로 언제나 더운 지방입니다. 베옷을 입고 다녔다면 모르지만 약대 털옷을 입었다니 그거 팔자 다 됐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약해서 그렇게 써놓았지만 그 내용을 파헤쳐 보면…. 여러분을 거기 데려다 놓았다간 하루도 못 있고 다 도망갈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다가 통일교회 교회장들을 데려다 놓으면 몇 달이나 세례 요한과 어깨를 같이하고 남아 있을까요? 몇달도 안 돼서 다 도망갈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까놓고 얘기해 보자고요. 「세례 요한보다 우리가 더 미욱합니다」 여러분이 세례 요한보다 미욱한 게 뭐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세례 요한이 뭘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식이라는 것이 어린 아이들이 '야, 이것 가지고 금 만든다. 이것을 위로 올렸다가 떨어뜨려서 딱 소리가 나면 금이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격이었다고요. 그리고 30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그렇게 살았으니, 사나이로서 그 꼴이 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 그런 녀석한테 시집가겠다고 하는 처녀가 있을 것 같아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구요. 그런 사람에게 시집가겠다는 색시감이 있을 것 같아요?「신앙이 깊은 사람은 갈 것 같습니다」 (웃음) 신랑하고 살아 봐야 깊은지 어떤지 알지, 생각해 보세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었던 거예요.
뜻을 중심삼고는 미욱한 사람이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
예수도 보세요. 여러분, 예수가 훌륭하지요? 예수를 역사적으로 훌륭하게 장식을 해서 만들어 놓았으니까 훌륭하게 보이지. (웃음) 여러분이 예수를 2천년 전 그때에 만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 소위 천주교 주교라든가 추기경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지금 '에헴' 하고 있는데, 이들이 옛날 2천년 전에 예수를 만났더라면 도망을 가도 맨 먼저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이적을 일으켜서 5천명을 먹였다고 했지요? 그거 하나님이 좋아서 그렇게 하셨어요? '야 너희들 배부르지만 별스런 구경 좀 해봐라' 하면서 그렇게 하셨겠어요? 얼마나 형편이 무인지경이었겠어요? 예수가 눈이 굳어지고 혀가 굳어지고 표정이 굳어지도록 정성을 들이고, 호소를 했다면 그저 목숨을 걸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경각 지경에서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구요. 하나님도 할 수 없이 기동력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씨알맹이도 없게 되겠으니까, 차후는 그만두고라도 당장에 야단나겠으니까 이적을 일으키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적을 일으키는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예수가 죽은 거예요. 그렇잖아요? 남처럼 욕을 먹고 돌아다니면서도 그저 무용지물처럼 가만히 있었으면 죽지 않았을 거예요. 누가 잡아 죽여요? 그랬더라면 예수가 죽었겠나 생각해 보세요. 이 동네에 가서 '내가 메시아다. 그러니 나를 믿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망한다'고 한마디 하고, 그 동네에서 '이 녀석아 무슨 말이냐' 하고 쫓아내면, 저 동네로 가서 '나 믿지 않으면 망한다' 이런 식으로 다녔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내가 가서 한바퀴 도는 데 다섯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강원도보다 작은 나라예요. 일년이면 몇십 바퀴를 돌 수 있다구요. 그러니 심심하면 '나를 믿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면서 맨 처음에 시험 케이스로 한번 쭉 도는 거예요. '메시아가 온다고 그랬는데, 내가 메시아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될 것 같기도하고 안될 것 같기도하니 날 믿어야 된다'고 하면서 시험삼아 한바퀴 쭉 돌아다니면 누가 죽이겠느냐 말예요?
그 다음엔 좀더 강하게 '지금까지는 내가 메시아가 될지 안 될지 모른다고 했지만, 이제는 내가 메시아가 될 가망성이 백 퍼센트에 가까우니 날 믿어라'고 얘기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눈치를 봐 가면서 한바퀴 돌게 되면 처음에는 쫓아내고 그럴 거예요. 쫓아내면 쫓겨나는 것입니다. 쫓아내면 '너희들이 쫓아내지만 나는 갔다가 또 올 것이다'고 하면서 한 바퀴 돌고 두바퀴 돌고 세 바퀴 돌고 하면 이스라엘 나라가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쫓김당하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번 네 번 돌게 되면 어른들은 쫓아내도 아이들은 친구가 됩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모여드는 구경꾼이 동네 아이들이지요? 그러면 그 아이들을 살살 끌고 돌아다니면서 재미있는 동화도 들려 주면서 아이들 대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대장이 되어 가지고 애들을 끌고 다니면서 하나 하나 길러 가지고 한 20년이 지나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를 다 맡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런데 잠잠하던 마음에 무슨 홍두깨 바람이 불어 가지고, 이적은 왜 하고 돌아다녀요? 이적을 행한 것이 예수가 죽게 된 동기가 된 걸 알아야 됩니다. 이적을 안 했으면 예수가 죽었겠어요, 안 죽었겠어요? 절대 안 죽는다 이거예요.
반미치광이 같은 사람은 법에도 적용이 안 돼요. 법관 앞에 끌려가서도 '너희들 나 잡아다 뭘 어떻게 할래? 상 줄래? 나 상주려고 데리고 왔구만' 이랬으면 미친 녀석이라고 쫓아냈을 거예요. (웃음) 별의별 작전과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무슨 이적기사를 행하고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 그게 무슨 수작이예요?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안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그 조그만 곳을 1년이면 열 바퀴 돌 수 있으니까 한 20년 동안 2백 바퀴는 돌아다니는 거예요. 엄청나다는 거예요. 장가도 못 가고 30대에 죽을 게 뭐냐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예수가 작전을 잘못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작전의 누더기를 쓰고 나까지 고생하는 거예요. (웃음)
그걸 보면 예수도 미욱했다는 것입니다. 아주 미욱했어요. 뭐가 그렇게 흥이 나고 신이 나 가지고 나라 전체가 반대를 하는 판에 그러고 돌아다녔느냐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다 반대하면 어디 들어가 박혀 두꺼비 모양으로 가만히 앉아서 겨울을 쓱 지내고, 봄날을 맞이해 가지고 반대하던 패들이 동서 남북 사방으로 갈라지면 그때에 나와서 한 바퀴 돌아다니고 또 반대하면 또 쓱 후퇴하고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예수도 미욱한 사람입니다. 그렇잖아요? 사실은 미욱했다는 거예요. 미욱했지요? 그러나 예수만은 미욱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미욱한 것 같으면서도 지혜로와야 했는데, 작전을 잘못했던 것입니다. 잘했으면 예수가 절대 안 죽습니다. 왜 유대 교법사들과 원수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야단을 해요? 그렇잖아요? 쓱 가다가 교회가 있으면 나무라도 한 짐 해서 져다 주고, 목수이니까 대패질해 가지고 나온 대패밥이라도 갖다가 땔나무로 쓰라고 주고 해서 제사장 교법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가운데 준비를 해 가지고 가야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지, 주먹다짐을 해서 깡다구로 해 먹으려고 하면 뭐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사고가 생기지요.
그런 것 저런 것을 보게 되면, 그 시대에 미욱한 패들이 섭리의 뜻을 받들고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다 미욱하다는 거예요. 탕감시대를 중심삼고 볼 때, 종의 종시대로부터 종의 시대로 올라오는 복귀 노정에 있어서 누가 그 노정을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종의 종에서 고생만 하면 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가 남아지느냐 하면 미욱한 사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제일 미욱한 놈일수록 선두에 서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신앙자들은 미욱한 패들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코방귀도 안 뀌었다구요. 얼간이 중간쯤 되는 녀석들이 코방귀를 뀌고 반대하고 다녔지, 지혜로운 사람들은 꿈에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종의 종이 미욱한 길을 가서 종이 된다면, 그 미욱한 길을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미욱한 길을 가는 사람을 비난하며 그 시대에 지혜로운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겠어요?「미욱한 사람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곰같이 미욱한 사람이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수고한 터전을 중심삼고 점점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종의 종 시대 다음에는 종의 시대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던 거예요. 믿으면 전부 다 같이 되는 줄 알았지, 단계적인 발전을 통해서 해방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저 언제나 그렇게 종으로 있다가 끝날 줄로 알았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미욱한 사람 가운데 이렇게 단계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시대의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신앙길을 가는 사람은 그 길을 그냥 출발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세워 가지고 출발합니다. 사람과 더불어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약속하는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분과 한 약속을 중심삼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게 믿고, 세상의 그 누구를 부정하더라도 그 믿는 마음을 끝까지 지켜 나간 사람들이 섭리적 사명을 책임지고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종의 종의 시대에서 종의 시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종의 자리로 올라왔다는 거예요.
양자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종
이 종들이 양자가 될 수 있는 빠른 길이 있다고 한다면, 주인이 종을 양자로 만들겠다고 약속을 해서 종들이 양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면, 적당히 하는 종이 양자가 될 수 있겠어요? 종들 가운데서도 지긋지긋하게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 책임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제일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자리에서 대우받는 것이 종이예요, 나쁜 자리에서 천대받는 것이 종이예요? 나쁜 자리에서 천대받는 것이 종입니다. 그런데 종으로서 대우받기를 원한다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종이 못 됩니다.
천대받는 것이 종이기 때문에, 종은 '죽을 길은 내게 맡기소서' 해야 합니다. 또, '한 번 죽음길을 갔으니 두 번째 죽음길은 난 싫소'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주인이 두 번째로 가야 할 죽음길이 있는데, 한 번 죽음길을 통과했다고 해서 '난 싫소' 한다면 그 사람은 배신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거당하는 거라구요. 그러나 '책임을 완수해 가지고 두 번째 죽음길도 내가 가겠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 죽음길이 있을 때 '그것도 내가 책임지겠소. 첫 번째는 갑이, 두 번째는 을이 간 것이 아니고 맨 첫 번째에도 내가 가고 두 번째에도 내가 갔지만, 세 번째인 이번에도 내가 가겠소. 딴 사람이 없소'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른 종들은 '저 녀석, 저 미욱한 녀석, 저런 길을 또 가고 있다. 저 녀석 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이나 하자, 저 녀석 저러다가 손들겠지'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차 2차 3차 죽을 고비도 전부 그 사람이 책임해서 넘어갔다면 그 사람은….
또, 세 번을 넘고 네 번째 죽음길이 남아 있는데 '이 길을 책임질 사람이 누구냐' 할 때, 또 손들고 나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주인이 넘어야 할 최고로 어려운 고비를 모두 그 종이 대표로 넘어섰다고 할 때, 그렇다고 해서 그 이튿날 당장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생만 더한 거지요. 죽을 고생을 했으니 얼굴은 될 대로 되어 있고, 신세가 형편 없을 것 아니예요? 그는 종들 가운데서도 호외로 취급받는 것입니다.‘저 못난이, 우리를 대표한 못난이, 고생 주머니, 이 천덕꾸러기, 야! 우리를 대표해서 희생해 이 자식아!’하면 '예 그럽시다' 하며 도매금에 팔려다니는 것같이 된다구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만, 당장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것 같지만 주인의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거예요.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단 한가지 주인의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마음으로 '저 녀석은 죽음길을, 사지사판을 내 대신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넘었으니 열 번이 아니라 백 번, 천 번이라도 저 녀석은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어요? 만일에 40번 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은 다 제쳐놓고 그 녀석을 불러서 의논할 것 아녜요? 그렇지요? 그것은 뭐냐 하면 그 종이 주인과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를 이미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만일에 주인이 상급을 준다면, 주인이 종들을 모아 놓고 '내가 상급을 주려고 하는데, 내가 기쁠 수 있는 사람에게 상급을 주어야 할 텐데 그 사람이 누구냐 한다면, 얼굴이 잘나고 속닥속닥해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들끼리는 잘났지. 자기들끼리는 잘났다구요. 종들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을 뽑았다고 해서 주인이 상을 주겠어요? 종들이 좋아해 가지고 뽑힌 사람은 주인과는 원수라구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종들이 싫어하고, 종들로부터 천대받고 호외꾼으로 취급받는 사람은 언제든 주인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인은 그 사람에게 상급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기에 이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결론은 뭐냐? 종 가운데 제일 미욱한 자, 그때 당시로 보면 제일 미욱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만일에 종의 대표로서 불리워 가지고 주인으로부터 상을 받고 양자가 되었다 하게 되면. 그가 양자가 되는 그 날에는 지금까지 그에 대해서 쑥덕공론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배가의 탕감을 대신할 수 있는 빚을 갚지 않고는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를 조롱하고 비웃던 종 떼거리들은 그가 주인의 양자가 되어 대신 명령을 내리게 될 때에 자기가 받았던 것의 배 이상으로 가혹한 명령을 내려도 그 양자의 명령을 달게 받지 않게 되면 종으로서 남아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또 양자가 섭섭하게 마음먹었던 과거가 있다면 주인의 마음도 그 양자의 마음이 풀려야 풀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잘 들어 보세요. 선생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어 보라구요.
하나님의 참아들이 될 수 있는 기준
그럼 이제는 주인이 양자를 말이예요. 동양에 사는 사람, 서양에 사는 사람, 남방에 사는 사람, 북방에 사는 사람 등 동서남북 360도에서 그 방향대로 한 360명쯤 모아 놓았다고 합시다. 그래 가지고 그 가운데서 진짜 아들 대신자로서 아들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을 뽑아야 되겠다고 할 때, 그 뽑는 비결이 무엇이냐? 누가 술을 많이 먹고 즐겁게 춤을 잘 추느냐 하는 것을 봐서 그 사람을 뽑으려고 잔치를 벌이는 주인이 세상 천지에 있을까요? 어디 대답해 보라구요. 지혜로운 사람들, 어디 한번 대답해 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왜 없어요? 그렇게 해서 뽑으면 되지….
그렇게 해 가지고 진짜 사람을 구할 수 있어요?「없습니다」 진짜라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진짜 사람을 뽑아야 한다구요. 그런데 진짜 사람을 그렇게 해 가지고 뽑겠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는 누가 진짜인지 모르는 거예요. 전부 진짜 사람 같지. 도리어 가짜 사람이 진짜 사람의 등을 타고 올라서 가지고 진짜라고 한다고요. 그럴 수 있겠지요?
아들 중의 아들과 같은 한 사람을 뽑으려면, '자, 이제 너희들 중에서 진짜 아들 한 사람을 뽑을테니 너희들이 있는 지혜껏 해서 그 아들로 뽑힐지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생각하건대, '내가 주인을 닮아야지, 주인 닮으면 되는 것 아니냐, 주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될 것 아니냐' 이래 가지고, 주인은 늦잠을 자니까. '주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늦잠 자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늦잠을 자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이지요? 그 다음에 또 주인을 가만히 보니까, 쓱 돌아다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심부름시키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니 자기도 심부름 시키면서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 가지고 택함을 입겠어요? 가만히 보라구요. 또 주인은 아침 점심 저녁에 독상을 받아 가지고 '에헴'하면서 혼자 잘 먹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마찬가지로 '야야 내게 좋은 것을 먹여 달라' 그래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주인이 좋아하는대로 하는데, 왜 주인이 나에게 상급을 안 줘?' 그럴 수 있어요? 그런 법이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 길이 있나 없나 생각해 보세요. 있어요, 없어요? 절대?「없습니다」 왜 없어요? 주인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없어요?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입장이 달라요. 주인과 양자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하나는 주인이요, 하나는 종 출신입니다. 주인이 주인 될 때는 그냥 그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종들이 거친 수난길을 다 거치고 그것을 감수해 가지고 영광의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양자도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려면 주인이 거친 내적인 고통의 길을 달게 거쳐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가는 게 원칙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이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주인의 상속을 받으려면 주인이 사는 것과 반대로 살아야 됩니다. 주인의 명령을 받고 가는 길에 있어서, 주인은 잘먹고 편히 있는데 자기는 지긋지긋하게 못 먹고 고생했다면 주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 녀석, 못나서 그래' 그러겠어요? 주인의 명령을 받고 나가는 길에서 지긋지긋하게 못 먹고 고생했으면 그것은 주인을 대신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가 지긋지긋하게 천대받았으면 그 천대받은 것에 대해서 주인이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그에게 슬픈 일이 있었다면 그 슬픔이 그 양자의 슬픔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주인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전권대사라는 말을 알지요? 특사라는 말도 있지요? 그 사람의 한마디는 그 나라의 주권자의 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전부는 네 말이자 내 말이요, 네가 결정하는 모든 것도 너의 결정이자 곧 나의 결정이다'할 수 있는 사람이 전권대사입니다. '나하고 의논하지 않고 네 마음대로 결정해도 내가 그냥 그대로 공인한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국사를 처리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 바로 전권대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잘먹고 기분이 좋아 가지고 '허허' 하고 있는데, 전권대사인 아무개가 명령을 받들다가 고통을 받고 신음하는 사지에 빠져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역경에 있습니다' 할 때에 주인이 '아 그거 잘 됐구먼' 그러나요? 주인이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조원대! 그래, 안 그래? 왜 대답은 않고 흠칫흠칫해요? 부끄러워요? 내가 다정스럽게 물으면 다정스럽게 대답해야지. 그래요, 안 그래요? (웃으시면서) 그럴 수 있어? 다정스럽게 물어 보는데도 왜 대답을 안 해요? 몰라서 대답을 안 해요? 아는데도 안 해요?「몰라서 안 합니다」 그걸 왜 모르노? 그러지 말라구.
이번 수련기간에 선생님 말씀을 몇 번이나 들을 것 같아요?「귀가 어두워서…」 귀가 상했으면 눈으로 바꿔서 표정이라도 봐야지요. (웃음) 만일 자기 귀가 상했으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눈으로 시늉이라도 봐 가지고 7,80퍼센트 정도는 감정을 해야지요. 그래도 모르면 글로라도 물어 봐야 된다구요. 귀가 상했는지 내가 알 게 뭔가? (웃음)
자, 양자가 그렇게 사지에 서 있다면 '아 내 뜻대로 됐군' 이럴 주인이 있겠어요? 주인도 거기에서 동원되는 거예요. 그렇게 주인을 움직일 수 있고 주인을 동원시킬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자격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가 잘난 사람이예요, 못난 사람이예요? 만일 '당신이 사랑한다는 양자가 지금 춤을 추고, 진수성찬을 먹고 좋아서 늘어져 있습니다'라는 보고를 주인이 받았다면, 그 주인이 '아 그래, 그러면 나도 가서 춤을 추어야지' 그래요? 거기에 주인이 동원돼요? '이놈의 자식' 하는 거예요. 거기에 동원이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동원이 되느냐 하면, 망치를 갖고 동원되는 거예요. 그러나 양자가 사지사판에서 죽게 됐다고 하는 데에 동원될 때는 자기 집안의 귀한 것은 모두 가지고, 무기가 있으면 무기를 들고 동원되는 거예요. 한 쪽은 망치를 가지고 그 양자의 이마를 까고, 한 쪽은 무기로 양자의 적을 쏘는 거예요. 어떤 게 좋은 거예요? 어느 쪽이 좋아요?
그러면, 일등으로 패스했다, 주인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결정적 표준선이 어디냐? 기쁜 자리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하는 것은, 자기가 보기에 좋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켜 가지고 그것을 중심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일 힘든 일을 시켰는데 그것을 해줘야 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일 힘든 일, 자신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어야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잘먹고 잘 노는 것을 보고 '아이고 내 맘에 쏙 든다'고 하나요? 여러분은 근본을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될 때, 아들이 없는 사람은 양자 가운데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한 그 사람을 택해 가지고 아들 대신 상속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
이런 원칙을 놓고 가만히 보면 말이요, 선생님이 대관절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알아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에게도 제일 가까운 사람이 있어야지요. 그렇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나빠하실까요? 하나님도 좋은 사람은 좋아하시고 나쁜 사람은 싫어하십니다. 그렇다구요.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나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걸 가릴 줄 알아야 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근본을 바로 알고 자세를 바로잡아 가지고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할 때, 알았다면 문제는 참 쉽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압니까? 알아요, 몰라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몰라요?「압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나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나요? 믿는 사람이 있고, 아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냥 믿는 사람이 있다구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저 믿자' 해 가지고 믿고 아는 사람이 있고, 알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가 있어요. 믿어서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있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구요. 여기,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됩니까? '나는 하나님이 계시는 줄을 안다. 틀림없이 안다' 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만사형통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았으니, 하나님 앞에 복 받는 길로 달려가면 됩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계시는 줄을 알았으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복받는 거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화받아요, 복받아요?「복받습니다」 복받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걸 좋아하시느냐?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주의 주인인데, 그 주인이 무엇을 제일 좋아하느냐? 이것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제일 좋아하실까요? 떡을 좋아하실까요, 무슨 과일을 좋아하실까요? 무엇을 제일 좋아하실까요? 대답해 보라구요.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느냐면 선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선한 사람이 되면 좋아하시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다 좋아합니다. 아들이든 백성이든 세계 사람이든 좋아하긴 다 좋아한다구요.
그러면 이런 입장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하시느냐?「선생님을 제일 좋아합니다」 에라, 이녀석. (웃음) 선생님을 제일 좋아하는지 알 게 뭐야? 좋아하고 나빠하는 것이 그냥 되나?「하나님을 위해서 제일 고생하고, 제일 일을 많이 하고, 선을 위해 제일 희생하고…」 그래, 그래, 그런 것도 맞습니다. 다 맞아요. (웃음)
하나님은 말예요, 좋아하긴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수고한 것은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시대 시대에 동원되었던 수천 사람의 책임자들을 좋아하기는 다 좋아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인간으로서 완성한 자리에 선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너는 내가 찾던 아들이요, 너를 보고는 내가 좋지 않은 것이 없다. 그야말로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 영원히 영원히 나눠질 수 없고, 나눠질 생각조차 못 한다'고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았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손톱까지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뺄 것이 없어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단추 하나가 떨어지면 그걸 잘 떨어졌다고 하면서 집어던지나요? (웃음)(녹음 잠시 끊김 )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
양자들을 모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아들과 더불어 죽고 살고, 목숨을 걸고 하나되어 형제와 같이 지낼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양자를 택했던 거예요. 그가 가인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 되어야 하지요?
지금까지는 남자 홀로 도의 길을 가다가 죽어간 사람이 많았지요? 혼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생 동안 독신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했겠어요?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으니까 한 거예요.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으려면,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중심삼고 제일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물들이 기쁨과 소망으로 머리 숙일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지극히 선한지라, 지극히 좋은지라' 하는 거예요. 아담을 지어 놓고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해와를 지어 쌍을 이루어 놓고서야 '지극히 좋은지라' 했지요? 그거예요. 그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일대에 그러한 기준을 완결지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수십 수만 사람이 동원되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전체적으로 종의 종으로서도, 종으로서도, 양자로서도, 아들로서도, 혹은 승리한 참남성으로서도, 그 다음에 상대를 가질 수 있는 기준을 갖추는 데 있어서도, 어디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그래서 통일원리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통일원리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종의 종이 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바탕이 다른 것이 무엇이냐? 과거 몇천 년 동안은 종 중의 종이 되라고 두드려 팼습니다. 그 다음에는 종살이를 하는데 몇천 년 동안 믿고 나왔고, 그 다음에는 양자의 일을 해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양자 되기를 바라고 나오는 것이지 양자가 된 것이 아니라구요. 양자가 되기 위해서 몇천 년 동안 희생하면서, 죽자 사자, 죽는다 산다 소문을 내면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한 분인데, 하나님은 종의 종의 마음을 느꼈고, 종의 고통을 느꼈으며, 양자의 개척자로서의 고통을 느꼈고, 혹은 아들이 개척노정에서 느낀 것이나 참부모가 느꼈던 것을 다 느꼈습니다. 느낀 그 주체는 한 분이신데 그가 대했던 사람은 수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종의 종을 대해서는 종의 종의 마음을 가지고 속닥속닥하고, 그 다음에는 종을 대해서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아까 말했듯이 종의 종이 좋으냐, 종이 좋으냐 할 때 하나님도 종의 종을 계속 대하기는 지긋지긋하다는 것입니다. 또 종으로 대했으면, 최후에 결정짓기 위해서 종을 한번 대해 주었으면, 그 다음엔 양자를 대하고 싶지 또 종을 대하고 싶겠어요? 그럴 것 아니예요?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종의 종이 하나님께 '아이고 나 대해 주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원히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종의 종의 대표자, 종의 대표자, 양자로서의 대표자, 아들로서의 대표자, 참아버지로서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 한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결국 종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양자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아들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러한 대표적인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이 그 사람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종들과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양자와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아들과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최고의 승리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의 시대, 신약시대는 아들의 시대, 성약시대는 부모의 시대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나를 중심삼은 가정 안에 다 들어갑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들어가고, 아들도 들어가고, 만물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소생은 물질, 장성은 자녀, 완성은 부부지요? 역사적으로 실패한 복귀의 심정을 거쳐 가지고 이것을 '한꺼번에 완전히 당신 앞에 평면적으로 드리나이다' 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을 하나님은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유가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축복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부처가 됐지요? 여러분도 이 부모와 같이 부모의 자격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의 아들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아들딸이 있지 않아요? 그 다음에 여러분에게 만물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입고 있는 것은 다 뭐예요? 여러분이 신고 있는 것이 뭐예요? (웃음) 그런 것이 다 자기 것이지요? 자, 여러분에게 만물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런 거라구요. 틀림없다구요. 똑똑히 알라구요. 만물이 있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와 아들딸과 만물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뭐냐 하면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에덴 동산에 천지만물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6천년 동안 종이니 양자니 하는 것들을 세워서 섭리해 나온 거예요.
구약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입니다. 종의 종은 물건과 마찬가지예요. 물건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입니다. 아들을 세워 가지고 역사하던 때, 예수 시대라구요. 그렇지요? 성약시대는 부모가 고생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바치는 데는 구약시대에는 물질로 제물을 바치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로 제물을 바치고, 성약시대는 부모를 제물로 바치는 거예요. 그렇지요? 성약시대는 부모가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참부모의 공로로서…. 그렇잖아요? 김일성의 공로보다 참부모의 공로가 작겠나, 크겠나? (웃음) 감사하는 것도 그 보다 더 감사해야 되겠어요. 더 못하게 감사해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 「더 해야 되겠습니다」 알긴 다 잘 아는구만.
참지도자의 재료
이제부터 말해 보자구요. 세상의 지도자 중에 참지도자가 누구냐? 참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는 싫다'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내려요. 지도자의 갈 길이라…. 지도자의 갈 길이 무엇인가? 결국 참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다 참지도자입니가? 출발해 봐야 아는 거지요. 지도자가 가는 길의 목적은 뭐라구요? 참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되고 싶습니다」
참지도자의 재료가 있다구요. 그 재료를 분석해 보자는 거예요. 참지도자의 심정을 두고 논하면 '나는 역사시대에 종의 종 중의 왕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고 할 수 있는 재료가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왕이니까 하나예요. 둘이예요?「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종 중의 왕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밖에 없다는 말이라구요. 그 다음에는 양자 중의 왕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양자도 나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 이 시대에 세워진 나는 아들 중의 장자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복귀역사에서는 종의 종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발판으로 종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양자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점프하심) 왜 내가 이렇게 하느냐? 여러분이 자꾸 잊어 버리기 때문에 생각나게끔 하려니…. (웃음)집에 가면 잊어버리는 거예요. '언제 그런 말 들었느냐' 그런다구요. (웃음) 그 다음은 점핑해서 어디로 간다구요? 아들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해서 아버지 자리로 올라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되려면 아들의 꼭대기에서 점핑을 해야 되는 거예요.
예수가 아들의 자리에서 죽어 넘어갔지요? 알겠어요? 예수님을 영적으로 형(兄)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예수는 가인 형(兄)이라구요. 여러분들은 아벨 동생이예요. 그것이 말만이 아니예요. 그렇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이론적으로 복귀했다는 결론이 안 나온다는 거예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점핑해야 됩니다. '나는 그렇게 한 사람이요' 할 수 있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세상의 고통 무대에서 내가 싫다 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내가 못할 것이 없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종의 종의 자리만 패스하게 되면 쉽다는 것입니다.
종의 종이 되는 데 있어서도 '나는 한 부락의 종은 안 되겠다, 대한민국의 종의 종이 되고 나아가 세계의 종의 종이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의 종의 종으로서의 훈련을 어디에서 받느냐? 여러분은 그 훈련을 여러분이 속해 있는 도(道)나 군(郡)에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종의 종의 챔피언이 못 된 사람은 챔피언이 되도록 훈련을 해야지요. 그런 훈련을 받는 사람에게 자기 사정이 있을 수 있어요?「없습니다」 '훈련이고 무엇이고 밥이나 먹여 주고 시켜야지' 그럴 수 있어요? '점심때가 되었는데, 열두 시 사이렌이 울렸는데 훈련이 뭐요?' 그럴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는 시계 보는 사람들, 아이쿠, 아홉 시 반에 출발해야 되는데 왜 아홉 시에…. (웃음) 그럴 수 있어요. 싸움이 터져서 군대에서 출동명령이 내려졌는데,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릴 수 있어요? 그런 생각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덜된 녀석들입니다. 그건 주인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구요.
종의 종 중의 챔피언이 되려면 군(郡) 챔피언 가지고 되겠어요? 군 챔피언이 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그럼 도(道) 챔피언이 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욕심들은 많아 가지고…. (웃음) 그런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가입서라도 낼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욕심도 없으면 그건 뭐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런 욕심은 다 있어요?「예」
욕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나라도 싫지요? 세계도 싫지요? 영계까지, 천주까지, 영계와 역사시대의 세계를 통합한 그 자리에서의 종의 종 중의 대왕님이 되겠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말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생각과 선생님의 사상은 거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내가 보기에는 여러분이 아직까지 사람이 덜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됐다고 생각해요, 덜됐다고 생각해요? 「덜됐다고 생각합니다」 덜됐으니까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가르쳐 줬는데도 되지 못하면 그는 죽여 버리든지 정리해 버리든지 해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가르쳐 주는 것은 가르쳐 주는 수고 이상의 대가를 바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수고한 것보다도 못한 대가가 나온다면 뭐하러 가르쳐 줘요? 그만두는 게 낫지요.
참지도자의 마음생활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우주와 더불어 가고, 어디를 가든지 하늘땅과 같이 가고, 어디를 가든지 나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둘만 되어도 그건 세계적입니다. 남편과 아내만 있더라도 세계적인 거예요. 남편은 하늘의 상징이요, 아내는 땅의 상징이니 천주적이 아닙니까? 천주적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멋지다는 거예요. '나 혼자 있더라도 나의 마음은 하늘적이요, 나의 몸은 땅적이니 천주적이다. 내가 웃는 것은 우주를 대표해서 웃는 것이고, 내가 숨을 쉬는 것은 우주를 대표해서 쉬는 것이다. 숨을 쉬는 사람은 억천만이지만 하나님과 박자를 맞추어서 하나님과 똑같이 숨을 쉬는 사람은 나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럴 것 아니예요. 한 사람밖에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밥을 먹더라도 '옛날에는 이밥에다 고기를 먹었는데 지금은 죽에다 물 한 그릇밖에 못 먹는구만'할 것이 아니라 사위기대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사위기대를 갖추라구요. 밥을 먹는 데도 사위기대를 갖추라구요. 알겠어요? 전통을 그렇게 세워야 됩니다. 물밖에 없어도 그건 사위기대입니다. 물을 중심삼고 눈과 입과 하나님이면 사위기대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좀더 발전시켜서 평면적인 사위기대를 생각하는 거라구요. 숟가락, 젓가락, 물이니까 삼위기대인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한국이 사위기대를 갖춘 나라예요. 숟가락 젓가락 밥 하니까 하나님 중심삼고 사위기대 아니예요?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반찬이야 있건 없건 숟가락 젓가락만 놓아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위기대를 통해서 집는 물건이 나쁘다고 해서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빠요, 안 나빠요? 다 좋은 거예요. '나는 쇠고기 집히는 것만 좋고 콩알 집히는 것은 싫어' 그래요? 그렇게 되면 우주의 꼭대기 것만 좋아하고 밑창의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는데도 제일 맛있는 밥을 어디에서부터 발견해야 되느냐? 제일 맛이 없는 밥에서부터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주인의 터전을 몽땅 품을 수 있는 종의 종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맛이 없는 밥을 제일 맛있게 먹고 제일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습관적인 생활권내에서는 보리밥과 쌀밥이 있으면 보리밥은 내려 놓고 쌀밥을 먹는 것입니다. 냄새만 맡아도 벌써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얄궂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은 몹쓸 사람이라구요. 그렇지요? 쌀밥만 좋아하게 되면 쌀밥 먹는 천국에 가서는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지만, 보리밥 먹는 천국에 가서는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자격자가 되려면 먹어 봐야 합니다. 먹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먹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고, 보리밥이 꿀맛이구나. 쌀밥 열 그릇, 백 그릇보다 보리밥 한 그릇이 더 좋다. 나는 보리밥 대왕님이다. 보리밥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보리밥이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 자식아, 싫거든 먹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먹지 말고 하루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싫거든 '이틀 지내 봐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싫다면 사흘, 그래도 싫다고 하면 나흘, 닷새…. 계속 굶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눈이 이렇게 되다가 점점 희미해져 가지고 뭐든지 먹겠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될 것 아니예요?
우주 천지의 그 무엇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목적 세계 가운데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대왕이 될 수 있어요?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절반은 싫어하고 절반은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절반은 '저 놈의 자식, 우리를 싫다고 한 녀석 아냐?'라고 하는 거예요. 다 넘어가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사랑해야 됩니다. 더우기나 먹고 사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어린아기의 똥물을 받아 밥에 섞어 가지고 죽을 쑤어서 주더라도 맛있게 먹어야 됩니다. 한번 만들어 줄까요? (웃음)이것이 만병통치약이다' 하면 다 먹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게 만병통치약보다 더 좋은 약이라는 거라구요. 복귀통치약 중에 그런 약이 최고예요. (웃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물 대신 오줌으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사정에 처해서도 감사해야 됩니다. 쌀밥 말고 꽁보리밥, 밀밥도 좋은 거예요. 또 귀리라는 것도 있다구요. 함경도 산골이나 산꼭대기에서 나는 것인데 그런 귀리로 밥을 해서 먹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밥을 먹는 것을 왕좌에서 쌀밥에 진수성찬을 먹는 것보다 더 감사한다면 그 사람이…. 거꾸로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디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구요. 그런 생각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해 나온 사람입니다.
보리밥을 싫어할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돼요. 나는 누룽지를 참 좋아합니다. 누룽지가 먹기 좋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룽지는 다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것이 제일 맛있습니다. 먹다 보니 맛을 알게 되었어요. 누룽지를 오래 씹고 있으면 참 고소하거든요. 밥을 오래 씹는 것하고, 누룽지를 오래 씹는 것하고, 여러분들도 해보세요. 어느 것이 더 맛있을 것 같아요? 한번 해보라구요. 나는 그 맛을 알았기 때문에 밥을 두고 누룽지를 먹곤 하다 보니 그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맨밥을 잘 먹습니다. 반찬이 없을 때는 말예요. 소금도 필요없어요. 소금을 쩝쩝해 보면 맛을 망친다구요. 그렇지만 맨밥만 먹어 보면 달다는 거예요. 맨밥을 먹어 보면 참 맛있어요. 맨밥의 맛을 아는 데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왕입니다. 복귀의 심정을 느끼려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밥을 먹는 데 '좋은 사람에게 초청받아 가지고 기분이 좋으면 먹지' 이렇게 기분 좋은 것만 좋아하면 안 된다구요. 당장에 자기의 목을 잘라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와 있는데 '밥먹는 시간이 한 시간이니 당신들은 조금 기다리시오. 왜 밥 먹는 시간에 와서 부르고 그러오? 나에게는 지금이 밥 먹는 시간이오' 하면서 그 파수꾼들을 세워 놓고 감옥에 앉아서 먹는 그 보리밥이 얼마나 맛이 있는 줄 알아요? 한 번 해보라구요. 얼마나 맛있는지. '이놈의 자식들, 내가 탕감복귀를 위해서 끌려간다. 너희들은 우습게 알지만 나는 지금 천하를 녹여 먹듯이 밥을 먹는다'고 하면서 먹는 거예요. 그거 맛있거든요.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그것을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감옥에서는 떼굴떼굴 굴러가는 콩알이 사슴새끼가 뛰어가는 것보다 더 귀엽게 보인다구요. '감옥에는 병균이 많으니 그거 못 먹지' 할지 모르지만 못 먹긴 왜 못 먹어요? 우선은 주워 먹고 병 같은 것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 정도까지 되는 거예요. 얼마나 간절해요? 간절해요, 안 간절해요? 그런 자리에서는 그렇게 먹어도 절대 병이 나지 않습니다. 병이 난다면 하나님이 없는 거지요. 병이 왜 나요, 하나님이 보시고 눈물 흘릴 자리인데. 뜻을 위해서 그러는 데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
여러분. 밥 얻어먹어 보았어요? 밥을 얻어먹는 데는 할아버지한테 한번 얻어먹어 보자. 기분 좋게 주는 할아버지도 있을 것이고 기분 나쁘게 주는 할아버지도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기분 나쁘게 주는 할아버지한테 밥을 얻어서 맛있게 먹어 봐야 되겠습니다. 밥 가운데 쌀밥도 싫고 조밥도 싫고 보리밥도 싫고 좁쌀 조금 넣고 보리쌀 조금 넣고 만든 시래기죽을 한번 얻어먹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고 다니는데 쌀밥을 주면 좋겠어요? 기분 나쁘지요. 목적과 틀리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사는 집에 갔더니 그런 죽을 주면 더 기뻐하고 감사하게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를 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가 그날의 자기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거예요. 또 그 시래기죽을 주는 할아버지가 좋게 주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 신수를 보니까 그러지 않을 사람인데 밥은 왜 얻어먹고 다니나? 우리도 못살지만 자네는 더욱 안 됐구만? 하고 투덜투덜하면서 주면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배가 고프니 어떻게 하겠소. 한술 주시오’(웃음) 해 가지고 얻어먹어 봐야 돼요. 거기에서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주름잡는다는 말이 있지요? 천지를 주름잡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예요? 높고 낮은 것을 마음대로 활용한다 그 말 아녜요? 여러분, 천지를 주름잡고 싶지요? 천지를 주름잡는 것이 하늘땅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냐? 천만에요. 생활에서 천지를 주름잡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좋은 일은 지극히 좋게 생각하고, 나쁜 일은 지극히 나쁘더라도 지극히 좋은 것으로 키울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와 비료는 떼어놓고 보면 원수입니다. 비료와 나무는 판이하게 다른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나 비료를 물에 녹여서 흙과 중화시켜 가지고 나무의 뿌리 근처에 뿌려 주면 어떻게 돼요? 흙은 없이 비료만 주면 나무가 죽지요? 그러나 간접적으로 물질과 섞어서 주면 그 몹쓸 것 같은 것이 도리어 복이 되는 거름이 되어 나무가 자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명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고생이니 무슨 어려운 골짜기니 하는 거기에 조화물만 잘 갖다 놓으면 천지에 없는 귀한 동량지재(棟之樑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홀딱 반해 가지고 찾아와서 '네가 없으면 안 되겠다. 내 말을 듣고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자' 하실 겁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만 그렇게 해서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할머니를 통해서도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머니를 만나자. 그리하여 할머니한테 밥을 얻어 어느 왕궁의 왕보다도 더 가치있고 맛있게 먹어 줄 것이니, 밥아 너는 내가 세운 그 탕감조건으로 해서 영원히 영원히 탄식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환영하며 주는 사람의 밥만 얻어먹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얻어먹어 보고 그 다음에는 형님 누나 동생 같은 사람에게 얻어먹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터전 위에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 부모, 자녀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먹고 입고 사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모든 한스러움으로부터 해방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고통길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고, 입는 것에 대한 고통길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되며, 사는 데에 있어서의 고통길에서 해방될 수 있는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됩니다.
먹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 입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 사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고 한다면 하늘의 역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보다 더한 길을 가더라도 나는 한이 없고, 이 이상의 수난길을 가더라도 나는 기쁨으로 가겠습니다. 여기에서 영육을 중심삼고 찾아지는, 혹은 천주에 사무치는 그 가치가 큰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생애를 통해서 이 길을 가고자 하오니 하늘이여, 막지 마시옵소서' 하면서 기쁨의 길은 피하고 도리어 수난길을 가려는 자세를 가진 아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아들이 이 땅에 있다면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도 그랬고, 노아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고, 그후 더 내려와 가지고 모세도 그랬고, 세례 요한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사상에 있어서 그들보다 내가 깊으면 깊고 높으면 높지 얕고 낮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물을 사랑하는 데도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고 만물을 귀하게 여기는 데도 그런 의미에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는 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끔 내 감정을 통해 생활무대에 엉클어지게 해서 한데 묶어 가지고 생사를 걸어 그 터전을 닦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칼을 갈아서 쓸 줄 아는 무사라면, 칼을 차고 다닐 때 아무데에 차고 다녀도 좋다는 것입니다. 머리 꼭대기에 이고 다녀도 좋고, 발바닥에 신고 다녀도 좋고, 허리에 차고 다녀도 좋고, 지팡이처럼 끌고 다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의 칼집이 찌그러졌다고 해서 비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칼을 허리에 차려니 찰 수 있는 허리띠가 없어서 들고 다닌다고 비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그가 가진 칼의 형태가 칼 같지 않다고 해서 비웃지 말라는 거예요. 그가 일단 그 칼을 뽑아들고 나서면 천하가 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사탄 세계 앞에 내세워 가지고 한번 써먹고 싶은 생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만물의 참된 주인이 되려면
여러분, 종의 종보다 종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하면 다 들겠지요? 또 종보다도 양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하면 다 들겠지요? 양자보다도 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해도 다 들겠지요? 아들에서 참부모가 되고 참조상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하면 다 들겠지요?
그렇게 손드는 것은 쉽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것은 어렵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편안히 가는 길이 빠르냐, 고통받고 가는 길이 빠르냐 하는 것을 감정해야 됩니다. 올라가는 데 있어서 편안히 가는 길이 빠른 길이겠어요, 어렵게 고통받고 가는 길이 빠른 길이겠어요? 산에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밤낮 쉬지 않고 가다가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고 하면서 앞을 다투어 올라가는 사람과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하면서 올라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빨리 올라가겠어요? 어느 길이 빠르겠어요? 웃을 시간이 있어요? 세수할 사이도 없다구요. 옷 벗고 잘 사이도 없다구요. 무슨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이러고저러고 할 사이도 없다구요. 사랑을 해도 산골짜기를 넘어섰을 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여러분, 참지도자가 되고 싶지요? 참지도자가 되려면 참된 만물의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맞습니다」 참된 만물의 주인이 되어야 됩니다. 참된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사람 가운데는 참된 주인이 없었어요, 타락했기에…. 성인을 찾아갈 필요 없다구요. 성인도 전부 다 참된 주인이 아닙니다.
먼저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됩니다. 마음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됩니다. 참된 주인은 자기의 물건에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자기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창조주가 누구입니까? 인간이예요, 하나님이예요? 창조주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대리 주인입니다. 관리인이예요. 그러므로 관리인, 대리 주인인 인간은 진짜 주인인 하나님께로부터 그들을 주관할 수 있는 권리를 이양받아 가지고 살아 생전에 관리하다가 갈 때는 하나님 앞으로 돌리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역사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그런 때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의 돈도 전부 하나님의 것이예요. 그런데 그것을 관리하게 될 때는 첫번 주인보다 못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관리하는 주인이 누구입니까? 사탄이지요? 사탄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사탄보다 나은 주인이 와 가지고 그 조상들이 사랑하던 이상으로 만물을 사랑해야 됩니다. 만물도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물도 사람의 후손과 더불어, 역사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만물도 '나는 아무개네 물건이었는데 그 집의 제1조상은 나를 이렇게 이렇게 사랑했고, 제2조상은 거기에 플러스해 가지고 나를 더욱 사랑했고, 제3조상은 거기에 더 플러스해 가지고 나를 사랑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바랍니다」참주인이 되려면 만물을 하나님 대신 관리해 주고, 사랑해 주고, 또 자기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후손은 자기보다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참주인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겠습니다」
여러분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은 나의 대상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원칙입니다. 주체 앞에 대상으로 나타났을 때는 주체와 대상은 서로 주고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대상도 주체와 동등의 가치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소속되어 있는 물건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속한 물건을 사랑해야 돼요. 종이 한 장으로부터 살림살이 일체를 자기에게 속한 것은 다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절약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걸 집어들게 되면 그것은 나의 대상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귀한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이 사용했던 모든 물건은 그 나라의 귀한 골동품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누더기같이 되었더라도 그 나라의 보물, 보화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 물건이 그 나라 전체를 대신한 가치적 중심존재의 상대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전국민이 그 물건을 숭배하게 되고 그의 전통적 사상과 일치하는 그 물건이 전국민의 정서적인 면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합해져서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주인은 하나님의 대역자이기 때문에 참된 만물, 참된 물질의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통일교회의 참주인이 되려면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통일교회 소유물의 주인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 사람으로서 앞으로 주인의 아들이 될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주인의 계대를 받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속해 있는 물건을 선생님이 사랑한 거기에 여러분의 특성적인 개성의 사랑까지 플러스해 가지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교회에 교인 한 사람이 들어왔다면 교인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 이상으로 지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아들이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지요? 한 가문을 계승받을 수 있는 아들이 있어야 할 때, 그 가문을 계승시키려는 부모는 자기보다 나은 아들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아들을 찾겠어요, 나은 아들을 찾겠어요? 자기보다 나은 아들을 찾지요. 자기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아들을 찾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통해서 전통노정이 계승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 집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청평에 오면 선생님이 이 산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저 뜰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이 땅을 사기 위해서 돈이 없을 때 안타까와 뒤넘이치면서 어떤 고충을 느꼈을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이땅을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후대 후손을 위해서 역사적인 선조로서 가져야 할 긍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고이 간직해서 이 땅 위에 천년 만년 남아질 새로운 사상적 기원을 만들어 가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 기원이 중도에서 꺾이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서 만국을 덮고도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심정의 나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뿌리보다 더 굵은 가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뿌리의 소원이 아니겠어요? 뿌리가 말하기를 '야, 가지야 너는 나보다 커지면 안 돼'라고 한다면 그 나무는 영영 죽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외적인 면에서 훌륭하게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심정적 내용을 가지는 데 있어서 선생님보다 더 간절하고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 그렇게 바라는 것이 정상적이예요, 비정상적이예요?「정상적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육을 해도 안 되면 들이 패는 거예요. 패서도 안 되면 감옥에 집어 넣어 가지고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되도록 해야 됩니다.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그 길을 가게 한다면 세상에 그럴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라구요. 가 봐 가지고 다리 하나를 잘라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결과를 알게 될 때는, 다리를 자른 것이 오히려 사랑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모르는 녀석은 다리를 자른 것이 원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되는 데 있어서는 참주인이 되어야 되고, 참주인이 되기 위해서 물건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그 물건의 주인보다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길
참주인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되고, 그래 참주인이 된 다음에는? 참부모가 돼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사람들을 대해서 부자의 인연을 맺는 운동을 하지요? 난데없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부자의 인연을 맺자는 운동이 통일교회의 운동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무슨 부모를 만드느냐? 가짜 부모가 되지 말고 참부모의 인연을 맺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로부터 본받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으로부터…, 통일교회 선생님은 누구로부터 본받느냐?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전통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1대라면 선생님은 몇 대예요? 「2대요」 여러분은? 「3대요」3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창조한 만물을 완성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아담 해와가 아니라 아담 해와의 아들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사위기대 복귀라는 것은 삼단계에서 결정이 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자식들이 손을 들어서 좋다고 하면서, '어머니 아버지 찬양하소서' 하면 '오냐.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하고 그 어머니 아버지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아들이 좋아하고 그의 어머니 아버지도 좋아하니 '어- 나도 좋다'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사위기대의 목적이, 창조목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3대가 필요합니다. 복귀역사를 보면 3대에서부터 두 세계가 벌어지지요? 가인과 아벨로부터 두 세계가 벌어졌지요? 이 벌어진 두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될 수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못 돌아가는 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가인 아벨의 원리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참부모가 되려면 진짜 되기 어려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길을 가려면 먼저 그 반대의 길을 가야 됩니다. 참부모의 길의 반대의 길이 어떤 길입니까? 「참자녀의 길요」 참자녀의 길이 아닙니다. 참종의 길입니다. 이 길을 가지 않고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참종의 길을 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종의 종의 길이 누구 때문에 생겨났느냐? 타락한 부모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나'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는 누구냐? '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재림부활의 실체노정을 가야 합니다. 종의 종의 자리가 누구 때문에 생겼느냐? 뜻을 알고 보니 '나' 때문에 생겼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기 때문에 참부모가 되기 전에 종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확실히 알겠어요?「예」 가인 아벨이 두 갈래로 벌어졌기 때문에 참부모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을 찾아서 하나되게 해야 됩니다. 가인 아벨을 찾기 전에는 아들을 맞을 수가 없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명사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갖기 위해 가는 데 있어서 첫출발의 길은 '오 사랑하는 내 아들이여'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인류에게 천지의 한을 품게 한 원수의 후손, 원수의 아들을 키워 독자로 삼으려고 하는, 독자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이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온 이 길이 우리가 선포하기 위한 단 하나밖에 없는 전통적인 길로 상속받은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이 참부모의 이름을 갖고자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참부모가 되기 위한 길을 웃음으로 출발할 수 있어요? 하나님과 똑같은 입장이 그렇다구요. 하나님의 입장이라구요. 하나님도 참부모의 자리에 나가려면 종의 종의 자리를 거쳐야 합니다. 왜? 당신이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창조한 자리의 기쁨을 중심삼고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있지만 나는 다 아는 입장, 보호해야 할 입장, 천지만물을 창조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런 입장에서 그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지금까지 종의 종의 자리에서 개척하는 종의 어머니가 되고 종의 아버지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너는 이렇게 가야 되고, 너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매를 맞을 적마다 너의 아픔을 통해 나의 아픔을 느껴야 되고, 나의 서러움을 너의 서러움으로 인계받아야 된다. 그 서러움을 피해 갈수록 종의 운명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너는 주인으로부터 나보다 더 채찍을 맞고 내가 당한 서러움보다 더한 서러움을 당해야 한다. 그래야 네 집안이 잘되는 것이다. 그것이 종으로서 당해야 할 운명길인 것을 알아라'고 하며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종의 길로 나갈 수 없습니다. 종의 길을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저께 밤에도 내가 이야기를 했지만, 사람은 고생의 대가를 치르는 데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더 고생하는 자가 종 중의 종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 앞에서 역사적 인연을 품고 나가는 사람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하는 자는 종도 못 됩니다. 그는 지옥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나, 모르겠나?「알겠습니다」
참부모의 이름이 간단한 게 아닙니다. 참부모라는 이름이 간단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 길을 왔느냐? 내가 참부모가 되기 전에, 참부모로서의 길을 가기 전에, 종의 종의 어버이 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 아니면 그 길을 도피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냐 하는 것을 놓고 싸워 나왔습니다. 지금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종의 입장에 서야 할 길은 무엇 때문에 생겼느냐? 부모 때문에, 나 때문에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로 가는 노정에 있어서 끝까지 내가 부모의 입장에서 모든 책임을 져 가지고, 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부여하지 않고 모면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모가 가야지 부모를 가진 자식이 복귀가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고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라는 거예요. 알고 고생하는 것보다 모르고 고생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는 알았나요? 몰랐나요?「알았습니다」 모르고 같이 고생할 때는 세계적인 운명이 한꺼번에 인연지어져 가지고 거기에 동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지만, 알고 나갈 때는 그 시대적 한계권만…. 종의 시대면 종의 시대권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과정에서 가르쳐 주고 섭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정이 있는 것입니다.
일대일의 탕감법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세밀히 가르쳐 주지 않고 고생을 시켜 나온 것은 종의 종의 시대와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와 아들의 시대를 한꺼번에 탕감할 수 있는 혜택권을 허락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는 종의 시대고, 이때는 양자의 시대고, 이때는 아들의 시대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두루뭉수리하게 그저 고생하라고 했습니다. 벙어리가 꿀을 먹듯 설명은 못 하고 그저 하라는 거예요. 달아도 하고, 써도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따라, 선생님과 함께 가고 오면서 선생님을 부모같이 믿고 선생님을 참부모로 알고…. 이러다 보니 선생님이 하는 일을 중심삼고 종의 종의 자리에서도 그렇게 믿고 나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도, 양자의 자리에서도 그렇게 선생님을 믿고 나오다 보면, 선생님이 종의 종의 자리,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를 다 거쳐 부모의 자리에 갈 때까지 끝까지 따라 나오다 보면, 여러분은 1대에 종의 종의 자리,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 아들의 자리, 부모의 자리까지 다 거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 할때, 여러분은 비로소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최후에 만나고 싶어하시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겠습니다」
선생님이 이걸 알았기 때문에 일대일의 고생을 해 나왔습니다. 완성하는데 있어서 일대일의 탕감을 하지 못하면 일대일보다 가중된 탕감을 해야 됩니다. 그걸 못 하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대일로 탕감하는 데 있어서 나보다 못해서도 안 되고, 아담 해와보다 못해서도 안 됩니다. 모를 때는 조건 탕감이 되는 것이지만 알고 나면 일대일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탕감법을 압니까? 그걸 알라구요. 알고 난 후에 최후의 고개를 넘게 될 때, 사탄과 일대일의 탕감을 하지 않고는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를 때는 일대일의 탕감을 하지 않아도 조건 탕감을 해서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모르는 게 복이예요, 아는 게 복이예요? 「모르는 게 복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확실히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렇게 갔어, 안 갔어? 여러분, 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가르침이 뭐예요? '믿지 않는 사람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을 맺어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가르침이요, 통일사상의 제일 골자입니다. 그 길을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의 종이 된 것이 누구 때문이냐? 부모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 책임을 져야 돼요. 여러분이 짊어진 짐을 내가 가려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르쳐 주려니 내가 종의 종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종의 짐을 벗은 사람이 종의 종의 자리로 들어가니 사탄이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권이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렇겠지요? 부모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종의 종의 자리에 들어가니, 하나님이 내려오신 것과 마찬가지요, 예수가 내려왔던 자리에 온 것과 마찬가지니 사탄이가 막 죽겠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어떤 길만 있으면 이걸 깨뜨려 버리려고 하지만 하나되어 있으면 그런 길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는 거기에는 다른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가 살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죽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죽었다' 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고자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을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줄 수 있는 것은 선생님에게 여러분이 넘어야 할 십자가의 고개, 탕감의 고개를 넘어선 자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을 축복해 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회 책임자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
통일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리원칙적인 노정은 참주인이 되는 노정이요, 참부모가 되는 길입니다. 참부모는 참아들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귀해야 할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전부 구해 줄 터전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부모의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아들을 맞이해서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 부모의 사랑은 누가 먼저 받아야 되느냐 하면, 맏아들이 먼저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맏아들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다른 자녀들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천리원칙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가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만 사랑하면 내가 절대로 후퇴 못 합니다. 예수를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해 주시오. 완성 단계에 가서는 사람의 완성과 동시에 종인 나도 완성해야 되는 것 아니오? 그러니 사람이 완성되는 자리에 나가면 나갈수록 나에게 종으로서 백 퍼센트 완성될 수 있는 사랑을 줘야 되지 않겠소' 하면서 물고 늘어진다는 거예요.
그것을 가려 나가려면 불가피하게 첫번째로 태어난 가인을 동생인 아벨 이상 사랑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평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탄이 불평할 소지가 있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동생보다 더 사랑해 주는 데도 '뭐야. 뭐야' 이럴 수 있느냐 말이예요. 형은 부모가 동생만 사랑하면 야단하지만 자기를 더 사랑하는 줄 알게 될 때는 자기도 어머니 아버지와 합동해서 동생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것이 부모의 소원이 아닙니까? 그러면 동생은 누구보다도 더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형은 부모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생은 그 부모와 형이 합해 가지고 사랑하게 되니 더 큰사랑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받는 위치로 볼 때, 하늘 앞에 중심적 존재가 누구냐 하면 아벨입니다. 아벨적인 자리가 귀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형은 장자로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만, 동생은 거기에 형의 사랑까지 플러스해서 받으니 형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사랑권내에 있어서는 동생이 낫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사랑의 중심을 찾아 나가려니 아벨의 자리가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아벨이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은 동네에서 못사는 사람을 보게 되거나, 밥을 먹고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세가 그래야 돼요. '이 사람이 이렇게 못사는 것은 인류의 조상되는 사람이 잘못하여 타락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의 사명을 갖고 이 동네에 왔으니 내가 이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데, 내가 이 동네에 와서 일년이 지나도록 너희에게 미쳐진 것이 무엇이냐, 아무 혜택도 가해 준 것이 없구나' 하며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마음을 가져 봤어요? 이것이 원리적인 거라구요.
또 동네 아이들이 못먹고 못입는 것을 보면 가슴 아파해야 됩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이냐? 나 때문에 이렇지. 이 동네가 하늘로 가기 위해서는 부모로 온 나를 중심삼고 발판을 만들지 않고는 가인의 다리를 놓을 수 없다. 이 발판을 거치지 않고는, 부모의 인연을 맺지 않고는 하늘로 갈 수 없다. 나와 그대들과 이 마을은 참인연이 있어서 만났으니 나는 죽든 살든 끝까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밤이나 낮이나, 자나깨나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입장에 있는 지방 책임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입니다.
숟가락을 들 때에는, 그 동네의 밥을 굶는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방문해서 밥을 다 나누어 주고 그들로부터 '제발 나를 그냥 두고 숟가락을 들어 달라'는 권고를 받기 전에는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게 부모라구요. 자식을 가진 부모가 자기 밥이 있으면 혼자 먹을 수 있어요? 부모는 '어서 먹어라. 어서 먹어라' 하면서 자식들에게 나눠 주고 먹여줄 때에, 그 중 철든 자식으로부터 '어머니 아버지, 우리는 이제 됐으니 부디 어머니 아버지 잡수십시오' 하는 말을 듣고서야 그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밥을 먹게 될 때, 그 밥은 소망과 사랑의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 밥이 슬픈 밥이 아니라 행복의 밥이요, 절망의 밥이 아니라 희망의 밥이요, 부모와 자식이 그 밥을 먹는 그 자리는 끝이 나는 자리가 아니라, 천륜의 인연이 새로이 맺어지고 하늘땅의 인연이 새로이 맺어지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밥은 복된 밥이요. 그 터전은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단계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길가에 놀고 있는 못 입고 못 먹고 뼈만 남아 있는 애들을 보면 자기 아이들과 같이 붙안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못 하게 되면 아이를 낳아 놓고 책임을 못 하는 부모와 같이, 자기 아이를 어느 유모에게 주거나, 혹은 어떤 동네에 버린 어머니가 자기 아이가 길리우고 있는 집 앞을 지나다가 그 아이를 보게 되면, 그 아이 앞에 얼굴을 못 드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이상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정의 인연입니다. 만일 자기가 낳은 아들딸이 그렇게 말라빠져 있다면 그 아이를 붙들고 뼈가 녹아나고 살이 일그러지도록 눈물을 흘리지 않겠느냐?
복귀역사 노정에 있어서, 부모가 있으되 그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고 몇천년 동안 유리고객하고, 원수에게 끌려다니면서도 망하지 않고 씨앗으로 오늘까지 남아진 혈족의 인연이 얼마나 복되고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후손을 남기게 하시기 위해 그 종자가 끊어지지 않을 수 있는 자리에 '나'를 세워 주신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마음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을 체득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게 되는 날에는 절대로 밥을 굶게 되지 않습니다. 동네가 굶기 전에는 여러분이 굶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데도 밥을 굶게 되면 그 동네는 전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람을 보고도 그렇고 소를 보고도 그렇습니다. '이 놈의 소야, 네가 참부모의 채찍을 맞아 가면서 농토를 갈면 얼마나 좋겠느냐? 불쌍한 고아와 같은 신세, 종의 신세, 그 운명을 가릴 수 없는 그런 입장에 있는 네가 불쌍하구나' 하면서 소의 귀를 붙잡고 이마를 맞대고 엉엉 울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쓸 줄 알아야 됩니다.
밭을 바라보고도 그렇고, 나무를 바라보고도 그렇습니다. '너희들, 역사적 한이 있거든 오늘 나를 보고 풀어라. 소원성취의 욕망이 있거든 나에게 말하라, 내가 하늘의 뜻과 인연을 맺어 주겠다'고 해야 됩니다. 뜰을 바라보고…. 산천을 바라보고도 '내가 너를 버리겠느냐, 골짝골짝마다 내가 다 가주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주인이 못가본 깊은 산중에 있는 나무까지 찾아가서 '오늘 내가 너를 찾아 이 산중에 온 것은 너와 같이 산중에 있는 나무들이 외롭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대표적으로 찾아왔다' 하면서 동네면 동네, 군이면 군에 있는 산의 나무들을 대표한 입장에 세워 놓고 기도해 주고, 오늘의 기쁨을 길이길이 전승하고 오늘로서 모든 슬픔을 해원하여 후대에는 이런 슬픔을 갖지 말도록 기도해 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위를 바라보면, '너는 뭇 사람들로부터 무슨 소원을 들었느냐? 많은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고 원망하고, 너를 바라보고 저주하고, 너를 바라보고 별의별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네가 나를 만나 반가와할 수 있는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느냐?' 하면서 바위가 슬퍼하기 전에 먼저 슬픈 표정을 짓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심정을 갖고 나가는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이 가는 길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괴롭게 되려 하면 여러분의 선조가 말려듭니다. 선조들은 종의 종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종인 여러분이 가면 여러분에 앞서 선조들이 수고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가 동원해 가지고 자기들의 후손에게 협조해 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의 심정으로 천사장을 사랑하고 아담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수난받는 일이 벌어지게 되면 영계에 속한 존재 전체가 하나님을 협조하기 위해서 동원될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심정을 가지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맞기 전에 내가 맞고, 너희들이 고통받기 전에 내가 고통을 당하고, 너희들이 수난을 받기 전에 내가 수난을 받겠다. 이 동네를 깨끗하게 못 한 것도 내 책임이요, 이 동네 전체에 천국의 기원을 못 만드는 것도 내 책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수고하고, 밤에 돌아와서는 그들을 위해 복을 빌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일생을 걸고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과 그 마을의 후손들을 걸고 탄식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그런 입장에 선 사람이 그 동네가 조상으로 맞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예 」
참부모 대신 사지에라도 가겠다는 사람이 있느냐
참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참주인이 된 다음에 참자녀를 사랑해야 됩니다. 참자녀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누가 결정해 주느냐?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참부모라는 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결정한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결정한 것입니까? 선생님이 '내가 참부모다'라고 하는 말 들어 봤어요? 들어 봤어요, 안 들어 봤어요? '내가 참부모이니 너희들 내 말 들어라' 하는 말을 선생님에게서 들어 봤어요? 참부모는 누가 결정한다구요? 참부모는 자녀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자녀들이 '어머니 중의 어머니요, 아버지 중의 아버지요, 부모 중의 부모로서 세상 부모보다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여 백년이고 오백년이고 그분과 같이 가겠다'고 할 때, 참부모로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참부모를 중심삼고 나가야 새로운 아들로 찾아지고, 구원을 받고, 죽음 앞에도 기쁨의 권세를 갖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을 대해 그럴 수 있는 마음 가진 사람 있어요? 있나요, 없나요? 선생님이 참부모님이면 나는 참아들딸이라는 신념에 사무치고, 어려운 때 사지사판에도 내가 참부모님 대신 나가겠다는 결의에 사무쳐 가지고 살아 온 사람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원수입니다, 원수. 하나님을 대한 선생님의 마음은 '당신이 당할 고생을 나에게 퍼부으소서. 몇천 년 당할 수난이라도 몇십 년 이내에 해결하겠나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테이프 한 개 분량 중략함)
효과적인 목회와 선교
전도를 하는 데 어떻게 하느냐 하면, 어떤 처녀를 전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교회 근처에 자기 말을 잘 듣는 처녀의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가서 그 처녀를 데려가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교회장이 되어 가지고 그 처녀를 한 3개월만 데려가게 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데려오는 데는 30만원쯤 약조금을 마련하여 주고 그 부모가 허락을 하면 교회에 데리고 와서 봉사하게 하고 신도들을 중심삼고 그 처녀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 처녀를 언제나 데리고 있을 수 있어요? 처녀들은 시집갈 때가 되면 그 때가 사춘기이니만큼 마음에 어느 정도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운 옷을 입고 싶어하고 무엇이 있으면 보고 싶어하고 맛보고 싶어하고 그래요.
그러니 어느 장날, 이 처녀가 시장에 간다고 하면, 그때 작전을 하는 거예요. 먼저 전도된 식구한테 아무개 처녀가 시장엘 간다고 연락을 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이 처녀 시장 가고 있을 때 길거리를 가고 있다가 떡 만나서 얘기하게 하는 거예요. '내가 다니는 통일교회라는 곳에는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두고 하나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통일교회에 들어와 이러이러한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가 통일교회의 길을 걸어 나온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도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 가지고 간접적인 작전을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만 해서는 안 됩니다. 24시간, 춘하추동을 중심삼고 사방으로 활동한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발전을 안 하겠나…. 발전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설교는 주일날만 하는 것이다' 해 가지고는, 주일날만 되면 '성경은 어디를 볼까? 찬송가 나오너라, 성가 나오너라' (웃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말라구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중심삼고, 산 재료를 중심삼고, 성경에서 그와 같은 역사를 빼가지고 그 사람의 일과 성경의 내용을 대조해 가면서 재미있게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듣는 사람이 자기 일을 말하니까 홀딱 반하는 거라구요. 좋아하는 거예요. 이렇게 해 나가는 겁니다. 알겠어요? 책보고 하려고 생각지 마세요. 사람에게서 책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책의 원본이란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예」 사람을 연구하고 사람 세계의 인연을 중심삼고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 어디 가서든지 임기응변을 잘하는 것이요, 능통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박사들은 책에 없는 것을 묻게 되면 꼼짝 못합니다. 무엇을 물으면 책을 봐야 되겠다고 합니다. 몇 길밖에 모른다구요. 그런 사람은 큰 지도자가 못 됩니다.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 됩니다. 웃을 때도 어떤 사람은 힘없이 '으흐흐' 하고 웃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힘있게 웃습니다. 웃는 데도 만물상입니다. 웃을 때 '이히히' 하고 웃는 사람이 있고, '우후후' 하고 웃는 사람도 있고, '허허' 하고 웃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터지고….
눈을 봐도 그렇습니다. 눈을 깜박깜박하는 데도 그렇고, 별의별 것이 전부 다릅니다.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나 찾아 보세요. 전부 다 제각기 다르다구요. 자기 친구들 가운데나 자기 교회 교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 성격은 어떻고, 어떤 사람 성품은 어떻고…. 얼굴을 척 보면 그가 어떤 기분이냐? 좋은 기분이냐, 나쁜 기분이냐? 그런 것이 전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눈이 말 눈같이 생겼어요. 말 눈 같은 눈에다 원숭이 턱 같은 턱을 가졌다고 해보세요. 얼마나 볼만하겠나. (웃음)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이 다음에 선생님의 연구 대상입니다.
나는 열두살 때부터 동네의 처녀 총각들을 시집 장가 보낼 때 그런 일을 했습니다. 서로 인상이 안 맞아서 틀렸다고 하게 되면, 틀림없이 맞았습니다. 가만 보니까, 좋다고 하면 좋고 틀렸다고 하면 나쁘거든요. 여남은 사람을 그렇게 했는데 내가 말한 대로 되니까 소문이 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결혼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3년 동안에 잘 극복해야 됩니다. 싫을 때는 그저 눈을 감고 눈물 흘리면서 아이고, 앙앙, 아아아 어디로 가나 그러라구요. 그렇더라도 3년 동안 살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운이 있어야 되는 거라구요. 죽을 운에서 살 운에 이르는 그 길이 첫째 길인 것입니다. 죽을 때라고 생각하면서 3년만 지내면 상대에 대해서 다 알게 되기 때문에 지극히 좋아지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못 해 가지고 이러고저러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하라고요. 눈 박사가 되려면, 눈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어야 됩니다. 눈의 종류가 몇 종류나 되느냐 하면 몇 천 종류라구요. 눈까풀을 벗겨 놓으면 다 같겠지만 눈까풀을 씌워 놓으면 다 다릅니다. 그 눈동자가 왔다갔다하면서 기쁠 때는 이렇게 하고 울 때는 또 쑥 이렇게 하잖아요. (표정을 지으심) 눈을 보면 다 다르다구요. 눈을 봐 가지고 알아보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내 이웃 가운데 어떤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을 가졌다 하는 것을 생각해 가지고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을 골라내는 방법을 기르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무개 눈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을 골라내는 거예요. 귀를 보고도, 코를 보고도, 눈을 보고도 골라내는 것입니다. 다 닮아 있다는 거예요. 그런 걸 봐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착하게 생긴 것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삼고 열 가지 중에서 세 가지만 같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절반 50퍼센트 이상이 가려지는 거예요. 얼굴에는 눈,입,귀,코 이 네 가지밖에 없는데, 그 중에 세 가지만 같게 되면 절반 이상 들어 맞는다는거예요. 그걸 봐가지고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가려내는 것입니다.
그런 잼대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선생님에게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분들입니다. 쓱 보면, 눈썹도 올라가고 눈꼬리도 올라가고 코도 올라가고 입술도 올라가고. 전부 다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크게 놀라서 상처를 입지 않으면 크게 정성을 들이는 도에 관계된 사람입니다. 하늘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구요. 또 보면 눈썹도 내려가고 코도 내려가고 입술도 내려간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우매한 사람입니다. 종류가 상당히 많아요.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하면서 사람에 대한 재료를 수집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은 곱상한데 이마가 꿀밤처럼 나왔어요. (웃음) 놀라자빠지게 이마가 튀어나온 사람이 있다구요. 그런 사람을 보면 정말 우습다구요. 또 목젖이 쑥 나오고 위로 된 사람의 목청은 굵고 알토입니다. 그렇게 생긴 것도 다 뜻이 있는 거라구요. 얼굴을 연구해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런 재료를 중심삼고 동네방네 쓱 다니면서 처음에는 말로 합니다. 1차 작전은 말로 하는 거예요. 말로 해서 안 넘어가고 반대를 하면 수집한 재료를 중심삼고 하는 겁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사람을 만나서 연구하는 재미에 홀딱 반해서 하지 않으면, 사람 관계에 취미를 갖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지도자가 못 됩니다. 이런 것이 재미가 있어요, 없어요? 재미가 없으면 재미있게끔 훈련하면 됩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돼요.
이런 등등의 여러가지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지방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참지도자가 되려면 이러한 것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작전이 필요합니다. 대내작전과 대외작전을 세워 부락과 교회을 결탁시키는 거예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세운 어떤 승리의 결정권이 동네의 자랑이 되면 그 부락의 청년들이나 노인들이 모두 칭찬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청년들을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그 어머니 아버지로 하여금 울타리를 치게 해 가지고 그 후원 밑에서, 혹은 우리 교회의 후원 밑에서 동네를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 동네, 두 동네, 세 동네의 관심을 끌어 가지고 움직여서 그 세 동네만 하나될 수 있는 터전만 닦아 놓으면, 리가 문제가 아니고 면이 문제가 아니고 군조직이 문제가 아닙니다. 도는 못 해도 군까지는 문제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소대장으로부터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이렇게 점점 올라가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첫째로 작전 계획을 잘 세워야 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쁘게 살라
가만히 앉아 가지고 '아, 점심 때가 됐구나, 밥을 먹어야 하는데 쌀이 있어야지…' 이런 사람은 쫄쫄 굶어야 됩니다. '내가 전도하러 나왔는데 배가 고프니 선생님 밥 먹게 해 주소. 내가 뜻을 위해 살았으니 본부에서 후원을 해줘야지' 이러는 사람이 있다면, 후원은 무슨 후원입니까? 배를 가르고 밸까지 끌어내야 됩니다. 후원해 주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라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이거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겁니다」 좋은 건데 왜 안 하겠느냐 말이예요. (웃음)
선생님이 제일 처음에 집을 나왔을 때 형편이 어떠했는고 하면 위신도 체면도 없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입니다. 닥치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저 먹고 사는 게 아니예요. 배워 가지고 할 게 뭐예요?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실천을 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못할 게 없습니다.
자기의 입장에 따라서 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부터는 고구마를 먹는 것입니다. 고구마 박사가 되어야 된다구요. 보리밥 박사도 되어야 됩니다. 제일 싼 것이 고구마 아닙니까? 고구마를 먹는 것이 싫으면 먹지 마세요. 「감자를 많이 먹습니다」 감자 같은 것은 더 좋습니다.
여러분 강원도에 가면 옥수수를 많이 먹지요? 옥수수를 먹는다고 타박하지 말라는 거예요. 깊은 산골에서 옥수수에 인분을 줘서 키우면 그 옥수수는 꿀옥수수가 됩니다. 이 다음에 한번 해보라구요. 옥수수 재배는 강원도에서 많이 하지요? 강원도에서는 옥수수의 거름 중에 인분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인분을 안 주면 잎사귀가 얇아요. 그러나 인분을 줘 가지고 심어서 비를 맞으며 잘 자라게 되면, 거기에서 나온 옥수수를 삶아서 한 줄을 쭉 파 먹어 보세요. 따끈따끈할 때 먹으면 요게 참 맛있다구요. 이것은 복귀노정에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웃음) 딱 맞아요. 그 다음에는 통거리 복귀예요. 한꺼번에 천주를 복귀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여러분은 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웃음) 민족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먹는 거예요. '이것은 아담복귀형이다' 하면서 한 줄 먹고 '이것은 재차 아담복귀형이다' 하면서 한 줄 먹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배가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감자가 나쁜 것이 아니예요.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은 구워 먹으면 맛있습니다. 구우면 겉껍질은 새까맣게 타고 속은 익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이 아주 맛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르지요? 구워 먹어 보면 알게된다구요.
이렇게 구워 먹으려면, 고구마를 살 줄도 알아야 됩니다. 어떤 고구마가 맛있느냐? 모래가 섞인 밭이나 돌이 섞여서 물이 잘 빠질 수 있는, 그런 모래가 섞인 밭이나 돌밭에서 나온 고구마는 찰고구마입니다. 참 달다구요. 한번 먹어 보라구요. 맛이 있나, 없나? 그런데 진흙밭에서 나온 고구마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것은 삶아 놓으면 전부 물러집니다. 고구마를 무르게 삶아 가지고 2층이나 3층에서 딱 때려 던지면 뭐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웃음) 삶아 놓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보면 아는 것입니다. 껍데기를 모래로 싹 한번 문질러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단 건지, 어떤 건지…. 그리고 단단해야 됩니다. 고우면 안 돼요. 울룩불룩하면서도 털이 없어야 돼요. 껍질이 두껍지 않아야 됩니다. 이런 고구마가 참 맛있어요. 이런 것도 다 연구해야 됩니다. 많이 사 먹어 보면 아는 거라구요. (웃음)
어느 동네 아무개네 집의 고구마가 제일 좋은가를 알아 가지고, 제일 쌀 때에 몇 가마니 사 놓으면 봄이 될 때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이왕 사 먹을 것, 고구마를 먹어야 할 팔자라면 빚을 내서라도 싸고 맛있는 고구마를 사는 거예요. 맛있는 고구마 한 가마니만 있으면 한달도 버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 가지고 일년 동안 고구마만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고구마 먹고 살찌는 것도 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맨처음으로 고구마 먹을 때는 참 맛있지요? 안 그래요? 내가 맨처음에 고구마를 먹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지요. 우리 동네에는 고구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외가집이 20리밖에 있었는데 거길 처음으로 갔을 때 고구마를 처음으로 봤습니다. 거기에서는 고구마를 '지과'라고 했습니다. 땅의 열매라고. 그것의 본래 이름이 고구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고구마라고 했지. 처음에는 지과, 땅의 열매라고 했다구요. 아, 외가 집에 처음으로 갔을 때 그걸 주는데, 도대체 이게 뭐야 이게….
외가에서 돌아다니다 떡 보니까 덩굴이 뻗어 나가는 것이 있기에 이게 뭐냐고 했더니 지과라는 거예요. '지과가 뭐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어떻게 먹는 거야? 했더니 캐서 쪄 먹는 거래요. '열매 같은 거냐. 따 먹게 되어 있느냐. 지금도 파면 나오느냐. 한번 파 보자'고 하면서 밑 구덩이를 파 뒤집었더니 뿌리 한 댓 개가 나오는 거에요. 고구마 덩굴을 뽑아 놓았으니 캐지 않고 그냥 둘 수 있어요? (웃음) 그걸 삶아 달라고 해서 먹는데, 처음 먹으니까, 아, 그 고구마 맛이 얼마나 감칠 맛인지…! 그래서 혼자 다 먹겠다고 해 가지고 고구마를 소쿠리째 갖다 놓고 앉아서 먹었습니다. 고구마가 그렇게 잘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걸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지요. 기분이 좋아서 다음 해엔 우리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다음 해에 심으려고 했었는데 심지 못하고 그 다음 다음 3년째 되는 해에야 우리집에서도 고구마를 심었지만 말이예요.
그 다음해부터는 고구마 절기만 되면, 사흘이 멀다 하고 저녁 때가 되면 20리길을 '엄마 나 잠깐 어디 갔다 올께요' 해 놓고는 마라톤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마를 먹고 오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엄마가 '어디 갔다 오냐'고 하면 '놀러 갔다 왔어요' 하고…. 놀러 갔다 온 것이 외가집에 가서 고구마 삶아 먹고 온 거라구요. (웃음)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어요.
그때는 그렇게도 맛있던 것이 지금은 왜 맛이 없느냐는 거예요.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고구마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때를 연상하면서, '야, 고구마야, 너를 내가 옛날에는 참 맛있게 먹었는데, 내가 정이 없어졌든가 네 맛이 달라졌든가 둘 중의 하나겠지!' 하면서 쓱 하나를 집어서 맛보고 하면 그 이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고구마를 구워 가지고 종이에 싸서 선반에 딱 놓아 두었다가 강의를 하고 나서나 궁금할 때 먹는 겁니다. 거기다 놓아 두면 누가 먹지 않거든요. 설교하고 나서 물 한 컵을 들고 고구마를 꿀떡꿀떡 먹으면서 생각을 하는 겁니다. '오늘 누가 왔던고…' 그거 아주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먹으면서 생각하면 생각하는 게 전부 가족적인 것이라구요.
이런 저런 문제나 자기 자신의 생활을 중심삼고 기쁘게 살아야 됩니다. 왜 얼굴을 찡그리고 살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오시다가도 도망갈 거예요. (웃음) 자기의 타고난 팔자가 그렇다면, 운명을 그렇게 타고 났다면 이왕에 사는 데는 울상을 하지 말고 기쁜 상을 하고 웃고 살자는 거예요. 동산을 바라보며 콧노래도 부르면서 말예요.
통일교회의 교회장이란 사람이 저렇게 못살고 뭐 어떻고 동네에 소문나기 시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딸은 절대 저래선 못 쓰겠다고 해보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지고, 길을 갈 때도 힘없이 가게 되는 거예요. 아무리 못살아도, 아무리 굶고 다니더라도 콧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동네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유행가도 부르고, 달이 솟거든 달뜬 동산을 바라보면서 달 노래도 부르고, 비가 오면 비노래도 부르고, 농촌이면 농촌노래도 부르고 말이예요. 레코드라도 하나 사 가지고 동네 마이크에 대고 더울 때는 더운 노래를 틀고, 시원할 때는 시원한 노래를 틀어 가지고 동네에 울리게 해주면 일하던 사람들도 그 곡조에 맞추어 노래하게 되면, 동네사람들이 얼마든지 좋게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전심전력하면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도움이 돼
사람은 분위기를 갖출 줄 알아야 됩니다. 못산다고 해서 언제나 못사는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 안 돼요. 옷이 없으면 친구의 옷이라도 싹 빌려서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아침 일찍 한번 쓱 나갔다 오는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어디 갔다 옵니까?' 하고 물을 때에 '나 아무 데에 갔다 옵니다' 하면 그 거동거리에 흥미를 갖는 거예요. 군수도 좀 만나지 못할 게 뭐가 있느냐구요. (웃음) 달라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 가지고 자기가 군수도 알게 된다면 말이예요. 군수더러 자기 사는 동네에 차 타고 오라고도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군수가 오게 되면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보다시피 이렇게 삽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 돈이 없다고 멸시하지 마소. 나는 누구보다 젊소. 10년 후에는 당신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라고 농담삼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밑창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이고, 우리 문선생의 사상은 젊은 사람들에게 자립정신과 자주정신을 심어 주려는 것이므로, 교회를 지을 때 벽돌 집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다다미 한 개로 시작을 했소. 이 동네에 온 지 몇개월 되었는데 이제 출발이니 잘 될 거요, 오늘 굶는다고 걱정하지 마소.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더 큰 놈이 될지 어떻게 아느냐, 슬슬 농조로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를 이래 뵈도 무시할 수 없을 거라고, 지금 여의도에다 땅을 얼마만큼 사놓고 거기에 120층 짜리 빌딩을 지을 것이라고, 통일교회가 돈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게 다 도를 닦아 나가는 도리와 일치되는 일이니 통일교회가 아주 큰 다음에 흉보지 말라구, 큰집을 지으려면 잔나무부터 기를 줄 알아야 된다고, 농삼아 쓱 한마디 하게 되면 5분 이내에 체면유지를 하고도 남는 거예요. 알겠어요?
저녁때 배가 고프면 군수집을 찾아가서 '군수님 나 저녁 얻어먹으러 왔소. 우리 집에 가면 깜깜하고, 먹을 것도 없으니 배가 고파 죽겠소. 그런데 군수님 댁은 밝고 먹을 게 많기 때문에 왔소. 지나가는 손님같이 생각하고 저녁 밥이나 한 상 대접해 주소' 해 가지고 군수가 면전에서 손수 부인을 시켜 차려다 주는 밥상을 받아 가지고 얻어 먹는 거예요. 반공강의를 잘 하고는 밥을 굶고 처량하게 살게 뭐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 식으로 쓱 일주 한번 하지.
그 다음에, 생일에는 생일 축하카드를 보내는 겁니다. 3일 전에 보내야 돼요. 알겠어요? 그 동네가 360집쯤 된다면 반공강의를 하러 갈 때 360명의 생일을 딱 적어 두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생일 3일 전에는 전부 생일 축하 카드를 보내는 거예요. 생일 축하카드를 보냈는데도 어떤 소식이 안 오면 찾아가는 것입니다. (웃음) 아무개 아버지면 아무개 아버지, 이장님이면 이장님의 생일이 오늘인 줄 알고 축하카드를 보냈는데 받았느냐, 내가 지나가는 길인데 생일 축하카드까지 보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잠깐 들렀다고 하면서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생일 잔치상을 받아 먹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다니면서 1년 세월을 신선놀음 하듯이 사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 동네에서 아들딸을 중심삼고 잔치를 할 집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을 통계를 내서 연구해야 된다구요. (웃음) 그런 집은 잘먹고 잘살기 때문에 알 수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인심을 쓰면서, 기분 나쁘지 않게 어느 집이라도 다닐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김삿갓 같은 형편도 필요하다고요. '석양 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문서방' (노래 부르심, 박수)
복귀역사를 하려면 어떤 때는 배우 노릇도 해야 되고, 거지 노릇도 해야 되고, 투전판에 가서 놀음도 해야 되고 별의별 일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해 가지고 뜻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유행가를 불러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세상의 그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 감정을 돋굼으로써 그런 사정의 심정을 통해서 보다 복귀의 심정에 플러스될 수 있고, 보다 자극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옛날 청소년 시절에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음악을 좋아하는데, 더구나 차를 타고 어디 갈 때 스테레오 음악을 틀게 되면 차안에서 쉬지 않고 갔다 올 때까지 펄펄 뛰는 거예요. 이놈의 녀석들이 기분이 좋은데 가만히 있으면 지루하거든요. 그걸 보면 날 닮았더구만. (웃음) 장단만 맞게 되면 즐거워하는 거예요. 그런데에 소질이 있다구요.
옛날에 나도 그랬습니다. 내가 하숙하던 집의 주인이 차를 운전하던 양반인데, 강원도 어디에 잘사는 집안의 맏아들인데 말이예요. 지금부터 한30년 전에 운전수라면 아주 난 사람이라구요. 그 양반은 팔도강산 안 돌아 다닌 데가 없었어요. 그는 민요라면 모르는 게 없었고 수백 장의 레코드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 아줌마를 내 맘대로 하기 위해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하고 인사도 하고 매일같이 저녁에는 밥상도 들어다 주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무슨 심부름을 시키면 해주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겁니다. 이런 작전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작전계획대로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며칠 이내에 홀딱 반한 것입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사위를 삼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삶아 놓은 거예요. 그럼 그렇지! 그리하여 그 레코드판을 우리에게 다 갖다 주는 것입니다. (웃음) 그 레코드판을 전부 다 듣는 것입니다. 몇 장씩 갖다 놓고…. 주인이 와서 봐도 탄로 안 난다구요. 판을 다 듣고 나서는 매번 체인지해 가지고 몇장씩 갖다가 전부 다 듣는 거예요. '당신의 주인은 저 레코드 판을 몇 장이나 들어 봤어? 다 들어 봤어, 못 들어 봤어? 주인보다 나아야 될 게 아니예요. 나는 며칠 이내에 다 듣는다 해 가지고 24시간 내내 틀어 놓고 지냈습니다. 밤에도 틀어 놓고 잤어요. (웃음)
노래를 잘 부르면 참 좋은 거라구요. 효자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드리면서 노래하고, 청춘 남녀들이 서로 좋아하는 심정을 노래하려면 그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귀의 책임을 지고 선두에 서서 가는 사람으로서 소원성취를 어떻게든 해내야 될 것 아니예요? 이게 전부 다 도(道)라고요. 도의 경지라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밤을 새는 거예요. 잘 때는 어떻게 하느냐? 잘 때는 아예 조그맣게 틀어 놓고 이불을 쓰고 듣는 것입니다. 이랬던 생각이 나는구만, 내가 그렇게 극성맞다구요. 내가 무엇이든지 하면 누구한테 지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노래도 배워 두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일생에 정식으로 노래를 배워 본적이 없습니다. 선생을 통해서 노래를 배워 본 적이 없어요. 또 그러는 것은 싫습니다. 그냥 들어 가지고 노래 부르는 것이 더 좋지. 또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노래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가만 보고 전부 자기가 쥐고 흔들어야 할 판국일 때는 그런 일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이런 저런 모든 연단과 힘든 경지를 통과하는 것은 목적한 그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때는 도매금으로 팔려도 갑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동네하고 저 동네하고 씨름을 하는데 이 동네가 저 동네에게 지고 있으면 이 동네를 지원하기 위해 내가 나가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가서 깃대를 꽂고 노래도 부르며 그 때의 주도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이런 저런 모든 일에 흥미진진하게 관심을 갖고 결사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겁니다. 나는 그래요. 어디 노름판에 가면, 노름 그거 한번 하고 싶지 그냥 지나가고 싶지 않아요. 싸움하는 패를 보게 되면, 내가 들어가서 싸움을 해서라도 해결해야지 그냥은 못 지나갑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지기를 싫어합니다. 싸움에서 지는 것도 내가 제일 싫어해요. 잘못된 것을 보게 되면 내가 때려잡든가 무슨 수를 쓰든가 해야지 그냥 구경하는 것은 싫다구요.
뭐든지 전부 다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렇게 저렇게 지내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한 것이더라구요. 여러분이 이렇게 전심전력으로만 하면 모든 일이 자신에게 마이너스되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경험을 통해서 증명되는 겁니다.
적극적으로 살라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 온종일 맞고 고문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판자 쪼가리로 조이고 뒤틀어 짤 때도 '이 자식들, 해보자, 이 자식들아' 그러면서 참았습니다. 형사들이 '내가 형사 노릇을 몇 년 했지만 이런 놈은 처음이다'고 하면서 '에이, 잘못 만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웃음) 내가 매를 맞고도 기분이 좋더라구요. 난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시시한 것은 싫어해요. 적극적이라구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선생님을 모시고 가는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선생님 눈에 안 듭니다. 눈치나 보고 그러는 것은 싫어한다구요.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그러니만큼, 지금까지 그렇게 싸워 나왔고 그런 경험을 통해 전통을 세워서 닦아 놓은 이 터전 위에 있는 여러분이니만큼, 여러분이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부락에 관해 미리 알아 가지고 80세 된 노인을 만나면 이런 말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이곳에 오래 사셨으니 어느 산에는 무슨 바위가 있고, 무엇이 있고, 무엇이 있는데 그것을 아십니까? 그때 만일 그 할아버지가 '그런 말은 들었소만' 한다면, 그 할아버지도 여러분한테 배워야 된다구요. 그 주위의 자연을 '저기 오리나무는 누가 심고 누구도 심고' 전부 다 조사해 가지고 아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동네의 나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이 알면 '아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80년 살았지만, 내가 이 동네에서 일년밖에 안 살았다고 해서 큰소리치지 마소' 하고 한번 들이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분 나빠도 맞는 겁니다. 무시 못하는 것입니다.
농촌에 나가 가지고 일할 때도 그래요. 선생님이 모를 참 잘 내요. 모내는 데는 선수라구요. 여기 모내기하는 것을 보면 전부 다'맞았다, 당겨라, 끌어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평안도 정주지방은 전국에서 농업이 제일 잘 발달했던 곳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거기에 실험장을 만들었었어요. 정주 지방이 북해도, 동경, 오우지방(奧羽地方) 등 중간지방의 기후와 맞먹는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일본사람들이 당시의 농사실험 장으로서는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들이 연구한 최고로 빠른 농사법을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곳입니다. 그들이 개량한 농사방법을 시범 케이스로 전군민에게 실시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모내기를 하는 데 있어서 논의 양쪽 첫 가장자리에만 90도 각도로 금을 그어 놓으면 정방향이 됩니다. 모를 심을 때 먼저 줄을 쭉 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장자리에서부터 줄 하나씩에 딱 두 사람이 들어서 가지고 모를 심는데, 모를 심을 때 발자국이 나지 않는 곳에 모를 심어야지 발자국이 난 곳에 모를 심게 되면 큰 비가 오거나 할 때는 큰 야단이라구요. 반환 점이 딱 있어 가지고 둘이서 안팎으로 자기 발자국만 따라 심어갔다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줄을 따라서 왔다갔다 하면서 메워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모를 심으려면 얼마나 더뎌요.
이런 방법으로 한 사람이 열 두 포기씩 딱딱 심기로 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잘 옮겨 심어가면 한 사람이 하루에 오백 평 이상 심는다구요. 두 사람이면 천 평 이상 심는다구요. 열두 사람이면 열두 사람이 한꺼번에 줄을 딱 서서 나가기 때문에 땡땡이꾼이나 더딘 사람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녀석은 그 동네에서 일을 못 해요. 거기에서 일등 난 사람이 남들보다 2배를 하게 되면, 남들보다 2배를 심는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그 사람은 어디서든지 갑절의 돈을 주고라도 데려가려고 합니다. 왜? 모내기를 할 때 그런 사람이 몇 명이 끼어 있어야 그 바람에, 그 사람을 따라가느라고 잘 심게 되거든요. 이것을 시합도 하는 거예요. 일주일이면 일주일 동안 몇 동네에서 장정들을 참석시켜 가지고 경쟁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몇 동네의 일을 후닥닥 해치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도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거라구요.
모를 찔 때도 뿌리 있는 곳을 잘 잡아야 잘 뽑아지는 것입니다. 모를 찌는 판에서도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한패가 되는데 '아무개 패' 하면 그 패에서 모찌는 사람은 누구고 옮기는 사람은 누구고 묶는 사람은 누구라고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를 찔 때는 뿌리를 잘 갈라야 됩니다. 뿌리부분을 딱 붙잡고 뽑아야 잘 뽑아지는 것입니다. 뽑은 모를 묶는 데는 많이 묶지 말고 한손에 딱 들 수 있을 만큼만 묶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연구를 해야 돼요. 경쟁하니까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잠시 녹음이 중단됨 )
여러 재료를 수집·연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라
참된 지도자가 되려면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가 책임진 무대에서 안팎의 작전을 세워서 그 무대를 내적인 작전으로 소화시키고, 외적인 작전으로 소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재료를 수집해서 연구하고 남보다 자지 않고 더 노력해야 됩니다. 그 동네의 사람들 앞에 어떤 자극을 주고 그 사람들 앞에 플러스의 요건을 어떻게 남겨 주느냐에 따라 그 부락이 확 끌려 오느냐, 안 끌려 오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세를 지면 누가 좋아하겠어요?「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그 다음에는 안팎으로 부모의 책임을 진 교회장,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이고, 책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여러분이 하나님과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야 돼요. 문제가 그거라구요. 여러분이 지도자로서 하루 종일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그리워해야 됩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그리워해야 됩니다. 흠모와 사모의 심정이 언제나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보고 싶고, 그 무엇인지 모르게 클클하고, 배고픈 아이가 젖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무엇인지 모르게 그립고…. 그럴 때는 남 모르는 가운데, 은은한 가운데 자기 스스로 영적 양식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걸 남은 모르는 거예요.
어머니도 그렇습니다. 어머니도 선생님이 기도를 안 하는 줄 알아요. 자기는 아래층에 살고 나는 윗층에 사니까, 내가 기도하는 걸 보지 못했다구요. '올라가서 잔다' 하고 올라가면 자고, 내려오게 되면 자다가 내려오는 줄 알아요. 평소에 기도하는 만큼 기도하고 자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 선생 노릇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기도해야 됩니다. 큰 문제를 결정하는 데는 혼자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라가 망할 수 있고, 나라가 왔다갔다하고 복귀섭리의 뜻이 한 고개를 넘고, 파도가 쳐 넘어올 때 그것을 늠름히 넘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정성을 쌓아야 합니다.
새로이 당하는 큰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때 잘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하면 통일교회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망할 수도 있고, 흥할 수도 있는 이런 기로에 서 가지고 어떻게 하든 하늘의 국가를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교회 책임자는 눈물이 말라서는 안 돼
전부 다 자기가 결정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 자기 나름의 비법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그 원칙만 따라가게 되면 안 될 것 같지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반대하는 무엇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서 그 성과가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일치되는 것을 경험시키고 실제로 보여 주고 체휼시켜야 됩니다. 그러려면 내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판결할 수 있어야 되고 하늘의 협조가 있어야 됩니다. 하늘의 협조를 받으려면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책임자는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정말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교회 책임자입니다. 언제나 슬픔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 교회 책임자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복귀섭리의 때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불쌍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일을 해 가지고 복귀의 길을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이렇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히고 목이 막히고 가슴이 터지는 슬픔을 느낄 때가 많다는 거예요. 졸도할 수 있는 정도의 느낌이 올때가 많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세상을 붙들고 혹은 길 가던 남을 붙들고 수습할 때도 많다는 거예요. 이런 심정이 없어 가지고는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동네 어디를 가다가 나쁜 것을 보게 되면 '지금은 내가 그냥 지나가지만 다음에 와 가지고 보자. 이 내 손으로 깨끗이 치워 놓을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구요.
이런 입장에 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이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시겠습니까? 그러니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기도를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거예요. 자기에게 슬픔이 오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동정이 오는 배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픈 거라구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절대 외롭지 않아요. 찬 방에 눕더라도, 동삼삭에 얼음덩이 같은 방에 눕더라도 자신이 불쌍하지 않은 것입니다. 복합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도를 모르지요? 기도할 시간이 없으면 걸어다니면서 하세요. 걸어다니면서 기도하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대신 전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하루의 기도를 대신해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냐?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주는 데는 같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설교를 하려면 어렵지요? 원리 말씀은 그대로 하면 되지만 설교는 힘들다고요. 그것은 같은 것을 주지 않아야 되겠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같은 것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이것저것 좋은 것을 가려서 먹여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것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줄 것이 없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식구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결국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기도를 하면서도 뭘 기도하는 줄을 모르면서 기도하는 때가 있다고요. 그럴 때는 기도하면서 자기가 기도하는 말에 자기가 감동받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기도를 하면 청중은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사로잡히게 되고, '하나님이 생명의 원동력이요, 본체다' 하는 것을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연을 연결시켜 가지고 청중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는 기도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에 훌륭했다는 사람들, 역사에 나오는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다 훌륭한 학자가 아닙니다. 훌륭한 사람이란 그야말로 심정의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 심정의 배가 부를 때에 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희열에 사무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청중은 거기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주어야 할 텐데, 주려면 보급받아야 할 텐데 보급을 어디에서 받느냐? 본부에서 선생님의 설교를 들어서 보급받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 혼자 떨어져 있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보급받을 수 있는 보급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능력을 길러야 됩니다. 어디 나서면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를 받아야 돼요. 참부모를 모시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세계가 여러분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자기 앞에 있는 일이 하나님의 섭리를 좌우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어디를 가더라도 심판의 방패로서 왔다갔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 번만 왔다갔다해서 공을 쌓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내가 가면 하나님이 가고 내가 오면 하나님도 온다는 것을 자연히 실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은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이나 합니까? 잠을 안 자고라도 기도를 해야 된다구요.
참부모와 같은 지도자
다시 돌아가서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하느냐? 참부모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도를 해서 작전을 세워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진리를 보급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보급은 어디서 받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작전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작전법을 배워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법을 배워서 최고의 작전계획을 세우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내가 지도자의 책임을 졌으니,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단 하나의 책임자이니, 내가 선 이 자리는 참부모의 자리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합하여 작전을 하는 데 있어서 먼저 알아야 되는 것이 하늘의 법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경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이니 그대로 실천해 보세요.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금후에 여러분이 가는 곳은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다가 길을 떠나게 되면 많은 식구들이 그 길을 따라 나설 것이고, 혹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 이동하는 여러분을 대해 눈물을 흘릴 것이고, 눈물을 흘릴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이동해 간 그곳까지 찾아 왔다갔다할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갑이라는 사람이 이동해 가고 을이라는 사람이 새로 왔을 때, 식구들이 을이라는 사람을 남겨 놓고 갑이라는 사람이 이동해 간 곳을 찾아가게 되어 을이라는 사람이 시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을 시기하는 사람은 교역자가 못 됩니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고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어, 갑이라는 교회에서 전도를 하던 책임자가 을이라는 교회로 갔을 때, 갑이라는 교회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갑이라는 교회의 교인들이 그 책임자를 따라 전부 다 을이라는 교회로 갈 수 있게 된다면 그 책임자는 훌륭한 책임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럴 때 갑이라는 교회에 신임한 지도자는 자기 교회의 식구들이 을이라는 교회로 간다고 해서 그것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보내 주라는 거예요.
을이라는 교회에 가서 지도하는 방법을 배워 가지고 와서 대역자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대역자 노릇, 심부름꾼 노릇을 하다 보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 것 가지고 타고 앉아서 하려고 하면 다 놓치는 거예요. 알겠어요? 배우는 것입니다. 배우라는 거예요. 그 지도자의 제자와 같은 입장에서, 솔직하게 배워 가지고 자신이 그를 대신한다는 입장에서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것을 싫어하지요? 싫어해요, 좋아해요? 싫어했지요?「예」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더라도 한 식구입니다. 한 식구라도 가르쳐서 남기고 구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한 식구라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여 놓게 되면,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식구들이 연쇄적으로 책하게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곳에 와서 몇 사람을 전도했느냐? 죽인 사람이 많지, 살린 사람이 많지 않다 하게 될 때는 아무리 전도를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회개해야 됩니다. 베옷을 입고 절을 드리고 죽는 시늉을 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면 자기 아들딸이 전부 탕감받는 것입니다. 탕감법이 무서운 거예요. 이런 내용들을 참고해서 여러분이 지도자로서 올바른 길을 가 주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알겠지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천지간에 지도자가 어디에 또 따로 있겠습니까? 이 우주를 창조하신 온전하신 아버님밖에는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 참어버이를 지도자로 모실 수 있는 영광의 아들딸의 모습을 당신이 그리워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고, 밤이나 낮이나 그러한 아들딸의 모습을 흠모하고 사모해야 할 저희들인 것을 이제 알았사오니, 저희들을 그럴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자리까지 나오는 데는 아버님께서도 눈물의 골짜기를 많이 거치셨지만, 보잘것없는 이 자식도 남모르게 눈물을 흘려 왔사옵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 서러움을 자극시킬 수 있는 조건을 남길까봐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시옵니다. 이 보잘것없는 것을 붙들고, 이 보잘것없는 것을 칭찬의 자리에 세우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 때, 이 모두가 아버지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수고의 공로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이 통일교단은 흘러가는 역사의 한 면을 책임지기 위한 교단이 아니라 흘러가는 역사를 가로막고 전체를 소화시켜야 할 교단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사랑의 마음을 갖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마음을 갖고, 실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실천을 하고, 희생을 하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희생을 치러야 할 최고의 지도자의 사명을 하도록 분부받은 거룩한 무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것은 택함을 받았다고 해서 거룩한 무리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고도 또 희생하고 싶어하는 자리에 서야 남아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신을 희생시키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무리 가운데에 성인이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성인들이 바라던 소망의 뜻을 종결지을 수 있는 아버지와의 혈연적 인연을 이 땅 위에 심어 놓아야 할 아들딸의 인연이 통일교단 앞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인 줄 모르겠사옵니다.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저희들은 그 혈통적 인연을 재정비하여 참부모의 혈통을 상속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사옵고, 그런 길을 통해서 당신 앞에 선 저희들은 무한한 복을 받은 모습들인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받은 축복과 축복 가정의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몰랐던 저희들이요, 생명을 대신 가려가는 길을 책임진 교회장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도 미처 몰랐던 저희들이었사옵니다. 이제 그런 것을 확실히 깨닫고 과거와 같은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백 번 죽고 백 번 희생하고서도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백 번 죽고 백 번 희생하고서도 또 그 이상의 수난길을 찾아가야 할 입장이 온 우주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입장이요, 이것을 탕감해 내야 할 예수와 성신의 입장이요, 참부모의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환난의 길을 피하기를 원하였고 고통의 자리를 피해 가고자 했던 저희들이 얼마나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옵니다.
민족을 넘어 세계의 수난길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이 당하는 수난길마저도 피하려 했던 부족한 저희들이 이제 회개하고 새로이 각성하고 자각하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난길을 책임지고 나가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음의 고빗길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과 딸로서의 위신을 세워 드리는 무리가 되겠다는 신념을 강하게 갖고 다시 한 번 내심으로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팔월 중순, 이 좋은 계절에 저희들이 청평 땅에 모여서 이와 같은 수련회를 갖게 된 것은 저희들이 낙망과 절망을 촉구하는 슬픔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망과 희망 가운데 내일의 승리의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이옵니다. 벌거숭이의 몸과 붉은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소명을 받은 저희들이 당신이 분부하시는 명령을 저희들의 생명과 더불어 이루어 바치고자 하는 자리에서 새로이 출발하기를 결의하기 위해 모였사오니,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의 권위와 위신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책임자로서의 권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빛 되고 가치 있는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수난길을 참고 나오신 한 많은 역사의 인연을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인자하신 정통사상을 저희들이 본받아 끝까지 참고 남아져서 당신의 축복 권내에 들어가서 당신이 자랑하시기에, 나아가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서 길이 남아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참된 지도자의 갈 길이 어떤 것임을 말하였사옵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심정을 지녀야 되겠사옵고, 참부모로서 자녀를 보호하고 자녀를 찾아 나오는 작전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날이 새로운 것을 먹여 줘야 할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인 것을 확실히 알고, 남보다 더 고달픈 사정에 처해 있더라도 남보다 더 희생하는 입장에 서서 그들을 위하고 그들 앞에 부모의 사명을 다할 줄 아는 금번에 여기 모인 교회장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자기의 일념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고,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하여 아버님을 섭섭하게 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다시 깨달아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복될 수 있는 아들과 딸로 세워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되도록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청산짓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이 길지 않은 이번 기간을 당신이 축복하시사, 이들을 허락하신 복귀동산에 남아질 수 있는 승리의 왕자와 왕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뒤를 이어받아 가문을 지킬 수 있는 족장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소서.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채찍을 가하여서라도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당신께 맡기오니 경륜하시는 뜻 가운데서 승리의 한때를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