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 설교
제목: 예수 그리스도와 나
https://youtu.be/UFXo6oxtcfw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5~16
설교 목적
우리의 신우회를 보면, 기존 신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신앙의 입문자들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초를 바르게 닦는 것은 필요하다. 나는 신년을 시작하면서 신앙의 기초를 다시 한번 닦고자 한다. 그 기초는 우리의 신앙과 인생목적을 세우기 위한 받침이 된다. 그러므로 이 받침을 든든히 하는 일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건축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기존에 지어진 집도 그 기초를 다질 수 있다면 더욱 견고하고 빛날 것이다. 신앙의 기초는 이런 점에서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신앙의 기초는 사실 간단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사람이 신앙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직업이나 인생의 선택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하여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기초를 든든하게 세운 사람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이 작업을 해 보고자 한다.
일단,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이다. 이 문제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이것은 신자에게 정말 중요하고 결정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구원자 예수
2. 후견인 예수
3. 삶의 목적 예수
4. 롤 모델 예수
5. 만물의 통치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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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오늘 저의 설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저의 설명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 이야기는 그 동안 제가 생각했던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1. 구원자 예수
어린 시절, 아마 초등학교에 다닐 때 예수님은 저에게 구원자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린 저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그분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담긴 만화전도지를 보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부모님과 선생님께도 순종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벌을 받을까 생각하니 예수님을 믿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섬마을에 살던 저에게 교회에 다니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은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형들과 함께 뭔가 하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 가장 밑바닥에는 하나님처럼 높은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어린시절에 예수님은 저의 구원자이셨습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어 세례를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시골 중학교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마을 저수지에서 열리는 세례식에 참석했습니다. 11월 26일 추운 겨울날 마을 저수지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이미 목사님은 차가운 물속에서 오래 계셨는데 얼마나 추우실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추운 날씨에 물속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신앙심을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친구와 함께 비장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은 10월 26일 한달 뒤이기 때문입니다.
2. 후견인 예수
세례를 받은 후부터 저는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배우는 일에 더욱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나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시골을 떠나 광주라는 객지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일종의 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새 유학이라면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이지만, 제가 살던 섬마을에서 유학은 시골과 부모님을 떠나 도시에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 산다는 것은 상당히 진지한 마음가짐을 요구합니다. 객지에서 보내는 일상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입니다. 그 임무는 가족의 후원과 희생을 등에 지고 완수해야 하는 일종의 미션입니다. 그렇게 목표를 향한 객지생활이 시작되었고 그 고독한 길에서 기도와 성경읽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고 보니 이제 하나님이 저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믿었습니다. 가끔 부모님께 편지를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의 예수님은 저에게 부모님을 대신하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저의 삶에 대한 보고를 드리기도 하고 제 삶에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대상이며, 그 앞에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며 용기를 얻기도 하는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는 일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저의 삶에서 후견인과 같은 분이 되셨습니다.
3. 삶의 목적 예수
그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대학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다른 유학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미션입니다. 집에서 더 멀리 왔습니다. 이제 더 절실하게 후견인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어느 날, 학교 구내식당에서 열린 기독써클에 참여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이런 초청을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바칠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세요!’ 그때 저는 마치 어린 시절에 구원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를 따라할 때 무언가 비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청년 시절, 학과에서 전공분야를 따라 미래를 결정하던 시절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 저의 인생을 바쳤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 저의 인생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방법은 내가 목회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었지만 저는 목회자가 되는데 필요한 과목을 수강하거나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청년시절의 저에게 예수님은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대로 신학대학원에 들어갔고 마침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4. 롤 모델 예수
목회자가 되어서 저는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겼으며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교회를 맡아 섬기는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설교나 상담을 통해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구원자이시고 삶의 후견인이시고, 인생의 목적이 되시는 분이었으니 그것을 성경으로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삶을 통해서 배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목회를 하다 보니 문득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셨을까?’ 또는 ‘예수님은 이보다 더 험한 일을 당하셨지?’ 제가 목회자로서 만나는 어려움을 앞에서 저는 어느 새 예수님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아니라 소수의 제자들과 먼지나는 갈릴리와 유대 고을들을 다니시던 예수님을 마음 속에 생각했습니다. 사랑하고 애정을 쏟은 제자들이 배반을 하고 무례한 말을 쏟아 놓을 때 그것을 묵묵히 견디셨던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둥 또는 먹기를 탐하는 자라는 등의 비난을 묵묵히 삼키셨던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예수님, 낮은 자들의 벗이 되어 주신 예수님, 그리고 온 세상을 다 가지신 것처럼 당당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저에게 롤 모델로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에 대한 저의 생각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배운 예수님은 여전히 지금도 저에게 구원자로 계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저의 인생의 후견인이십니다. 삶의 목적이 되시고 이제는 롤 모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그런 분이십니다.
5. 만물의 통치자 예수
그런데 2024년 초에 제가 예수님을 누구에게 소개한다면,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만물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입니다. 사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사도신경을 외웠습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이라는 이름으로 예배 시간에 암송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예수님에 대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분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암송한 이 신앙고백은 사실 많은 내용을 포함합니다.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분이라는 말씀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상속자 또는 후계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는 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물려받으십니다. 그렇기에 만민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성경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 질문들을 붙들고 씨름을 할 때 저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잊어버릴 때마다 저는 마치 지진이 나서 흔들리는 땅에 서 있는 사람처럼 휘청거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굳게 붙들고 있으면 저는 마음에 평안을 찾으며 삶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새로운 깨우침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이 세상을 운영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운영하실 때 특별히 자신의 동역자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에게 영화와 존귀로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할 때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지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시기에 이 세상을 새롭게 할 동역자를 부르십니다. 그들이 노아요, 아브라함이며,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어떻게 순종하고 불순종했는지를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대서사의 절정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열두 제자들을 모으시고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동역자로 사는 법을 가르치셨고 그렇게 살 때 어떤 세상이 열리는지를 비유로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붙들려 처형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보고 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만물의 통치자가 되셨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예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실행하는 동역자이며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삶으로써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이 세상은 새롭게 창조될 것을 믿습니다. 마치 태초의 그날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시는 날 이 세상은 새롭게 될 것을 믿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그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저는 오늘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릅니다. 여러분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끝>.